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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득도하면 닭과 개까지 승천한다”의 유래

초약미(楚若薇)

【정견망】

동한의 왕충(王充)이 저술한 《논형·도허편(道虛篇)》의 기록에 따르면, “회남왕(淮南王)이 도를 배워…… 온 가족이 하늘로 올랐다. 가축들도 모두 신선이 되어 하늘 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구름 속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라고 했다. 그가 말한 이야기는 회남왕 유안(劉安)이 승천할 때의 상황을 말한 것인데, 여기서부터 ‘일인득도, 계견승천(一人得道,雞犬升天 한 사람이 도를 얻으면 닭과 개까지 하늘로 올라간다)’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유안(기원전 179—기원전 122)은 한 고조 유방의 손자인 회남여왕(劉長) 유장(劉長)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후 회남왕에 봉해졌다.

《한서·회남왕전》에 따르면 “회남왕 안은 사람됨이 독서와 거문고 타기를 좋아하고, 사냥이나 개와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라고 한다. 유안이 한무제(漢武帝)의 명을 받들어 지은 《이소전(離騷傳)》은 굴원과 《이소》를 높게 평가한 최초의 저작이다. 그는 또한 《회남홍렬(淮南鴻烈)》(흔히 《회남자》라고 함)이라는 책을 편찬했다. 호적(胡適)은 일찍이 이 책을 절대의 기서(奇書)라 평가하며 “도가는 고대 사상을 집대성했고, 《회남왕서》는 또 도가를 집대성했다”고 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 제25권 <곡부(谷部)>에는 “두부를 만드는 법은 한 회남왕 유안에게서 시작되었다”라고 실려 있으며, 두부 제작 방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유안이 소비(蘇飛) 등 여덟 명의 방사(方士) 고인(高人)들-이들을 ‘팔공(八公)’이라 한다—늘 초산(楚山 나중에 팔공산이라 불림)에 모여 신선과 도를 논하고 책을 쓰며 단을 연마했다고 한다. 연단할 때 샘물로 콩즙을 갈아 만들고 다시 콩즙으로 단묘(丹苗)를 배양했는데, 콩즙이 우연히 석고와 만나 보드랍고 매끄러운 두부가 형성되었다. 이후 두부 만드는 기술이 민간으로 전해졌습니다. 지금도 매년 9월 15일, 안휘 회남(淮南)에서는 매년 한 차례 두부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두부(豆腐)는 옛날에 ‘숙유(菽乳 콩물)’, ‘이기(黎祁)’ 등으로 불렸다. 대략 당송(唐宋) 이후에 이르러 두부라 부르게 되었다. 당대의 감진(鑒眞) 화상이 천보(天寶) 10년(서기 751년) 일본으로 건너간 후 두부 만드는 기술을 일본에 전했기에, 일본의 두부 업계에서는 줄곧 감진을 두부 제작의 시조(始祖)로 여긴다. 송조(宋朝) 때 고려로 전해졌고, 19세기 초 유럽, 아프리카, 북미로 전해져 점차 세계적인 식품이 되었다.

유안의 시 중에 “빛나는 상천이 아래 땅을 비추시니, 내가 도를 좋아함을 아시고 공(公)들이 내려오셨구나.[煌煌上天照下土兮,知我好道公來下兮]”

처음에 여덟 명의 노인이 유안을 방문했을 때 문지기가 제멋대로 판단해 “회남왕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연년익수와 장생불로의 도(道)요, 그다음은 견문이 넓고 의리에 정통한 유생이며, 마지막은 용맹이 뛰어나고 솥을 들 힘이 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협객입니다. 이제 선생들께서는 나이가 이미 노쇠하셨으니, 아마도 저술하는 술법이나 번쾌와 맹분 같은 용맹함은 없으실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면에서 볼 때, 저는 감히 회남왕께 귀하들의 방문을 보고드리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덟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회남왕이 현자를 공경하고 선비를 좋아하여 인재를 맞이하기에 게으르지 않으며, 비록 평범한 백성일지라도 직접 접견한다고 들었소. 옛사람은 산수와 같은 작은 학문도 귀하게 여겼고, 닭 울음소리를 내고 개 도둑질을 하는 무리도 거두었으며, 천금으로 죽은 말의 뼈를 사서 인재를 초빙했소. 만약 회남왕이 젊은이만 보아야 도술이 있다고 여기고, 머리가 희끗한 노인을 보면 무능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돌을 깨서 옥을 채취하거나 깊은 못에서 진주를 찾는 고명한 견해는 아닐 것이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팔공은 모두 열네다섯 살의 동자로 변했는데, 머리에는 푸른 머리카락을 땋아 올리고 얼굴은 복숭아꽃 같았다. 문지가 크게 놀라 달려가 회남왕에게 보고했다. 유안은 그 소식을 듣고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맨발로 뛰어나와 이들을 맞이했다.

