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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소 전기】 육랑의 교묘한 포대진

앙악

【정견망】

《삼국연의》에 이런 기록이 있다. 제갈량의 제5차 북벌 당시 위군(魏軍)과 대치하던 중, 위나라 대장 사마의(司馬懿)가 성문을 닫고 도통 나오질 않았다. 교착 상태를 깨기 위해 고심하던 제갈량은 지형을 정찰하다 상방곡(上方谷 또는 호로곡葫蘆谷)이란 주머니 모양의 특수 지형을 발견하고, 위연(魏延)에게 거짓으로 패하는 척하게 시켜 사마의 대군을 유인하게 했다. 미리 쌓아둔 땔감에 불을 붙이고 입구를 막아 사마의를 궤멸시키려 했으나, 때마침 내린 소나기가 사마의를 구한다.

그로부터 수백 년 후 북송 시대, 양연소는 오늘날의 하북성 경내에서 다시 한번 ‘포대진(口袋陣 주머니 진법)’을 펼쳐 요나라 대장 한창(韓昌)을 격파하며 화려한 영웅 서사시를 재현했다.

금사탄 전투에서 부친과 형제들을 잃은 양연소는 부친의 유지를 이어 변방을 지켰다. 그는 맹량, 초찬, 양흥, 악승 등 지방 호걸들을 수하에 거두며 세력을 키웠다. 한편, 양연소에게 번번이 패했던 요나라 대장 한창은 설욕을 다짐하며 군사를 조련해 다시 기회를 노렸다.

어느 날, 양연소는 요군 10만이 수성(遂城)으로 진격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때 송군(宋軍)의 병력은 겨우 만 명 남짓으로 수적으로 매우 열세였다. 양연소는 맹량과 초찬을 본부에 남겨두고, 자신은 양흥, 악승과 함께 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수성으로 향했다.

도중 성 서쪽의 산골짜기를 지나던 양연소는 주머니처럼 생긴 지형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양흥과 악승에게 5천 명의 병력을 주어 함정을 설치하게 한 뒤, 신호탄이 울리면 작전을 시작하라고 명령했다.

양연소는 남은 5천 명을 이끌고 수성을 수비했다. 곧 한창의 대군이 도착해 싸움을 걸었고, 양연소는 출전하여 맞섰다. 송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사불란한 진법으로 일당백의 기세를 보이며 하루 종일 버텨냈다. 승부가 나지 않자 양측은 징을 쳐 군사를 거뒀다.

다음 날 양측이 다시 교전했다. 한창은 양연소를 보자마자 본대에서 뛰어 나와 그를 향해 살기등등하게 달려왔다. 양연소 또한 백마를 타고 창을 치켜든 채 적을 맞이했다.

한창이 맹렬하게 대차창(大叉槍)을 휘두르며 외쳤다.

“내 초식을 받아라! 이게 역비화산(力批華山)이다!”

양연소가 이 창을 받아내며 말했다.

“한창! 오랜만에 보는데 무예가 제법 늘었구나!”

이어서 한창이 연달아 몇 가지 초식을 펼쳤으나 모두 양연소에 의해 하나하나 격파당했다. 양측은 서로 공격을 주고받으며 수많은 합을 겨루었으나 여전히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황혼이 되자 양연소가 징을 울려 군대를 거두라고 명령하며 한창의 대군을 향해 말했다.

“내일 다시 싸우자!”

셋째날 두 사람이 다시 교전했는데, 개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양연소가 또 뒤로 물러나니 마치 전투를 지연시키려는 듯했다. 한창은 승부욕이 앞서 전군에 성을 공격하라는 명을 내렸으나, 양가(楊家) 장사들의 수비가 견고하여 요나라 군대의 여러 차례 공세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손실이 막심하여 잠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며칠 동안 한창이 여러 번 싸움을 걸었으나 양연소는 문을 굳게 닫고 나가지 않았다.

