화본선생
【정견망】
자운산 제자들은 곤륜산에 도착하자마자 ‘일지봉 금심곡(一止峰金心谷)’이 어디인지 수소문할 뿐, 실제로 요괴를 잡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곤륜산의 신선들에게 묻고 또 물어도 일지봉 금심곡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곤륜산은 지형이 기이하고 생령들도 매우 민첩했다. 마족의 요마들이 곤륜산의 생령들을 해치기는 어려웠으나, 그들은 곤륜산의 식생을 파괴하고 수원을 오염시켰다. 꽃과 풀을 짓밟고 나무를 꺾었으며, 배설물을 곤륜산 호수에 그대로 쏟아부으며 산을 엉망으로 망쳐놓았다.
이때 자줏빛 옷을 입은 묘령의 여인과 흰옷을 입은 선녀가 호숫가를 서성이며 무언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 작은 봉황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보냈는데 어찌 이리 소식이 없는 걸까?”
자줏빛 옷을 입은 여인이 말했다.
자줏빛 망사 드레스를 입은 이 여인은 봉황의 눈매를 닮아 차갑고 날카로워 보였으나,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드러나는 보조개가 무척 달콤했다. 이 여인이 요진의 오랜 친구인 청란(靑鸞)으로, 오랫동안 수련하여 신의 몸(神身)을 이룬 상태였다.
흰옷을 입은 여인이 말했다.
“조급해한들 무슨 소용인가요? 그녀는 이제 막 남섬부주 평정을 마치고 돌아왔으니 좀 쉴 틈도 줘야지요.”
흰옷의 여인은 청란보다 조금 나이가 있어 보였고 피부가 옥처럼 고운 미인이었으나 성격은 청란보다 훨씬 침착했다. 그녀 역시 요진의 오랜 친구인 희화(曦和)였다.
청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요. 이제 실력도 대단해졌으니, 성격상 집안이 난리가 난 것을 보고도 모른 체하지는 않을 거예요.”
청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 멀리 산꼭대기에서 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청란과 희화는 격하게 반가워하며 소리쳤다. “그녀가 돌아왔어요!”
그 휘파람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요진이었다. 요진은 백호(白虎)의 본모습을 드러냈는데, 예전보다 훨씬 영웅적이고 위풍당당했다. 산 정상에서 내지른 포효 한 번에 순식간에 곤륜산의 나무와 풀이 흔들렸고 만물이 숨을 죽였다.
청란과 희화뿐만 아니라 강국(羌國)의 맹수와 맹조들도 오랜 친구가 돌아온 것을 알아채고 요진에게 달려왔다. 니작(霓雀) 몽이(夢伊), 기린 장지(長志), 추우(騶虞) 낭활(朗闊), 노현구(玄龜) 등 모두 요진의 옛 친구들이었다.
수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요진은 친구들이 여전히 자신을 기억해주고 열렬히 환영해주자 가슴이 뭉클했다.
요진이 몸을 한 번 비틀자, 모두의 눈앞에 아리따운 낭자가 나타났다. 비단 치마가 몸을 감싸고 긴 머리카락은 폭포처럼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맑은 눈동자는 반짝였고 화사한 미소는 분홍빛 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누가 이 낭자를 보고 암호랑이라 생각하겠는가? 암호랑이도 수련을 하니 이토록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된 것이다.
요진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청란과 희화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언니들, 그동안 못 본 사이에 다들 이렇게나 아름다워지셨네요! 하하하!”
청란은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날 악당들에 의해 우리 사이가 갈라진 뒤로 네가 편지만 몇 통 보내주었지. 이렇게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정말 좋구나. 그동안 별일 없었니?”
요진이 말했다.
“저는 원시천존 문하에 들어가 재주를 좀 배웠어요. 사부님께서 이름도 지어주셨는데 ‘요진(瑤眞)’이라고 해요. 어때요, 예쁜가요?”
희화가 웃으며 말했다.
“큰 명성 지니신 진인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니 어찌 좋지 않겠니? 너는 정말 복도 많구나!”
희화는 말을 마치고 요진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톡 건드렸다.
사람들은 동시에 요진 곁에 있는 남자를 주목했다. 흰 비단옷을 입고 겉에는 옅은 푸른색 사선 옷을 걸쳤으며,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중 한 가닥이 가슴 앞으로 우아하게 내려온 모습이 참으로 풍류가 넘쳤다!
“어머? 이 풍류 넘치고 훤칠한 선군(仙君)은 누구신가요?” 사람들이 요진 곁의 풍잠을 보며 물었다.
요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 소개를 잊었네요. 이분은 제 사형이신 풍잠(風潛)이라고 해요.”
풍잠이 미소 지으며 모두에게 읍(揖)을 했다.
작은 원숭이 한 마리가 농담을 던졌다.
“요진! 혹시 네 정인(情人) 아니냐!”
요진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이 못된 원숭이 같으니! 여전히 장난꾸러기구나!”
모두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요진이 풍잠을 돌아보니,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요진은 얼른 해명했다.
“사형, 개의치 마세요. 곤륜산 친구들이 좀 촌스럽고 장난기가 많아요…….”
그들이 웃고 떠드는데 현구(玄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고, 다들 정신 차리고 저 나쁜 놈들을 어떻게 쫓아낼지부터 생각하게나!”
요진은 그제야 이곳에 온 목적이 생각나 급히 말했다.
“큰일을 그르칠 뻔했네요! 어서 대책을 논의합시다…….”
