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연(了緣)
【정견망】
손오공이 한바탕 분노하여 사적으로 관직을 내팽개치고 떠나자, 천정(天庭)에서는 이를 알고 천병천장(天兵天將)을 보내 그를 잡아오게 했다.
어느 날 원숭이 무리가 조련하던 중, 홀연히 거령신(巨靈神)이 강림했다. 수렴동 밖에서 대결을 신청하며, 필마온(弼馬溫)더러 스스로 항복하러 나오라며 큰소리를 쳤다. 번거롭게 잡으러 가게 하지 말라며 미후왕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고 식은 죽 먹기라는 태도를 보였다. 허! 기세가 대단했다. 일찌감치 격노한 미후왕은 갑옷을 갖춰 입고 완전무장한 채 금고봉을 치켜들고 살기등등하게 맞서러 나갔다. 참으로 “뾰족한 입에 이빨을 드러낸 필마온이, 마음만 높아 제천대성이 되려 한다[尖嘴呲牙弼馬溫,心高要做齊天聖]”는 격이었다.
거령신은 오공을 보자 먼저 자신의 가문을 내세우며 뒷배를 과시했다. 탁탑천왕(托塔天王)의 깃발을 내걸고 위세를 떨치며 천은(天恩)에 귀순해 온 산의 짐승들이 몰살당하는 일을 면하라고 위협했다. 만약 ‘아니오’라는 소리라도 한 마디 한다면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했다.
하하! 재미있지 않은가.
이때의 거령신은 얼마나 오만방자했는지, 이후 패배하여 도망칠 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면목 없는 일이었다. 이는 마음이 한껏 부풀어 하늘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오공을 돋보이게 한다. 그 자아도취는 거령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오공은 입을 열자마자 네 목숨을 살려줄 테니 가서 소식이나 전하라고 외쳤다. 옥황상제가 인재를 쓸 줄 모른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손 어르신에게 이토록 무궁한 능력이 있는데 왜 나더러 말을 기르게 했느냐?”
오공은 높은 장대에 걸린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는 네 글자의 깃발을 가리키며 봉호(封號)를 요구했다. 만약 들어주지 않으면 능소보전(凌霄寶殿)으로 쳐들어가 옥황상제의 자리를 불안하게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보라, 광기(狂)와 광기가 맞붙어 서로 들이받으니 소통이 될 리가 없다. 그러니 싸울 수밖에. 다만 거령신이 워낙 맷집이 없어 몇 합 겨루지도 못하고 지탱하지 못했다. 법기(法器)는 부서졌고 손재간은 입담보다 훨씬 못했으니, 무엇 하나 미후왕을 넘어서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자아도취는 할지언정 현실은 직시할 줄 알았기에, 거령신은 지자마자 목숨을 구걸하며 도망쳤다. 구원병을 데려와야 체면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대목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지 아는가? 카메라를 뒤로 돌려 오공이 옥황상제에게 쏘아붙인 그 한 마디에 초점을 맞춰보자.
“그는 참 인재를 쓸 줄 몰라, 손 어르신에게 무궁한 능력이 있거늘 어찌하여 말을 기르게 했는가?”
이를 요즘 말로 번역하면 이렇다.
“옥황상제가 내 실력을 몰라주고 사람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 하늘 같은 재주를 지닌 나를 겨우 말이나 기르는 데 쓰다니, 이건 나를 무시하고 비하하며 모욕하는 처사다!”
온갖 불만이 쌓여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을 낳았고, 그것이 한 문장으로 집약되었다. ‘옥황상제가 나를 깔본다!’ 그래서 제천대성이 되어 옥황상제와 평등해지거나, 아예 그 자리를 뺏어버려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결국 체면 때문에라도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토록 유치한 이유가 오공의 오만방자한 마성(魔性)을 자극했고 자아를 팽창시켜 걷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거듭 실수를 저지르다 결국 겁난(劫難)의 모드에 진입하게 되었고, 온갖 신선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며 하늘과 땅 끝까지 쫓겨 다니는 고난을 겪게 되었다.
도대체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가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일인가? 남이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내 능력이 가치가 떨어지는가? 내 실력은 나만 알면 그만이다. 남이 모르는 그것이 바로 비장의 카드이며, 결정적인 순간에 허를 찔러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사소한 것조차 분별하지 못하니, 이때 오공에게 부족했던 것은 이성(理智)이었다.
