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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해치려는 마음은 결국 자신을 해친다

안단(顏丹)

【정견망】

중공에 의해 가치관이 왜곡된 현대 중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남을 괴롭히고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출세하는 것을 은근히 당연하게 여긴다. 어떤 이는 잠시나마 이득을 얻기도 하는데, 방관하는 사람들조차 “저게 바로 능력이지”라고 말하곤 한다.

더구나 약삭빠른 자들이 이기적이고 남을 해치는 행동으로 인해 결국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당사자들은 대개 숨기고 감추기 때문에 바깥사람들은 알 도리가 없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은 여전히 눈이 가려져 나쁜 짓을 해야만 잘 살 수 있다고 착각하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일들을 저지른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고,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악업(惡業)이 쌓일수록 나중에 치러야 할 대가는 더욱 비참할 뿐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과응보라는 일은 언제나 얼핏 드러나기도 하고 숨겨지기도 했다. 고서(古書)에는 이러한 기록이 적지 않으며, 그 목적은 다름 아닌 아직 양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선근(善根)이 다하지 않은 이들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타인의 토지를 속여서 빼앗으니 풍수 명당을 잃다

명청(明清) 시기 휘주 상인(徽商)의 명성은 한때 정점에 달했다. 그들은 각지를 누비며 장사를 했고, 한때 “휘주 사람이 없으면 마을을 이룰 수 없다(無徽不成鎮)”는 말이 널리 퍼질 정도였다. 휘주 상인의 발원지는 바로 고대 휘주(徽州)였으며, 유풍(儒風)은 늘 그곳의 사족대족(士族大家)들을 자양해 주었다.

곽(霍) 씨 성을 가진 집안이 바로 그곳의 명문 집안이었다. 이 집안에는 얼마 전에 남편이 사망한 부인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성품이 현숙하고 사람을 대할 때 선량했으나, 성격이 다소 나약하고 일을 무서워하여 때로는 일부 친족과 이웃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성안에는 호(胡) 씨 성을 가진 부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풍수에 대해 조금 알긴 했지만 통달하지는 못했다.

어느 우연한 기회에 그는 한 밭을 점찍게 되었고, 그곳에 풍수 영혈(靈穴)이 있다고 여겼다. 거듭 알아보니 그 땅이 바로 곽 씨 부인의 개인 재산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즉시 찾아가 매매를 요구했으나 곽 씨 부인이 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개 부인에 불과하고 뒤를 봐줄 사람도 없으니 분명 쉽게 속어넘길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사방에 소문을 내며 그 땅이 원래 자신의 것이라고 떠벌렸다. 게다가 그는 계약서를 위조하고, 땅을 살 때 중간에 중개인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말과 태도가 매우 단호했으며, 곽 씨 부인을 관청에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곽 씨 부인은 그가 이토록 소란을 피우자 겁을 먹었다. 그녀는 호 씨를 찾아가 집안의 땅을 고스란히 양보할 수 있지만, 조건은 죽은 남편을 안장할 명당자리를 하나 찾아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호 씨는 생각도 해보지 않고 단번에 수락했다. 그의 집에는 마침 땅이 몇 개 있었는데, 그저 황폐해진 지 오래되어 어떤 작물도 전혀 키워낼 수 없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는 그것이 풍수 명당일 리가 만무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곽 씨 부인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여 남편을 그 척박한 땅에 안장했다.

그러나 인간의 계산은 결국 하늘의 계산만 못한 법이다. 곽 씨는 그토록 애써 자신이 풍수 명당이라고 믿던 땅을 가로채는 데 성공했지만, 그 후 30년 동안 집안 형편은 해마다 못해져 마침내 가세가 기울어 알거지가 되었다. 반면에 그에게 괴롭힘과 사기를 당했던 곽 씨 집안은 나날이 번창하여 자손마다 잘나지 않은 이가 없었고, 잇따라 과거에 급제하여 금방(金榜)에 이름을 올렸다.

