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미설(米雪)
【정견망】
23년 전 1월, 나의 부친은 원망하는 마음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셨고, 같은 해 7월 나는 대법을 얻었다. 당시 내 한쪽 눈에는 갑작스러운 실명 위기의 병변이 발생했는데, 중의학 및 서양의학의 모든 전문가와 의사들도 도울 방법이 없었다. 그때 나는 세계 4대 독일 컨설팅 회사에서 서양 약품 시장을 연구하고 있었기에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기회가 많았음에도 결과는 늘 실망뿐이었다. 많은 이들이 내 앞날을 걱정하며 보험을 많이 들어두라고 권했다. 절망 속에서 존경하는 한 선배의 지혜로운 인도 덕분에 다행히 대법을 얻게 되었고,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단 이틀 들었을 뿐인데 눈이 언제 나았는지도 모르게 회복되었다. 나는 대법이야말로 음양(陰陽)을 모두 관장하는 가장 바르고 전능한 보험임을 발견했다.
법공부 초기에는 대법의 법리가 닿는 곳마다 바로 이해되었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법리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갖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전법륜》의 이 구절, “사부가 공능으로 그의 저장된 사유를 열어 놓자 단번에 생각났다. 이 분은 사부님이 아니신가? 사부는 그에게 알려 준다. “이제 됐어, 연마(煉)할 수 있네.” 이렇게 수많은 해를 거쳐서 사부는 그의 것을 그에게 전해 주었다.”라는 대목을 읽을 때 마음이 크게 울리고 눈물이 쏟아졌으며, 단번에 깨달았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이후 법에 대한 나의 이해는 지혜가 열린 듯 깊어졌고, 천목(天目)이 열려 그 속에서 자신의 생생세세와 관련된 몇몇 장면을 보기도 했다. 이때부터 수련의 근본을 확고히 다졌다.
대법의 신기한 법력을 알게 된 후 생명의 의미와 인생의 목적을 깨달았고, 가장 먼저 작고한 부친이 떠올랐다. 생전에 수련 이야기를 많이 알고 계셨음에도 진정으로 생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떠나셨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싶어 안타까웠다. 대법을 더 일찍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도 많이 했다.
부친이 돌아가시기 몇 년 전, 나는 북경에 가서 한 선생님을 찾아뵙고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테이프를 얻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너무 젊어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고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나중에 가족에게 재난이 닥쳤을 때에야 비로소 인간이 진정한 문제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보게 되었다. 수련 후 대법 법리의 고층 지혜로 인도받으면 방향을 잃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생명에게 가장 귀중한 의지처다.
섣달그믐밤에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는 섣달그믐날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오후, 수련 전이었던 나는 설 준비를 하던 중 마음이 갑자기 불안해졌다. 멀리 계신 아버지의 마음의 소리가 구원을 요청하는 듯했다. 나는 즉시 모든 일을 내려놓고 공항으로 달려가 표를 구해 몇 시간을 날아 아버지가 사시는 도시에 도착했다.
아버지 집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30분 동안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렸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아버지가 기어서 문을 열어주셨다. 집 안은 불도 켜지 않아 캄캄했고, 아버지는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에 얼굴은 창백해 차마 보기 힘들 정도였다. 며칠 동안 드시지도 마시지도 못한 상태였다. 나는 급히 포도당을 사서 따뜻한 물에 타드려 기력을 보충해 드리는 동시에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미 깊은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병원으로부터 위급하시단 통지를 받았다. 모든 것이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지난 반년간 나는 이민 후 생존을 위해 아버지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에 대해 강한 자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젊은 시절 부모님께 고운 말을 쓰지 못했던 것도 후회됐다. 재능 있는 분들이셨던 부모님은 자식들을 키우느라 심신이 지치셨다.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 아버지의 해외 여권까지 신청해 두었으나, 가엾은 아버지는 그 여권을 써보지도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버지가 가장 원하시는 것은 모든 자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일 거라 생각했다. 같은 도시에 사는 세 남매는 오래전부터 아버지와 왕래를 끊은 상태였다. 나는 그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훗날 그들이 부모의 은혜를 깨달았을 때 오늘의 어리석음이 평생의 한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산을 모두 남매들에게 나누어주는 조건으로 그들이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게 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장되셨다.
