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우주는 하나의 번영하고 비할 바 없이 거대한 천체인바, 일체에 모두 생명이 있고, 일체는 모두 생명이며, 생명이 많기로 없는 곳이 없다.”【1】라고 말씀하셨다. 현재 층차에서 깨닫기로는, 신불(神佛)은 자비로우셔서 각종각양의 생명을 포용할 수 있으며, 생명은 신불의 보살핌과 포용 하에서 불성(佛性)의 일면이 끊임없이 강화된다.
이로부터 용량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스스로 느끼기에 나의 용량은 매우 작아 눈에 차지 않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의 관점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며, 더욱이 번거로움과 곤란을 만드는 사람은 더더욱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늘 자비가 없고 화가 잠재되어 있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한이 생기고 심할 때는 마성(魔性)이 폭발하여 집안에 불화의 요인과 간격을 만들곤 했다. 이는 모두 자신의 용량이 부족하고 선량한 마음이 부족한 현상이다.
아침에 일어난 사소한 일 하나가 원래 평온했던 가정 분위기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사실 표면적으로 보면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이렇게 불쾌감이 발생했고 상대방도 영문을 몰라 멍한 상태였으며 서로가 억울하고 답답함을 느꼈다. 처음에는 확실히 마음이 조금 좋지 않아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마치 일이 해결할 방법이 없는 지경에 이른 듯했다. 게다가 이런 현상이 이미 30여 년간 나타났으니, 이는 정상적인 가정불화 문제가 아님을 경각(驚覺)하게 되었다. 왜 나에게 보게 하고, 듣게 하고, 느끼게 하셨을까? 그것은 나에게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 있기 때문이며, 눈앞의 광경은 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연으로서 내가 정념(正念)을 쓰는지 아니면 사람의 관념을 쓰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매번 이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나는 늘 원한심이 먼저 나와서 집안의 평온한 환경이 인위적으로 파괴되었다고 생각했고, 갈등이 커져 해결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 사실 이때 나는 전혀 법(法)에 서 있지 않았고 자아(自我)의 기점에 서 있었으며, 사람 속의 표면적인 평화만을 구했을 뿐 실질적인 마음은 제고되지 않았다.
이번에 나의 명백한 일면은 사람 속에 빠져서는 안 되며 먼저 뛰어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정(情)에 이끌리지 않고, ‘구세력’ 같은 것은 머릿속에 두지 않은 채 오직 사부님께서 전해주신 대법만을 생각했다. 대법으로써 가늠하고 대조하며 바로잡고자 했는데, 대법은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대법제자는 법 중의 입자이므로 마땅히 법의 표준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깨닫기는 했으나 막상 실천 속에서는 마음이 여전히 불안정함을 느꼈다. 양측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가슴이 계속 뛰었고 갈등이 갑자기 폭발하거나 다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그리하여 나는 최대한 자신을 통제하며 이 평온하지 못한 마음을 안정시키고, 법에 대조하여 자신이 왜 이러는지, 무엇 때문에 이런 현상이 조성되었는지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그것은 정(情)이었다. 가족에 대한 정이 혜안(慧眼)을 가렸고 본성의 일면을 가로막아, 눈앞에 보이는 것을 진실한 것으로 여기게 했다. 즉 인류라는 이 허환(虛幻)의 공간을 실재하는 현실로 여기고 가상(假相) 속에서 뛰어 나오지 못한 채 그 속에 빠져 얽히고설켰던 것이다. 이것을 찾고 나니 마음이 문득 평온해졌다. 나는 사부님을 생각했고, 사부님께서 우리 제자들을 구도하기 위해 감내하신 것을 생각했으며, 천국 세계 중생들의 간절한 눈빛을 생각했다. 법에 동화되지 못한 중생들이 구원받을 희망을 나에게 기탁하고 내가 법 위에 서 있는지, 법을 스승으로 삼는지, 이 가상 속에서 초탈하여 제고될 수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음을 생각했다. 자신의 용량 크기가 천체 세계 중생이 얼마나 구도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전체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과 얼마나 많은 신이 있는가. 빽빽이 어떠한 빈틈도 없이 모두 당신을 주시하고 있고, 모든 지상 사람의 사상을 주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구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천체 전반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대법제자의 일사일념ㆍ정체(整體) 형세의 나아가는 방향, 정법의 성공과 실패는 우주를 남길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데, 이렇게 큰 한 가지 사건이다. 보기엔 질서가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질서가 있으며, 반영되어 나오는 것이 혼란스럽지만, 매 개인에 대해서는 세밀한 것이다.”【2】
현재 층차에서 깨닫기로는 우주의 모든 생명이 사부님의 정법 중에 있으며, 대법제자의 일언일행(一言一行) 역시 다른 공간 중생들의 상태와 대응된다. 사부님의 정법 중에서 대법제자가 법을 스승으로 삼고 법 속에서 동화되어 위타(爲他)한 생명으로 수련 성취되어야만 신우주의 표준에 부합한다. 그러면 자신의 체계와 대응하는 운운중생(芸芸衆生) 역시 자신 체계의 한 입자이므로, 우리 이 주체가 완전히 법에 동화되지 않았을 때 이 부분 생명들은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어떻게 선택할지는 이 인간 세상의 주체인 우리에게 달려 있다.