남과 물건 위치를 바꿨다 결국 자신이 손해를 보다

송조(宋朝) 관리 중에 이사형(李士衡, 자는 천균天鈞)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가 소문관(昭文館)에 재직할 당시, 명을 받아 고려에 사신으로 간 적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고려에서는 답례로 많은 재물을 주었는데, 그중 일부 직물(絲織品)은 특별히 그에게 보내진 것들이었다. 돈이나 재물 같은 몸 밖의 물건에 대해 이사형은 평소 마음에 두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개인 물품들을 모두 같이 간 부사(副使)에게 맡겨 관리하게 했다.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배 바닥에 물이 새는 기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부사는 자신의 물건이 물에 젖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물건들을 이사형이 받은 직물들 위로 옮겨 실었다. 이렇게 되자 이사형의 물건들은 모두 가장 아랫바닥에 깔리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며 배가 큰 파도에 뒤집힐 듯 흔들렸다. 사공들은 바닷물이 넘쳐 들어올까 봐 겁을 먹었고, 배에 실린 짐이 너무 많아 자칫 배가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배에 탄 사람들에게 빨리 각자의 물건을 바다에 던져버리라고 요청했다.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에 그 부사는 일일이 가려낼 겨를도 없이 자신이 관리하던 그 부분의 물건들을 모조리 바다로 던져버렸다. 겨우 절반쯤 던졌을 때 바람이 멎었고 배도 안정을 찾았다.

이때 배에 탄 일행은 즉시 남은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부사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는데, 왜냐하면 그가 방금 손으로 던져버린 것들이 모두 자신의 물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사형이 고려로부터 얻은 직물들은 맨 밑에 깔려 있었기에 결국 하나도 손실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만약 하늘이 선악을 저울질하고 있지 않다면 이 모든 일이 어찌 이토록 공교롭게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힘을 합쳐 한 사람을 밀어 호랑이 밥으로 주었으나, 여덟 명 모두 굴에서 목숨을 잃다

원조 대덕(大德) 연간에 아홉 사람이 형남(荊南)의 어느 산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길을 가던 중 갑자기 비가 내려 그들은 길가의 흙 동굴 속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바로 그때, 호랑이 한 마리가 동굴 밖에 나타나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응시하며 크게 포효했다.

그 아홉 사람 중 한 사람은 평소 동료들에게 어리석다는 이유로 늘 구박을 받던 이였다. 여덟 사람은 호랑이가 떠나지 않자 은밀히 모의해 그 어리석은 사람을 속여 밖으로 내보내 호랑이 밥으로 주자고 작당했다. 그들은 호랑이가 배를 채우면 저절로 떠날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람에게 말했다.

“자네가 먼저 나가서 호랑이를 유인하게. 우리는 녀석이 방심한 틈을 타서 힘을 합쳐 때려잡을 테니.”

그 사람이 머뭇거리며 주저하자, 여덟 사람은 각자 자신의 옷 한 벌씩을 벗어 사람 모양으로 묶은 뒤 호랑이를 향해 던졌다.

호랑이는 속아 넘어가기는커녕 더욱 분노했다. 여덟 사람은 혼비백산하여 다급해진 나머지 평소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그 사람을 바깥으로 밀어내 버렸다.

그러나 호랑이는 그를 힐끗 보더니 잡아먹지 않고, 도리어 동굴 입구 옆으로 물어다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아까처럼 다시 매서운 눈으로 동굴 안의 여덟 사람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뜻밖에도 눈 깜짝할 사이에 흙 동굴이 무너져 내렸고, 그 안의 여덟 사람은 순식간에 흙과 돌에 깔려 즉사했다. 반면 동굴 밖으로 밀려났던 그 사람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이 아홉 사람을 보라. 원래는 환난(患難)을 함께 겪는 사이였다. 그러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중 여덟 사람은 잔꾀를 부려 어리석은 사람을 해치려 했다. 마음 씀씀이가 바르지 못하면 지략이 뛰어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음속에 악념(惡念)이 일어났는데 어찌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있겠는가?

자료 출처: 《북동원필록(北東園筆錄)》, 《몽계필담(夢溪笔谈)》, 《송패류초(宋稗類鈔)》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