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운
【정견망】

주유. (천외객 / 에포크타임스 합성도)
건안 5년, 손책은 죽기 전 몸에 지녔던 인장을 동생 손권에게 건네며 말했다. “강동의 장졸을 거느리고 천하와 다투는 일은 네가 나만 못하겠지만, 어진 이를 등용해 마음을 다하게 하여 강동을 보존하는 일은 내가 너만 못하구나!” 손책이 별세하고 19세의 손권이 오후(吳侯)가 되었다.
손권이 뒤를 잇다
손책이 강동 6군을 평정할 때 손권은 겨우 15세였다. 손권은 어려서부터 각진 얼굴에 큰 입, 눈에는 정기가 서려 부친 손견은 늘 이 아이에게 타고난 귀상(貴相)이 있다고 생각했다. 성장한 손권은 성품이 너그럽고 활달하며 마음이 착하고 결단력이 빨랐다[1]. 부친과 형처럼 그 주변에도 항상 협객들이 따랐다.
한 조정의 사신 유완(劉琬)이 명을 받고 손책을 책봉하러 왔을 때 손씨 형제들을 보고 말했다. “손씨 형제들이 모두 재능은 뛰어나나 복과 수명이 길지 않은데, 오직 둘째만은 다르다. 생김새가 기이하고 골격이 비범하니 크게 귀하게 될 명이며 가장 장수할 상이다.”
손권은 어려서부터 부친과 형의 곁에서 보고 배웠으며 양선(陽羨) 현령으로 파견되어 단련을 받으니 젊은 나이에 비범한 재능을 드러냈다. 손책은 일찍이 동생의 재능을 알아보고 유언으로 후사를 맡기며 당부했다.
“안의 일을 결정하지 못하겠으면 장소(張昭)에게 묻고, 바깥일이 결정하지 못하겠으면 주유에게 묻거라.”
주유 충성을 다해 어린 주인을 보필
주유는 손책의 비보를 듣고 슬픔을 억누르며 즉시 파구(巴丘)에서 달려와 장례를 치렀다. 그는 먼저 소주 손권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맹세하며 군세로 정국을 안정시키는 주력이 되었다. 이어 주유는 중호군(中護軍)의 신분으로 장소와 함께 보좌했다. 사실 손권이 아직 장군직에 있을 때 관리들이 그를 대하는 예우가 소홀했으나 오직 주유만은 시종일관 공경하게 신하의 예우를 갖추었다[2].
손권은 형 손책과 우애가 깊어 작위를 이은 초기에도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때 노신 장소가 신하들을 거느리고 곁에 서서 권했다. “지금은 울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당시 오나라는 회계, 오군, 단양, 예장, 노릉 등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험준한 지역들은 완전히 복종하지 않은 상태였다. 또 비록 중원에서 건너온 인재들이 많았으나 모두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해 군신(君臣) 간의 의리가 굳건하지 못했다. 이에 장소는 손권을 설득해 조복(朝服)으로 갈아입게 하고, 울고 있는 그를 말에 태워 군영을 순찰하게 함으로써 군민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건안 5년(서기 200년),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하던 시기에 청년 군주 손권이 정식으로 동남의 역사 무대에 등장했다.
노숙을 설득해 돌아오게 하다
손책이 죽고 손권이 계승하자 강동의 정세는 긴박해졌으나 노숙은 오랫동안 강동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노숙이 고향에서 상을 치르는 동안 친구가 편지를 보내 “강북 소호(巢湖)에 정보(鄭寶)라는 자가 군사 만여 명을 모아 형세가 좋고 물산이 풍부하니 때를 놓치지 말고 합류하라”고 권했다.
노숙은 상을 마치고 강동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고 강북으로 가려 했으나, 주유가 이미 그의 어머니를 오군의 도성으로 옮겨 모신 뒤였다. 노숙은 주유에게 북쪽으로 갈 뜻을 말했다.
주유는 노숙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옛날 마원(馬援)이 광무제에게 ‘지금 세상은 군주가 신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신하가 군주를 고르는 때입니다’라고 했는데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지금 오후(吳候 손권)께서는 인재를 중히 여겨 각방면의 뛰어난 기재와 선비들을 모으고 계십니다.”
이어 주유는 말을 돌려 오래된 예언을 언급했다. “내가 선철(先哲)로부터 들으니 ‘유씨를 대신해 천운(天運)을 행할 자는 반드시 동남방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신비한 예언이 있었소. 지금 형세를 보면 남방의 손씨 가문이 바로 천명의 주인공이며 우리가 힘을 보태야 할 때요!”
노숙은 주유의 말을 듣고 오군에 남기로 결심했다.
노숙이 바친 강산 대계(大計)
주유는 노숙을 손권에게 정중히 추천하며 왕업을 도울 인재이니 절대 놓치지 말라고 했다. 손권은 노숙을 불러 단둘이 침상에 앉아 술을 나누며 천하의 대계를 물었다.
노숙이 직언했다. “한실은 이미 부흥할 수 없고 조조 역시 제거할 수 없습니다. 장군을 위해 생각하건대 오직 강동을 힘껏 보존해야만 천하를 삼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황조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이어 유표를 토벌해 장강 연안을 장악하십시오. 그 후 때를 기다려 왕을 칭하고 천하를 도모하십시오.“[3]
노숙의 한마디는 손권을 위한 천하에 대한 큰 밑그림을 그려주었다. 청년 군주 손권은 깊이 공감했으나 겉으로는 그저 겸손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힘을 다해 한실(漢室)을 도울 뿐이니 그대가 말한 것은 아직 고려할 단계가 아닙니다.”
