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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목기 시즌 4 (36)

화본선생

【정견망】

그녀는 어렴풋이 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체구로 보아 소년이었으나 머리카락은 이미 희끗희끗하게 변해 검은 머리가 몇 가닥 남지 않은 상태였다.

소년이 뒤를 돌아보자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하며 외쳤다.

“오라버니!”

그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때 거대한 구렁이가 이미 그녀를 빈틈없이 칭칭 감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력(功力)을 운용하여 일념을 내보냈다.

“터져라!”

순식간에 거대한 구렁이는 파편이 되어 흩어졌고 요곤도 겹겹이 쌓인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혈지 옆에 앉아 울면서 말했다.

“오라버니, 머리카락이 어쩌다 이렇게 희어졌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한 거야, 엉엉…….”

그녀는 한참을 울다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내가 어찌 이런 사소한 일로 죽을 수 있겠어? 나는 계속 탑을 올라야 하고 위엄을 단련해야 하며 삼계를 위해 음을 구제하고 양을 보충해야 해. 내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죽을 수 없어. 얼굴이 뭐 대수야? 없어도 그만이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탑을 나가는 것이야! 이 작은 탑조차 나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부황(父皇)의 정법(正法)을 도울 수 있겠어?!”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 층의 탑 안에서 갑자기 수많은 검은 뱀이 튀어나와 그녀를 공격했다!

그녀가 신통으로 하나하나 소멸시키자 남은 검은 뱀들이 독이 올라 욕설을 퍼부었다.

“이 추한 여자야! 정말 구역질 나 죽겠구나!”

그러나 그녀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 냄새나는 긴 벌레야, 죽을 때가 다 되어서도 외모에 집착하다니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

말을 마친 그녀는 두 팔을 휘둘러 커다란 솥을 만들어냈고 그 벌레들을 모조리 솥 안에 집어넣었다. 손가락을 튕기자 불길이 일어나 모두 태워 죽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침착하게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올라가며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겹겹의 마귀와 요괴가 가득한 탑
참과 거짓은 그 얼마인가
층층의 삶과 죽음은
다름 아닌 마음을 제도하는 법(法)이로다”

重魔重妖塔
幾多真與假
層層死與生
無非渡心法

……

현궁은 무진무망해(無盡無妄海) 속에서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으며 몸도 더는 움직이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오랫동안 이 적막 속에 머물다 보니 이미 언어를 잊어버려 말도 할 줄 모르게 되었다. 가끔 말을 한마디 하려 해도 입을 벌려보면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조차 잊었음을 깨닫곤 했다.

그의 사고 속에는 오직 두 가지 느낌만 남았다. 하나는 고독이었고 하나는 절망이었다.

그래서 그 역시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어렴풋이 한 가지 이치를 알고 있었다.

심념(心念)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한 생명이 일심으로 죽기를 구한다면 그는 반드시 죽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생각했다.

죽자, 빨리 죽자.

차츰 그의 의식이 황홀해지더니 천천히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

갑자기 그는 한 줄기 빛을 보았다. 검은색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한 지 아주 오래된 일이었다.

그는 그 빛의 근원을 보았는데 익숙한 모습이었다. 바로 부황이었다!

부황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궁아.”

그는 번쩍 두 눈을 떴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갑자기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아직 눈이 멀지 않았어, 아직 부황을 뵐 수 있어. 귀가 먹지도 않았어, 아직 부황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 나는 당당한 사나이로서 눈이 멀지도 귀가 먹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리 쉽게 자신의 사명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무엇을 하러 왔는가? 나는 인공(忍功)을 닦으러 왔는데 어찌 이렇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만약 죽는다면 삼계는 어찌 되겠는가? 누가 건곤을 포용할 것인가? 누가 이 역할을 연기할 것인가? 나는 부황의 근심을 덜어드려야 하는데 어찌 이렇게 사명을 저버리고 돌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몸을 일으켜 앉아 다시 결가부좌를 틀고 제인(結印)하며 말했다.

“구함이 없는 자 망상이 없고
마음이 없는 자 무량하도다
함이 다함 역시 다함이니
다한 곳이 바로 끝이 없음이라”

無求者無妄
無心者無量
無盡亦是盡
盡處是無盡”

……

차츰 어둠이 조금씩 옅어지고 옅어지더니 어느 정도 옅어지자 검푸른 색으로 변했다. 검푸른 색은 다시 연한 푸른색으로 변했다.

연한 푸른색으로 변했을 때 그곳은 풍요로워졌다. 물고기도 있고 새우도 있고 커다란 고래도 있으며 산호도 있고 진주도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현궁은 그리 고독하지 않았으며 주변도 생기발랄하게 변했다.

