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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길로 왔는지 기억 못하니 대법이 돌아갈 길 인도하네

운희(雲熙)

【정견망】

술 취해 가벼운 배 타고 흔들리며 물결 따라 무성한 꽃 핀 곳에 이르렀네.
속세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해 복숭아꽃 사이에서 살 수 없었네.
안개 자욱한 물결 아득하고 천리 밖에 해가 저무네.
푸른 산이 무수하고 꽃잎이 비처럼 어지러이 날리니
어느 길로 왔는지 기억이 없네.

醉漾輕舟,信流引到花深處。
塵緣相誤,無計花間住。
煙水茫茫,千裏斜陽暮。
山無數,亂紅如雨。
不記來時路。

송대 완약파(婉約派)의 대표 사인(詞人)인 진관(秦觀)은 섬세한 필치와 은미한 정서로 유명하며, 특히 인간 마음속 깊은 곳의 미묘한 파동을 묘사하는 데 뛰어났다. 그렇다면 그가 내심 진정으로 동경하고 곤혹스러워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이 시 《점강순·도원(點絳唇·桃源)》이야말로 그가 무심결에 그려낸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술 취해 가벼운 배 타고 흔들리며 물결 따라 무성한 꽃 핀 곳에 이르렀네.
속세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해 복숭아꽃 사이에서 살 수 없었네.”

시인은 술에 취한 뒤 배를 띄워 방향도 정하지 않은 채 물결 가는 대로 꽃풀 깊은 곳에 들어갔다. 이러한 흐름에 맡김은 진정한 방종이 아니라, 잠시나마 세속의 구속에서 벗어나 보려는 시도다. 평소 그는 공명과 이록(利祿), 세상의 인정과 사소한 일들에 얽매여 진실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어려웠다. 오직 술을 빌려서야 비로소 짧게나마 몸과 마음을 방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 속에는 시간과 장소가 명시되지 않았고 누구와 함께 마셨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교외 강가에서 홀로 잔을 기울이며 거닐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고독과 진실함이 더욱 잘 드러난다. 이런 파격적인 행동은 술에 취한 뒤에나 가능하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사람은 늘 체면을 차리고 이해득실을 따지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보이지 않는 겹겹의 제약 속에 자신을 가둔다.

“속세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해(塵緣相誤)”라는 네 글자는 시인 내면 깊은 곳의 모순과 무력감을 말해준다. 진관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아내 소소매(蘇小妹)는 재능이 뛰어났고, 소식(蘇軾)과 소소매 그리고 진관은 모두 불법(佛法)에 경외심을 품고 있었으며 서로 불연(佛緣)이 있었다. 다만 한쪽에는 관직의 명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청정(淸淨)한 본심이 있었다. 한쪽을 차마 놓지 못하면서도 다른 한쪽에 안주하기 어려웠으니, 나아가고 물러나는 사이에서 깊은 고뇌가 생겨난 것이다.

“안개 자욱한 물결 아득하고 천리 밖에 해가 저무네.
푸른 산이 무수하고 꽃잎이 비처럼 어지러이 날리니
어느 길로 왔는지 기억이 없네.”

여기서 아득한 것은 풍경의 전개이기도 하지만 심경의 묘사이기도 하다. 저녁 빛이 내리고 안개 낀 강물은 미미하며 먼 산은 첩첩이 쌓여 있고 꽃잎은 비처럼 흩날린다. 천지는 광활한데 사람의 마음은 도리어 돌아갈 곳이 없음을 느낀다. 이 순간 시인은 정작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느 길로 왔는지 기억이 없네.”라는 말은 겉으로 보기에 술에 취해 길을 잃은 것이나, 실제로는 더 깊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홍진(紅塵 속세)에 대한 염증과 명리(名利)에 대한 내려놓음, 그리고 진정한 귀착처에 대한 추구다. 이 사(詞)에서 묘사한 도원(桃源)은 현실 속의 은둔처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도달하기를 갈망하는 청정하고 자유로운 세계이자 먼지 같은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본진(本真)으로 돌아가는자유로운 경지다.

진정한 행복은 속세에서 뒹구는 데 있지 않고, 생명 본연의 길로 돌아가는 여정에 있다. 오직 신불(神佛)만이 진정한 대자재(大自在)를 얻을 수 있다.

시인이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람은 본래 천상에서 왔으며 법을 얻기 위해 왔기 때문이다. 대법이 아직 널리 전해지기 전이었으니 어찌 돌아갈 길을 분명히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제 정법(正法)이 이미 전해졌고 대법이 열렸으니, 세상 사람들은 드디어 홍진에서 걸어 나와 명리를 벗어나 천국 세계로 돌아갈 기연(機緣)을 맞이했다. 이를 어찌 소중히 여기지 않겠는가?

하루빨리 명리와 분쟁을 가볍게 보고 법공부를 하여 수련하며, 원만하여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생명 깊은 곳의 진정한 염원이다.

절대 홍진에 빠져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기연을 놓치면 끝없는 후회 속에서 하늘로 돌아갈 유일한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 어찌 깨어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