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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가 서왕모를 만난 이야기

초약미

【정견망】

중국의 5천 년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중국 전통문화에는 줄곧 수련(修煉)이 관통되어 왔다. 신선이 되어 도를 얻고(成仙得道), 반본귀진(返本歸真)하며, 수련해서 정과(正果)를 얻음은 무수한 중국인의 염원이었다. 그 주요 통로는 도를 닦는 ‘수도(修道)’와 부처를 수련하는 ‘수불(修佛)’이었다. ‘도’는 중국 본토의 신앙이며, ‘불’은 동한(東漢) 시기 인도에서 전래되어 아주 빨리 전파되어고 중국인들에게 수용되었다. 대천세계(大千世界)에는 기이한 일이 끊이지 않으며, 신선의 이야기는 천고에 전해온다. 한무제(漢武帝) 때에는 서왕모가 인간 세상에 강림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무제 유철(기원전 156년-기원전 87년 3월 29일)은 서한의 일곱 번째 황제로, 중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황제 중 한 사람이다. 16세에 즉위하여 70세에 붕어하기까지 53년 345일 동안 재위했다. 정식 시호는 ‘효무황제’(孝武皇帝)이나 후세 사람들이 ‘효(孝)’자를 생략하고 ‘한무제’라 칭했다. 중국 역사상 강희, 건륭 두 황제와 마찬가지로 재위 기간이 긴 황제에 속한다. 유철은 황제에 즉위한 후 신선이 수련하는 도술(道術)을 각별히 좋아해, 도를 얻어 신선이 되고자 전국의 명산대천과 오악(五嶽)을 다니며 신령에게 자주 기도했다.

《사기·효무본기》의 기재에 따르면, 원봉(元封) 원년(기원전 110년) 한무제는 태산에 가서 봉선대례를 행했다. 해변을 따라 ‘신악(神岳)’으로 명성 높은 창려 갈석산에 이르러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선을 구했기에, 갈석산 주봉인 선대정(仙台頂)은 한무대(漢武臺)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서왕모는 중국 신화와 민간 신앙의 여신이자 도교의 여선(女仙)으로, 왕모낭랑(王母娘娘), 요지금모(瑤池金母), 서요선모(西瑤仙姥) 등으로도 불린다. 그녀는 곤륜산 낭풍전(閬風巔)의 화원에 거주하는데, 화려한 누대(樓臺)는 높이가 9층에 달하며 왼쪽에는 요지(瑤池)가 있고 오른쪽은 취수(翠水)가 둘러싸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원인으로 서왕모는 한무제를 만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4월 무진일에 무제가 승화전(承華殿)에서 한가로이 앉아 있을 때 동방삭과 동중군(董仲君)이 곁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 홀연히 매우 아름다운 청의(靑衣) 여인이 나타나 말했다. “저는 천상 왕궁의 옥녀로 왕자등(王子登)이라 합니다. 서왕모님께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당신이 한마음으로 도를 찾으며 여러 차례 삼산오악에 가서 기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부터 마음을 정화하고 재계하십시오. 7월 7일 그날 왕모께서 강림하실 것입니다.”

무제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하며 그대로 하겠다고 답하자 옥녀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7월 7일이 되자 궁궐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대전 위에 서왕모를 위한 자리를 특별히 마련했다. 바닥에는 자색 비단 카펫을 깔고 백화훈향(百和薰香)을 피웠으며, 구름무늬 비단 휘장을 걸고 광채가 사방으로 퍼지는 등불을 켰다. 옥문(玉門)에서 진상한 단 대추를 놓고 서역의 포도주를 따랐으며, 궁중 최고의 과일들을 차려 천궁 신선을 접대할 음식으로 삼았다. 무제는 화려한 예복을 입고 궁궐 옥계 아래에 공경히 서 있었다. 궁 안팎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서왕모의 강림을 기다렸다. 깊은 밤 이경(二更) 무렵, 홀연히 남서쪽 하늘에서 구름이 일어나더니 궁궐을 향해 몰려왔다. 서왕모가 전각 앞에 도착하자 수많은 신선들이 새떼처럼 뒤따라 도착했다. 어떤 이는 용이나 호랑이를 탔고, 어떤 이는 백기린이나 백학을 탔으며, 천마(天馬)나 화려한 수레를 탄 이도 있어 그 수가 수천 명에 달해 궁궐을 눈부시게 비추었다.

