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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조의 고인이 신통으로 무귀론(無鬼論)을 타파

안단

【정견망】

여러 황제를 보좌한 당조(唐朝) 명신 이고(李翱, 자 습지)은 본래 감숙 농서의 명문가 태생이다. 그의 조상들은 여러 대에 걸쳐 북위(北魏)의 대신으로 활동했으며, 황제의 총애를 받아 작위를 하사받고 자손들이 이를 계승했다. 하지만 이고의 대에 이르러서는 과거 조상들의 영화가 예전만 못했다. 그는 관리가 된 후 강직하고 과감하게 간언했으나, 성격이 급하고 너무 강직한 탓에 여러 차례 승진과 좌천을 반복했다.

그는 유학에 심취하여 저서를 남기기도 했지만, 귀신(鬼神 귀와 신)에 관한 설은 전혀 믿지 않았다. 불교 선의 이치를 연구하는 것은 좋아했으나, 신통이나 예언 같은 일에는 늘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그가 성선설(性善說)을 믿고 이를 위해 훌륭한 문장을 쓴 덕분인지, 그의 사상과 관념을 변화시킬 한 고인(高人)이 암암리에 나타났다.

당시 이고는 막 여주(廬州 지금의 안휘 합비) 자사로 좌천된 상태였다. 부임한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누군가 관저로 명함을 보내 방문 의사를 밝혔다. 이고는 그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듣기로 그는 귀신과 신령의 말을 알아듣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공명리록(功名利祿)에 연연하지 않고 품성이 초탈해서 사람들 앞에 자주 나타나지 않았기에, 현지 백성들은 그를 신명처럼 공경하며 이처사(李處士)라 불렀다.

며칠 후 이처사가 이고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이고를 만났을 때 표정이 덤덤했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아첨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고는 그가 짐짓 청고(淸高)한 척한다고 여겨 불쾌한 마음이 들었고, 말로 그를 제압하려 했다.

이고는 목청을 가다듬고 큰 소리로 말했다.

“공자께서는 대성인이심에도 스스로 삶과 죽음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소. 설마 당신이 공자보다 더 고명하단 말이오?”

이처사는 화를 내지 않고 천천히 대답했다.

“대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서진의 완첨(阮瞻)은 재주와 학문이 뛰어나 무귀론(無鬼論)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의 문장은 언사가 날카롭고 분석이 정연했으나, 귀신이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대인의 가족 역시 범부가 아닙니까? 인간 세상에 살다 보면 병고와 재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일을 마주했을 때 대인께서는 태연히 대처하며 정(情)을 움직이지 않고 생각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습니까? 혹은 인륜을 무시하고 직접 그들에게 독을 먹여 이 세상의 고통에서 일찍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만약 어느 날 대인의 처자식이 강물에 빠진다면, 대인께서는 여전히 담담하게 손을 내밀어 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고는 이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나 즉시 사람을 시켜 이처사를 포박하게 하고 채찍으로 때렸다. 그런데 형을 집행하던 중 이고가 갑자기 구토를 멈추지 않더니 곧 혼절하여 인사불성이 되었다. 집안에서 의사 여럿을 불러 치료했으나 한나절이 지나도록 차도가 없었다. 밤이 되어서야 겨우 깨어났지만 의식은 여전히 흐릿했다. 그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아내와 출가하지 않은 딸들이 주변에 모여 끊임없이 울었다.

그녀들은 이처사의 됨됨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남편이 이처사를 선대(善待)하지 않아 현세의 과보(果報)를 받는 것이라 여겼다. 이에 이고를 간곡히 설득해 이처사를 풀어주고 사죄하게 했다. 이고는 부부의 정과 아이들을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이처사를 풀어주게 하고, 그를 청해 간절히 사과하며 치료를 부탁했다.

이처사는 지난 일을 탓하지 않고 평온하게 말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나, 대인께서 직접 기도문장을 쓰셔야 합니다. 밤이 깊으면 제가 대인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여기 부적도 한 장 있으니, 기도문장을 다 쓴 후 이 부적과 함께 태우면 위험을 넘길 수 있습니다. 다만 기억하십시오. 이 기도문장에는 절대로 글자를 더하거나 고쳐서는 안 됩니다!”

