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요진이 막 홍추를 베고 사람들이 아직 멍해 있을 때, 천제의 성지가 도착했다. 한 신관(神官)이 하늘가에서 내려와 길게 소리를 뽑으며 말했다.
“성지를 받드시오~”
요진 일행은 무릎을 꿇고 성지를 맞이했다.
“곤륜산 강국(羌國) 평남원수 요진은 명을 받들라! 천명에 이르노니, 그대는 옥경산 제자들과 자운산 제자들과 함께 요괴를 처단한 공이 크도다. 사흘 뒤 천궁에서 연회를 베풀어 그대들을 치하하리니, 팔방이 용맹함에 감복하고 사주(四洲)가 위엄과 덕을 함께 축하할 것이로다! 이상!”
신관은 선포를 마친 뒤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후돈이 일어나 몸의 흙을 털며 말했다.
“천제의 소식은 정말 빠르구나!”
천유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지의 주재자이시니 당연히 모든 것이 그분의 눈을 피할 수 없겠지.”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요진 주변에 모여들어 이것저것 묻느라 소란스러웠다.
옥두와 다보는 자신들이 잉여 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흥이 깨진 채 떠나버렸다.
한편 홍추가 변한 검은 연기는 너울너울 떠돌다 자운산으로 돌아갔고, 통천교주는 그것을 수습하여 메마른 우물 속에 가두어 길렀으나 이는 잠시 미루어 두기로 한다.
사흘 뒤 천궁은 매우 떠들썩했다. 선녀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늠름한 천병들이 소나무처럼 서 있었으며, 화려하고 귀한 음식들이 상 위에 가득 차려졌다. 연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선악(仙樂)이 울려 퍼지며 항마(降魔) 장수들의 개선을 공경히 맞이했다.
곧 연회 준비가 끝났고 각계의 신선과 존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한 동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북구로주왕 도착이오!“
“지조(地祖) 진원대선 도착이오!”
“남섬부주왕 도착이오!”
“통천교주 도착이오!”
“자운산 제자들 도착이오!”
“서우하주왕 도착이오!”
“원시천존 도착이오!“
”옥경산 제자들 도착이오!“
……
사람들이 거의 다 모이자 높은 자리에 앉은 천제께서 물으셨다.
“어느 분이 요진 상선이신가?”
요진이 앞으로 나아가 예를 갖추며 답했다.
“요진이, 천제님을 뵙습니다.”
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며 말했다.
“일어나시오, 일어나시오! 하하, 그대는 참으로 여중호걸이구려!“
요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과찬이십니다.”
천제가 다시 물었다.
“듣자하니 홍추와 싸울 때 부상을 입었다던데, 다 나았소?“
요진이 답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다만 일지봉 금심곡의 보물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오늘 직접 가지고 왔으니 폐하께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말을 마치고 요진은 허리에서 유리정곤검을 꺼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천제께 올리려 했다.
천제는 요진을 바라보며 긍정의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꼬마 아가씨야, 어찌하여 그것을 골짜기에 두지 않고 짐에게 바치려 하느냐?”
요진은 천제의 말에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폐하, 그 일지봉 금심곡이 제 가슴 속으로 들어와 버려 찾을 길이 없습니다!”
천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 ‘정념(正念)’이 이미 그대 마음속에 있으니, 이 보물 역시 당연히 그대의 것이로다. 오늘 짐이 이 유리정곤검을 그대에게 하사하여 요괴를 물리치는 조력자로 삼게 하리라. 또한 곤륜산에 그대를 위한 거처를 마련해 주겠노라. 어떠한가?”
요진은 검을 하사받는다는 말에 무척 기뻤으나, 저택에는 별 관심이 없어 말했다.
“폐하께서 검을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신은 줄곧 동굴에서 사는 것이 익숙하니 저택은 사양하겠습니다!”
천제는 길게 소리를 끌며 말했다.
“음~ 사양할 것 없소. 저택이 완공되면 다 쓸모가 있을 것이오.“
요진은 천제의 깊은 뜻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포상이 끝난 뒤, 남주 평정에 참여했던 옥경산 제자들과 곤륜산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냈던 자운산 제자들도 모두 상을 받았다.
연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자 선악이 울리고 선녀들이 춤을 추었다. 첫 번째 주연 무용수는 옥탁(玉琢) 선녀였는데, 사주(四洲) 제일의 미색으로 몸매가 우아하고 얼굴은 맑고 수려하여 마치 잘 다듬어진 백옥 같았다. 그녀의 춤사위는 참으로 유려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가무를 감상하며 웃고 떠들며 사해의 평화를 축하하니 분위기가 매우 고조되었다.
이때 한 백의(白衣) 신선이 말했다.
“어? 이번 연회에도 동주왕 청허(靑虛)는 안 오셨네요?”
다른 주의(朱衣 주황색 옷) 신선이 답했다.
“듣자 하니 집에서 폐관 수련 중이라더군요.”
백의 신선이 말했다.
“지난 연회 때도 폐관 중이라더니! 듣자하니 그분 폐관은 기본이 800년이라네요…….“
주의 신선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올 때쯤이면 석상(石像)이 되어 있겠군요! 하하!”