서왕모는 자색 구름이 감도는 수레를 타고 있었는데, 수레는 등에 아홉 가지 색의 반점이 있는 용이 끌고 있었다. 또한 50명의 천선(天仙) 시위가 수레 주변을 지켰는데, 이 신선들은 키가 1장(丈)이 넘고 오색 깃발과 의장을 들었으며 몸에는 금강(金剛)의 천궁 보인(天宮寶印)을 차고 신선의 높은 관을 쓴 채 궁전 앞에 정렬했다. 왕모는 두 명의 시녀에게 부축을 받으며 대전에 올랐다. 시녀들은 16~17세 정도로 보였으며 청색 비단옷을 입고 눈매가 가을 물결처럼 일렁이며 자태가 아리따운 미인이었다. 왕모는 어깨에 황금으로 짠 큰 어깨덮개를 걸쳐 광채가 났으며 의태가 단정했다. 옷에는 신선만이 사용하는 영비대수대(靈飛大綬帶)를 매고, 허리에는 분경(分景)이라는 보검을 찼으며, 머리는 태화산 모양의 높은 쪽을 지고 신선 전용인 태진신영(太眞晨嬰) 관을 썼으며 발에는 봉황 무늬가 새겨진 흑옥(黑玉) 신발을 신고 있었다.

왕모의 모습은 30세 정도로 보였고 체격이 적당하며 자태가 그윽하고 용모가 세상에 비할 데 없이 뛰어났다. 왕모가 특별히 설치된 평상에 앉자 무제가 무릎을 꿇고 문안을 올린 후 그녀는 무제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왕모는 천궁의 요리사를 직접 데려왔는데, 이때 천궁에서 특제한 과일과 음식을 올렸다. 이 가공할 요리들은 색과 향과 맛이 뛰어났으며 기이한 향기를 내뿜는 술은 인간 세상에 없는 것이었다.

왕모가 시녀에게 옥쟁반을 가져오게 하니 쟁반에는 선도(仙桃) 일곱 개가 담겨 있었는데, 오리알만큼 크고 둥글며 연한 청색을 띠었다. 시녀가 선도를 왕모에게 올리자 왕모는 네 개를 무제에게 주고 세 개는 자신이 먹었다. 무제는 복숭아 맛이 특별히 달고 맛있어 다 먹은 후에도 입안에 향기가 오랫동안 가득했다. 무제가 선도의 씨앗을 챙겨두자 왕모가 그것을 보관하려는 이유를 물었다. 무제가 나중에 심으려 한다고 답하자 왕모는 “이 선도는 3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데, 인간 세상의 땅은 너무 척박해 심어도 자라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무제와 왕모가 술을 몇 차례 마신 후, 왕모는 곁의 시녀들에게 천궁의 음률(音律)을 연주하게 하고 구천신령(九天神靈)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 악기 소리는 구천을 울릴 만큼 맑고 듣기 좋았다. 곡이 끝나자 왕모가 말했다.

“도술(道術)을 수련하는 것은 정신을 보양하고 형체를 변화시켜야 하오. 수련하여 정신을 잘 기르고 또 형체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신선이 될 수 있지만 그 정도에 이르지 못하면 죽음을 면할 수 없소. 내가 지금 서적을 관리하는 시녀 이경손(李慶孫)에게 이 비결들을 적어 드릴 테니, 기록된 비결에 따라 성실히 수련하기 바라오.”

말을 마친 왕모가 선관(仙官)에게 용거(龍車)를 준비시켜 천궁으로 돌아가려 하자, 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왕모에게 절하며 진경(眞經)을 더 전수해 달라고 간곡히 청했다. 이에 왕모는 시녀 곽밀향(郭密香)을 보내 상원부인(上元夫人)을 청해오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원부인이 과연 도착했다. 먼저 구름 속에서 퉁소와 북소리가 들리더니, 이어 상원부인을 따르는 1천여 명의 문무 시종 여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18~19세의 나이에 용모가 매우 수려하고 세속을 벗어난 듯 광채가 났다. 상원부인은 20대 정도로 보였는데 자태가 더욱 뛰어났고 눈매가 맑았으며, 오색 상서로운 구름이 수놓아진 청색 도포를 입고 있었다. 상원부인도 요리사를 데려와 많은 선계(仙界)의 진미를 차려냈다.

이때 왕모가 무제에게 말했다.

“이분이 바로 진원(眞元)의 어머니인 상원부인으로 지극히 존귀한 신이오.”

무제는 즉시 일어나 상원부인에게 절을 올렸다.

그러자 상원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혼탁한 인간 세상에 있기에 필연적으로 술과 색을 탐하고 명예와 이익을 쫓으며 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대는 천자의 귀한 몸이니 이런 면에서 보통 사람보다 더 심할 겁니다. 그럼에도 부귀영화가 가득한 궁중에서도 수련을 동경하여 사욕(私慾)의 뿌리를 제거하고 심성을 수양하려 하니 그 뜻이 가상합니다.”

이어 상원부인이 무제에게 물었다.

