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古原)
【정견망】
“옛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났고,
이곳에는 헛되이 황학루만 남았구나.
황학은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고,
흰 구름은 천 년 동안 아득하기만 하네.”
昔人已乘黃鶴去,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複返,白雲千載空悠悠。
당신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읊어온 이 시 <황학루(黃鶴樓)> 속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아는가? 시인은 왜 번거롭게도 황학을 거듭 언급했을까? 그리고 이 황학은 대체 무슨 품종일까?
중국 고대에는 용, 봉황, 기린, 거북 외에 학이 출현 빈도가 가장 높은 신령한 새였던 듯하다. 송 휘종의 <서학도(瑞鶴圖)>부터 소동파의 <후적벽부>까지, 사찰과 도관의 온갖 조형물부터 명청 시대 일품 문관의 흉배에 새겨진 무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무수한 시문 작품에 이르러 그 형상은 이미 중국 문화의 구석구석에 깊이 스며들었다.
옛사람들은 학을 사랑했다. 그 고결함과 우아함, 옥설(玉雪)같이 정결한 자태를 사랑했다. 송대 시인 임포(林逋)는 항주 호산(狐山)에 은거하여 평생 장가들지 않고 매화와 학을 벗 삼아 지냈다. 지공(支公 동진의 고승 지둔)은 학을 사랑해 깃털을 잘라 기르다가, 학이 슬픈 기색을 띠는 것을 보고야 비로소 학은 구천(九天)으로 날려 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놓아주었다.
새들 가운데 학은 놀라울 정도로 총명하다. 《기사주위(記事珠衛)》의 기록에 따르면 제천(濟川)이 학을 삼 년 동안 기르자 의외로 그가 책을 검토할 때의 조수가 되었다. 학은 부리로 서적을 물어다 주었는데 실수가 조금도 없었다.
학은 또한 상당한 영물(靈物)이다. 진대(晉代)의 현신(賢臣) 오은지(吳隱之)는 어릴 적 집이 가난하여 어머니의 상을 치를 때 징을 치며 곡을 해줄 사람이 없었는데, 늘 두 마리 학이 높이 소리 내어 경고하듯 울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그의 효성에 감동한 것이라고 여겼다.
“어머니를 섬김이 효성스럽고 삼갔으며, 상을 치를 때에 이르러서는 슬퍼하여 예를 지나쳤다. 집이 가난하여 징을 쳐줄 사람이 없었는데, 곡을 하고 조문할 때마다 항상 두 마리의 학이 경고하듯 울었고, 상을 마치고 제사 지내는 저녁에 이르면 다시 무리 지은 기러기들이 다 함께 모여들었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이를 효에 감동한 것이라 여겼다.” (《진서(晉書)》)
도간(陶侃)에게도 이와 비슷한 기이한 일화가 있었다.
“나중에 어머니 상을 당해 벼슬을 버리고 떠났다. 일찍이 두 손님이 와서 조문하고는, 곡을 하지 않고 물러나 두 마리 학으로 변하여 하늘로 솟구쳐 날아갔으니 당시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진서》)
도간이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상을 치를 때 두 손님이 조문을 왔는데, 조문하면서 곡을 하지 않고 절을 마친 뒤 뜻밖에도 두 마리 학으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올랐던 것이다.
비록 기이하지만 아주 믿지 못할 바도 아니다. 몇 년 전, 중국의 한 집안에서 노인이 돌아가셔서 유가족들이 장례를 치르고 있을 때, 갑자기 단학(丹頂鶴) 한 마리가 날아온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청(正廳)으로 들어와 마치 노인의 오랜 친구인 양 조문을 마치고는 제 발로 유유히 떠나갔다. 만약 그 유가족이 촬영하여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더라면, 이 광경 역시 한 편의 신화 속 이야기로 취급되지 않았겠는가?
송 원가(元嘉) 초년, 왕중덕(王仲德) 장군은 크고 작은 새끼 학 두 마리를 얻었다. 작은 것은 부리가 쪼개져 스스로 먹이를 먹기 어려웠으므로, 큰 것이 매일 먹이와 물을 먹여 먼저 배를 채우게 한 뒤에야 비로소 자기가 먹었다. 나중에 큰 학은 날개가 다 자랐으나 작은 학은 아직 날지 못하자, 큰 학은 뜰에서 껑충거리며 작은 학에게 나는 법을 가르쳤다. 육십여 일이 지난 후에야 작은 것이 날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함께 날아갔다. 이토록 정(情)과 의(義)가 있음이 사람에게 뒤지지 않으니, 우리의 조상들이 ‘가조(佳鳥, 아름다운 새)’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가 학을 언급할 때면 선인(仙人)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신선과 학은 대개 함께 따라다닌다. 앞서 인용한 <황학루>라는 시에서 황학은 바로 신선의 탈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촉한(蜀漢)의 대장군 비위(費禕)가 도를 닦아 신선이 되어 황학루에서 대낮에 하늘로 올라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비위가 신선이 된 후에 학을 타고 옛고향을 다시 유람하였는데, 그가 탄 것이 바로 황학이었다.