타인의 인식 속에 사는 사람은 결국 타인의 입에 죽게 됨을 몰랐단 말인가? 그렇다면 오공이 주관이 없었는가? 그건 아니다. 천궁을 소란케 하고 반도회(蟠桃會)를 엉망으로 만들며, 오행산에 부딪히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았으니 주관 하나는 뚜렷했고 담력도 컸다. 사악한 기운이 머리끝까지 올라 일단 지르고 보았으며, 자신이 패배할 것이라거나 후과가 어떠할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행산 아래 500년 동안 갇혀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내가 너무 경솔했구나!’
한순간의 충동으로 치른 대가가 너무나 컸다. 마성(魔性)을 방종했을 때 생기는 공통된 병폐는 후과를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오공이 마변(魔變)한 심리 과정을 분석해 보자.
오공은 안으로 찾을 줄 몰랐다. 불공평한 대우를 받으면 가장 먼저 상대방이 눈이 멀어 자신을 홀대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본래 밖에서 구르던 신선임에도 상대방이 자신을 초빙해 공무원 대우를 해주고 하늘의 기회를 준 것이, 설령 변소를 청소하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천은(天恩)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천은이 없었다면 오공은 남천문에 들어갈 자격조차 없었으며 천문이 어디로 열리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욕심의 구렁텅이를 채울 수 없었고, 남이 주는 것이 적어 사욕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불공평하며 괴롭힘을 당한다고 여긴 것이다.
아무것도 주지 않았을 때는 평온하다가, 무언가를 주니 오히려 사단이 났다. 사람 마음은 만족을 모르기에 뱀이 코끼리를 삼키려 하는데 이 세상의 많은 악행이 이익에서 비롯되며 악념(惡念)에서 파생된 죄악이 도처에 깔려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노력하고 분투하지만, 이는 대개 권력을 다투고 이익을 쫓는 일이며 심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한다. 방향이 틀리면 노력할수록 더 크게 그르치게 됨을 어찌 모르는가. 얻는 것이 많을수록 미리 당겨쓰는 복보(福報)도 많아진다. 이른바 호화로운 삶은 수명을 미리 당겨써서 얻은 것이니 운명을 바꾸긴 한 셈이나, 탐욕으로 인해 거꾸로 바뀐 운명은 독이 되어 돌아온다. 악보(惡報)가 닥칠 때면 후회해도 늦는다! 사실 운명을 바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니 그것은 바로 선해(善解)다.
사람이 전생할 때 맹파탕(孟婆湯)을 마셔 전생의 기억을 지우고 백지상태로 태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신이 사람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다. 전생의 원한에 휘둘리지 않고 모든 은원정구(恩怨情仇)를 잊고, 과거를 내려놓고 인생의 길을 새로 선택하게 하려는 것이다. 세상에 후회하는 약은 없지만, 사람이 후회할 때는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고심한다. 인성을 꿰뚫어 보고 실수를 피해 유감 없이 살기를 바란다. 사실 후회하는 약이 바로 맹파탕이다. 그것을 마시고 모든 은원을 잊어야만 과거를 내려놓고 새로운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
비록 다시 시작하는 인생이라도 생생세세의 인과와 업채(業債)를 지고 있어 고통과 마난이 따르겠지만, 선의(善意)로 마주하는 인생은 원한을 선해(善解)할 수 있고, 악의(惡意)로 마주하는 인생은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빚이 늘어남) 길로 가게 된다. 인성의 부면(負面) 성향과 정(正)적인 발전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선과 악의 선택이 운명의 향방을 가르는 것이다. 인생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원한을 선해하여 업채를 갚고 인과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빚이 없어야 몸이 가벼워지고 좋은 날이 오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맹파탕을 아무리 마시고 백 번을 다시 태어난다 해도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허덕이게 된다.
이때의 원숭이는 자신이 어떻게 하늘에 오게 되었는지를 선택적으로 잊어버렸다. 사고를 치고 화를 불렀기에 천정에서 초빙한 것인데, 공을 세운 것도 없으면서 한도 끝도 없이 요구만 했다. 상선(上仙)이 되어서도 강도 같은 사유를 버리지 못해 덕(德)이 자리에 부합하지 않으니, 그에게 말을 기르게 한 것은 마음을 다스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마음에는 심법(心法)의 제약이 있어야 의식이 곁길로 새지 않는다. 곁길로 새면 은혜를 원수로 갚게 되고 마성이 범람하게 된다.
