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도(走正道)
【정견망】
올해 정월 초아흐레날, 한 영상을 보았다. 말투로 보아 동북 사람인 듯한 한 여성 블로거가 민정국(民政局) 혼인등기처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초여드레 날 막 출근했는데, 연휴 이후 첫 근무가 매우 괴로웠다고 했다. 결혼하는 커플은 두 쌍뿐이었는데, 이혼하러 온 커플은 47쌍이나 되어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고 오로지 이혼하겠다고만 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처음 보인 반응은 “설을 어떻게 보냈길래? 얼마나 큰 원한이 쌓였으면 연휴 끝나고 출근하자마자 참지 못하고 이혼하려 드는가?!”였다.
대륙 중국인들에게 이혼은 이제 아주 흔한 일이 되었으며,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중국인들에게는 이미 전통문화 관념이 사라졌고, 혼인의 기초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모르기 때문이다. 혼인을 욕망의 결합으로 여겨 오늘 눈에 들면 결혼하고, 내일 눈에 거슬리면 이혼한다. 포용, 배려, 아이가 받을 상처, 양가 부모님께 미칠 영향 등은 아예 고려 범위에 넣지도 않고 모든 것을 욕망에 따라 행한다.
오늘날의 중국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면 고인(古人)이 혼인을 대했던 태도와 비교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고금의 도덕이 얼마나 패괴(敗壞)되고 추락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고인은 애정(愛情)을 말하지 않았다. ‘애정’이라는 단어는 근대의 개념이자 명칭으로, 이른바 개성을 강조하며 도처에 ‘나’를 앞세운 것이다. 자기중심적으로 남이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나는 남을 어떻게 사랑하는지에 치중하며 상대방의 감수는 거의 고려하지 않고 정욕(情慾)을 말한다. 고인의 혼인은 정(情) 외에 은혜(恩)와 의리(義)를 더욱 중시했다. 혼인을 하늘이 맺어준 배필[天作之合]이라 여겼고 인연에 의해 정해지는 것으로 본 것이다. ‘월하노인(月下老人)’이라는 설이나 “백 년을 닦아야 같은 배를 타고, 천 년을 닦아야 같은 베개를 베고 잔다”, “인연이 있으면 천 리 밖에서도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마주쳐도 만나지 못한다”는 등 인연을 강조했다.
인연 외에도 고대에는 완비된 예법과 높은 도덕 윤리가 남녀 사이의 감정을 제약했다. 이는 가정이 안정되고 질서 있으며 건강하게 발전하도록 보장했다. 예법과 보편적인 가치관에 위배되는 남녀 간의 정은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법적인 엄벌을 받기도 했다.
혼인은 인생의 대사이지 장난이 아니다. 주대(周代)에 제정된 ‘육례(六禮)’[납채納采, 문명問名, 납길納吉, 납정納征, 청기請期, 친영親迎)]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결혼할 때 준수하는 법칙이 되었다. 고인은 신을 공경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며 효도를 중시했다. 그래서 결혼할 때 첫째로 천지에 절하여 하늘과 땅이 승인하게 했고, 둘째로 부모님께 절하여 부모님이 승인하게 했으며, 셋째로 부부끼리 맞절하며 서로 존중했다. 한 사람의 혼인은 천지와 부모, 그리고 수많은 일가친척과 친구들의 증명을 얻은 것이기에, 부부 양측은 서로 어려움을 함께하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살아야 했다.
고인은 전통문화 전적 속에 부부가 서로 손님처럼 공경했다[相敬如賓]는 이야기를 많이 남겼는데, 이를 통해 고인이 혼인을 대했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안영이 못생긴 아내를 버리지 않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안영(晏嬰)이라는 유명한 현상(賢相 어진 재상)이 있었다. 제경공에게는 아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안영의 재능을 보고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제경공은 직접 안영의 집을 방문해 군신(君臣) 간에 즐겁게 술을 마셨다.
술자리 도중 안영의 아내도 수시로 바쁘게 손님을 접대했다. 경공이 그녀를 보고 안영에게 물었다. “저분이 경의 아내인가?”
안영은 속사정을 모른 채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제 아내입니다.”
경공이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애석하구려, 어찌 저리 늙고 못생겼단 말이오! 내게 젊고 아름다운 딸이 있으니 경에게 시집보내 아내로 삼게 하는 것이 어떻소?”
이 말을 듣고 안영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고 장중하게 대답했다.
