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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태우는 말’에서 생각한 것

주정도(走正道)

【정견망】

중원의 황하(黃河) 강변에는 관광지가 아주 많은데, 그중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명소 중 하나가 ‘말 타기 체험’이다. 어떤 이들은 말을 끌며 관광객을 기다린다. 시간제나 거리제로 한 번에 얼마씩 받는다. 당시 나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말은 본래 성질이 사나워 길들이기 어렵다고 알고 있는데, 저 말들은 어찌 저리 온순할까?

어린 시절 나는 말을 길들이는 과정을 직접 본 적이 있다. 당시 농촌에는 지금과 같은 현대화된 기계가 없어서 소나 말, 혹은 나귀가 수레를 끌었다. 소는 말을 잘 듣고 행패를 부리는 일이 거의 없어 많이 키웠다. 하지만 말은 달랐다. 길들이기가 매우 힘들었다. 마을에 말을 키우는 집이 두 곳 있었는데, 말로 수레를 끌거나 밭을 갈았다. 그중 한 집의 말이 수레를 끌다 날뛰는 바람에 남자 주인이 중상을 입을 뻔했다. 돌아온 주인은 말을 나무 옆에 묶어두고 채찍으로 때리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아주 굵은 몽둥이로 내리쳤다. 매를 맞는 말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말들이 너무 가여워 보였고, 인간에게 말을 길들이는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궁금했다.

말의 본성은 달리는 것이고 전장을 누비는 것인데, 관광객을 태우는 저런 말들은 어떻게 길들여진 것일까? 이런 의문이 수년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최근 어느 잡지에서 한 작가가 이야기 형식으로 이런 말의 유래를 소개한 것을 보았다. 이런 말을 ‘유객마(游客馬 관광객을 태우는 말)’라 부르는데, 어릴 때부터 특수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즉 사람이 올라타기만 하면 천천히 걷기만 할 뿐 절대 빨리 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객마는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결과이며, 달리고자 하는 천성과 잠재력을 의식적으로 말살시키고 성격을 끊임없이 뒤틀어 형상화한 것이다. 아무리 천리마라 해도 세월이 흐르며 길들여지면 그저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는 유객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돌이켜 나의 성장 과정을 생각해보니, 나 역시 한 마리의 유객마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시절 할아버지와 할머니께는 전통 사상이 남아 있었다. 철들 무렵부터 두 분은 은연중에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악(惡)인지, 어떻게 신불(神佛)을 공경하고 타인을 선하게 대하며 선을 행하고 덕을 쌓아 좋은 사람이 되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학교에 발을 들이면서부터 첫 수업은 “나는 북경 천안문을 사랑해요”였다. 쓰고 읽고 외웠으며 시험도 그런 내용으로 쳤다. 나중에는 교과서가 중국공산당은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올바르며, 부모님의 사랑보다 당의 사랑이 더 깊다고 가르쳤다. ‘당이여, 친애하는 어머니여’라는 노래가 유행하면서 집에 돌아와도 부모님이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레이펑(雷鋒)이 기차 한 대 분량의 착한 일을 어떻게 했는지, 장쓰더(張思德)는 아편을 굽다 죽었음에도 ‘삶은 위대했고 죽음은 영광스럽다’고 배웠다. 둥춘루이(董存瑞)는 몸을 던져 토치카를 폭파하고, 추사오윈(邱少雲)은 불길에 몸이 타면서도 신음 한마디 내지 않았다는 식의 교육은, 당이라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점차 나의 선념(善念)은 줄어들고 천지(天地) 신불(神佛)과 싸우겠다는 사상이 강해졌다. 나의 행복은 오직 분투하고 쟁투해서 얻는 것이지, 선을 행하고 덕을 쌓는 것과는 상관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나중에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 되어, 정직하게 살면 ‘무능력자’ 취급을 받고 아내를 얻기도 힘들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기를 치든 정경유착을 하든, 혹은 몸을 팔아 돈을 벌든 돈만 있으면 대접을 받았다. 아무도 비웃지 않았고 오히려 우러러보는 성공한 인사가 되었다. ‘가난은 비웃어도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은 스스로 사상이 변이된 것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지금은 관리가 탐오를 하지 않거나 정부(情婦)를 두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현상이 중국 대륙 도처에 널려 있다.

사람의 관념이 일단 중공에 의해 당문화(黨文化)가 주입되고 훈습되면 얼마나 무서워지는가! 유객마의 결말보다 더 비참하다. 유객마는 결국 동물이기에 길들여진 후 돈벌이 도구가 될 뿐이지만,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생명의 의미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수련을 통해 반본귀진(返本歸眞)하는 것이다. 인간세상의 고통 속에서 연마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정화하여, 마지막에는 선천적인 본성으로 돌아가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경지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일단 당문화에 오염되어 무신론과 진화론에 끊임없이 속아 ‘당의 말을 듣고 당을 따라가면’, 저지르는 나쁜 일은 점점 많아지고 커지며 지은 업력(業力)도 계속 쌓이게 된다. 그러면 사람의 생명은 신불에 의해 도태될 처지에 놓이게 되어 생명의 진정한 의미를 잃게 된다.

사람은 신불(神佛)이 만드신 것이지 동물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다. 신불은 전통문화를 사람에게 전해주었고, 사람은 전통적인 가치관에 따라 처세하고 선을 행하며 덕을 쌓았다. 그래야 생명의 미래가 갈수록 좋아지며, 그것이 바로 생명이 회귀하는 길이자 신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은 연이은 정치 운동을 통해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사람의 정통 신앙을 훼손했다. 당문화로 사람을 우롱하고 개조하여,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하며 선악을 뒤바꾸어 놓았다. 좋은 사람이 되지 말고 나쁜 사람이 되라고 부추기며 거짓, 악, 투쟁을 끊임없이 주입하여 사람을 ‘비인(非人)’으로 만들었다. 이미 염황자손(炎黃子孫)이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의 자손이 되어,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져 마르크스를 만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어릴 때는 ‘죽어서 마르크스를 만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으나, 진상을 알고 나니 매우 끔찍하게 느껴진다. 중공은 이처럼 한 걸음씩 인류를 변이시켜 훼멸하고 있다.

중공의 당문화 거짓말 속에 있으면 이를 깊이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파룬궁 진상 자료인 《9평공산당》과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이라는 이 두 권의 책은 대륙 민중에게 추천할 만하다. 이 책들은 중공의 가면을 찢어버리고 마귀의 참모습을 폭로하는 기서(奇書)이며, 신불이 중국인에게 선사한 ‘화안금정(火眼金睛)’이다. 하늘은 중생에게 다시 한번 선택할 기회를 주었으니, 이제 세상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붙잡느냐에 달려 있다. 이 기회를 잡을지 말지는 오직 중생의 일념(一念) 선택에 달려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