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心淸)
【정견망】
제야의 폭죽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남행 열차의 긴 울음소리가 남은 설 분위기를 실어 가버리니 마치 꿈을 꾼 듯 순식간에 집안은 방금 전의 북적임에서 다시 고요함으로 돌아간다. 이런 설날은 마을에서 아이들이 밖으로 돈을 벌러 나간 가정에는 거의 일상이 되었다. 이미 여러 해가 흘러 사람들은 아이들이 총총히 모였다가 총총히 떠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번 설을 생각해보면 노인과 아이들 모두 공연장에나 다녀온 듯 참으로 분주했다. 아, 이것은 어떠한 삶인가. 북적임, 썰렁함, 그리고 고독이다. 이 땅 위에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점차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며 이것은 오로지 돈만을 위하는 나라가 되었다.
지난해에 아이는 공장 실적이 좋지 않아 일 년 내내 돈을 벌지 못했다며, 일주일간의 설 연휴에 오가며 고생하지 않겠다면서 우리에게 2천 위안을 보내주며 맛있는 것이나 사 먹으라고 했다. 그 2천 위안은 줄곧 그 자리에 놓여 있었고 설날은 썰렁하게 지나갔다. 이런 설을 보낸 지 얼마나 되었을까. 돈을 벌기 위해 집집마다 분주히 뛰어다닌다. 돈 벌기, 돈 벌기, 사람들 머릿속은 온통 돈뿐이며 점차 돈은 사람의 가치를 나타내는 유일한 증표가 되었다. 관념이 변하니 설 풍속도 변하여 사람들이 모여 나누는 이야기는 올해 누가 얼마를 벌었는지, 누가 출세했는지에 집중된다. 설을 쇠는 것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으며 전통적인 설 분위기는 이미 멀리 사라졌고, 설날은 마치 이틀 더 쉬는 큰 주말이자 평범한 날이 되어버렸다. 예전에 노인과 아이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설날은 어디로 갔는가.
예전 고향 풍습에는 납팔(臘八 섣달 초파일)이 지나면 바로 설이었다. 설을 쇠는 것은 마치 큰 연극을 공연하는 것과 같아서 서막이 오르면 설 돼지를 잡고 설 용품을 장만했다. 소년(小年 보통 섣달 23일이나 24일)이 지난 후에는 리듬이 빨라져 먼지를 털고, 두부를 만들고, 연고(年糕)를 찌고, 완자를 튀기고, 닭을 잡고, 증공(蒸供, 조상과 신불에게 공양할 만두)을 찌고, 대련을 쓰고, 대련을 붙였다. 제야(除夜 섣달 그믐)에 이르러 고조되었다가 대보름이 되어도 끝이 아니었으며 정월이 되어야 비로소 설의 막이 내렸다. 모든 과정은 조금의 소홀함도 없이 엄숙하고 신성했다. 모든 친척이 집으로 돌아와 단란하게 모이고 친지들을 방문하니 분위기는 따뜻하고 상서로웠다. 직접 빚은 진한 쌀술을 마시며 온 가족이 어른을 모시고 앉아 가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뿌리의 전승을 느꼈다. 온 가족이 화락하니 사람들은 그 속에 도취되어 음식을 즐기고 마음은 생기로 충만했다.
가장 깊은 인상은 대련 쓰기였다. 마을 사람들은 보통 마을의 마(馬) 선생님께 써달라고 부탁했는데 마 선생님은 학식이 깊어 아는 시구(詩句)가 많고 고풍스러웠다.
“하룻밤이 두 해를 잇고, 오경에 두 해로 나뉘네(一夜連雙歲,五更分二年)”,
“새해에 남은 경사를 받아들이고, 가절을 장춘이라 부르네(新年納餘慶,佳節號長春)” 같은 구절은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그분이 쓴 내용은 집안마다 다 달라서 같은 구절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세배를 다닐 때 어느 집 대련이 좋고 재미있는지 보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집집마다 살피며 읽고 웃으며 평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재미있는 춘조(春條)들은 나를 기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짓는 법도 배우게 했다. 나이가 조금 들어서는 나도 마 선생님의 모습을 본떠 직접 춘련을 쓰기도 했다.
지금 사람들은 직접 대련을 쓰지 않고 모두 기성 것을 사는데, 천편일률적으로 “복이 오고 재물이 생기는 땅, 금과 옥이 쌓이는 문(發福生財地,堆金積玉門)” 식의 어휘를 사용하니 집집마다 똑같다. 어느 것이 아름답고 어느 것이 추한가? 지금 그 대련 문구 뒤의 의미를 헤아리거나 글씨를 쓸 때의 그 낭만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춘련에 무슨 무게가 있으며 영성(靈性)과 재미가 어디 있겠는가. 오직 형식적인 북적임만 남았을 뿐 설 분위기는 크게 반감되었다.
그 시절 설날은 비록 생활이 팍팍했으나 설을 쇠는 의식만큼은 소홀함이 없었다. 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대를 품게 했고 희망과 북적임으로 가득했다. 온 가족, 온 문중 나아가 온 마을 사람이 서로 세배하고 축복하며 기쁨이 넘쳤다. 어린아이들은 마음껏 뛰놀고 어른들은 친척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조상의 영광을 서술하고 아이들의 일상적인 일들을 이야기했다. 정월에는 친척과 친구를 방문하니 집집마다 떠들썩하고 화락했다. 묵은해의 연기, 혈육의 정, 그리고 가문의 서사 속 순박함, 진실함, 효도와 감사는 이 북적임 속에서 골수까지 스며들었다. 그것은 전통과 가정의 뿌리를 잇는 전승이자 전통적인 설날이 영원히 쇠퇴하지 않는 매력이었다.
오늘날 일부 지역에서는 폭죽조차 금지하고 있으니 어디에 설날 흔적을 찾을 수 있겠는가. 설 풍속의 상실은 전통에 대한 철저한 파괴이며 우리 민족이 대대로 이어온 뿌리를 자르는 것이자 화하(華夏) 문명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보는 풍조는 사람들을 거대한 돈벌이 기계 위의 톱니바퀴로 만들었다. 서로를 물어뜯으며 생존을 위해 극심하게 경쟁하니 피로, 무력함, 마비가 찾아오고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얼음처럼 차갑고 무정해졌다. 마음이 돈 냄새로 덮여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 정이 남아 있겠는가.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데 어찌 설 분위기를 논하겠는가.
사람들이 지금 설 분위기가 담박해졌다고 탄식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애석함이자 민족의 비극이다. 설 분위기가 멀어지면 설날도 진정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진다. 사람들의 오락이 로봇 같은 공연으로 전락한 마당에 무슨 설 분위기를 기대하겠는가. 화하 문명을 어떻게 부흥시킬 것인가. 각성한 중국인은 자연히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안다. 사악한 당을 해체하고 사악함을 멀리하는 것만이 전통으로 돌아가고 부강으로 나아가는 광명의 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5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