노신 장소는 노숙의 언행이 가볍다며 등용을 반대했다. 그러나 손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노숙에게 귀한 재물을 내렸으며 그의 어머니에게도 막대한 의복과 생활용품을 주어 고향에서처럼 풍족하게 살게 했다.
청년 군주, 위신을 세우다
손권이 계승한 지 얼마 안 되어 노강 태수 이술(李術)이 반심을 품고 도망자들을 수용했다. 손권이 편지를 보내 그들을 돌려보내 달라고 했으나 이술은 “덕이 있으면 사람이 귀순하고 덕이 없으면 배반하는 법이니 돌려줄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손권은 크게 노하여 조조에게 이술의 흉악함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 지원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군사를 내어 이술을 쳤다. 이술이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조조는 응하지 않았고 손권은 환성을 함락시켜 모략을 완수하고 위신을 세웠다[4].
손권은 나이가 젊고 활발하며 모험을 즐겨 담력이 컸다. 특히 직접 말을 타고 호랑이를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다. 한번은 손권이 호랑이를 쏘려는데 호랑이가 갑자기 안장을 덮쳤다. 노신 장소가 얼굴색이 변해 달려와 말했다. “군주 된 자는 영웅을 부리고 현사들을 다스려야지, 어찌 들판에서 맹수와 용맹을 겨룹니까? 만약 위험이 닥치면 천하의 비웃음을 어찌 감당하시렵니까?”
손권은 예의를 갖추어 사과했다. “나이가 젊어 생각이 짧아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버릇은 여전했다. 손권은 사격용 수레를 특수 제작했는데 지붕 없이 혼자 타서 호랑이를 쏘았다. 가끔 짐승이 수레를 덮치면 손권은 맨손으로 때려잡으며 즐거워했다. 장소가 간곡히 간해도 손권은 웃으며 답하지 않았다[5].
강동의 맹장들
손책은 충성스럽고 용맹한 장수들을 남겼고 손권은 그들과 형제처럼 지내며 은혜를 베풀었다. 그중 손권이 가장 고마워한 이는 주태(周泰)였다. 회계를 지킬 때 주태는 위기에 빠진 손권을 구하기 위해 칼과 창을 몸으로 막아내어 12군데의 자상(刺傷)을 입고 오랫동안 혼수 상태에 빠졌다. 주태가 없었다면 손권의 목숨도 보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년 후 손권은 연회에서 주태의 팔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대는 우리 형제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십여 군데 상처를 입어 지금까지 흉터가 남았으니, 내가 어찌 골육의 정으로 대하지 않으며 병마의 중책을 맡기지 않겠는가!” 그는 어용 수레 덮개를 주태에게 내리고 출입할 때 병마로 호위하게 했다[6].
형이 죽은 뒤로 손권은 주유, 장소 등 옛 부하들 외에도 감녕, 능통, 서성, 노숙, 제갈근 등 용사와 준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며 왕성한 포부를 드러냈다.
주석
[1] 《삼국지》 <오서 오주전> 인용 《강표전》: 손견이 하비승으로 있을 때 손권이 태어났다. 각진 얼굴에 큰 입, 눈에 정기가 있어 손견이 기이하게 여겼다. 손견이 죽고 손책이 강동에서 일어날 때 손권이 늘 수행했다. 성품이 활달하고 인자하며 결단력이 있었다. 형과 아버지만큼 명성이 높았고 손책도 그를 기특하게 여겨 “이들이 너의 장수들이다”라고 했다.
[2] 《삼국지》 <오서 주유전>: 애초에 주유가 손책과 우애가 깊어 태비(손권의 어머니)가 손권에게 형으로 모시게 했다. 당시 손권은 장군이었고 다른 이들은 예우가 소홀했으나 주유만은 먼저 경의를 표하며 신하의 절개를 지켰다.
[3] 《삼국지》 <오지 노숙전>
[4] 《삼국지》 <오주전> 인용 《강표전》: 손책이 이술을 노강태수로 썼으나 손책 사후 손권에게 복종하지 않고 도망자들을 받았다. 손권이 화가 나 조조에게 이술의 악행을 알리고 토벌할 것을 고했다. 이술이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성은 도륙되었으며 이술의 목이 걸렸다.
[5] 《삼국지》 <장소전>: 유비가 손권을 차기장군으로 표하자 장소가 군사가 되었다. 손권이 사냥을 즐겨 호랑이가 안장을 잡자 장소가 화를 내며 “군주가 어찌 맹수와 용맹을 겨루느냐”고 간했다. 손권이 사과했으나 사격용 수레를 만들어 계속 사냥했고 장소의 간언에 웃음으로 답했다.
[6] 《삼국지》 권55 <주태전> 인용 《강표전》: 손권이 주태의 팔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유평(幼平 주태의 자), 그대는 우리 형제를 위해 곰과 호랑이처럼 싸워 수십 군데 상처를 입었으니 내가 어찌 골육의 정으로 대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그에게 어용 수레 덮개를 내리고 고수와 나팔을 불며 호위하게 했다.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b5/24/11/25/n14378302.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