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션윈(神韻) 무대에 전쟁터에서 용맹하기 그지없어 가는 곳마다 적을 물리치는 한 장군이 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장군은 칼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는데, 연기가 어렴풋하고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다. 전사한 병사들의 가족들이 시신을 붙잡고 통곡하며 몹시 슬퍼하는 처참한 광경은 장군의 내심의 선량한 일면을 아프게 찌른다. 그는 자신이 살생을 너무 많이 하여 죄업이 중함을 깊이 느끼고, 하늘을 향해 크게 외치며 칼을 들어 자결함으로써 하늘에 죄를 갚으려 한다. 바로 이 일촉즉발의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그 후 장군은 불문(佛門)에 귀의해 선원(禪院)에서 정심(靜心)으로 수련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명예, 이익, 색(色), 정(情) 그리고 생사의 고험을 겪는다. 마지막에 그가 정과(正果)를 얻어 천국 세계로 날아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며, 고험을 통과하지 못한 도반들은 땅을 치며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오늘날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사람들을 위해 편리한 수련 방식을 열어주었는데, 사찰이나 도관에 들어가지 않고 정상적인 속인 사회 생활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련의 요구와 표준은 조금도 모호하지 않다. 그리하여 생활 속에서 명예, 이익, 색, 정, 화(氣) 등의 모순에 직면했을 때, 파룬궁 수련생은 이를 수련의 고험으로 대하며 진선인(真善忍)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취사선택을 가늠함으로써 평화롭고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하지만 중공(중국공산당) 체제하에서 중공이 파룬궁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절대적인 금지와 학살이며, 심지어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적출해 폭리를 취하거나 사악한 당 두목들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정상적인 수련 의미에서의 고험이 아니라 박해다. 또한 중공의 더욱 사악한 점은 파룬궁을 악마화하는 동시에 광범위한 민중의 알 권리를 말살하여 그들이 파룬궁 진상에 접근하거나 알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폭력으로 그들을 납치해 신불(神佛)과 대법 수련인에게 죄를 짓게 만드는데, 이는 광범위한 민중에 대한 더욱 심층적인 박해다.
따라서 파룬궁 수련생이 압력을 무릅쓰고 끊임없이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중공의 사악한 본질과 파룬궁 박해의 잔혹한 수단을 폭로하는 것은, 폭력을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선량한 본성을 일깨우는 것이며 사람 생명의 본질에서 사람을 구도하는 대선대인(大善大忍)의 자비로운 표현이다.
신불은 사람에게 자비로우며 벌을 주기 위해 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선과 악, 좋고 나쁨의 대비 속에서 자신의 차이를 찾고 부족함을 발견하게 하여 선을 행하고 덕을 쌓는 용기를 북돋아 주며 수련의 기연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하려는 것이다. 사실 수련자에게 있어서 수련의 기연을 잃고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끊어버려 계속 윤회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큰 형벌이다.
“우리는 이 표면의 형식을 보지 않으며, 오직 사람마음만 본다.”(《2015년 미국 서부 법회 설법》). 함께 션윈을 관람하고 션윈의 복음을 널리 전하며, 션윈의 화려하고도 심금을 울리는 공연을 즐기고 중화 5천 년 문명을 마음껏 유람하는 가운데 공산 홍마(紅魔)의 왜곡된 설을 타파하고 다시금 신(神)과의 인연을 이어가자. 우리가 박수를 치면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찬송하고 창세주의 광대하고 홍대한 은혜 속에 목욕하며 새로운 세기로 걸어 들어가기를 희망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2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