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이 죽지도 살지도 않는 곳은 어디인가……
그녀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눈앞에는 조각된 들보와 채색된 기둥이 가득했고 부귀함과 화려함이 넘쳤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이를 몇 번 반복하더니 마침내 기지개를 켰다. 마치 한바탕 큰 잠을 잔 기분이었다. 그녀는 푹신한 침상을 짚고 몽롱하게 몸을 일으켰다. 곁눈질로 슬쩍 보니 자신이 명황색(明黃色 역주: 밝고 선명한 노란색으로 전통사회에서는 황실에서만 입을 수 있었다) 비단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비단옷에는 봉황의 한 종류인 황조(凰鳥) 문양이 은은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몸에 새겨진 황조 문양을 어루만지며 다시 눈을 비볐다. 이것은 확실히 가장 정통적인 명황색이었다. 그녀가 말하였다.
“황조에 명황색이라니, 내가 어찌하여 제왕 궁실의 물건을 입고 있는 거지?”
그녀는 다시 자신이 누웠던 침상과 베개, 이불, 휘장을 살펴보았다. 모두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황색이었고 그 위에는 황조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다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침전(寢殿) 네 귀퉁이에는 황금 기둥 네 개가 서 있었다. 기둥에는 봉(鳳), 황(凰), 현(玄), 난(鸞)의 네 가지 신조(神鳥)가 휘감겨 있었다. 천장에는 네 마리의 기린수가 보주(寶珠) 하나를 가지고 노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기린은 그려진 것이었으나 보주는 진짜였으며 크고 밝게 빛났다.
전 안에는 벽옥(碧玉 푸른 옥)으로 만든 커다란 책상이 있었고, 그 위에는 붓, 먹, 종이, 벼루가 놓여 있었다. 또한 몇 개의 황옥 접시에는 매우 투명하고 아름다운 색료들이 담겨 있었다.
책상 옆에는 오래된 나무 색깔의 긴 낮은 탁자가 있었다. 그 위에는 정교한 도안이 조각되어 있었고 잔과 찻주전자,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몇몇 다총(茶寵 차를 마실 때 찻상 주위를 장식하는 작은 인형) 신수(神獸)들이 놓여 있었다. 그중 사슴을 닮고 뿔이 달렸으나 목이 아주 긴 신수 하나가 찻주전자에 계속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주전자에서 넘쳐흐른 물은 모두 옆에 있는 연꽃 연못으로 흘러 들어갔다.
낮은 탁자 옆은 금련(金蓮)이 핀 연못이었다. 금련지(金蓮池) 안에는 커다란 연잎이 하나 있었고, 연잎 위에는 칠현금(七絃琴)이 떠 있었다. 아마 주인이 연잎에 앉아 거문고를 타는 모양이었다.
방 안에는 또 큰 연못이 하나 더 있었는데, 위로는 물안개가 감돌고 안에는 푸른 대나무가 꽂혀 있었으며 여러 색깔의 산차화(山茶花)가 떠 있었다.
연못 옆에는 커다란 백옥 병풍이 있었고 거기에도 황조(凰鳥)가 새겨져 있었다.
병풍 측면에는 자수정으로 된 바둑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흑백 바둑돌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바둑 탁자 위의 바둑돌을 보고는 문득 소름이 돋았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
이때 문 입구의 어린 시녀가 갑자기 소리쳤다.
“전하께서 깨어나셨다! 어서 전하의 세수를 수종 들어라.”
어린 시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 안으로 많은 시녀들이 들어왔다. 어떤 이는 금대야를 받쳐 들고, 어떤 이는 금잔을 들었으며, 어떤 이는 금빗을 쥐고, 어떤 이는 의복을 받쳐 들고 있었다.
그녀가 침상에 앉아 있자 시녀들이 그녀의 세수와 옷 입는 것을 도왔다. 그녀는 아직 머리가 맑지 않아 애써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난 죽은 게 아니었나? 어떻게 이 화려한 제왕의 궁궐에 오게 된 거지? 그녀들이 나를 ‘전하’라고 부르니, 혹시 내가 죽은 후 혼백이 환생하지 못하고 제신(帝辛)의 어느 공주 몸에 붙은 것은 아닐까?‘
“설마……” 그녀가 중얼거렸다.
