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 대법제자
【정견망】
서원에서 공부하는 한 관료 자제는 자질이 평범한 데다 술을 무척 좋아했다. 그의 동료들은 학문에 전념하여 훈장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할 만한 글을 지어냈지만, 그는 자리에 앉아 고심해도 한참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간신히 몇 줄을 적었을 때 어디선가 술 향기가 풍겨왔다. 알고 보니 ‘술친구’들이 새로 산 좋은 술을 들고 곁에서 유혹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더욱 글을 쓸 마음이 사라져, 술이나 두어 잔 마시면 영감이 떠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친구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호숫가에 이르니 낚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갑자기 찌가 움직이자 낚시꾼이 급히 낚싯대를 낚아챘는데, 아! 뜻밖에도 보기 드문 황금 잉어 한 마리가 낚였다. 낚시꾼은 기뻐하며 물고기를 나무통에 담고 떠날 채비를 했다. 이 광경을 곁에서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청년들이 보게 되었다. 다른 이들은 그저 평범한 일로 여겼으나, 이 관료 자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낚시꾼을 가로막더니 은전을 꺼내 그 손에 든 황금 잉어를 샀다. 친구들은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친구가 뭘 하려는 거지? 물고기를 기르려는 건가, 아니면 술안주로 쓰려는 건가?’
예상밖으로 이 청년은 나무통을 들고 호숫가로 걸어가더니, 손을 들어 통 안의 물고기를 물속으로 돌려보내고는 태연하게 친구들 사이로 돌아왔다. 뜻밖에도 방생(放生)했던 것이다! 모두가 의외라고 느꼈지만, 정작 그는 그저 물고기의 처지가 가련해 자유로운 호수로 돌아가게 도와주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일념뿐이었다. 참으로 선한 마음을 가진 청년이었다.
바로 이때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황금 잉어가 갑자기 호수 위로 머리를 내밀더니 청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절을 하며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아닌가. 청년은 깜짝 놀라 계속 술을 마시며 놀던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동료들은 그 말을 듣고 전대미문의 우스갯소리를 들은 양 배를 잡고 박장대소하며, 심지어 그가 환각을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크게 웃으며 점차 흩어졌다.
그러나 청년은 여전히 호숫가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방금 그 장면은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본 것이지 환각이 아니었다! 이때 더욱 신기한 광경이 나타났다. 호수 중심에서 물거품이 보글보글 일더니, 금빛과 함께 한 형체가 물거품 사이에서 솟구쳐 올랐다. 공중에서 영롱하게 한 바퀴를 돌더니 호선을 그리며 청년 앞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자세히 보니 노란 치마를 입은 우아한 선녀였다. 서로 예를 갖춘 후 선녀는 자신이 바로 그 황금 잉어이며 용궁의 공주라고 밝히고는, 그를 용궁으로 초대했다. 청년은 놀랍고도 기뻐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가 몸을 돌려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수면을 훑자, 호숫물이 물결치며 양옆으로 갈라져 터널이 생겼다. 용궁 공주는 청년의 손을 잡고 터널 속으로 들어가 호수 바닥으로 향했다.
용궁에 들어서니 금벽(金碧)이 휘황하고 각종 수중 진보(珍寶)들이 눈을 어지럽힐 정도로 가득했다. 구경하던 중 공주는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청년은 공주에게 서원 학생으로서 겪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장차 공명을 얻기를 바라시는데, 자신은 비록 열심히 공부하지만 시를 짓고 글을 쓰는 능력이 도무지 늘지 않아 자주 훈장님께 꾸지람을 듣는다는 것이었다.
공주는 그 말을 듣고 그것이 무슨 어려움이냐고 말했다. 공주는 부왕과 모후(母后)를 모셔왔고, 그들은 청년 앞에 서서 신통(神通)을 발휘했다. 그러자 청년의 머리 위에서 검고 탁한 물질 한 덩어리가 나타났고, 두 신선은 그것을 불 위에 올려 소멸시킨 후 다시 눈송이처럼 하얀 물질로 변하게 하여 별빛처럼 번쩍이며 청년의 머릿속으로 넣었다.
이러한 신기한 경험을 한 후 청년이 서원으로 돌아와 다시 붓을 들자, 갑자기 지혜의 구멍이 열려 문장력이 샘물처럼 솟구쳐 올랐다. 그 후로 그는 모두가 칭찬하는 훌륭한 글을 아주 수월하게 써내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2025년 대륙에 방송된 션윈 예술단 무용극 ‘선보(善報)’이다. 공연은 대사 없이 완전히 무용 형식으로만 표현되었다. 보는 사람마다 각자의 감수와 깨달음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개인적인 몇 가지 감상을 나누고자 한다.
극 중 청년이 뜻밖에 묘필생화(妙筆生花 뛰어난 글솜씨)의 능력을 얻게 된 것은 그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관념과 과학이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신기하게 보일 수 있으나 사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중국 고대에는 줄곧 ‘선행을 하면 덕(德)을 쌓을 수 있다’는 이념이 있었다. 이 ‘덕’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신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 실재하는 물질적 체현이다. ‘덕’은 일종 백색물질이며, 이와 상응하는 ‘업력(業力)’이라는 흑색물질이 있다. 이 두 물질의 관계는 어떠한가?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德(더)란 이런 종류의 물질은 우리가 고생을 겪고, 타격을 감당하며, 좋은 일을 하여 얻는 것이고, 그 흑색물질은 사람이 나쁜 짓을 하고, 좋지 않은 일을 하며, 남을 괴롭히는 데서 이런 흑색물질을 얻는다.”