즉 인간 세상에서의 수양과 기점이 법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사람 속에 서 있는가에 달린 것이다. 만약 법 위에 서 있다면 나타나는 것은 정념(正念)일 것이며, 진정으로 모순 앞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물결이 일지 않는다면 당신은 법에 동화된 것이다. 그에 따라 다른 공간의 바로잡히지 못한 생명들과 당신의 구도를 기다리는 중생들도 상응하게 법에 동화될 것인데, 이는 우리가 개인의 원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는 중에 중생을 구도하는 것인데, 대법제자마다 각자 책임진 공간이 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 형상의 세포 또는 미시적인 입자는 바로 그 입자 중의 일체 생명의 왕으로서, 그 속의 무수한 생명은 모두 그의 관할을 받는다. 만약 당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당신 자신의 세포도 잘 수련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잘 수련했다면 당신 자신의 세포도 잘 수련될 것이며, 당신 자신의 세포가 관할하는 범위 내의 생명도 잘 수련될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한 생명이 수련성취 된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수련성취 시키겠는가?!”【3】라고 말씀하셨다.
현재 층차에서 깨닫기로는 대법제자가 짊어진 사명은 중대하다. 자신을 잘 수련할 뿐만 아니라 체계 내의 무량한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수련은 끝이 없고 불법(佛法)은 무변(無邊)하니, 오직 법 속에서 생겨난 정념과 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에 달려 있다. 대법은 우주 생명을 만든 법이고, 대법은 또한 일체 바르지 못한 요인을 바로잡을할 수 있다. 대법제자는 오직 자신을 법 속에 놓아야만 법의 용련(熔煉)과 법의 가지(加持)를 얻을 수 있고 법이 가져다주는 신적(神跡)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용량은 커야 하고 심경(心境)이 넓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하다. 사람마음은 일종 부면(負面) 물질이자 변이된 관념이며 사람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만약 법 속에서 제고하지 않고 사람의 이념에서 뛰어 나오지 못한다면 초탈할 수 없으며, 구체적인 일에 빠져 얽히고설키며 서로 내부에서 소모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해 세상 사람의 구도를 지체시키면, 법에 손실을 가져오고 사부님의 정법에 간섭을 일으키게 되어 대법제자라는 신성한 칭호를 욕되게 할 뿐이다. 생활 속의 곳곳에는 수련의 요소가 있고 늘 제고할 기회가 있으니, 관건은 어떻게 파악하고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법리상으로는 위타(爲他)한 경지를 수련해내야 하며 일에 부딪히면 먼저 타인을 고려해야 함을 알고는 있지만, 층차의 한계로 인해 이 방면에서 줄곧 깨달음이 올라오지 않았다. 어떻게 타인을 고려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위타한 생명인지 법공부를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법에서 탄생한 생명은 대법에 부합하며 대법은 무사무아(無私無我)하다. 우리의 기점이 자아의 사(私)에 서 있을 때는 구우주의 이치(理)에 부합하여 구우주의 기제가 당신을 건드릴 수 있지만, 우리의 기점이 법에 서 있다면 그것은 무사(無私)한 것이다. 무사한 생명은 자아가 없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위타적이다. 조금씩 제고하고 매번 안으로 찾으며 층층 사람 표면의 껍데기를 벗겨낼 때, 다른 공간 중생이 구도될 기연은 많아질 것이다. 보기에 인간 세상의 가장 거친 물질로 구성된 육신은 평범하고 저능해 보이지만, 그 뒤에 짊어진 생명과 대응하는 천체 중생은 오히려 무량무진(無量無盡)한 것이다.
법리를 명백히 하니 정진할 동력이 생겼으며, 동시에 법의 가지와 보장을 얻게 되었다. 대법이 한 사람을 용해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하지만, 전제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며 법에 따라 행하는 것이다.
이상은 현 단계의 작은 깨달음이니 부적절한 곳이 있다면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4년 미국 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대뉴욕지역 법회 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4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