“세수를 마치셨으니 식사를 올리거라!” 한 어린 시녀가 외쳤다.
예쁘장하고 우아한 시녀들이 옥 쟁반에 진귀한 음식을 담아 문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날아 들어오는 시녀들을 보며 놀라서 말하였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날아다니느냐?”
시녀들은 이 질문을 듣고 모두 멍해졌다. 그중 우두머리인 한 시녀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전하, 저희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예쁘지 않사옵니까?”
말을 마친 후 다시 다른 시녀들에게 일렀다.
“자, 다시 처음부터 해보자.”
시녀들은 다시 문밖에서부터 가효(佳肴 좋은 요리)를 들고 날아 들어왔다.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아니야, 이곳은 인간 세상의 제왕의 궁이 아니라 십중팔구 천상의 궁전이다. 내 혼백이 하늘나라 공주의 몸에 붙은 게 아닌가? 큰일이군…… 큰일이야……’
“전하, 아침 식사를 드시지요.”
그녀는 생각했다.
‘나도 날아서 다닐 수 있을까?’
그리하여 침대에서 내려와 시도해 보니 과연 그녀 자신도 식탁 앞으로 날아갔다.
그녀가 식탁 앞에 앉자 한 미녀가 섬섬옥수로 그녀를 위해 반찬을 놓아주었다.
마음 한구석에 기쁨도 있고 두려움도 있었던 그녀는 한 입 먹자마자 다시 구리거울 앞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거울 속의 이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며 생각했다.
‘이 눈매, 이 코, 이 입술, 이것은 바로 양회(楊回)가 아닌가?!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설마 이 공주가 나와 외모가 아주 닮은 것일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두드려 보고 또 힘껏 꼬집어 보았다. 확실히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에라, 모르겠다. 이 천궁에서 좀 놀아보는 것도 헛되이 죽은 것은 아니겠지!’
이때 그녀의 시녀들은 서로 얼굴만 마주 보며 그녀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누이! 누이!”
갑자기 문밖에서 그녀에게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온화한 목소리였으나 그녀는 오직 공포만을 느꼈다. 그녀는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침전 한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을 발견하고 얼른 뛰어 들어가 문을 꽉 잠갔다.
문을 잠그자마자 등 뒤에서 무엇인가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것을 느꼈다. 뒤를 돌아본 그녀는 깜짝 놀라며 외쳤다.
“이것은 만요진(萬妖陣)을 깨뜨렸던 그 보검이 아닌가?”
그녀가 손을 뻗어 검을 잡자 검은 놀랍게도 비녀로 변했다. 신기해하는 와중에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얼른 그 비녀를 머리 쪽진 곳에 꽂았다.
“전하, 오늘은 전하의 경공연(慶功宴 공을 축하하는 잔치) 날이옵니다. 큰 전하께서 문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녀가 긴장하여 물었다.
“방금 ‘누이’라고 부른 이는 누구냐?”
“큰 전하시옵니다! 현궁(玄穹) 전하 아니십니까! 왜 그러시옵니까?”
그녀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다행히 장우인(張友仁)은 아니구나……’
“누이가 왜 저러는 것이냐?” 현궁이 시녀에게 물었다.
“모르겠사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신 뒤로 줄곧 이상하십니다.”
현궁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저께 겁난(劫難)을 겪고 깨어났을 때 무슨 이상한 점은 없었느냐?”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그때 도액성군(度厄星君)도 계셨는데 전하께서는 그분과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시녀가 대답했다.
이때 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보고는 경악과 의혹에 빠졌다.
이 사람은 백옥관(白玉冠)을 쓰고 명황색 도포를 입었으며, 눈썹은 넓고 활처럼 꼿꼿했다. 깊고 그윽한 눈매에 피부는 양의 기름처럼 희고 몸매는 소나무처럼 곧고 말랐다.
이 사람은 장우인이 아닌가? 얼굴은 그가 맞고 목소리도 그였다. 그런데 그는 절름발이도 아니고 곱추도 아니었으며 깨끗하고 귀티가 났다……
현궁은 그녀가 이상한 눈초리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물었다.
“왜 그러느냐?”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현궁이 말했다.
