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대법제자
【정견망】
여러 경우에 내가 깨닫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사부님께서 꿈을 통해 알려주시곤 했다. 이번에는 친인 및 가족과 진정으로 함께 지낼 때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를 보게 되었는데, 육친정(親情)에 집착하는 다른 동수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와 어머니는 관계가 매우 좋아서 마치 친자매나 절친한 친구처럼 무슨 이야기든 다 나누는 사이다. 하지만 관계가 지나치게 좋다는 점의 단점은, 그 육친정(親情) 속에 상대방을 통제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이나 의지하는 마음 같은 나쁜 집착이 섞이기 쉽다는 것이다. 어릴 적 꿈에 어머니가 사라지는 꿈을 꾸면 울다가 깨곤 했고, 깨어난 후에도 한참을 울었다. 많은 경우 이러한 집착으로 인해 ‘상대방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내 생각을 강요하며 속박하려 했고, 그 결과 서로 다투기도 했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동수(同修)’로 대해야 하며, 각자가 독립된 개체임을 깨닫게 되곤 했다. 혈육의 정을 너무 중하게 보지 않아야 한다는 이치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행하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특히 부모가 자식에 대한 관심과 자식이 부모에게 갖는 의존심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꿈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는 사실 ‘동창생’과 같은 관계에 불과하다. 우리는 단지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각자의 과제를 완수해 나갈 뿐인 것이다. 다른 공간에 있는 나의 감정은 매우 가볍고 담담한 느낌이었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 세상 사람들의 사상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달랐다. 이 세상의 감정은 짙고 강렬한 유화(油畫) 같아 매우 농염하지만, 다른 공간의 사상은 전통 수묵화처럼 연하면서도 깊은 운치가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꿈속에서 나는 옆자리에 앉은 짝꿍이 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를 향해 어떠한 강렬한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챙겨주며 함께 숙제를 하고 시험지를 풀었다. 물론 내가 문제를 푸는 속도가 느렸고 어머니는 문제를 잘 풀었다. 나는 아직 다 풀지 못해 마음이 조금 조급해진 채로 “이 시험지를 어디까지 풀어야 해? 곧 수업이 끝나는데” 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 종료 종이 울렸는데, 이 종소리는 일종의 ‘수료(結業)’와 같은 의미였다. 사람들은 모두 교실을 떠나 각자의 길을 갔는데, 평소 하교할 때처럼 매우 자연스러웠다. 이 과정이 끝나면 각자 헤어진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 세상의 졸업식처럼 요란하게 서로 안아주거나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하는 모습은 없었다.
나와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간단히 작별 인사를 나누었고, 어머니는 길 건너편으로 가서 차를 타고 떠났다. 나는 다른 사거리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마무리되었지만, 내심 아쉽거나 섭섭한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왔고, 단지 함께 공부하고 향상하기 위해 모였을 뿐이며, 이 과정이 끝나면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관계가 다른 교실의 친구들에 비해 조금 더 친밀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결코 끈근하게 들러붙는 관계는 아니었다.
사부님께서는 꿈의 형식을 통해 다른 공간의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머니를 대해야 하는지 미리 느끼게 해주셨다. 지금의 우리는 서로 떨어질 수 없다거나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지만, 높은 층차에 올라가 바라보면 그 어떤 일도 그리 대단치 않으며 감정적으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나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느낌이었다. 아주 담담하면서도 안정적이며, 가늘고 길게 흐르는 시냇물처럼 아름다운 정서였다. 이는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해하는 우울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느낌이 여전히 잔잔히 남아 있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감정이 폭발할 때면 나 역시 마성(魔性)이 크게 일어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정(情)에 너무 깊이 빠지면 집착심이 그대로 딸려 나와 마음의 평형과 자비를 잃게 되고, 자극을 받으면 금세 폭발하거나 슬퍼하고 분노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히스테리나 충동적인 극렬한 감정 상태는 모두 정이 너무 중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반면 꿈속에서의 감정은 담담하면서도 아주 풍부하고, 아주 아름다우며 부드러운 것이었다.
청년 제자로서 나 역시 사회라는 거대한 염색통에 물들어 많은 오염을 받았다. 요즘의 헤비메탈 음악, 물불 가리지 않는 충동, 욕망의 방종, 생각 없이 함부로 말하거나 거친 말을 써서 강렬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 죽고 못 사는 사랑과 미움 등 젊은 사람 특유의 사나운 기운과 감정적인 태도가 나에게도 얼마간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에 이번 꿈은 마치 달콤하고 시원한 한 줄기 맑은 샘처럼 온갖 감정에 치우쳐 있던 나의 이런 짙은 정서를 깨끗이 씻어주었다.
앞으로는 나의 사상과 성품이 고대의 겸손하고 단정한 군자(謙謙君子)나 요조숙녀(窈窕淑女)가 지녔던 고전적인 미에 더욱 가까워지기를,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상화(祥和)롭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는 ‘군자의 교제는 물처럼 담담하다(君子之交淡如水)’라는 말이 더욱 깊이 이해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