“예로부터 전하기를 비위가 이곳에서 비승(飛升)하였고, 뒤에 홀히 황학을 타고 돌아왔기에 이로써 누각의 이름을 지어 천하의 절경으로 삼았다.” (《입촉기(入蜀記)》)
황학은 세속의 평범한 학이 아니라 신선이 타는 새다. 《부구공상학경(浮邱公相鶴經) (숭산석실본)》에 이르기를, 학은 “날짐승의 으뜸이자 신선들의 준마(騏驥)이다”라고 했고, 《이아익(爾雅翼)》에서는 “원학(元鶴)은 현(元), 황(黃), 백(白), 창창(蒼蒼)이 있다”고 하였다. 원학은 바로 선학(仙鶴)이며, 전설 속 선학의 겉모습 색깔도 각각 다르다.
평범한 새에서 선학이 되기까지는 길고 긴 과정이 필요하다. “2년 만에 새끼 털이 빠지고 검은 점이 바뀐다. 3년 만에 알을 품어 낳고, 다시 7년이 지나야 깃털이 갖춰지며, 또 7년이 지나야 구름 한가운데를 날아오른다. 다시 7년이 지나면 박자에 맞추어 춤추는 것을 배우고, 또 7년이 지나면 밤낮으로 열두 번 우는 것이 율법에 맞게 된다. 다시 10년 동안 생물을 먹지 않으면 큰 털이 빠지고 솜털이 나며, 이에 눈처럼 쌀같이 희어지거나 혹 순수한 검은색이 되어 진흙이나 물로도 더럽힐 수 없게 된다. 160년이 되면 암수가 서로 바라보고 잉태하며, 1600년이 되면 마시고 먹지 않으며 태화(胎化)하여 봉황을 낳고 무리를 이루니, 성인이 제왕의 자리에 있으면 봉황과 함께 들판에서 노닌다.”(《부구공상학경》)
학의 수명은 대개 육십 년에 불과하지만, 천세를 누려 선학이 되기까지는 과연 어떤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7년에 작은 변화를 겪고, 16년에 큰 변화를 겪으며, 160년이 되면 변화가 멈추고, 1600년이 되면 갈 곳이 정해진다.” (《부구공상학경》) 선학은 수명이 극히 길므로 옛사람들은 종종 학에 비유하여 장수를 기원했다. 1980~90년대 중국인들의 거실에는 대개 <송학도(松鶴圖)> 한 폭씩을 걸어두곤 했는데, 바로 이러한 뜻에서였다.
옛사람들은 선학을 ‘봉래우사(蓬萊羽士 우사는 신선이란 의미)’라 불렀는데, 그 출현은 대개 도가(道家)의 수행인과 관련이 깊다. 당나라의 유명한 도사 사마승정(司馬承禎)은 당 현종의 지극히 높은 예우를 받았으며, 일찍이 시선(詩仙) 이백에게 “팔극(八極)의 밖에서 함께 노닐자”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시해(屍解)하여 신선이 된 그날, 흰 학이 뜰에 가득하고 기이한 향기가 진동했다.
선학은 단지 신선의 탈것일 뿐만 아니라, 신선들이 종종 학으로 변신하여 인간 세상을 노닐기도 한다. 소동파가 좋은 벗들과 함께 적벽 아래에서 노닐 때, 한 도사가 흰 학으로 변하여 강을 가로질러 동쪽에서 와서 배를 스쳐 서쪽으로 갔고, 또 꿈에 나타나 동파에게 “적벽에서의 유람이 즐거웠는가?”라고 물었다. 동파가 황연히 깨어나 바야흐로 붓을 들어 <후적벽부>를 지었다.
요동 사람 정령위(丁令威)는 옛날에 집을 떠나 도를 닦았는데, 천 년 뒤에 흰 학으로 변하여 돌아왔다. 그는 화표주(華表柱) 위에 머물며 시 한 수를 남겼다.
“새 있네 새 있네 정령위여,
집을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야 돌아왔네.
성곽은 비록 예전 그대로이나 사람은 아니로구나,
어찌 신선이 되는 것을 배우지 않고 무덤만 이리 쌓였는가.”
有鳥有鳥丁令威,去家千歲今始歸。
城郭雖是人民非,何不學仙塚累累。
그는 세상 사람들이 고해(苦海) 속에서 미혹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백 년이 흘러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했기에, 학으로 화하여 돌아와 사람들에게 수련할 것을 권한 것이다.
학은 단지 상서로움과 장수의 대명사일 뿐만 아니라, 중국 전통 수련 문화의 특수한 상징이며, 생명이 한 차례 한 차례 도약하는 것을 보여주는 진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옛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갔건만, 과연 몇이나 되는 사람들이 여전히 목을 빼고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