하지만 나는 형제자매들의 선량함을 과대평가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그들은 재산이 부족하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의 집을 샅샅이 뒤져 물건을 챙겨갔다. 추악한 인성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수련 후 회상해 보니 어느 생애에서 이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게 되었다.)
그 후 수련을 시작했음에도 20년 동안 꿈속에서 아버지를 자주 뵈었다. 꿈속의 아버지는 생전에 사시던 텅 빈 집 구석에서 슬퍼하고 계셨다. 내가 집 밖을 지나 의식이 대문을 통과해 다락방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아버지는 외롭게 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깊이 묻고 계셨다. 아버지는 이름난 효자이자 예술가였으나 자식들의 효도를 받지 못했고, 평생 모은 애장품마저 자식들이 가져가 버린 황량한 집에서 슬픈 영혼으로 머물고 계셨다.
삼퇴가 작고한 부친의 처지를 바꾸다
그러다 2022년,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남동생이 함께 나타났다. 그들은 무언의 언어로 “어머니가 하늘로 돌아갈 큰 운수가 다가왔다”라고 알려주었다. 어머니의 위기에 당황한 나는 그제야 아버지와 남동생이 왜 10여 년 동안 계속 꿈에 나타나 곤경에 처한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자문했다. 그들이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 고민하다가 문득 ‘삼퇴 성명’이 떠올랐다.
이전에 이미 그들의 성명을 대신 해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왜 여전히 그런 모습일까? 당시 나의 수련 상태를 되돌아보니 법리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했고, 그 일을 대하는 엄숙함도 부족했다. 다른 생각을 하며 처리했기에 ‘정념(正念)’이 강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부모님과 남동생을 위해 다시 삼퇴를 하기로 결심했다. 문제를 인식한 후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며 강력한 정념으로 자신을 청리한 다음, 일심불란(一心不亂)한 상태에서 탈당 사이트에 아버지와 남동생, 어머니와 계부의 실명으로 다시 삼퇴 성명을 올렸다.
효과는 매우 뚜렷했다. 우선 오랫동안 아버지와 남동생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두 번 정도 다시 나타났을 때는 이미 아주 좋은 환경에 계셨으며, 무엇보다 기쁜 것은 아버지의 원망이 사라지고 매우 평온해지신 것이었다. 또 한 번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함께 계신 것을 보았다. 외할아버지는 생전에 덕이 높은 분으로, “도(道) 안에 있지 않아도 이미 도를 행하고 계셨던” 분이다. 가치관이 바르고 총명하며 관대하고 지혜로우셨던,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한 어른 중 한 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외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무언의 메시지로 “네 어머니를 잘 보살펴라”라고 전해주시기도 했다.
작고한 아버지가 외할아버지와 화목하게 계신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삼퇴 후 아버지가 큰 복을 받아 외할아버지와 같은 층차에 도달하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훌륭한 분이셨으나 외할아버지와 같은 층차에 계실 자격은 부족했다. 이는 대법제자의 영예가 아버지의 복분을 높여드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한 사람이 법을 얻으면 온 가족이 이익을 얻는다.”(《전법륜법해》)라고 말씀하셨다.
남동생을 꿈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매우 안정되어 보였고 친구들도 사귀며 좋은 환경에 정착해 있었다. 예전에는 갈 곳이 없어 꿈속에서 나와 함께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자신이 머물 곳을 찾곤 했었다.
삼퇴 후 작고한 친인척들의 처지가 바뀐 것을 목격하며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수련하는 제자와 그 가족을 자비롭게 보살펴 주시는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한 사람이 수련하면 온 가족이 수혜를 입는다. 허스(合十)!
이상의 내용은 수련 초기 층차에서 개인적인 체험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6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