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봉
【정견망】
사람의 언어를 통해 그 성격과 경지를 분별하는 것은 일리가 없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이를 분별하려는 사람 스스로가 대상보다 높은 경지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과거 대학 시절, 전공 수업들은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으나 유독 한 과목만은 예외였다. 교수가 강단에서 두세 마디만 던져도 학생들은 지식의 핵심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의 수업 동안 교수가 칠판에 적는 글자는 몇 줄 되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지만, 지루한 전공 지식은 학생들에게 즉시 이해되었으며 심지어 그 이상의 것을 깨닫게 하기도 했다.
나중에 선배에게 물어보니 해당 과목의 교과서를 바로 그 교수가 집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가 이미 ‘입신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에 몇 마디 말로 핵심을 짚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교수의 표현력이 뛰어난 것이라기보다, 그 분야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라 보아야 한다.
고전 《소창유기(小窗幽記)·집성편(集醒篇)》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인(神人)의 말은 은미하고, 성인(聖人)의 말은 간결하며, 현인(賢人)의 말은 명석하다. 반면 범인(众人)의 말은 번잡하고, 소인(小人)의 말은 허망하다.”
그 대의를 풀이하면 이렇다. 신선의 말은 오묘한 도리가 담겨 있고, 성인의 말은 군더더기 없이 요령만 있으며, 현인의 말은 이치가 분명하다. 그러나 일반인은 말을 끝없이 늘어놓으며, 소인은 거짓되고 궤변이 심하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인품과 소양을 판정할 때 언어를 통해 판단하는 것은 실제로 가능하다. 능력 있는 자는 매 마디가 핵심을 찌르고, 소양이 높은 자는 결코 과장하지 않는다. 말을 늘어놓으며 쉬지 않는 자는 대업을 이루기 어렵고, 말에 거짓을 담는 자는 대개 소인이다.
우리가 이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많은 경우 우리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령 스스로 거짓말을 즐긴다면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스스로 말을 늘어놓기 좋아한다면 그것을 일을 명확히 설명하려는 호의로 착각하게 된다.
스스로 문제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타인의 진실한 품격이 보인다. 이는 좋은 그릇을 고르는 방법과도 같다. 좋은 그릇끼리 부딪치면 청아한 소리가 나지만, 어느 한쪽이 불량품이라면 상대가 무엇이든 탁한 소리가 난다. 결국 기준이 되는 그릇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알려주셨다.
“개개 대법제자로 말한다면, 일체의 일을 법으로써 가늠한다면 더욱 바르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볼 수 있거나 볼 수 없는 수련생 모두 문제가 쉽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법이 있으므로 곧 법의 요구에 따라 하기 때문이다.” (《각지설법 6》 <2004년 부활절 뉴욕법회 설법>)
대법제자가 법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가늠한다면 사물의 진상을 진정으로 꿰뚫어 볼 수 있다. 과거 동수들의 인터뷰를 보면, 대법 사부를 직접 뵈었을 때의 느낌과 견문을 말할 때 그들의 훌륭함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말을 결코 과장하지 않았고 매 구절이 사실이었기에 듣는 이로 하여금 온전히 신뢰하게 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와 수양의 표현이다.
만일 우리가 법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요구하고 일과 사람을 가늠한다면, 명명백백하게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말로써 사람을 분별한다는 것, 이는 허망한 소리가 아닌 엄연한 사실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8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