며칠 후, 양연소는 산골짜기를 지키던 악승으로부터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받고 마침내 군을 이끌고 출전했다. 송군이 갑자기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들은 한창도 군을 이끌고 진을 나섰으며, 또다시 양연소와 맞붙었다.

양측은 마찬가지로 공격을 주고받으며 승부를 가리지 못했으나, 양연소가 확연히 피로한 기색을 보이며 빈틈을 많이 드러냈다. 한창이 연달아 몇 차례 창을 내지르자 양연소가 힘겹게 받아내며 말했다.

“한창! 그만하자! 내일 다시 싸우자!”

말을 마친 그는 수성(遂城) 방향으로 달아났고, 한창은 “네가 이럴 줄 진작 알고 있었다.”면서 기병 한 부대가 대열을 지어 양연소의 길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양연소는 억지로 돌파하지 않고 싸우면서 물러나며 자연스런 흐름에 따라 서쪽으로 도주했다.

묘책을 써서 적을 골짜기로 유인

한창(韓昌)은 대군을 거느리고 연달아 추격하여 협곡 입구까지 이르렀다. 이때 요나라 장수 금합달(金哈達)이 멀리서 보고 한창에게 경고하며 말했다.

“대장님! 제가 보기에 이 계곡은 깊어서 끝이 보이지 않고 양옆이 좁습니다. 양육랑(楊六郎)은 지략이 뛰어나니 이곳에 매복을 설치했을까 두렵습니다.“

한창이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일찍이 수성(遂城)에 있을 때 정탐꾼을 보냈는데, 성 안의 소문에 따르면 양육랑의 지병이 재발해 수성을 지키기 어려워지자 그가 일찌감치 이 산골짜기로 퇴각하여 수비할 준비를 했다고 하더구나. 우리가 인원이 많으니 그가 병중일 때 틈을 타서 먼저 그를 사로잡는다면, 그 후에 수성과 보주(保州)는 모두 나의 것이 될 것이다.”

이때 한창이 골짜기 입구에 도착하니, 양연소가 말을 버리고 걸어가며 군사 두 명의 부축을 받는 모습이 보였다. 한창이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양연소가 곧 쓰러지겠구나, 모두 돌격하라! 그를 잡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

한창이 대군을 거느리고 골짜기 안으로 돌진하자, 양연소는 한창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군사들을 먼저 떠나보낸 뒤 홀로 남아 적을 깊숙이 유인했다.

한창이 앞장서서 기병을 이끌고 급히 습격했으나,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양육랑은 천천히 걷는 듯한데 말을 탄 내가 쫓아가지 못하는 것인가? 한창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계속 추격했다. 하지만 양연소와의 거리는 화살 한 대 거리일 뿐인데도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이때 한창이 뒤를 돌아보니, 자신의 말 사후수(獅吼獸)가 유독 빨라 뒤따르는 군사들과 이미 거리가 너무 벌어져 있었다. 한창은 잠시 멈춰 후속 군사들이 따라오기를 기다렸으나, 잠시 멈췄다가 다시 앞을 보니 양연소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이때 그는 텐트가 가득한 영지를 발견했다. 한창은 생각했다. 이곳은 분명 군량과 풀을 보관하는 영채일 것이다. 양연소가 참으로 부주의하구나, 도망치느라 군량까지 버리다니. 그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영채로 들어가 전리품을 운반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조사 후 군사가 보고했다.

“대장님! 천막 안의 식량 자루에는 모두 마른 풀이 들어 있고, 곳곳에 맹화유(猛火油)를 뿌린 땔나무가 쌓여 있습니다.”

한창은 직감적으로 외쳤다.

“큰일 났다! 계략에 빠졌다! 모두 빨리 철수하라!”

이때 포성 소리가 한 번 울리더니, 산등성이 위에서 불화살이 일제히 쏟아져 내려 영내로 박혔다. 영채 구역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불화살과 굴러떨어지는 돌, 뇌목(檑木)이 하늘을 가득 덮으며 쏟아져 내리니 삽시간에 산골짜기는 큰길까지 불길이 치솟았다. 산중턱에 양연소와 악승이 나타나더니 양연소가 외쳤다.