백의 신선이 다시 말했다.
“혹시 그냥 핑계 아닐까요? 이런 떠들썩한 자리를 싫어해서…….”
주의 신선이 말했다.
“다들 요진 상선에게 술을 권하고 있군요. 우리도 갑시다!”
요진은 술을 권하러 온 신선들에게 둘러싸였다. 향기로운 술과 쏟아지는 찬사에 요진의 두 뺨은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풍잠은 연회장 한구석에서 요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홀로 술을 마셨다. 그날 요진이 자신을 대신해 화염구를 막아주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한편, 두 신선이 말한 동주왕 청허는 정말 폐관 수련 중이었을까?
사실 그는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고요한 뜰,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단풍나무 아래 작은 탁자 하나가 놓여 있고 가끔 붉은 잎이 떨어졌다. 두 동자가 마당을 쓸고 또 쓸었으나 빗질 소리와 가끔 들리는 웃음소리뿐이었다. 탁자에서 책을 읽는 청년은 세상 모든 일에서 벗어난 듯 눈꺼풀 한 번 까딱하지 않았다.
단풍잎이 누렇게 변하고 가지에 눈이 내려앉아 마당 쓰는 동자들이 가을옷을 솜바지로 갈아입을 때까지도 소년은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이 내리고 다시 봄꽃이 피며 매미와 새가 울어도 책 읽는 소년은 사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른 채 깊이 빠져 있었다.
그렇게 꼬박 서른 번의 봄과 가을이 지났다. 소년은 마침내 졸음을 느끼며 하품하고 기지개를 켜며 눈을 떴다. 주변 풍경이 책을 읽기 전과는 조금 달라진 듯했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가 외쳤다.
“도도(陶陶)! 묵묵(默默)!”
두 동자가 방 안에서 달려 나와 물었다.
“주인님, 무슨 분부이신지요?”
그가 말했다.
“저녁 먹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 배가 좀 고프구나.”
도도가 답했다.
“저녁 식사가 다 되어 가니 잠시 식당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밥을 먹으러 가려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
“묵묵아, 내가 그날 주워 온 토끼 세 마리는 어디서 기르고 있느냐?”
묵묵이 답했다.
“뒷산에서 기르고 있습니다.”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는 나와 함께 뒷산에 가서 그놈들을 데려오자. 오늘 저녁을 함께 먹고 싶구나.”
묵묵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청허가 앞장서고 묵묵은 뒤를 따르며 가끔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뒷산에 도착한 청허는 깜짝 놀라 물었다.
“내가 그날 세 마리만 주워왔는데 어찌 이리 많아졌느냐? 족히 삼천 마리는 되겠구나!”
묵묵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하하…… 하하, 주인님. 그 토끼 세 마리는 주인님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주워오신 건데, 거기 앉아 계신 지 서른 해가 지났잖아요. 서른 해 동안 세 마리가 삼천 마리로 불어나는 건 당연하지요.”
청허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이번에는 책을 좀 오래 읽었나 보구나. 사존께서 주신 법술(法術) 비적(秘籍)이 워낙 심오해서 몰입하다 보니 세월 가는 줄 몰랐구나.”
묵묵이 다시 물었다.
“주인님, 그럼 오늘 저녁을 정말 저 삼천 마리 토끼와 함께 드실 건가요?”
청허는 뒷산을 가득 메운 토끼들을 보며 그 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지 말했다.
“어…… 그럴 것 없겠구나. 우리끼리 먹자. 저 토끼들은 모두 산으로 돌려보내 주어라.”
묵묵이 답했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저녁 식사 도중 도도와 묵묵은 밥은 안 먹고 웃으며 눈짓을 주고받았다. 청허가 이를 눈치채고 물었다.
“너희 둘이 또 무슨 수군거림이냐?”
도도와 묵묵이 서둘러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청허는 개의치 않고 밥을 먹었다. 도도는 주인이 신경 쓰지 않자 다시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밥을 먹으며 웃다가 사레가 들어 기침을 해대자 청허는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너무 장난을 치니 사레가 들리는 것 아니냐.”
묵묵이 다시 하하 웃자 도도가 그를 원망하며 말했다.
“쿨럭~ 흥! 쿨럭~ 네가 주인님 부인을 골라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니까…… 게다가…… 하하…… 그래서 사레가 들린 거잖아!”
청허는 도도의 등을 두드려 주다 ‘부인’이라는 말에 손을 멈췄다. 두 사람을 흘겨보고 다시 밥을 먹던 청허가 갑자기 물었다.
“그래, 그래서 너희는 왜 웃은 거냐?”
도도가 선수 쳐서 말했다.
“묵묵이 주인님 성격이 양처럼 온순해서 암호랑이와 찰떡궁합이라잖아요! 하하…….”
말을 마친 도도는 다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청허가 묵묵을 쏘아보자 묵묵은 겁에 질려 말을 못 했다. 도도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웃음을 멈췄다.
청허가 엄숙하게 물었다.
“내가 지금도 양 같아 보이느냐?”
도도와 묵묵은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청허는 무서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지만 짐짓 엄한 척하며 말했다.
“안 먹겠다! 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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