이는 마치 어떤 제자가 관을 넘기지 못해 장기간 마난에 처하거나, 도태되어 사오(邪悟)한 뒤 오히려 사부님을 원망하고 대법을 모함하는 것과 같다. 수련 중에 정념에 의해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마성이 반등하면 정념이 사라져 속인보다 못한 상태가 되고, 정신이 혼미한 채 뛰쳐나와 난법(亂法)을 저지른다. 그럼에도 사부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거듭 기회를 주시며, 한 명의 제자라도 낙오되지 않기를 바라시는 무한한 자비를 베푸신다.
잘못된 길을 가거나 진수(眞修)하지 않고 세월만 보내는 이들, 곧 도태될 위기에 처했거나 이미 도태된 제자들에게도 사부님께서는 살아날 길을 남겨두시며 바로잡아 돌아올 기회를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안으로 찾음(向內找)이다. 아주 작아도 오직 청성(淸醒)함이 남아 있고 마음속에 진수(真修)로 돌아오려는 염원이 있다면, 진정으로 자신의 이 마음을 안으로 찾아보라. 그러면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게 되고, 이 모든 마변의 근원인 사람마음(人心)의 집착을 바로잡을 수 있다. 정념이 각성하는 순간 예전에 격리된 잘 닦인 일면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수련 시작부터 우리에게 남겨주신 비장의 카드이자 정법 필승의 최대 보장이며, 천지를 뒤바꿀 수 있는 힘이다.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는 말은 정면(正面)적으로도, 부면(負面)적으로도 쓰일 수 있다. 마성이 일어날 때 밖으로 구하는 것은 소모이며, 보이는 모든 것이 함정이다. 수련 중에 쌓아온 정념을 소모하게 되니, 제때 집착을 찾지 못해 사람마음이 우세하게 되면 참으로 일념이 바르지 못해 모든 것을 망치게 된다.
우리는 법공부를 통해 사람에게는 불성(佛性)도 있고 마성(魔性)도 있음을 안다. 사람의 육신은 불마동체(佛魔同體)이며, 밖으로 찾음은 곧 마성과 소통하는 것이다. 수련인의 마성은 진수하기만 한다면 평소 정념을 유지하는 가운데 계속 소멸되는 상태에 있다. 정념에 눌려 마성이 숨이 끊어질 듯 아주 조금 남았을지라도, 일념이 바르지 않고 제때 손실을 멈추지 않은 채 욕망이 이끄는 대로 방종한다면 그 작은 불씨가 마성을 폭발시킬 수 있다. 억눌린 시간이 길수록 폭발력은 더 강해지며, 사오한 뒤의 표현은 더욱 사악해진다. 이것이 바로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된다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이치다.
마찬가지로 통제 불능의 마성 폭발 속에서 자아를 되찾고 이성을 회복하고 싶다면, 사부님께서 주신 법보(法寶)인 안으로 찾는 법을 운용하라. 당신에게 돌아오려는 염원만 있다면 사부님께서는 당신을 깨워주실 수 있다. 법보 자체가 에너지의 매개체이므로, 안으로 찾는 동시에 당신은 정(正)의 에너지를 호출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바로잡히는 마음은 무한히 고차원과 연결된다. 잘 닦인 일면과 연결해 정법(正法)한다면, 마음을 바로잡는 일념이 나올 때 에너지가 즉시 도달한다. 오공의 근두운이 10만 8천 리 취경(取經) 길을 허리 한 번 흔들어 도착하듯, 이것이 정념의 힘이며 우주의 에너지가 당신을 가지(加持)하는 것이다.
당신의 내면이 확고하고 이성이 정념으로 회복되어 우주의 표준에 부합한다면, 누가 감히 손을 뻗어 당신을 박해하겠는가? 당신 뒤의 정신(正神)이 나설 명분이 생기며, 정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다. 당신의 심성이 표준을 넘었음에도 끝없이 괴롭힌다면 사부님께서 평정해 주신다.
