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源馨)
【정견망】
옛날 대 의학가들은 대부분 특이공능(特異功能 초능력)을 구비한 수행인이었다. 예를 들어 중국인에게 잘 알려진 화타(華佗)나 편작(扁鵲)이 그러하다. 고대 인도에서도 석가모니불 곁에 기바(耆婆) 존자라 불리던 명의(名醫) 제자가 있었다. 그 역시 절기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소리의 근원을 잘 분별하는 것이었다. 그는 죽은 사람의 머리뼈를 두드려 보기만 해도 이 사람의 영혼이 어디로 갔는지 알았다고 한다.
한번은 석가모니가 기바를 데리고 묘지에 가서 다섯 구의 해골을 찾아 그에게 두드려 보게 했다. 기바가 두드린 후 흘러나오는 소리에 근거해 이렇게 대했다.
“첫 번째는 지옥에 있고, 두 번째는 축생계에 태어났으며, 세 번째는 아귀계에 있고, 네 번째는 인도(人道)에 태어났으며, 다섯 번째는 천당에 올라갔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말이 모두 맞다.”
마지막으로 부처님께서 옆에 있는 해골 하나를 가리키며 기바에게 이 해골의 내력에 대해 물으셨다. 이번에 기바는 해골을 세 번이나 두드렸으나 이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끝내 알 수 없었다. 부처님께서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네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이 사람은 아라한(阿羅漢)이기 때문이다.”
기바는 이로써 아라한의 수승함을 깨닫고 비할 바 없는 신심(信心)을 일으켰다.
머리뼈를 두드려 그 소리로 죽은 자가 천당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 안다는 것은 언뜻 믿기 어려운 일이다. 기바는 어떻게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뿐만 아니라 이 수행 중인 신의(神醫)는 왜 소리에서 정보를 식별하고 차이를 들어낼 수 있었을까? 실제로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매우 제한적이다. 일반 사람의 귀는 20~20,000헤르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나이가 들수록 청력은 퇴화한다. 이 범위를 벗어난 소리, 즉 초음파나 저주파는 인간의 귀가 닿지 않는 영역이다. 만약 대자연을 하나의 완성된 곡에 비유한다면, 인간의 귀로 듣는 것은 그중 겨우 한두 개의 음표를 수신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아서 홍대(洪大)한 진실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큰 소리는 소리가 희미하고(大音希聲), 큰 형상은 형체가 없다(大象無形)”라고 했다. 진정으로 위대하고 아름다운 소리는 흔히 감각을 초월하며, 이러한 소리는 오직 수행인만이 수신할 수 있다. 즉 기바가 죽은 자의 머리뼈 소리를 들은 것은 인간의 귀가 아니라 그의 특이공능을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머리뼈 소리에서 어떻게 생명 육도윤회의 향방까지 들을 수 있는 것일까?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대뇌가 시시각각 매 분초마다 의념(意念)을 내보내고 있음을 느낀다. 이른바 심원의마(心猿意馬)라 하여, 마음이 일어나면 곧 생각이 움직인다. 뜻을 의미하는 ‘의(意)’는 心+音으로 구성되어 있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의(意)는 뜻(志)이다. 마음으로 말을 살펴 뜻을 아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사람의 내심에 어떤 파동이 일면 서로 다른 마음의 소리가 생겨나고, 대뇌가 이를 먼저 수신한 뒤에야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이 있게 된다. 그리고 ‘뜻(意)’은 항상 여러 가지 ‘생각(念)’을 동반한다.
《설문해자》에서 “념(念)은 늘 생각하는 것(常思)이다”라고 했으며, 《석명(釋名)》에서는 “념(念)은 끈적임(黏)이다. 뜻이 서로 사랑해 마음이 달라붙어 잊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움직이는 사이에 수많은 잡념이 대뇌에 끈적하게 붙어버릴 수 있다. 사람의 의념 자체는 일종의 물질적 존재이기에 측정기를 통해 사람의 뇌파를 측정할 수 있다. 오래되면 대뇌 전체를 구성하는 물질은 이러한 의념에 따라 변하게 되며, 그중 머리뼈는 대뇌 외층의 유형적인 물질체라고 볼 수 있다. 뇌 속에 항상 선한 생각을 품은 자는 악한 생각을 품은 자와 머리 구조가 반드시 다를 것이며, 수행인은 이러한 차이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본질은 생명의 정신 경지와 층차의 차이에 달린 것으로, 그에 따라 배치되는 미래의 향방도 자연히 달라진다. 이는 왜 위 이야기에서 기바가 마지막 해골의 향방을 듣지 못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자신의 층차가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좋은 미래를 맞이하고 싶다면 명예와 이익을 쫓고 정(情)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직시하고 악한 생각을 제거하며 선한 생각을 지키는 것이 낫다. 이를 통해 뇌 속의 복잡한 잡념을 덜어내고 내면의 평온과 안녕을 되찾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8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