“제 아내가 지금은 늙고 예쁘지 않으나, 저는 이미 그녀와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았습니다. 여자가 젊을 때 시집오는 것은 자신의 일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제 아내는 젊은 시절 저의 귀함과 천함, 키가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고 종신토록 제게 몸을 의탁했고 저 또한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따님을 저에게 시집보내려 하시니 이는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하지만 하늘과 땅 사이에 선 대장부로서 이미 아내의 의탁을 받아들였거늘, 어찌 그녀의 정을 저버리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안영의 완강한 태도를 본 제경공은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극결 부부가 서로를 손님처럼 공경하다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상대부(上大夫) 극결(郤缺) 부부가 서로를 손님처럼 존경한 이야기는 칭송이 자자하다. 산서성 하진河津의 청간清澗에 있는 ‘여빈향(如賓鄕 손님처럼 대하는 향)’이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극결은 동주(東周) 시기 진나라 기(冀) 지역 사람으로, 집은 지금의 청간촌에 있었다. 진헌공 때 극결과 그의 부친 극예(郤芮)는 모두 조정에서 관직을 지냈으나, 후에 부친의 일로 연좌되어 서민으로 강등되었다. 극결은 고향으로 돌아가 거친 음식을 먹으며 몸소 밭을 갈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냈다.
진문공이 대신 구계(臼季)를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기 지역을 지나다 극결이 밭에서 김을 매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의 아내가 밥을 가져와 매우 예의 바르게 극결에게 바쳤고, 극결 또한 손님을 대하듯 아내와 서로 예의를 차렸다. 이를 본 구계가 깊이 감동했다. 귀국 후 문공에게 말했다.
“신이 기 지역을 지나다 극결과 그 아내가 서로 손님처럼 공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은 서로 존경하는 것이 덕(德)의 집중적인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니, 청컨대 극결을 불러다 중용하십소서.”
진문공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극결을 하군대부(下軍大夫)로 봉했다. 진양공(晉襄公) 원년, 전쟁 중에 극결은 몸소 앞장서서 적장(敵將)을 사로잡았고, 그 공으로 양공에 의해 경(卿)으로 승진했으며 기 지역을 영지로 하사받았다. 후대 사람들은 극결이 밭을 갈던 곳을 ‘취덕전(聚德田 덕을 모으는 밭)’이라 부르며 정자를 세웠고, 예전의 기 지역 일대를 ‘여빈향’이라 불렀다.
오늘날의 현대인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겠는가?! 고인과 비교해보면 현대 남성은 천지 사이에 우뚝 서는 호연지기가 부족하고, 현대 여성 또한 고인의 온화하고 선량함이 부족하면서도 스스로 하늘의 절반을 떠받칠 수 있다며 남자와 천하를 다투려 한다.
파룬궁 사부님께서는 《미국법회 설법》〈뉴욕법회 설법〉에서 부부간 인연의 유래를 명확히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전 한 세에 그 사람에게서 은덕을 입었는데, 보답할 바가 없었다. 전 한 세에 벼슬이 너무 작거나 몹시 가난할 수도 있다. 그는 그의 은혜를 아주 크게 입어 마음속으로 보답하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부부의 연이 맺어질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전 한 세(世)에 그를 애모(愛慕)하였으며, 두 사람이 서로 애모하였으나 그런 연이 없어 한집안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면 곧 다음 한 세에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다.”
고인도 이러했으며 오늘날의 현대인 역시 마찬가지 연분이지만, 다만 사람이 믿지 않을 뿐이다. 대륙의 중국인들은 이제 신불(神佛)을 믿지 않고 전통적인 도덕관도 믿지 않으며 선악에 보응이 따름도 믿지 않는다. 공산당 당문화(黨文化)의 독해 아래 한 걸음씩 물질화되어 눈에 보이는 금전과 권력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을 더 믿게 되었다.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으며, “군자는 재물을 사랑하되 도(道)로써 취한다”는 말 등은 사람을 우롱하는 것이라 여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실속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이 지나면서 중국인의 사상은 이미 근본적으로 변이되어 관리의 부패, 정부(情婦)를 두는 일, 사생아 등도 받아들이게 되었고, “가난은 비웃어도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는 풍조도 받아들였다. ‘일확천금’은 많은 청년의 꿈이 되었고, ‘하룻밤 사랑’ 뒤에도 아무런 정신적 부담이 없으며 조폭 두목이 숭배 대상이 되었다. 젊은이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신적 추구가 없다. 이러한 갖가지 도덕적 난맥상이 가정으로 반영되어 부부 관계에서도 고인(古人)이 중시했던 은혜와 의리를 내버리고 욕망과 개인의 느낌을 우선시하며 자아를 강조하게 되었다. 중공이 숭상하는 거짓(假)·사악(惡)·투쟁(鬪)이 부부 관계의 기초가 되었으니, 이러한 부부 관계가 오래갈 수 있겠는가?
전통으로 돌아가 전통문화를 부흥시키고 중공을 해체하며 당문화를 버려야 한다. 전통 가치관이 사회를 주도해야만 부부 관계가 화목하고 아름다우며 아울러 오래갈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5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