“그대는 진정으로 도를 향하려 합니까? 그대가 여러 차례 술사를 불러 모으고 산악에서 제사를 지내며 신령을 위해 사당을 세우고 산하에 기도하며 부지런히 노력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으니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만약 그대가 앞으로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고 매사에 명철하며 억울함을 풀어주고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며 가난한 이를 구제하고 고아와 과부를 가련히 여겨 백성의 고통을 살핀다면, 그것은 곧 음덕(陰德)을 쌓는 일이 됩니다. 이제 왕모께서 이토록 존귀한 선체(仙體)로 강림하시어 그대의 지극한 정성을 보셨으니 그대는 더욱 그녀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100년을 견지한다면 왕모께서는 반드시 그대가 참된 도를 얻게 하여 천계(天界)에 들게 하실 것이며, 그러면 시방세계를 자유로이 노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진심으로 도를 닦고 신념이 확고하다면 끓는 물이나 불속이라도 사양하지 말고 자신의 뜻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가장 순진(純眞)한 천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내가 도의 진리로 그대를 격려하는 것은 마음속 잡념과 의구심을 없애고 수도(修道)의 신념을 굳건히 하기 위함입니다.”

왕모가 덧붙여 말했다.

“유철은 수련하려는 마음을 품은 지 이미 오래되었으나 줄곧 좋은 스승의 인도를 받지 못했소. 만약 그가 수도하려는 마음이 사라진다면 그는 분명 신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오. 그래서 내가 천궁을 떠나 인간 세상에 내려와 그를 만, 수련의 뜻을 굳게 하여 득도 성선에 대한 의혹을 없애 주려는 것이오.”

왕모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대가 방금 상원부인의 가르침대로 수련한다면 반드시 장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인데, 끝까지 견지할 수 있겠소?”

무제는 즉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상원부인의 가르침을 금판에 새겨 몸소 실천하며 게을리하지 않고 견지하겠습니다.”

왕모가 말했다.

“내가 오늘 유철에게 참된 도에 대해 말하는 것은 도를 얻으려면 반드시 정성으로 수행해야 하고 모든 의구심과 잡념을 버려야 함을 알게 하려는 것이오. 또한 유철을 통해 세상에서 도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일깨워, 더 많은 세속 사람들이 천지 사이에 참으로 신선과 도술이 존재함을 알게 하고 신도(神道)를 믿지 않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게 하려는 것이 나의 본뜻이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이치가 있으니, 장생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도의 진수를 알기가 어렵고, 도의 진수를 알기는 어렵지 않으나 실제로 수련하기가 어려우며, 수련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가장 어려운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수련하는 것이오.”

이후 서왕모는 가장 귀중하고 비밀스러운 경전인 《오악진형도(五嶽真形圖)》를 무제에게 전수했고, 상원부인도 12권의 진경(真經)을 한무제에게 남겨주었다.

날이 밝아오자 왕모와 상원부인은 함께 수레를 타고 떠났다. 따르는 시위와 차마, 용과 호랑이, 길을 여는 의장과 음악 소리가 처음 올 때와 같았다. 채운(彩雲)이 모여들고 향기가 가득한 가운데 남서쪽 하늘로 비상하여 멀리 사라졌다.

무제는 이번에 왕모와 상원부인을 직접 친견한 후 신선의 존재를 더욱 믿게 되었다. 매일 직접 몸을 깨끗이 하고 재계를 하며 향을 피우고 청소한 후 진경의 요구대로 수련했다. 당대 시인 조당은 칠언율시 〈한무제장후서왕모하강(漢武帝將候西王母下降)〉을 지어 당시 서왕모가 강림했던 성황을 묘사했다.

곤륜산 최고봉을 간절히 생각하니
왕모께서 오색 용을 타고 오시네
자란(紫鸞)의 노랫소리 아득히 들리고
청조(靑鳥)의 말소리 여유롭구나
바람 돌아오고 물 빠지니 삼청(三清)의 달 밝고
물시계 소리에 울리는 오경(五更) 종소리
나무 그림자 아득하고 꽃들은 고요한데
퉁소 소리 들리는 곳이 바로 가신 자취로다

昆崙凝想最高峰,王母來乘五色龍。
歌聽紫鸞猶縹緲,語來青鳥許從容。
風回水落三清月,漏苦霜傳五夜鍾。
樹影悠悠花悄悄,若聞簫管是行蹤。

한무제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계시는,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 살아가며 장생을 구하든 건강과 평안을 구하든 마음속에 신(神)이 있다면 폭풍우가 치고 밤이 깊어도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세상의 변화는 구양수의 〈낭도사(浪淘沙)·파주축동풍(把酒祝東風)〉에 나오는 명구와 같다.

“술잔 들어 동풍에 빌며 잠시 여유를 가져보네. …
올해 꽃은 작년보다 붉구나.
아쉽게도 내년엔 꽃이 더 좋겠지만,
그때는 누구와 함께할지 알 수 없다네.”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84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