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清風)
【정견망】
기왕의 집에서 늘 그대를 만나고,
최구의 집 앞에서 그대의 노래를 들은 것이 몇 번인가.
지금 강남 일대의 풍경이 좋은데,
꽃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났구려.
岐王宅裏尋常見
崔九堂前幾度聞
正是江南好風景
落花時節又逢君
이 시는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 두보의 명작이다. 글자적인 뜻만 보면 아주 직설적인데, 천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이 시를 읽으면 여전히 작가가 옛 지인을 다시 만난 기쁨과 감회를 느낄 수 있다. 참으로 인생 어느 곳인들 서로 만나지 않으랴 싶다. 사실 인생의 만남과 헤어짐은 본래 한바탕 연극과 같아서 연극 속의 사람은 알지 못하나, 사람과 사람 사이는 사실 인연(緣)이라는 한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은 흔히 “혼인의 인연은 천리나 떨어져 있어도 하나로 이어진다” 말하는데, 이 선은 다른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며 인연 있는 사람 사이를 단단히 묶어놓고 있다. 한 생명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을 얻어 수행하는 성연(聖緣)이다. 여기서 작가의 신(神)의 일면은 자신이 이후 이구년(李龜年)과 함께 어느 시기에 법을 얻어 정진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번의 만남은 미래의 그 순간을 위한 복선이었기에 내면의 기쁨은 사실 감회보다 훨씬 컸던 것이다.
당시(唐詩) 중에는 인연을 말하는 또 하나의 명작이 있는데, 바로 이백의 《증왕륜(贈汪倫)》이다.
이백이 배를 타고 떠나려하는데
문득 언덕 위에 답가소리 들려오네.
도화담 수심이 아무리 깊다한들
나를 향한 왕륜의 정만 못하구나!
李白乘舟將欲行
忽聞岸上踏歌聲
桃花潭水深千尺
不及汪倫送我情
앞 시와 반대로 여기서도 이별을 말하고 있다. 비록 이별이지만 인연은 이미 맺어졌기에, 이후에 마찬가지로 함께 성연을 이어받아 수련하여 하늘로 돌아갈 것이다. 만고(萬古)의 일은 법을 위해 온 것이다. 성연의 각도에서 보아야만 사물의 본질을 명확히 볼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2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