이고는 듣고 성실히 대답했다. 기력이 부족해 겨우 앉아 있을 뿐이었지만, 그는 공경히 손을 깨끗이 씻은 후 기도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격이 너무 급한 탓에 몇 장 쓰지도 않아 틀린 글자가 많았다. 그는 다시 쓰기를 반복하여 한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다 썼다. 촛불이 어두워질 무렵이었고 글씨체는 단정했으나, 관직을 적을 때 부주의로 글자 하나를 더 쓰고 말았다. 그는 다시 쓰고 싶지 않아 서둘러 기도문장과 부적을 함께 태워버렸다. 신기하게도 다 태우자마자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고 병도 절반 이상 나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이처사가 찾아왔다. 이고는 마중 나가 내심의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이처사가 말했다. “대인께서 초래한 재앙은 면했으나, 몸의 병증은 며칠 더 지속될 것입니다. 제가 어제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당부드렸거늘 어찌하여 글자를 하나 더 쓰셨습니까?”

이고는 인정하지 않고 우겼다.

“아닙니다. 고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여러 번 썼습니다. 마지막에 태운 것은 당신 말대로 정성껏 써 내려간 것입니다.”

이처사는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직접 보십시오. 이것이 당신이 어제 쓴 글입니다!”

이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으나, 펼쳐 보니 정말 자신이 직접 쓴 글이었다. 그는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며 즉시 무릎을 꿇고 이처사에게 잘못을 빌었다. 그는 두둑한 사례금을 준비해 이처사에게 보답하려 했으나, 이처사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십여 일 후 이고의 병은 마침내 완쾌되었다. 하지만 이처사는 이미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무귀론(無鬼論)에 대해 말하자면, 저자 완첨은 이고만큼 운이 좋지 못했다. 그는 본래 재주가 뛰어나고 관운도 좋았다. 번왕이 그를 문서 담당으로 청했고 황제는 그에게 태자를 보좌하게 했으나, 그는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인은 더욱 기이했다. 전해지는 바로는 어느 날 귀신이 그를 찾아와 학문을 토론하다가 서로 논쟁이 붙었다고 한다. 완첨은 자신의 도리를 고집하며 귀신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자 귀신이 노하여 추악한 본래 모습을 드러내며 무례하게 말했다. “고대 성현들도 귀신과 신령이 있음을 인정했는데, 어찌 너만 없다고 하느냐?”

평소 귀신을 믿지 않던 사람이 일단 눈앞에서 귀신을 보았을 때 그 반응이 어떠했겠는가. 완첨은 아마 그렇게 겁을 먹었거나, 혹은 자신이 평생 고수한 것이 결국 오류였음을 발견하고 정신이 붕괴되어 일 년도 안 되어 병사했을 것이다.

역사에도 찌꺼기가 있냐고 질문한다면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찌꺼기는 영원히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며, 강물 속의 진흙과 모래처럼 어두운 강바닥에서 떠돌 뿐이다. 수많은 굴곡을 거치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오직 웅장한 물줄기뿐이다. 찌꺼기는 진리의 씻김을 견디지 못하고 역사의 긴 강 속으로 가라앉을 뿐이다.

오늘날 붉은 왕조 중공은 정권을 찬탈하기 전부터 땅을 석 자나 파헤치며 역사에서 부정되거나 거짓으로 판명된 찌꺼기들을 모두 끄집어냈다. 그것도 모자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양의 유령을 끌어들였다. 그 목적은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며 화하(華夏) 문명의 정수를 왜곡하고 파괴하며, 오천 년 신전문화(神傳文化)를 은폐하고 말살하여, 신성과 통하는 본성을 가진 전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추악한 음모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혹 사악한 정권이 일시적으로 기승을 부려 마음이 가려지고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을 해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사필귀정(邪不正勝)이야말로 대세의 흐름이다. 사람들은 결국 고대의 신언(神言)과 신적(神跡), 그리고 최근 빈번히 나타나는 천상(天象)과 인심(人心)은 이미 중공의 결말을 비추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참고 자료: 《궐사(闕史)》, 《유명록(幽冥錄)》

[역주: 무귀론(無鬼論)이란 사람은 세상과 마찬가지로 기로 존재하며 죽으면 기가 흩어지고 정신은 존재하지 않으니 귀신은 실재하지 않는 가상이라는 주장이다. 죽림칠현의 일원인 완함의 아들 완첨이 이 이론을 주창했다가 토론 도중 급사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