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靑雲)
【정견망】
혼돈에게 칠규(七竅)를 뚫어주는 이야기를 어떤 이는 신화라 부르지만, 사실 우언(寓言)이라 부르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 이야기 자체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장자(莊子)는 단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비유를 표현하려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장자·응제왕(應帝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남해 임금은 숙(儵)이고 북해 임금은 홀(忽)이며, 중앙의 임금은 혼돈(渾沌)이었다. 숙과 홀은 자주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을 매우 잘 대접해 주었다. 숙과 홀은 혼돈의 두터운 정에 보답하기로 상의하며 말하기를, ‘사람은 모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먹으며 코로 숨 쉬는 일곱 구멍(七竅)이 있는데 오직 이분만 없으니, 우리가 시험 삼아 뚫어주자’라고 했다. 그리하여 날마다 구멍 하나씩을 뚫었는데, 7일째가 되자 혼돈이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자신이 이해로 타인을 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듯하다. 사람은 칠규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하지만 고층(高層) 생명은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중국인은 흔히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 역시 꼭 남이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현대 과학자들이 다른 행성에 생명이 있는지 연구할 때, 흔히 지구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 생존 요소인 물과 산소 등이 있는지로 가늠한다. 그것이 있으면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고, 없으면 생명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방법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나, 생명마다 서로 다른 생존 환경이 필요하며, 어쩌면 다른 행성 생명의 생존 요구는 인류와 다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찌 이것으로 생명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그곳의 생명은 지구인보다 더 고급 생명일지 모른다.
이 이야기 속에서 혼돈이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사는 환경이 칠규가 없어도 매우 잘 살 수 있는 곳이었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칠규를 더하는 것은 마치 사족과 같아서 흔히 그의 목숨을 앗아가게 했다.
생활에서도 그러하다. 어떤 이는 바둑 두기를 좋아하고, 어떤 이는 낚시를 좋아하며, 어떤 이는 모임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홀로 독서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마다 필요한 것이 다르고 즐거움의 방식이 다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서 남이 꼭 좋아하지는 않는다. 호랑이에게 당근을 준다고 호랑이가 좋아하겠는가? 새끼 토끼에게 고기를 준다고 토끼가 기뻐하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과 기호로 다른 사람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8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