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
【정견망】
바람 멎고 흙 먼지에 향기 배면 꽃은 이미 다 진 것,
해 저물도록 머리 빗기도 귀찮네.
만물은 그대로이나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 모든 일이 끝이구나,
말하려 하니 눈물이 먼저 흘러내리네.
듣자 하니 쌍계의 봄은 여전히 좋다기에,
나 또한 가벼운 배 띄워보려 하네.
다만 쌍계의 작은 배가,
이 많은 시름 실어 나르지 못할까 두려울 뿐.
風住塵香花已盡,日晚倦梳頭。
物是人非事事休,欲語淚先流。
聞說雙溪春尚好,也擬泛輕舟。
只恐雙溪舴艋舟,載不動許多愁。
이 사는 이청조가 절강 금화(金華)에서 홀로 지낼 때의 작품이다. 당시 뜻이 맞았던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수년간 수집했던 소장품들도 거의 다 흩어져 사라졌으니 작가의 내면이 얼마나 처참하고 무력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역대의 해석들은 대개 여기에 중점을 두었으나, 단지 그것뿐이라면 이 사(詞)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예술적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상편(上片)은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눈앞에 펼쳐진 저무는 봄 풍경의 패락과 처량함을 묘사했다. 문자적인 기교가 매우 높아 거의 아무런 조탁이 없으면서도 감정(情)과 정경(景)이 하나로 어우러져 구절마다 눈물이 배어 있다. 사람은 보통 아침에 머리를 빗는데 여기서는 저녁에 빗고 있으며, 머리를 빗다가 눈물이 부지불식간에 흘러내린다. 여기서 귀찮다는 뜻의 권(倦)이란 글자의 사용이 극히 절묘하여 작가의 상태가 단번에 종이 위에 선명히 드러난다.
인류의 감정은 서로 통하는 법이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만물은 그대로이나 사람은 변했다는 감탄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여기서 자신을 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개별적인 인간으로서 생명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세상사의 변화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무력감을 표현한 것이다.
이청조 역시 한때 행복하고 원만했으며 의기가 넘쳐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으니, 지금의 처지와는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세상사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결국 만물은 그래로나 사람은 그렇지 않은 날이 오고야 만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다만 사람에 따라 그 속도가 빠르고 느리며 시기가 빠르고 늦을 따름이다. 이는 이미 일반적인 감탄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미 반본귀진(返本歸眞)하여 생명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돌아가고자 하는 뜻이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하편의 “듣자 하니 쌍계의 봄은 여전히 좋다기에, 나 또한 가벼운 배 띄워보려 하네.”는 이러한 귀의를 한층 더 깊고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쌍계의 봄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우며 비록 매년 한 계절뿐이지만 해마다 찾아오니, 여기서 봄은 영원함을 상징한다. 작가는 그런 아름다움을 동경하기에 “나 또한 가벼운 배 띄워보려” 한 것이다.
“다만 쌍계의 작은 배가, 이 많은 시름 실어 나르지 못할까 두려울 뿐.” 거룻배(舴艋舟)는 폭이 매우 좁은 작은 배로, 돌아가는 배(歸舟) 혹은 수행 법문을 상징한다. 오직 정법(正法)을 얻어 진정으로 수련해야만 돌아갈 수 있는데, 자신의 정(情)이 너무 무겁고 집착심이 너무 많으니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는가? 작가는 혜근(慧根)이 있어 사람 마음(人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 중에서 형성된 사람 마음과 사람 생각(人念), 사람의 정(人情)이 너무 많고 무거웠다. 이러한 것들은 다른 공간에서는 실제적인 물질로 존재하며 무게가 있으니, 우리를 붙들어 승화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청조의 호가 이안거사(易安居士)라는 점은 그녀가 불교를 믿었으며 근기가 상당히 좋고 유래가 매우 높음을 설명해 준다. 그녀의 유명한 《어가오(漁家傲)》 한 수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하늘 맞닿은 구름 파도 새벽안개 몰아오고
은하수 돌아가니 천 개의 돛 춤추네
꿈속의 넋은 상제(上帝) 계신 곳으로 돌아간 듯
하늘 말씀 들리는데
어디로 돌아가느냐 은근히 물으시네
갈 길은 멀고 날은 저무는데
시를 배워 한가로이 좋은 구절만 찾았습니다
구만리 바람이 대붕을 들어 올리니
바람이여! 멈추지 말고
불어와 제 배를 삼산(三山)으로 보내주세요!
天接雲濤連曉霧,星河欲轉千帆舞。
仿佛夢魂歸帝所。
聞天語,殷勤問我歸何處。
我報路長嗟日暮,學詩謾有驚人句。
九萬裏風鵬正舉。
風休住,蓬舟吹取三山去!
이것은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일목요연한데, 그녀가 한 차례 원신(元神)이 몸을 떠난 뒤 겪은 실제 경험을 묘사한 것이다.
그녀의 또 다른 시 《여몽령》 역시 함축적으로 자신의 귀의를 표현했다.
늘 생각나는 해질 무렵 냇가 정자
몹시 취해 돌아갈 길 잃었네
흥이 다한 후 느지막이 배에 오르니
연꽃 흐드러진 깊은 곳에 길을 잘못 들었네
어서 가자 어서 가 힘껏 노 저으니
여울에 모인 물새 떼 놀라서 날아갔다네
常記溪亭日暮
沉醉不知歸路
興盡晚回舟
誤入藕花深處
爭渡,爭渡,
驚起一灘鷗鷺
이 사의 화면 구성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데, 진정으로 표현하려는 바는 자신이 본래 천상의 선녀로서 잘못 인간 세상에 내려왔으며, “힘껏 노 저음(爭渡)”은 그녀가 전력을 다해 돌아가려 노력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마음과 사람의 정, 사람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면 생명은 끝내 승화하기 어렵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