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운(秦雲)
【정견망】
지난날의 젊은 얼굴이 늙은이가 되었고,
잠깐 사이 흰머리가 아이의 머리털처럼 변했구나.
평생토록 얼마나 많은 상심할 일이 있었던가,
공문(空門)으로 향하지 않고 어디서 소멸하리오.
宿昔朱顏成暮齒
須臾白發變垂髫
一生幾許傷心事
不向空門何處銷
이것은 당대(唐代) 시인 왕유(王維)의 《탄백발(歎白髮)》로, 노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오직 세월의 창상을 직접 겪은 사람만이 이처럼 침통하고 절실한 감개를 쓸 수 있다.
“지난날의 젊은 얼굴이 늙은이가 되었고,
잠깐 사이 흰머리가 아이의 머리털처럼 변했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청춘이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노태가 역력해졌다. 얼굴은 쇠하고 이빨은 빠지며 머리카락은 하얘졌다. 그 검은 머리카락이 마치 잠깐 사이에 모두 서리가 내린 듯하다. 인생의 변화가 이토록 빠르고 무정하다.
이러한 체득은 노년이 된 사람이 아니면 깊이 알기 어렵다. 오직 생명의 만년에 일생을 되돌아볼 때, 지나간 과거의 빛과 그림자가 눈앞에 선명하여 마치 어제 일 같다. 사람은 노년에 이르면 흔히 눈앞의 일은 오히려 모호해지지만, 옛 기억은 더욱 뚜렷해진다. 마치 시간이 이 순간에 거꾸로 흐르는 듯하나, 인생은 이미 조용히 멀어져 간 것이다.
“평생토록 얼마나 많은 상심할 일이 있었던가,
공문(空門)으로 향하지 않고 어디서 소멸하리오.”
세월이 가라앉으면서 일생의 억울함과 슬픔과 기쁨도 그에 따라 떠오른다. 이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된다. 만약 “공문(空門)”을 향해 해탈을 구하지 않는다면, 또 어디서 마음속에 쌓인 울적함을 해소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이를 통해 인생의 여러 고통은 대부분 명예와 이익, 정과 원한에 집착하기 때문이며, 일단 내려놓으면 온갖 번뇌도 해결될 수 있음을 통찰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많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종종 더 높은 층차의 존재를 사고하곤 했다. 예를 들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아이작 뉴턴 등은 과학 이외에도 우주와 궁극적인 진리에 대해 깊은 경외심과 사색을 품었다. 이러한 이성에서 현묘함으로의 전환은 인류의 인지에는 결국 경계(境界)가 있으며, 더 높은 진리에 대한 추구는 결코 멈춘 적이 없음을 설명한다.
역사상으로도 명사들이 종교에 마음을 귀의하여 거사가 되거나 신도가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층차에서 마음의 평안과 지혜의 근원을 찾는 것이다.
왕유 본인 역시 유명한 시인이자 거사였으며, 노년에는 더욱 불문(佛門)에 가까워졌다. 그는 인생의 짧음과 성쇠의 무상함 속에서 수행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이로써 도를 향한 뜻을 더욱 굳건히 했다.
이러한 감개는 현실 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옛 친구가 한때는 용모가 빛났으나 몇 년 후에 다시 만나면 이미 백발이 성성하거나 질병에 시달리고, 심지어 생사가 갈리기도 한다. 인생이 꿈과 같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감을 알게 된다.
이로 보건대 인생의 짧음과 무상함은 본래 가장 깊은 일깨움이다. 유한한 세월 속에서 사람은 무엇이 진정으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일인지 생각해야 한다. 오직 돌아갈 곳을 분명히 알아야만 이번 생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이제 대법(大法)이 널리 전해져 사람들이 법을 얻어 반본귀진(返本歸眞)할 기회를 얻었다. 세상 사람들은 왜 아직 깨어나지 못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