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어느 날 풍잠(風潛)이 아직 아침 잠에서 깨어나기 전, 몇 명의 신선이 그를 찾아왔다. 그중 한 신선이 풍잠이 침상에서 깊이 잠든 것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풍잠 상신(上神)? 당신께 경사가 있는데 아직도 안 일어나셨습니까?”
풍잠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물었다. 무슨 경사입니까?
그 선인(仙人)이 웃으며 말했다.
“아림산(雅霖山)에 한 여선(女仙)이 있는데 품성과 미모가 모두 뛰어나고 자못 시정(詩情)도 있어 줄곧 상신을 흠모해 왔답니다. 그래서 저희가 오늘 외람되게도 상신께 중매를 서고자 찾아왔습니다.”
풍잠은 누운 채 웃으며 말했다.
“허허, 외람된 줄 이미 알면서 어찌하여 오셨습니까?”
이 말에 몇몇 선인들이 좀 무안해져서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하고 방 안을 맴돌 뿐이었다.
풍잠은 몸을 옆으로 돌려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신선들은 풍잠의 거처에 와본 적이 없었기에 그의 오두막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정말 방 안 가득 서화가 넘치고 묵향(墨香)이 가득했다.
그중 한 상선(上仙)이 요진(瑤眞)의 화상 몇 점을 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상신께서는 영기(英氣) 있는 여인을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이 그림들을 보니 모두 같은 얼굴이군요. 그림 속 여인은 군복을 입고 긴 머리를 높이 묶었으며 용모가 맑고 눈빛이 깨끗하네요.”
다른 상선이 말했다.
“이것 좀 보십시오. 이 역시 같은 여인인데 연황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얼굴이 통통하니 웃는 모습이 매우 귀엽군요. 아무래도 상신께서 이미 마음속에 둔 사람이 있는 듯하니 더는 방해하지 말고 나갑시다.”
나머지 신선들도 고개를 끄덕였으나, 한 신선이 서화를 뒤적이다가 밑바닥에서 글귀가 적힌 그림 하나를 발견했다. 글귀는 그림과 다소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읽었다.
“못생겼으니 다시는 그리지 마시오.”
그러자 신선들이 웃으며 말했다.
“상신(上神), 이 그림 속 여인이 글을 남겨두었는데 모르고 계셨군요?”
풍잠은 그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 서둘러 확인했다. 한눈에 보아도 요진의 필체였다.
풍잠은 순식간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역시… 역시… 그녀가 왔었구나…”
눈물을 흘리는 풍잠을 보며 신선들은 고개를 저으며 떠나갔다.
풍잠은 눈물을 닦고 곧장 요진의 처소로 그녀를 찾아갔다. 그는 문앞에서 청란(靑鸞)을 만났는데, 청란은 그를 보자마자 몸을 돌려 피하려 했다.
풍잠이 외쳤다.
“청란 누이! 그녀가 왔었네! 나를 보러 왔었단 말이네!”
청란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물었다.
“당신을 만났다고요? 정말인가요?”
풍잠이 말했다.
“정말이야. 하지만 나는 그녀를 보지 못했어. 왜 나를 만나주지 않았는지 물어봐야겠네.”
청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요진에게 당신을 만나 답을 해주라고 할게요.”
청란은 말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요진도 마침 외출하려던 참이었다. 원시천존을 뵈러 가기 위해서였다.
청란이 요진을 보고 말했다.
“풍잠을 만나러 갔었나요?”
요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근데 왜?”
청란이 말했다.
“그를 이토록 오래 따돌렸으면 됐잖아요? 그 사람은 참으로 지극한 정성으로 무정한 사람을 만났네요! 그가 다시 먼 길을 달려왔으니 이번에는 어떻게든 그를 만나주세요. 설령 앞으로 친구로 지내지 않더라도 이 말을 직접 해주란 말이에요!”
요진은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응, 알았어. 지금 급한 일이 있어 옥경산(玉京山)에 다녀와서 그를 만나볼께.”
말을 마친 요진은 길을 떠났다…
요진은 옥경산에 이르러 원시천존을 뵙고 무릎을 꿇어 예를 올린 뒤 사부님께 여쭈었다.
“사부님, 제자에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으니 가르침을 주시어 미혹을 풀어주십시오!”
원시천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진이 말했다.
“사부님, 천제께서는 어찌하여 저에게 공공(共工)을 죽이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원시천존은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요진이 다시 말했다.
“사부님, 제가 공공을 죽이려 할 때마다 천제께서 가로막으시니 몇 번 그러는 사이 공공은 더욱 교활해졌습니다. 제자는 천제께서 왜 그러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원시천존은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
“음, 가자꾸나. 내가 너를 천대(天台)로 데려갈 터이니 보면 알 것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원시천존은 요진을 천대로 데리고 갔다. 원시천존이 요진에게 말했다.