“한창! 이번에는 네가 날개가 돋아도 도망치기 어려울 것이다! 어서 항복하지 못할까!”

한창은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알고 보니 양연소가 이전에 패해서 달아난 것이나 고질병이 도졌다는 소식은 모두 가짜였다. 하지만 대군은 이미 골짜기 안의 사지에 들어왔기에, 한창은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전속력으로 골짜기 입구를 향해 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때 요나라 군대의 전봉과 후방 부대가 서로 엉키는 바람에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웠고, 송군은 지형의 이점을 이용해 어지럽게 화살을 쏘고 기관(機關)을 일제히 작동시켰다. 요나라 군대는 서로 짓밟히고 울부짖으며 피해가 막심하여, 열에 여덟아홉은 전사하거나 곧바로 투항했다. 한바탕 혈전을 치른 후 한창이 마침내 골짜기 입구로 탈출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양육랑이 치밀하긴 하지만 한 가지 실수를 했구나. 골짜기 입구를 막지 않아 나를 도망치게 하다니.”

궁지에 몰린 적은 쫓지 말아야

그러나 그가 크게 웃음을 마친 직후, 골짜기 입구 옆 숲에서 양흥의 부대를 만났다. 양흥이 말했다.

“한창! 원수님의 명을 받들어 이곳에서 기다린 지 오래다. 골짜기 입구를 막지 않은 것은 네가 곤경에 처한 짐승처럼 싸우지 않게 하려 함이었다. 오늘 너는 날개가 돋아도 도망치기 어려우니 순순히 항복하거라!”

이때 요나라 군사들은 대부분 투지를 잃고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요나라 장수 금합달이 이를 보고 앞으로 나아가 적을 맞으며 외쳤다.

“대장님, 제가 저들을 막을 테니 어서 돌파하십시오!”

양흥과 금합달이 수십 합을 겨룬 끝에 금합달이 양흥의 창에 찔려 말 아래로 떨어졌다. 한창은 이 틈을 타 사후수를 타고 잔병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도주했다. 이때 양연소와 악승도 골짜기 입구 옆 숲에 도착했다.

양흥이 말했다.

“원수(元帥)님! 요나라 군사가 이미 지칠 대로 지쳤으니, 이때 군을 이끌고 추격하면 반드시 한창을 사로잡거나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연소는 대답했다.

“요군에도 아직 용맹한 장수들이 있고, 이른바 궁지에 몰린 적은 쫓지 말고 돌아가는 무리도 압박하지 말라고 했다. 하늘의 뜻이 아직 요나라를 멸하려 하지 않으시니, 이번 전쟁 후에 변방은 당분간 평온할 것이다.”

말을 마친 양연소는 군대를 거두어 돌아가라는 명을 내렸다.

이 전투가 끝난 후 양연소는 투항한 요나라 군사들을 매우 관대하게 처분했다. 그는 투항한 요나라 군사를 하나하나 심문해, 평민을 해치는 죄를 짓지 않은 자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송군에 편입시키거나 석방하도록 명했다. 죄가 있는 자는 노역을 살며 농지를 개간하게 했고, 농한기에는 군의 문관들로 하여금 시서(詩書)를 가르치게 하여 그들 또한 중화 전통 문명의 인의(仁義) 교화를 받아들여 송과 요가 미래에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랐다.

양연소가 교묘하게 포대진을 펼친 것은 삼국 시대 상방곡(上方谷)의 전투를 재현한 것으로, 1만의 병력으로 한창의 십만 대군을 크게 물리친 영웅 이야기는 그 지역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참고 사료:
《양가장목계영전설》 북경미술촬영출판사 2015년 출판 고설송 수집 정리
《양가부세대충용통속연의》 명나라 익명 저 진회묵객 교열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