요곤 쪽도 갈수록 쉬워졌다. 처음에는 그녀가 요마귀괴(妖魔鬼怪)들에게 쫓겨 다녔고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요괴들을 베어야 했으나 지금은 그녀가 요괴들을 쫓아다니며 때렸다.

요마(妖魔)들이 하는 말을 빌리자면 이랬다.

“이 계집이 살육에 중독됐어!”

그리하여 나중에 요곤이 어느 층에 오르면 그 층의 요마귀괴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가 올라오자마자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요곤이 의자에 누우면 요마들이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고 다리를 두드려야 했다.

하지만 요마는 결국 요마라 뼛속까지 나빴기에 결국 요곤은 한 층 한 층 그것들을 깨끗이 없애버렸다.

또 삼천 년이 흘러 요곤은 마침내 탑 꼭대기에 올랐다.

그녀가 탑 끝에서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와 보니 탑 옆에 뜻밖에도 망망대해가 생겨 있었다. 아주 새파랗고 투명하면서도 창망했다.

그녀의 기억에 이곳은 그저 작은 물웅덩이였던 것 같았다. 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사방의 밀림 속에서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호랑이와 표범, 승냥이와 이리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갑자기 숲속에서 이빨을 드러낸 흉측한 짐승 떼가 튀어나왔다.

요곤이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한 번 쳐다보자 이 흉악한 짐승이 겁에 질려 벌벌 떨더니 네 발을 하늘로 향한 채 땅에 엎드려 복종했다.

요곤은 말없이 그저 고개를 약간 흔들었는데 그 의미는 이랬다.

“어서 꺼져.”

이 짐승들은 겁에 질려 숲속으로 쏜살같이 달아나 자취를 감췄다.

이때 요곤은 해면에 미세한 물보라가 이는 것을 발견했다. 차츰 바다 속에서 한 사람이 솟아올랐는데 그 사람은 그녀를 등지고 있었다.

그 사람은 짙은 푸른색 장삼을 입고 머리카락이 아주 길었으나 온통 하얬다.

그 사람이 천천히 몸을 돌렸고 두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두 사람 모두 눈을 크게 떴다. 남자가 말했다.

“누이야!”

요곤도 격동하여 말했다.

“오라버니!”

현궁이 보니 요곤은 이미 다 자라 있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졌으나 머리 위의 봉관은 여전했고 옷은 누더기였으나 용모는 아름다웠다. 치켜 올라간 눈매에 코는 곧고 입매는 반듯했으며 얼굴은 복사꽃 같아 단정함 속에 위엄이 서려 있었다.

“누이야, 머리가 헝클어졌구나. 오빠가 빗겨주마.”

현궁이 손으로 그녀의 머리 위를 훑자 그녀의 머리카락이 말끔히 정리되었다.

그녀도 말했다.

“오빠, 머리카락이 하얗게 샜네. 내가 다시 검게 변하게 해줄게!”

말을 마치고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훑자 흰머리가 다시 검게 변했다.

두 사람은 서로 웃고 떠들며 이 경계를 벗어났다…….

나중에 현궁은 인간과 신선의 승진을 관장하는 직무를 맡았을 때 흰머리를 드러내 보이며 사람들에게 수련의 어려움을 일깨워주곤 했다. 또한 자신이 푸른 바다 위로 서서히 솟아오르는 화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독실하게 수련하기만 하면 결국 성취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동왕공(東王公)은 푸른 바다 위에서 태어났으며, 흰 머리에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한 학발동안(鶴髮童顔)이다.”

그들 두 사람이 경계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칠천 살이었다.

밖으로 나온 현궁은 정무(政務)를 맡기 시작했고 요곤은 군무(軍務)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요곤은 군무에 바쁜 와중에도 다른 신들처럼 만관만난만험장(萬關萬難萬險障)에서 관을 넘어야 했고 또한 정해진 수량의 역할을 충분히 연기해야만 마지막에 법을 얻을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요곤은 매우 바빴다. 그녀는 종종 전쟁을 마치고 나면 바로 겁난을 겪으러(연기하러) 가야 했고 겁난을 겪고 나면 다시 전쟁터로 가야 했으며 평소에는 선악의 상벌 같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현궁의 역할은 아무래도 특수했기에 그는 경계에서 나온 후 정무를 처리하는 동시에 다시 삼천 년 동안 인공(忍功)을 닦아야 했다. 만 살이 되어 인내의 공이 거의 닦였을 때 비로소 겁난을 겪으러(연기하러) 갔다. 연기하는 역할 역시 대개 ‘참음(忍)’과 관련이 있었기에 이는 또 다른 방식의 인을 수련이었다.