토론 끝에 계획적으로 움직이기로 하고, 우선 적을 놀라게 하지 않기로 했다. 먼저 풍잠이 구름 위에서 요마귀괴들의 분포 지형도를 그렸다. 요진은 그 지도에 따라 진(陣)을 쳤는데, 지형과 요마의 종류에 따라 진형을 달리했다. 이번 제마(除魔) 작전은 곤륜산 정상의 강국을 중심 기지로 삼았다. 창조(蒼鳥) 청란은 곤륜산 남서쪽의 조류를, 니작 몽이는 북동쪽의 조류를, 기린 장지는 남동쪽의 짐승들을, 추우 낭활은 북서쪽의 짐승들을 통솔하기로 했다. 모두가 요진을 통수(統帥)로 추대했고, 현구와 해치가 군사가 되었다. 늙은 현구는 움직임이 불편하므로 요진은 설봉을 노구의 탈것으로, 맹황을 해치의 탈것으로 붙여주었으며 풍잠은 요진을 돕기로 했다.
풍잠은 지형도를 그리던 중 외지인 한 무리가 곤륜산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을 발견하고 요진에게 알렸다.
“저 사람들이 낯이 좀 익은데, 우두머리 격인 몇 명은 통천교주 사숙님의 제자들 같구나.”
요진이 희화에게 저들이 무엇을 하러 왔는지 묻자 희화가 답했다.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들었어요. 그들은 계속해서 일지봉 금심곡이라는 곳을 찾으며 그곳에 보물이 있다고 하더군요.”
요진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일지봉? 금심곡? 들어본 적이 없는데……. 뭐, 상관없어요. 우리는 우리 일을 계속합시다.”
지형도가 완성되자 요진은 지형 특성과 사마(邪魔)의 수에 따라 진을 쳤다. 확실히 쉬운 일이었다. 요마들이 아무리 교활해도 곤륜산의 시내와 호수, 동굴과 협곡에 익숙할 리 없었다. 호수와 시내는 함정이 되었고, 동굴과 협곡은 기관(機關)이 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각처의 기관과 함정이 설치 완료되었고, 맹조와 신수들이 출격 준비를 마쳤다. 어리석은 요마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줄도 모르고 여전히 먹고 마시고 있었으니, 설마 우리 선산에서 설이라도 쇨 작정이었단 말인가? 위대한 대곤륜이 어찌 사악의 방종을 허용하겠는가?!
사마들은 주변 숲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으나 포위된 줄도 모르고 멍하게 있었다. 이어 산 정상에서 호랑이 포효 소리가 들리자 신수(神獸)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요마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다보와 옥두 일행은 마침 정호(晶湖) 옆을 지나다 무언가 눈치를 챘다.
다보가 말했다.
“아마 곤륜산의 산대왕이 돌아왔나 보군. 그렇지 않고서야 신수들이 제아무리 용맹한들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짤 리가 없지!”
옥두가 말했다.
“싸우게 내버려 두게, 우리 수고를 덜어주니 좋지 않은가!”
소보는 짜증 난다는 듯 땅바닥에 주저앉아 말했다.
“에고, 힘들어 죽겠네! 우린 도대체 언제 그 보물을 찾는 거야?”
옥두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조용히 해! 천제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신 건 마귀를 잡으라는 명분 때문이야! 네가 그렇게 떠들면 우리가 보물을 찾으러 온 걸 온 세상이 알게 될 것 아니냐!”
소보는 가짜로 입을 틀어막더니 다시 물었다.
“형님! 천제께서 우리 사부님을 속이신 건 아닐까요?”
다보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천지의 군주께서 어찌 그런 농담을 하시겠느냐? 너 같은 줄 아느냐!”
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생각해 보세요, 곤륜산 현지인들도 일지봉 금심곡이 어딘지 모른다잖아요! 이게 얼마나 이상한 일이에요?”
이 일행도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요진은 방금 괴물 하나를 추격하다 마침 정호 밑에 숨어 있었는데, 그들의 대화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들었다. ‘이 멍청한 놈들, 정말 한심하구나. 보물 하나 때문에 천제의 명도 어기고 요마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걸 보고만 있다니, 수도인(修道人)이라는 이름이 아깝다!’
이에 요진은 그들을 골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요진은 조용히 호수 밖으로 나와, 호숫가에 앉아 머리를 감는 선녀인 척 위장했다.
다보 일행은 한 여인이 호숫가에서 머리를 감는 것을 보고 처음엔 말을 걸 생각이 없었으나,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군(仙君)들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길인가요?”
다보는 선녀의 얼굴이 귀엽고 눈매가 생기 넘치며 온화하고 순결해 보이자, 다가가 읍을 하며 답했다.
“낭자, 결례를 범합니다. 저희는 일지봉 금심곡이라는 곳을 찾고 있는데, 혹시 아시는지요?”
그 여인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곳이라면 제가 좀 아는 것 같네요.”
사람들은 일제히 흥분하여 구체적인 위치를 물었다.
그러나 여인은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기억이 좀 가물가물해서요. 그 글자들을 한 번 써보세요. 그럼 맞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보는 ‘일지봉 금심곡(一止峰 金心谷)’이라는 큰 글자를 모래사장에 썼다.
그제야 여인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아아! 생각났어요! 바로 저쪽 동쪽 봉우리를 지나서 서쪽으로 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그러다 호수 하나를 건너고…… 굽잇길 세 번을 돌면…… 도착이에요. 아시겠어요?”
다보는 기쁘게 대답했다.
“길이 좀 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딘지 알게 되었으니 정말 고맙소, 낭자!”
말을 마친 일행은 흥분하여 서둘러 길을 떠났고, 요진은 얼굴을 가리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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