청년이 물고기를 물속으로 돌려보낸 선행은 스스로 덕을 쌓게 했고, 자신의 흑색물질을 백색물질로 변화시켰다. 현실에서 나타난 변화는 머리가 깨어난 것, 즉 ‘글을 씀에 신의 도움을 받는 듯한(下筆如有神)’ 상태가 된 것이다.
여기까지 보시고 혹시 이렇게 말씀하고 싶지 않으신가?
“이 ‘덕’이라는 것이 정말 큰 위력을 가지고 있군요!”
정말 그렇다. 사람의 모든 복분(福分)은 ‘덕’에서 기원한다. 덕이 많은 사람은 건강, 학업, 직업, 가정, 재물 등 여러 방면에서 비교적 순탄하게 뜻을 이루는데, 이 모든 것이 덕으로 바꾼 것이다. 반대로 한 사람에게 업력이 많으면 하는 일마다 꼬이게 되는데, 이는 자신이 이전에 지은 나쁜 일로 초래된 징벌이나 보응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덕’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덕을 쌓는’ 일이다.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에서 자비롭게 일깨워 주셨다.
“그러나 있음과 없음, 득과 실은 인류사회의 표현에서 인류사회의 상황에 부합하기 때문에,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당신 생활의 빈부와 관계없이, 반드시 좋은 일을 하고,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며, 선함을 유지하고, 하늘을 공경하며, 신을 공경하고, 남을 기꺼이 도와야 한다. 그러면 복덕이 쌓이고 내세에 복을 받는다.”
앞서 언급한 청년은 비록 책더미에 묻혀 있었고 훈장님이 채찍질하며 독려했으나, 자질이 뛰어나지 않은 데다 놀기 좋아하고 술을 즐겼다. 관료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관직을 잇기를 고대했지만 그의 표현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오늘날 많은 부모가 자식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특히 중국 대륙에서는 아이가 남보다 뛰어나게 하기 위해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 때부터 각종 경쟁에 내몰며, 수단과 방법을 가동해 아이를 지역 최고의 학교에 넣으려 한다. 매일 학교 숙제를 마치는 것 외에도 각종 문제집을 더 풀게 하고, 주말과 방학에는 여러 보습학원과 취미반을 전전하며 온갖 재주를 배우게 한다. 부모들의 시선은 오로지 한 차원에만 꽂혀 있어, 마치 아이를 큰 자루로 여겨 지식과 기술, 본령을 억지로 집어넣으려 할 뿐, 아이의 도덕 품행 교육이라는 지극히 중요한 부분은 간과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자신의 유일한 임무가 공부라고 생각하게 되며, 성적만 좋으면 전자 기기에 빠져들거나 피할 수 없는 각종 감각적, 물질적 향락에 침몰할 뿐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대륙의 많은 아이가 언행에서 자기중심적이고, 기본적인 예의나 타인에 대한 성실함과 배려가 부족하며, 고생을 겪으려 하지 않고 집에서 부모를 도와 쉬운 집안일조차 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고생을 좀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고생은 덕을 쌓게 하지만, 향락을 많이 누리면 복분을 소모하고 업을 짓게 된다) 또한 학업 성적이나 최종적인 인생의 향방도 부모가 기대한 만큼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들을 탓할 수 없다. 학교 교육과 가정 교육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교육이 올바른 방향을 잃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표가 오직 입시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만 남게 되었고, 사람됨, 즉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도덕성이 높은 사람이 되는 법 등에 대한 개념은 아이들의 머릿속과 생활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거나 아예 공백이 되어버렸다.
사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우리 모두 자신의 인생 경험 속에서 한 가지 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아무리 분투하고 노력하며 계산하며 경영할지라도, 인생은 결국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며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결국 당신이 소유하게 되는 것은 본래 당신의 몫이지,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다투어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의 운명은 도대체 누가 결정하는가? 옛사람들은 “하늘을 공경하고 천명을 안다(敬天知命)”, “암암리에 하늘의 뜻이 있다”라고 했다. 사람의 운명은 사람보다 더 고등한 생명, 즉 신의 손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 신이 무엇에 근거하여 당신의 복과 화를 판가름하는가 하면, 바로 《전법륜》과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에서 언급한 ‘덕’이다. 이 점을 이해했다면, 자녀 교육에 막막함을 느끼던 대륙의 많은 젊은 부모님도 이 순간 조금은 눈앞이 환해지지 않았는가?
옛말에 “대도는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쉽다(大道至簡至易)”고 했다. 미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즉 ‘덕을 중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와 함께 도덕이 타락한 온갖 혼란 속에서도 인간의 본성인 순진함, 선량함, 관용과 인내를 지키고, 사람 사이의 상호 존중과 사랑, 도움 등 아름다운 모든 것을 되찾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이렇게 도덕이 높은 사람이 된다면, 우리의 생명은 신의 보호와 인도를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지금 말세(末世)에 선량한 생명을 선택하여 더할 나위 없이 순결하고 아름다운 신기원(新紀元)으로 이끌고 계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더 노력하면 반드시 신의 선택을 받는 행운아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6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