“하늘의 별들을 보거라. 이 별이 나왕성(羅王星)이고 저 별이 옥은성(玉隱星)이다… 그리고 이 별은 백호성(白虎星)이다.”
요진은 자세히 살펴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원시천존이 다시 말했다.
“이곳은 신계(神界)다. 네가 보는 이곳이 정궁(正宮)이니 정신(正神)의 자리고 저 부궁(負宮)은 부신(負神)의 자리다. 그리고 저쪽은 마계(魔界)인데, 마계의 수장 자리가 직접 대응하는 곳이 어디인지 보거라.”
요진이 말했다.
“신계의 사법(司法) 자리입니다.”
원시천존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음, 상생상극 이치에 따르면 서로 대응하는 자리에 있는 별들은 하나가 망하면 함께 망하기가 아주 쉽단다.”
요진은 사부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번쩍 깨달음이 왔다. 갑자기 예전에 아택(阿澤)이 선계로 떠나기 전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원래 그는 별을 관측하고 내가 공공과… 함께 망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었다.
요진은 콧날이 찡해지며 목이 메어 말했다.
“사부님… 제자가 똑똑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공공은 중생을 위태롭게 하고 특히 남주(南洲) 백성들을 잔혹하게 해치는데, 제가 달려갔을 때는 이미 수많은 생명이 죽거나 다친 뒤일 때가 많습니다.”
원시천존이 말했다.
“너는 참으로 가끔 너무 고집스럽구나! 요마(妖魔)가 생령을 해치는 것 또한 그 생령의 죄업을 소멸해주는 것이기도 하단다. 설마 이런 얕은 도리를 사부가 네가 가르쳐주지 않았단 말이냐?”
요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르쳐주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는… 제자는 그래도 마(魔)가 범인(凡人)을 해치는 것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결국 사대주(四大洲) 중에서 남주의 범인들이 가장 고통스럽고 미혹된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천존이 다시 말했다.
“너는 사법천신이지 인간의 호법신(護法神)이 아님을 명심해라! 남주 생령들의 품행이 단정치 못하고 마음보가 바르지 못한데, 만약 마(魔)가 그들의 죄업을 덜어주지 않는다면 그들 스스로 다 마가 될 것이다!”
요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시천존이 또 말했다.
“한가할 때 저 남주 사람들을 관찰해 보거라. 그들이 어떤 행실을 하는지 직접 보란 말이다!”
요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진은 옥경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택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들을 줄곧 되새겼다. 아택의 깊은 뜻을 그제야 알게 된 그녀는 가슴 깊이 슬픔과 죄책감이 밀려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곤륜산에 돌아오니 청란이 요진을 보고 말했다.
“그를 들어오라고 할까요?”
요진은 그제야 풍잠이 생각났으나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만나지 않을래. 그만 돌아가라고 해. 요진과는 이미 인연이 다했으니 다시 만나는 것은 유익하지도 않고 또 그럴 의사도 없다고 전해.”
청란은 요진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더 묻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가 풍잠에게 전했다.
“당신과는 이미 인연이 다했으니 다시 만나는 것은 유익하지도 않고 그럴 의사도 없다고 하네요.”
풍잠은 그 말을 듣고 가슴속이 너무나 처량하여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반복해서 읊조렸다. “의사도 없다… 의사도 없다고…. 좋소, 좋아…”
풍잠은 이번에는 단호하게 떠나갔다. 예전처럼 몇 걸음 가다 뒤돌아보지도 않았고, 눈물도 실망도 없었으며 두 소매에 맑은 바람만 실어 유유히 사라졌다…
요진은 그 후로 자주 남주에 내려가 범인들의 심성(心性)을 관찰했다. 그녀는 때로는 구걸하는 노파로, 때로는 유랑하는 아이로, 때로는 병이 깊은 홀로 된 노인으로, 때로는 지저분한 거지로 변신했다.
이러한 역할을 맡은 주된 목적은 범인의 선한 마음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요진은 비록 목적이 관찰이었으나 역할을 수행하면서 구걸하는 노파의 고단함, 유랑하는 아이의 무력함, 홀로 된 노인의 쓸쓸함, 거지의 비굴함을 더욱 깊이 체감했다.
범인들의 심성은 천차만별이라 선한 이도 있고 악한 이도 있었다. 한번은 요진이 유랑하는 아이로 변신했는데, 많은 부인들이 그녀를 도와주고 만두와 찐빵을 가져다주며 어떤 이는 이불을 가져다주는 것을 보고 무척 흐뭇해했다. 이어서 요진이 지저분한 거지로 변신하자 그를 가엾게 여기는 이들이 줄어들었다. 많은 부인이 그를 보고 코를 막고 지나갔고, 하루 종일 겨우 몇 명의 노인만이 동전 몇 닢을 던져주었다.
