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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업에 처한 동수를 도움에 인내심이 있어야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몇 년간 우리 지역의 여러 동수가 병업(病業)으로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모두가 발정념(發正念)을 돕고 법공부를 함께하며 생활 면에서도 돌봐주었다. 그러나 반년이나 1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자 기운이 빠져 처음처럼 관심을 두거나 발정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이는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왜 아직도 낫지 않는가?”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더는 감당할 수 없다, 사람 구하는 일을 지체시킨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본인 스스로 돌파하게 둬야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점차 발정념을 하거나 병문안을 가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구세력이 박해할 기회를 남기게 되었고, 결국 동수는 세상을 떠났다.

병업 중인 동수는 마음이 취약하므로 인내심을 갖고 도와야 하며, 이것 역시 마음을 닦는 과정이다. 내가 발견한 바로는, 심성(心性)이 좋은 동수는 조급해하지 않고 온화한 낯빛을 유지한다. 그들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에서 내면의 순정(純淨)함과 남을 배려하는 경지를 볼 수 있으며, 상대방을 이해하므로 설령 단점을 지적하더라도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 나는 매우 부족하여 병업 동수에게 ‘처방전’을 써주듯 훈계하는 습관이 있었다.

한번은 한 동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두 달이 넘었을 때 그를 찾아갔는데, 그가 실성한 듯 통곡했다. 당시 나는 ‘당신은 정(情)이 너무 깊다, 대체 어떻게 수련한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자마자 훈계했다. “어머니가 가신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울고 있어요? 어머니를 따라가고 싶어요? 법공부를 어떻게 한 거죠? 이건 누락이 아닌가요? 당신이 화(禍)를 자초하고 싶은 건가요?”라며 호되게 꾸짖었다.

몇 달 후 그 동수에게 뇌혈전 증상이 나타났다. 동수들이 발정념을 하러 그의 집에 갔을 때, 그는 내가 훈계했던 말을 다른 이들에게 전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는 나를 위로하러 온 것이 아니라 상처에 소금을 뿌렸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잘 수련한다고 생각했다…” 이 말을 전해 듣고 나는 크게 놀랐다. 참으로 뼈저린 자극이었기에 두 번이나 찾아가 사과했으나 그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 반드시 동수를 잘 대하고 자비심을 닦아내겠다”라고 결심했다.

말이 선하지 않으면 큰 업을 짓기 쉽다. 일찍이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노화상이 경을 읽는데 소화상이 “마치 개 짖는 소리 같군요”라고 비웃었다.

노화상이 깜짝 놀라 “네가 큰 업을 지었으니 빨리 참회하라”고 말했다. 소화상이 즉시 참회했으나 이미 늦었다. 당시 이 노화상은 이미 나한 과위에 도달했기에 소화상이 그를 비웃은 것은 부처를 비방한 것과 같았고, 그 과보로 500생 동안 개로 윤회하게 되었다.

대법제자의 내원은 더욱 높은데, 누가 어느 층차까지 닦았는지 누가 알아볼 수 있는가? 비록 병업 중에 있을지라도 층차가 꼭 낮은 것은 아니다. 남을 도울 때는 선한 마음을 가져야지 싫증을 내서는 안 된다. 따뜻하게 대해야지 냉담해서는 안 되며, 그를 위해야지 자아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동수의 병업 상태는 구세력의 박해로 조성된 것이다. 정법수련(正法修練)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위주이지 업을 갚는 것이 위주가 아니므로 사부님(師父)께서는 제자가 이토록 큰 병업을 겪거나 세상을 떠나도록 배치하지 않으신다.

나는 전에 병업 중에 있는 몇몇 동수를 접해본 적이 있는데, 매우 훌륭하여 깊은 인상을 받았다. 병업 상태에서 병원에 다니며 투석하는 한 동수는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친정 식구들을 구하기 위해 돈을 들여 많은 선물을 샀고, 400km가 넘는 친정에 가서 온 마을 사람들을 삼퇴(三退)시켰다. 그녀의 남편, 여동생, 양가 부모 등 최근 몇 년 사이 7명이 세상을 떠났는데 모두 그녀가 장례를 치렀다. 그녀는 어디에 누락이 있어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몰라 매우 고뇌했다. 그러나 늘 어떤 동수들은 은연중에 그녀가 어떻게 했다느니, 수련을 잘 못 해서 그렇다느니 하며 말을 내뱉었다.

또한 어떤 동수들은 약을 먹거나 입원하는 것으로 수련의 좋고 나쁨을 가늠한다. 어느 동수에게 병업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약을 먹는가? 입원했는가?”라고 묻는다. 입원했다는 말을 들으면 즉시 “수련하고 수련해서 결국 저기까지 갔는가”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악(惡)이지 선(善)이 아니다. 동수를 소중히 여기고 한결같이 돕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법제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심성 상태다.

작은 깨달음이며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은 동수들의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