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열(欣悅)
【정견망】
한 점 분명함이 만금의 가치가 있으니,
켜졌을 때 오직 찬바람 침노할까 두렵구나.
주인이 만약 부지런히 돋워준다면,
어찌 존전에서 마음을 다하지 않겠는가.
一點分明值萬金
開時惟怕冷風侵
主人若也勤挑撥
敢向尊前不盡心
이변(李昪, 888년~943년)은 자가 정륜(正倫)이고 아명이 팽노(彭奴)인데 서주(徐州) 사람으로, 오대십국시기 남당(南唐)을 창업한 사람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서지고(徐知誥)이며 남오(南吳)의 대장 서온(徐溫)의 양자였다. 승주(升州)자사, 윤주(潤州)단련사를 역임했고 나중에 남오의 조정을 장악하여 태사, 대원수까지 올랐으며 제왕(齊王)에 봉해졌다. 937년[천조(天祚) 3년],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제(齊)라 하였다. 939년(승원 3년)에는 다시 국호를 당(唐)으로 고쳤으니 역사에서는 원래 당과 구분해 남당(南唐)이라 부른다.
이변은 재위 기간 정사에 부지런했고 구법을 변혁했다. 또한 오월(吳越)과 화해하고 국경을 보존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휴식하게 했다. 943년(승원 7년), 이변은 단약(丹藥) 중독으로 사망했으니 이가 남당의 선주(先主)이다. 묘호는 열조(烈祖), 시호는 광문숙무효고황제(光文肅武孝高皇帝)이며 영릉(永陵)에 안장되었다.
시인의 이 시 《영등(詠燈)》은 각도가 특별하여 가히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등불을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우리는 이 등불들이 마치 하나하나의 선념과 선한 마음과 같음을 발견하게 된다. 등불처럼 조심스럽게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한 점 분명함이 만금의 가치가 있으니, 켜졌을 때 오직 찬바람 침노할까 두렵구나.”
등불은 캄캄한 밤에 사람에게 광명을 가져다주니, 그 가치가 만금이라 해도 허황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그 가치는 더욱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등불은 찬바람의 침식을 가장 두려워한다. 바람은 등불의 천적이다. 이 두 구절은 등불의 가치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즉 등불의 특징을 썼다.
“주인이 만약 부지런히 돋워준다면, 어찌 존전에서 마음을 다하지 않겠는가.” 만약 등불의 주인이 부지런히 심지를 돋워준다면, 등불은 반드시 주인을 위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전부를 바칠 것이다.
기름 등불은 반드시 심지를 돋워주어야만 더 잘 타올라 빛을 발할 수 있다. 이상은(李商隱)의 시구에 “봄 누에는 죽어서야 실 뽑기를 멈추고, 촛불은 재가 되어서야 눈물이 마른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등불의 무사(無私)함을 가리키며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음을 뜻한다.
사람의 선념(善念) 또한 이와 같지 않은가? 우리는 흔히 “사람이 태어날 때 성품은 본래 선하다(人之初 性本善)”라고 말한다. 사람은 처음에 대개 선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선념은 조심스럽게 보살펴야만 한다. 우리가 만약 그것을 저버린다면 사라져 다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친구 사이나 친척 사이도 모두 이러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잘해주는데, 당신이 그를 저버리거나 심지어 해치려 한다면 그 선념은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다시는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한 여성은 결혼 전 친정 식구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배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오빠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그녀의 비상금을 속여서 빼앗아 친정에 남겨두게 할지, 시댁에 가져가지 못하게 할지를 모의하는 내용이었다. 순간 그녀 마음속의 신념(信念)이 무너져 내렸다. 부모님이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생각한 적이 없으며, 오로지 자신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 후로 부모의 말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더 이상 한 마디도 믿지 않게 되었다. 결혼하여 집을 떠난 후에도 친정에는 거의 가지 않았으며 마치 남남처럼 지냈다. 어머니가 모녀간의 정을 되돌리려 온갖 방법을 다 썼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 선한 마음은 마치 등불과 같아서 일단 꺼지면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 등불은 혹시 다시 켤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이 일단 식어버리면 선념은 없어지는 것이다.
사람 마음속의 선념은 조심스러운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해보았는가? 대법제자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오해와 상처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끊임없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자비로운 선념은 인간 세상의 그런 선한 마음과 선념을 초월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의 마음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7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