그 후 요진은 길거리를 떠도는 늙은 기생으로 변신했는데, 이미 미모는 사라지고 구걸에 의지하는 처지였다.
이번 역할 수행은 요진의 눈을 뜨게 했다. 하루 종일 그녀를 돕는 이는커녕 오히려 많은 이에게 욕설과 멸시를 당했고, 어떤 부인들은 그녀에게 채소 찌꺼기를 던지기도 했다. 하루가 다 저물 때쯤 오직 어린아이 한 명만이 허리를 숙여 떡 하나를 주려 했다. 요진이 막 손을 뻗어 받으려는데 아이의 어머니가 달려와 떡을 쳐서 떨어뜨리며 아이에게 모질게 말했다. 이 여자는 기생이라 가엾게 여길 가치가 없다! 가자! 그러고는 아이를 끌고 가버렸다.
요진은 속으로 의아했다. 똑같이 구걸하는 사람임에도 범인들은 그들의 신분에 따라 다른 마음을 내고 있었다. 범인의 선악(善惡) 심성은 그들 자신의 사고방식과 ‘관념’(觀念)과 큰 관련이 있어 보였다.
이에 요진은 어떤 사람들의 일생에 걸친 여러 경험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관찰한 끝에 요진은 그들이 저지르는 악행의 상당수가 얼연(孽緣 나쁜 짓을 한 인연)을 매듭짓는 과정임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인 자는 전생에 그 사람에게 목숨 빚을 졌고, 간음하는 자는 전생에 기생이었던 경우가 많았으며, 강도는 전생에 항상 남에게 재물을 빼앗겼던 식이었다.
모든 것에 인연이 있다 하지만, 요진은 여전히 그 업연의 최초 시점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찾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요진은 숙명통(宿命通)으로 한 사람의 전생 수십 대, 수백 대를 추적했다. 수백 대를 추적하고 나서야 비로소 업연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살인 업연은 수백 대를 추적해보니 아주 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요진이 한 살인범의 수백 대 전생을 추적해보니, 최초의 살인은 그저 입을 잘못 놀려 남의 험담을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험담으로 인해 한 사람이 죽임을 당하자 죽은 원혼이 원한을 험담한 사람에게 돌렸고, 그리하여 수백 대 동안 서로 죽고 죽이는 원한을 갚아온 것이었다.
또한 수치심 없는 기생 중에는 어떤 생에서 늙은 부자의 사생아 딸을 그 부자와 혼인하게 하여 근친상간의 죄를 짓게 한 이가 있었는데, 그 과보로 다음 생에 기생이 되어 갚아야 했다. 하지만 기생이 되어 수많은 가정을 파괴하니 새로운 업력이 쌓였고, 다시 기생이 되어 갚아야 하는 악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요진은 탄식하며 말했다.
“인간 세상이 비록 미혹되었다 하나 범인들은 참으로 너무나 어리석구나.”
요진은 이제 인간 세상의 일에 상관하지 않고 떠나려 했다. 막 길을 나서는데 한 술정뱅이가 길가에서 자기 아내를 때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요진은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인간 세상의 원한에 함부로 끼어들 수 없었기에 숙명통으로 그 주정뱅이의 전생 몇 대를 살펴보았다.
요진이 그 주정뱅이의 전생 십 대를 추적했을 때 요진은 깜짝 놀랐다. 그 주정뱅이가 뜻밖에도 천상의 성수(星宿)가 인간 세상에 떨어진 존재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요진이 보니 그 주정뱅이는 본래 키가 크고 위풍당당한 신(神)이었으나, 마음속의 집착 때문에 천제에게 대들었다가 인간 세상에 내려가 반성하라는 벌을 받은 상태였다. 그는 매 생(生)에 재능이 넘쳤으나 반드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었다. 하늘은 그가 이 무기력한 운명 속에서 생명의 허무함을 깨닫기를 바랐으나, 깨닫지 못하면 하늘로 돌아갈 수 없었고 깨닫는 순간에야 돌아갈 수 있었다.
요진은 생각했다. 십세(十世)에 걸친 고통스러운 경험이 그를 번연히 깨닫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집착만 더 깊게 만들고 업을 더 많이 쌓게 했으니, 이제 하늘로 돌아가기는 참으로 어렵겠구나… 참으로 안타깝다, 전에는 저토록 위풍당당한 신이었는데.
요진은 다시 생각했다.
‘어쩌면 그와 같은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니 더 자세히 조사해 보아야겠다.’
요진의 공력에 한계가 있어 일정 시간 이전은 조사할 수 없었기에, 요진은 지부(地府)에 한 번 다녀오기로 했다. 남주 범인(凡人)들의 근원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요진은 처리해야 할 일이 좀 남아 있었기에 우선 곤륜으로 돌아갔다. 잡다한 공문 처리가 끝난 뒤에 지부로 갈 생각이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4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