많은 경우 마난 속에서 사부님이 나를 돌보지 않으신다거나 물불 속에서 구해주지 않으신다고 느끼며, 단 1초도 더 견딜 수 없다고 고통스러워한다. 그 고통 속에서 당신이 생각한 것이 법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며, 마음속에 법이 없고 집착만 가득하다면 법이 어찌 당신을 구하겠는가? 당신 스스로 길을 막아버렸고 죽어도 사심(私心)을 내려놓지 못해 정념이 나오지 않는데 사부님께서 어찌 돕겠는가? 마난 앞에서 대법제자의 모습은커녕 신(神)의 상태도 나오지 않고 사람마음의 집착만 적나라하니, 우주의 모든 신이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하는데 사부님께서 어찌 나서시겠는가? 어떻게 대중을 승복시키고 우주의 각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겠는가?
오직 못난 사람만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한다. 잘하는 제자는 일을 당할 때마다 안으로 찾는 법보를 높이 들고 제때 모든 누락을 바로잡는다. 마음이 탁 트여 천지에 부끄러움이 없으며 사마(邪魔)와 난귀(爛鬼)가 일목요연하며, 발아래는 광명의 대도(大道)다. 법보(法寶)로 길을 비추고 수련의 마음이 반석같이 굳건하다면 불패(不敗)의 자리에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에휴! 말하고 보니 결국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좀 잘해서 사부님의 걱정을 덜어드릴 순 없는가? 이 법난(法難)이 모두 밀려왔을 때, 착실히 닦은 제자는 병업 가상이 좀 있다가 며칠이면 지나간다. 제대로 닦지 못한 이는 다시 한번 걸러지게 되는데, 단순히 병업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적 공격까지 들어온다.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이번 법난 때 나 역시 며칠간 감당했다. 먼저 갑자기 목이 아파왔는데 마치 목구멍이 막힌 듯 삼키기가 힘들고 매우 고통스러웠다. 2~3일 뒤 목은 나았으나 가슴이 답답해졌다. 마치 전중혈(膻中穴)이 막힌 듯 가슴속에 탁기(濁氣)가 뭉쳐 소통되지 않고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탁기는 형체가 없지만 느낌은 매우 실질적이었고, 마치 유동적인 덩어리 같아 물 한 모금 넘기기도 힘들었다. 억지로 삼키면 탁기가 날카로운 칼처럼 심장을 찔러 통증이 심했다. 당시에는 법난이 밀려온 줄도 모르고 잠시 잡생각을 했다. 통증이 너무나 실제적이었기 때문이다. ‘업력은 닦을수록 마땅히 줄어들어야 하는데 왜 이런 병업 가상이 생기는가? 통증이 너무 실제적인데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떤 원인이든 법공부를 많이 하고 연공을 많이 하는 것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강력한 에너지가 운행되기 시작하면 뚫리지 않는 것이 없다. 불편한 느낌이 올라오자마자 나는 묵묵히 외쳤다. “가상아 꺼져라!” 말이 좀 험해도 이해해 달라. 이런 것들이 오자마자 내 심맥을 막고 목을 조이는 것은 목숨을 노리는 것으로 악의(惡意) 가득하다. 일념이 바르지 않으면 생사의 갈림길이 되니 어찌 예의를 차리겠는가. 벼락 같은 기세로 반격하는 것이 상책이며, 그렇게 하니 2~3일 만에 나았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무시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절대로 느낌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사유가 멋대로 흐르지 않게 배척하고 즉시 불을 꺼야 하며, 부면적인 사유를 확장하지 말고 통증을 지속시키지 말아야 한다. 특히 병(病)의 방향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누락이 생기면 가상이 실제가 되기 쉽다.
신(神)을 향해 가는 수련인이라 해도 아직 신은 아니기에, 사람마음이 나오는 순간 스스로를 사람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게 된다. 생로병사의 규칙에 떨어지면 다시 올라가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한 걸음 잘못 내디뎠을 때 제때 깨어나지 못하고 굽은 길에서 추월하려 한다면, 81난이라는 ‘세트 메뉴’가 줄줄이 배달될 것이다.
동수들이여, 수련이 쉽지 않으니 정진해야 한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연공하여 머릿속을 정념(正念)으로 가득 채우면 부정적인 요소가 고개를 들 틈이 없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불편한 느낌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내가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무엇을 건드리고 해체하기 때문이다. 어느 층면을 쓰면 그 층면을 청리하고 그 층면의 요소를 바로잡게 되니, 당연히 사악은 좌시하지 않고 온갖 방법으로 방해하고 저지하려 든다. 나 또한 갓 데뷔한 필자가 아니기에 이미 익숙하게 대처하고 있다. 정사(正邪) 대전의 승자가 되어야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법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속으로 “물러가라”고 외친다. 자판으로 치는 글자 하나하나가 만 개의 화살이 되어 날아가 방해를 청리할 것이다.