회남왕은 그들을 사선대(思仙台 신선을 그리는 대)로 모시고 비단 휘장을 두르고 상아 침상을 펴며, 백합 향을 피우고 금옥 탁자를 차려놓은 뒤 제자의 예로 그들을 대하고 머리를 조아린 후 말했다.

“저 유안은 비록 평범하나 어려서부터 수도(修道)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속세의 일에 얽매여 줄곧 세속에 빠져 해탈하여 산림으로 들어가 맑게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밤낮으로 신명(神明)께서 오셔서 저를 점화해 주시고 제 몸의 더러움을 씻어주시기를 갈망해왔습니다. 아마도 저의 정성이 부족하여 마음속 염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모양인데, 이제 도를 얻으신 분들께서 몸을 굽혀 강림해주시니 이는 제 운명에 정해진 일일 것입니다. 참으로 황송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부디 도를 얻으신 분들께서 가여이 여겨 가르침을 주신다면, 저는 마치 큰 기러기의 날개를 단 듯 단번에 하늘로 솟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덟 소년은 이때 다시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유안에게 말했다.

“대왕께서 도술을 좋아하신다고 들었기에 특별히 찾아왔소. 그대가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모르겠구려. 우리 중에는 바람과 비를 부르고 땅을 그어 호수를 만들며 흙을 쥐어 산을 만드는 이가 있고, 높은 산을 무너뜨리고 깊은 못을 메우며 호랑이와 표범을 길들이고 용과 뱀을 불러내며 귀신을 부리는 이가 있소. 또 분신술과 변장술, 은신술로 대군을 숨기고 낮을 밤으로 바꾸는 이가 있으며, 공중과 바다 위를 걷고 경계 없이 드나들며 순식간에 천 리를 가는 이가 있소.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칼과 창으로 상처를 입힐 수 없고 화살로 맞힐 수 없으며, 한겨울에도 추위를 모르고 한여름에도 땀을 흘리지 않는 이도 있소. 천변만화하여 마음대로 행하며 짐승과 초목을 즉시 만들어내고 산천과 대하 사이를 자유로이 바꾸는 이가 있으며, 재난을 예방하고 액운을 막으며 해를 피하고 수명을 늘려 장생불로하는 이도 있소. 진흙을 구워 금을 만들고 납을 굳혀 은을 만들며, 물로 팔석(八石)을 제련해 단약을 만들어 구름을 타고 용을 몰아 태청선경(太淸仙境)을 소요하는 이도 있소. 오직 그대가 어떤 도술을 원하는지만 보겠소.”

이에 유안은 아침저녁으로 그들을 찾아가 배알하고 술과 과일로 그들을 공양했으며, 그들이 말한 바를 하나하나 검증했다. 팔공이 말한 그 천변만화와 갖가지 기이한 도술은 모두 참되고 효험이 있었다. 그리하여 팔공은 회남왕에게 연단하는 경서 36권을 전수해주었다.

단약이 완성되어 유안이 아직 복용하기 전, 뜻밖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유안의 수하 중에 오피(伍被)라는 자가 있었는데, 일찍이 공적인 것을 훼손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한 죄를 지어 유안이 크게 노했으나 아직 처벌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안이 모반하려 한다고 무고했고, 이에 한무제는 종정(宗正)에게 부절을 들려 보내 이 일을 처리하게 했습니다.

팔공이 유안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제 떠나도 좋소. 이것은 하늘이 그대를 보내려는 것이오.”

그리하여 팔공과 유안은 함께 높은 산에 올라 성대한 제사를 지내고 금을 땅에 묻은 뒤, 대낮에 승천했다. 팔공과 유안이 산 위에서 밟았던 그 바위는 모두 움푹 패어 발자국이 남았는데, 오늘날까지 그 사람과 말의 발자국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들이 남겨두고 간 약을 달이던 솥을 닭과 개가 핥자, 그것들도 홀연히 승천했고 하늘에서 닭이 울고 구름 속에서 개가 짖었다.

한무제는 회남왕이 신선이 되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친히 사건의 경위를 물었다. 그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매우 후회하고 탄식하며 말했다.

“짐이 회남왕처럼 된다면 천하를 신발짝 벗어 던지는 것처럼 여기겠노라.” 즉, 내가 만약 회남왕처럼 될 수 있다면 이 천하는 내 눈에 벗어 놓은 신발 한 짝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에 무제도 현명한 선비들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팔공 같은 사람을 만나기를 희망했다. 유안이 신선이 되어 떠난 것을 보고 천하에 정말 신선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big5.zhengjian.org/node/284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