두 사람은 사실 매우 특징이 있고 흥미로운 이들이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번은 용족(龍族)의 왕후로 전생(轉生)하는 역할이 있었는데 이치상 나쁘지 않은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 용족 왕후는 나중에 용족을 위해 자신의 손으로 몸의 용비늘 가죽을 벗겨내야 했다.

이 역할이 만약 처음에 주어졌다면 신들은 당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기세로 매우 용감하고 강인했겠지만 나중에는 다들 너무 지쳐서 고생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기피 심리’가 생겼다. 그러니 초심을 유지하며 수련해야 한다는 것인데 당연히 처음이 가장 확고하고 열심이었던 때였다.

나중에 이 역할을 맡으려는 이가 없었다. 가죽을 벗겨야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벗겨야 했으니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몇몇 신관들이 요곤의 처소에서 몇 가지 일을 상의하다가 무심코 이 이야기를 꺼냈다.

요곤이 말했다.

“내가 가겠어.”

신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요곤이 일어나 즉시 만관만난만험장으로 가려 하자 도액성군(度厄星君)이 급히 말했다.

“전하,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요곤이 그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더 생각할 게 뭐가 있소?”

도액성군이 잠시 할 말을 잃은 사이 요곤은 이미 전각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의 시녀가 그녀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전하, 저녁 식사까지 한 시간도 안 남았습니다. 드시고 가세요!”

요곤이 말했다.

“한 시진도 안 돼서 돌아올 거야.”

그녀가 막 떠나려다 무엇인가 생각난 듯 발걸음을 멈추었다.

신관들은 속으로 ‘자신이 충동적이었다는 걸 깨달았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곤은 고개를 돌려 담담하게 물었다.

“가죽만 벗기나? 힘줄도 뽑나?”

도액성군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요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날아갔다.

나중에 그녀는 정말로 그 역할을 연기했다…….

현궁 역시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

만약 열 명의 신선이 있다고 치자. 그저 평범한 열 명의 신선인데 호위병일 수도 있고 평민일 수도 있다. 그들이 현궁과 함께 서서 똑같은 옷을 입고 있을 때 누구가 천궁의 태자인지 맞춰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절대로 그를 맞추지 못할 것이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까지 맞춰도 그가 태자 전하라는 생각은 전혀 못 할 것이다. 현궁은 어디에 앉아 있든 어디에 서 있든 어디에 나타나든 공기처럼 평범해서 전혀 주의를 끌지 못했다.

보기에는 매우 평범하고 말수도 적으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그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혹은 능력이 없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그저 매우 평온한 사람이었다.

그 스스로도 농담 삼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맹물 같다니까.”

그가 만 살이 된 후에도 장애 속에 들어가 겁난을 겪어야 했다. 차츰 신관들은 그에게 매우 두드러진 특징이 하나 있음을 발견했다.

어떤 특징인가?

그가 만험장(萬險障)에 들어가기 전의 표정과 안색이 나온 후에도 그대로였다. 어떤 고난이나 칼산과 불길이 닥쳐도 표정 하나 바꾸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태산이 무너져도 안색이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는 태산이 몸 위로 무너져 내려도 안색이 변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나의 무엇을 건드려도 상관없고 내 흉금은 넓지만 내 안색을 조금이라도 바꾸려 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라는 식이었다.

신관들은 사석에서 이 두 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두 분 전하는 한 분은 독하고 한 분은 강직하니 두 분 다 참 ‘무섭구려’, 하하하…….”

[구신(舊神)들이여, 당신들도 저 둘이 당신들에 의해 조금 극단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물론 우주 큰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두 괴멸(壞滅) 시기의 표준이 되었으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으며 창세주께서도 장계취계(將計就計)로 당신들과 놀아주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석에서 그렇지 않았으며 단지 일을 처리할 때의 스타일이 그러했을 뿐이다.

두 사람은 사석에서 자주 웃고 떠들며 오누이 사이의 정이 매우 깊었다.

한번은 현궁과 요곤이 곤륜산 꼭대기에 앉아 일출을 보고 있었다. 요곤이 현궁에게 물었다.

“오빠는 만험장이 어렵다고 생각해?”

현궁이 말했다.

“어렵지 않아.”

요곤이 다시 물었다.

“그럼 무진무망해(無盡無妄海)는 어렵다고 생각해?”

현궁이 말했다.

“괜찮았어.”

이때 아침 해가 솟아오르며 첫 번째 새벽빛이 인간 세상을 비추었다.

요곤이 인간 세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해.”

현궁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왜냐하면, 미혹(迷) 속에 있으니까.”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