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열(欣悅)
【정견망】
절을 나서자 서호 만나니 달은 아직 지지 않았고
연꽃 출렁이는 속에 버드나무 사이를 걸어가네.
붉은 향기 세계의 맑고 시원한 나라
가면서 남산을 보고 또 북산을 보네.
出得西湖月尚殘
荷花蕩裏柳行間
紅香世界清涼國
行了南山卻北山
양만리(楊萬裏)는 자가 정수(廷秀)이고 호가 성재(誠齋)다. 길주 길수 사람이다. 남송의 저명한 시인이자 대신으로 육유(陸遊), 우무(尤袤), 범성대(範成大)와 함께 중흥사대시인(中興四大詩人)이라 불린다. 남송의 광종(光宗)이 일찍이 친필로 ‘성재(誠齋)’ 두 글자를 써주었기에 학자들은 그를 ‘성재선생(誠齋先生)’이라 불렀다. 양만리의 시는 대부분 자연경관을 묘사하며 이를 특기로 삼았다.
이 시 《새벽에 정자사를 나서는 임자방을 전송하며 두 수 중 첫번째(曉出淨慈寺送林子方二首·其一)》는 마치 동요 같아서 일말의 깊은 뜻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데는 자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양만리의 시는 단순하고 재미있다. 동요 같기도 하고 동화 이야기 같기도 하여 시사(詩詞) 중에서 독특한 풍격을 지닌다. 아마도 우리는 동심을 미성숙한 표현이라고 여길지 모르나 그와 반대로 동심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본심의 선량함이다. 사람은 어린아이일 때 동경으로 가득하다가 어른이 되면 명리를 위해 다투고 싸운다.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라며 이것을 성숙함과 성장으로 여긴다. 그러다 노년이 되어 전도에 가망이 없을 때 도리어 다시 내려놓게 되는데,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늙은 아이(老小孩)다. 보기에 조금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그것이 진심의 표현이다.
“절을 나서자 서호 만나니 달은 아직 지지 않았고
연꽃 출렁이는 속에 버드나무 사이를 걸어가네.”
이 두 구절은 서호를 나설 때 하늘에 그믐달이 여전히 떠 있고, 친구를 배웅하며 연못을 지나 수양버들이 늘어진 좁은 길을 걷는 모습을 묘사했다. 시인에게는 친구를 보내는 아쉬움도, 거창한 도리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아이처럼 달을 쳐다보고 연꽃가에서 서성이며 버드나무 곁에서 두리번거리는 놀이와 같다. 마음속의 활기찬 마음이 마치 억누르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다.
“붉은 향기 세계의 맑고 시원한 나라
가면서 남산을 보고 또 북산을 보네”
이처럼 붉은 꽃이 가득하고 그늘져 시원한 세계에서 우리는 남산을 지나고 다시 북산을 돌아간다. 시인이 작은 장소를 세계라고 여길 때는 이미 어린아이의 말투로 말하고 동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남산을 보고 북산을 보는 것이 친구를 배웅하는 것 같지 않고 마치 교외로 소풍을 나온 듯하다.
사실 동심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바보 같아서도 아니고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해서도 아니다. 인간 세상의 명리와 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지 않는 것이 선량함의 표현이자 자비의 표현이다.
양만리는 당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노인이었으며 조정이 중시하는 신하였다. 하지만 조정의 아귀다툼을 차마 보지 못했고 그 속에 융화되기를 원치 않았으며 융화될 수도 없었다. 총명함과 능력을 논하자면 그와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의 동심은 무지가 아니라 선량함이며, 능력이 없어 얻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명리를 가볍게 본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얻을 능력이 있음에도 선량함 때문에 다투지 않는다면 이러한 동심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의 눈에는 아름다움만 보이고 마음에는 행복만 보인다. 동심 아래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동심이 남아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명리를 내려놓아야 생명이 비로소 해탈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6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