“아, 오늘 저녁 경공연은 내가 주재하기로 했다. 네가 겁난을 겪으러 가기 전에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이번 경공연은 남천문(南天門)에서 열고 싶다고 말이다.
첫째는 하계(下界)의 사악을 위엄으로 누르기 위함이고, 둘째는 인간 세상에 복을 전해주기 위해서라고 했지. 나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만, 남천문 아래 하계는 원래 맑지 못하니 오늘 저녁에 천병(天兵)을 더 많이 배치해서 수비하거라. 난 먼저 가볼 테니 준비 잘 하거라!”
현궁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떠났다.
그녀는 현궁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경공연(慶功宴)? 나의 경공연이라고? 설마 천정(天庭)의 공주가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이라도 치른단 말인가? 나더러 천병을 더 배치하여 수비하라는 걸 보니 병권(兵權)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장우인과 똑같이 생긴 저 현궁이라는 자는 명황색 용 문양의 도포를 입고 있고, 어린 시녀는 그를 큰 전하라고 부르니 그가 이 천궁의 태자인가?
그런데 왜 목소리와 생김새가 장우인과 조금도 다름이 없을까?
그는 내가 겁난을 겪었다고 했다. 방금 내가 겪은 겁난은 무엇인가? 설마 인간 세상에서의 그 18년이 내가 방금 겪은 겁난이란 말인가?
아니야, 시녀 말로는 내가 그저께 겁난에서 깨어난 뒤 도액성군과 정상적으로 대화했다고 했으니, 내가 이 공주의 몸에 붙은 것은 오늘 아침의 일이다.
이것이 대체 어찌 된 일일까? 에라, 그냥 꿈이라고 치자……’
“전하, 모든 천병천장들이 전하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전쟁에서 돌아오신 후 경공연도 열기 전에 바로 인간 세상으로 겁난을 겪으러 내려가셨기에 천병천장들이 모두 전하를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전하의 포상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한 궁중 상궁이 그녀에게 말하였다.
그녀라는 사람은 군사니 장수니 하는 말만 들으면 흥미를 느끼는 체질이었다. 그리하여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하였다.
“나를 안내하거라!”
그녀는 그저 아득한 가운데 양기(陽氣)가 가득한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천정(天庭)의 연병장이었다. 연병장에는 깃발이 몇 개 꽂혀 있었는데 깃발마다 ‘요(瑤)’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 연병장은 아주 아주 컸으며 연병장 안에는 천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은 모두 기합 소리를 내며 훈련하고 있었다.
그녀는 끝없이 늘어선 천병들을 보자 기뻐서 눈에서 빛이 날 지경이었다.
천병천장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고 강건하고 씩씩한 목소리로 한꺼번에 외쳤다.
“전하를 뵙나이다! 전하의 영자삽(英姿颯 당당하고 늠름한 모습에 대한 찬사)! (영자삽! 자삽! 삽… 삽…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거대한 연병장에 “전하의 영자삽”이라는 외침이 메아리치자 그녀의 마음은 뿌듯함으로 가득 찼다. 그야말로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 전하가 되는 것은 정말 좋구나…… 너무나 좋아……’
그녀는 속으로 너무 기쁘고 믿기지 않아 천병들을 보고 또 보느라 잠시 그들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잊었다.
천병천장들은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곁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장수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일어나지 않는가?”
그녀가 손을 뻗어 부축하려 하자 장수는 몹시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급히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였다.
“전하께서 일어나라 명하지 않으시면 저희 장수들은 감히 일어나지 못하나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나를 무서워할까? 십중팔구 이 공주가 평소에 아주 사나워서 암호랑이 같았던 모양이군……’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일어나라.”
그제야 천병천장들은 감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다시 웃으며 말하였다.
“포상을 하겠노라!”
“전하, 감사하나이다!!” 장수와 병사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이어 연병장에는 다시금 씩씩한 환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
……
그녀는 기분 좋게 생각했다.
‘이 꿈은 정말 위풍당당하구나……’
이 환희심(歡喜心)이 너무 크게 일어나 정작 중요한 일을 잊고 말았다. 현궁이 경공연을 수비할 천병들을 배치하라고 한 일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0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