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林雨)
【정견망】
타국에 있는 것이 내 뜻이 아니니,
번거롭고 고단함은 옛날의 한가로움과 너무나 다르다.
천만 리 험난한 파도를 헤치고 가다 보면,
어쩌면 저 종산(鍾山)이 보이지 않을까.
異國非所志
煩勞殊清閑
驚濤千萬裏
無乃見鍾山
남당(南唐) 원종(元宗) 이경(李璟)의 여섯째 아들이었던 이욱(李煜)은 처음 이름이 종가(從嘉), 자는 중광(重光)이었으며, 종은(鍾隱) 또는 연봉거사(蓮峰居士)라는 호를 사용했다. 금릉(今 지금의 남경)에서 태어났고 본적은 팽성(彭城)으로, 남당의 마지막 군주였다.
이욱은 서예에 능하고 그림을 잘 그렸으며 음률에도 밝았을 뿐만 아니라, 시나 문장 방면에서도 깊은 경지를 이루었다. 특히 ‘사(詞)’에 있어서 그 성취가 가장 높았다. 그의 사는 만당(晩唐)시기 온정균(溫庭筠), 위장(韋莊) 등 화간파(花間派) 시인들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이경과 봉연사(馮延巳) 등의 영향을 받았다. 나라가 망한 뒤 그의 사 작품은 소재가 한층 넓어지고 감정이 한층 깊어져, 당말오대(唐末五代) 시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후세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 시 〈망후견형시(亡後見形詩)〉는 그 제목부터 자못 전설적인 색채를 띤다. 이욱이 죽은 뒤 형상을 드러내어 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나, 구체적인 내력은 확실히 고증하기 어렵다. 다만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어 변경(汴京 지금의 개봉)에 머물렀던 그의 생애와 연관 지어 이해해보면, 시에 담긴 내용은 타향살이의 괴로움과 고국 금릉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다.
“타국에 있는 것이 내 뜻이 아니니,
번거롭고 고단함은 옛날의 한가로움과 너무나 다르다.”
여기서 ‘타국’은 나라를 빼앗긴 뒤 머물게 된 북송(北宋)을 가리킨다. 의탁할 곳 없는 타국살이는 결코 그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다. 그곳에서의 삶은 번뇌와 노고로 가득해, 예전 고국에서 누리던 한가롭고 유유자적하던 시절과는 전혀 달랐다. 이는 시인이 ‘포도를 먹지 못해 신 포도라 폄하하는’ 식의 불평이 아니라, 나라를 잃은 자가 가슴 깊은 곳에서 터뜨리는 슬픈 탄식이다.
“천만 리 험난한 파도를 헤치고 가다 보면,
어쩌면 저 종산이 보이지 않을까.”
천만 리 멀리 떨어져 있고 가는 길에 거센 파도가 몰아칠지라도, 그의 마음이 향하는 곳은 오직 고국 종산이었다. 여기서 ‘종산’은 첫째로 금릉의 종산이자, 나아가 이욱의 고향과 조국을 상징한다. 한때 스스로 ‘종은(鍾隱, 종산에 숨어 사는 이)’이라 호를 붙였던 만큼, 그의 마음속 종산은 어쩌면 속세의 번뇌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고자 했던 바람이 투영된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단 스무 자의 짧은 글 속에 나라 잃은 이의 어쩔 수 없는 처지가 모두 담겨 있다. 몸은 타국에 있으나 마음은 고향으로 향하고, 눈앞에는 번거로운 노고와 굴욕이 가득하지만 마음속은 언제나 청정하고 유유자적한 삶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욱이 그저 한가로운 왕야(王爺)나 한 명의 문인으로 살았다면, 그의 삶은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지녀 시와 그림, 음률에 두루 통했기에 자신에게 어울리는 분야에서 여유롭게 살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하필 그를 황제의 자리에 앉혔다. 그에게 제위(帝位)는 영광이 아니라 가혹하고 무거운 짐에 불과했다. “번거롭고 고단함은 한가로움과 다르다”라는 구절만 보더라도, 그가 청정한 삶을 얼마나 열망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잘하는 분야가 있다. 어떤 이는 나라를 다스리고 정치를 하는 데 능하고, 어떤 이는 글을 읽고 학문을 탐구하는 데 강하다. 어떤 이는 기획을 잘하고, 어떤 이는 실천에 강하며, 어떤 이는 천하를 품는 포부를 지녔고, 어떤 이는 그저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이는 누구의 높고 낮음을 따질 일이 아니며, 각자의 근기(根基)와 뜻, 장점이 다를 뿐이다.
《순자·대략(荀子·大略)》에 이르기를, “학문을 잘하는 자는 그 이치를 끝까지 파헤치고, 실천을 잘하는 자는 그 어려움을 끝까지 탐구한다”라고 했다. 학문에 능한 사람에게 전혀 잘하지 못하는 제반 업무를 맡긴다면 잘해내기 어렵고, 실천에 능한 사람을 종일 서재에만 가두어 둔다면 그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적재적소에 올바른 사람을 배치해야만 비로소 인재가 제 능력을 발휘하고 저마다의 장점을 꽃피울 수 있다.
이욱이 진정 원했던 것은 어쩌면 세속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다툼을 떠나 청정하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삶이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뜻이 애초에 제왕의 사업(事業)에 있지 않은데, 그에게 탁월한 군주가 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는 그에게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의 재능이 치국과 권모술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의 눈에는 제왕의 신분이 더 높아 보일지 모르지만, 신(神)의 눈에는 세속의 신분이 생명의 높고 낮음을 결정짓지 않는다. 어떤 위치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어디에 두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진심을 다해 잘 해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정법(正法) 중에서는 일의 크고 작음이나 형식의 거창함이 중요하지 않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위치를 찾아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고, 맡은 바 책임을 성실히 다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욱의 일생은 후인들에게 깊은 생각을 안겨주는 하나의 본보기일지도 모른다. 그는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가졌으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자리에 앉게 되었고, 결국 망국의 아픔을 겪으며 깊은 역사적 교훈을 남겼다. 옛사람들이 남긴 이러한 이야기와 교훈은 어쩌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각심과 자양분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타인을 무작정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남이 가진 신분이나 지위, 삶의 방식이 나에게 꼭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올바르게 알고, 자신이 잘하는 바를 발휘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수련인(修煉人)으로서 더욱 남을 부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각자의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수련의 길을 개개인에게 배정해 주셨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가짐을 바르게 다잡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털끝만큼의 흔들림 없이 해나가는 것—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5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