자비는 구도받을 가치가 있는 이에게 주는 것이지, 사마란귀(邪魔爛鬼)에게는 불법(佛法)의 위엄 있는 일면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동수들에게 몸이 불편할 때 병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하기 위함이다. 두려운 마음이 생겨 부면(負面) 사유를 통제하지 못하면 가상이 진짜가 되어버린다. 특히 노년 동수들이 수명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사부님에 의해 지옥에서 명단이 삭제되었으며, 수련의 문에 들어선 이상 ‘죽음’이라는 글자와는 상관이 없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은 모두 성취하는 길이며, 진수(真修)하면 모두 성취할 수 있다. 정법이 반드시 성공함은 분명한 목표가 있는 것으로, 우주에서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하셨으니, 당신이 진정으로 믿지 않아 작은 의구심이라도 품어 구세력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는 한 길을 잃을 일은 없다. 수련 중에서 생사를 내려놓아야만 진정으로 생사를 벗어날 수 있고, 대법의 초상적인 일면을 닦아내 불도신(佛道神)의 진아(眞我)로 돌아갈 수 있다.
사유를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법공부다. 법난은 분산되어 내려오기에 이렇게 많은 제자가 나누어 가졌기에 우리 몫은 그리 많지 않다. 큰 부분은 사부님께서 다 짊어지셨음을 생각하면 이 정도가 무엇인가. 정진하여 가장 빠른 속도로 사악을 제거하자. 여력이 있다면 정념을 많이 발하여 션윈(神韻)과 대법 사이트의 사악한 방해를 청리하자. 우리가 잘해야만 더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다. 말은 여기까지 하고, 힘을 냅시다!
사실 많은 경우 마난 속에서 사부님이 돕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한 것이 너무 차(差)해서 사부님께서 도우실 명분을 주지 못한 것이다. 정말로 잘해서 표준에 도달했다면 사부님이 나서시기 전이라도 정신(正神)들이 도울 것이다. 손 한 번 까딱해서 선연(善緣)을 맺는 일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미래에 성취했을 때 얻을 이득이 얼마나 많겠는가. 문제는 당신의 표현이 뭇신들로 하여금 당신이 끝까지 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주어야 그들의 선연도 결실을 맺는다는 점이다. 당신이 그만한 재목이 아니라면 구경하는 것조차 재미없어 할 것이다.
속인의 말로 하자면, 당신이 남의 투자를 받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투자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물며 우주의 뭇신들이 당신에게 거는 것은 목숨이고 미래다. 당신의 표현이 실망스러워 제신들의 미래가 막막해진다면, 그들이 보복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줄 알아야 한다.
우주중의 모든 일에는 다 인과가 있다. 우리는 속인의 몸으로 수련하며 홍진 속에서 마음을 닦아 인과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신우주를 창조할 때, 상계 구우주(舊宇宙)의 고급 생명들은 여러 이유로 대법제자로 태어날 기회를 놓쳐 간절한 눈으로 우리가 인간 세상에서 정법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누군들 이 순풍차를 타고 대법제자의 신우주로 동화되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우주의 법칙이 엄연하니 모든 것은 규칙대로 가야 한다. 정법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 수 없으며, 강제로 끼어드는 자는 구세력이 되어 결국 도태될 뿐이다. 관망하는 이들에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선택해야 한다. 법에 동화되려 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는 이들이 있는데, 당신 머리만 좋고 남들은 다 바보인 줄 아는가? 자기기만일 뿐이다.
법에 동화되기를 선택한 이들은 대법제자의 배경이 되었으나 평소에는 구경만 할 뿐 손을 쓸 수 없다. 하지만 잘하는 제자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문을 빨리 통과하고 신속히 표준에 도달한 제자가 있다면 뒷감당 정도는 도와줄 수 있다. 신우주의 위덕은 손만 내민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기회는 얻기 힘들다. 당신이 잘하기만 하면 전 우주의 정신(正神)들이 모두 당신을 도우려 한다. 뭇신들이 도울 명분을 주는 방법은 일이 닥쳤을 때 즉시 안으로 찾는 것이다.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안으로 찾아 이 법보를 천지를 관통시켜 운용한다면, 층층 환우(寰宇)와 모든 세계의 대문을 여는 만능열쇠가 될 것이다. 진짜로 수련하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5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