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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깊은 곳의 천년 고독——왕지환의 《양주사》 해독

청풍(淸風)

【정견망】

황하 멀리 백운 사이로 솟아 있고,
한 조각 외로운 성은 만길 높은 산속에 있네.
강적 소리는 어찌하여 버드나무 꺾는 이별을 원망하는가,
봄바람은 옥문관을 넘지 못하거늘.

黃河遠上白雲間
一片孤城萬仞山
羌笛何須怨楊柳
春風不度玉門關

왕지환(王之渙, 688년—742년)은 성당(盛唐)의 유명한 시인으로, 자는 계릉(季淩)이며 한족(漢族)이고 강주(絳州, 지금의 산서 신강) 사람이다.

이 시는 중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시다. 어릴 때 읽었을 때는 기세가 웅혼하면서도 은은하게 처량함이 배어 나와 변방 장수와 병사들의 고초에 감탄했을 뿐이다. 나이가 들고 특히 수련한 이후에야 비로소 그 속의 더욱 깊은 층차의 의미를 점차 체득하게 되었다.

시의 앞 두 구절은 창망하고 광활한 경지를 극치로 묘사했다. 황하가 멀리 백운 사이로 올라가고, 고립된 성이 만인산 속에 우뚝 솟아 있으니 장려하면서도 고절하다. 시야를 더욱 높은 층면으로 끌어올려 관조해 본다면, 드넓은 우주 속에서 더욱 번성하고 광활한 고층 공간에서 보기에 인간 세상 또한 이 양주의 고성(古城)처럼 고독하고 적막해 보이지 않겠는가?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생명이 더욱 풍성한 경지에서 상대적으로 황량한 환경으로 떨어졌을 때, 내면에는 자연히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이 생겨난다. 변방 장수와 병사들의 향수(鄕愁)는 바로 이러한 더 깊은 층차의 고독이 현실에서 투영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감내하는 것은 고향을 멀리 떠나 은택이 닿지 않는 고통이다. 사람의 내면이 만약 더 높은 법리(法理)의 인도와 자양을 얻지 못하고 진정한 본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러한 상실감과 갈망은 어쩌면 동일한 감정이 더 높고 깊은 층차에서 나타난 것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시인이 쓴 ‘고통’은 단지 변방의 고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오래되고 기나긴 고독—더 높은 진리에 대한 갈망이면서도 얻지 못하는 탄식에 닿아 있는 듯하다. 이러한 감정은 시공을 초월한 영혼의 메아리라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의경(意境)은 당시(唐詩)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허혼(許渾)의 《함양성동루(咸陽城東樓)》가 그러하다.

높은 성에 올라서니 만 리 밖까지 근심이 서리고,
갈대와 버드나무 우거진 모습은 마치 물가의 모래톱 같구나.
시냇가에 구름 비끼어 일고 해는 누각 너머로 저무는데,
산에 비가 내리려는지 바람이 누각에 가득하네.
새들은 푸른 풀밭으로 내려앉는 진나라 동산의 저녁,
매미는 단풍 든 잎에서 우짖는 한나라 궁궐의 가을이로다.
나그네여 지난 시절의 일을 묻지 마라,
옛 나라는 동쪽으로 가버리고 위수만 흐르고 있구나.

一上高城萬裏愁,蒹葭楊柳似汀洲。
溪雲初起日沉閣,山雨欲來風滿樓。
鳥下綠蕪秦苑夕,蟬鳴黃葉漢宮秋。
行人莫問當年事,故國東來渭水流。

이 시는 배경, 장면, 혹은 인물의 정황이 《양주사(涼州詞)》와 표면적으로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세심하게 음미해 보면 그 속에 흐르는 깊은 고독과 창망한 느낌은 은연중에 서로 통해 마치 한 맥에서 나온 듯하다.

다행히 오늘날 세상에 법(法)이 널리 전해져, 사람들의 마음이 기원하던 ‘춘풍’이 기나긴 세월을 지나 마침내 불어오게 되었다. 우리가 겹겹의 관문과 산을 뚫고 찾아온 이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겨, 이 시대와 이번 생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