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박수) 그럼 이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마주한 일은 바로 구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이다.”[1]
현재의 층차에서 깨달은바, 구세력은 사부님의 정법 중의 장애물이며, 구세력이 한 변이된 안배 일체는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데 부정적 작용을 일으킨다. 마치 하나의 물건이 저쪽에 놓여 있는데, 어떤 사람은 온갖 방법으로 외력을 써서 이 물건을 파괴하려 하려 하는 것과 같다. 비록 이 물건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을지라도, 파괴 작용을 일으키는 자가 바로 진정한 나쁜 사람이다. 다른 방식으로 비유하자면, 대법은 사람의 도덕을 제고시킬 수 있고, 대법은 연분 있는 사람을 구도할 수 있으며, 그래서 대법은 사람이 자신의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반면 구세력은 구우주(舊宇宙)의 변이된 생명인데, 이 생명들은 사부님의 정법 중에서 자신을 바로잡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이 생명들은 법과 대립하는 것을 선택했으니, 기점(基點)은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고 기점이 사(私)이므로 국한성이 있으며, 끝없는 대법과 비교하면 근본적으로 비길 바가 없다. 가장 무서운 것은 구세력은 사람을 망치는 것이니, 두 가지 다른 선택, 두 가지 다른 결과이다.
이전에는 어떻게 근본적으로 구세력을 부정해야 하는지 잘 깨닫지 못했으나, 최근 겪은 몇 가지 일이 나에게 약간의 깨달음을 주었다. 내 여동생은 대법을 몹시 저항(抵觸)했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나에게 매우 적의(敵意)를 품고 원한을 품었다. 그때 우리는 아직 아주 어리거나 막 학교에 들어갔을 때인데, 말 한마디가 맞지 않으면 내가 아주 좋아하던 만년필을 꺾어 부러뜨렸다. 그때는 만년필 하나가 아주 사치스러운 것이었지만, 그녀는 정을 두지 않고 가차 없이 훼손해 버릴 수 있었다.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하고서도 그녀가 후회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여전히 그렇게 앙칼지게 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아마 구세력이 변이된 안배를 하여 한 집에 태어나게 함으로써 대법 제자가 법을 증명하는 것을 교란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아직 법을 얻지 않았고, 그냥 마음속으로 그녀가 몹시 성가시고 그녀와 함께하기 싫었으며, 그 시간이 거의 60년에 가까워졌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본성이 변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나를 비방하고 나를 망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을 나는 늘 마음에서 떨쳐버리지 못했고, 친형제자매에 깊은 원한도 없는데, 게다가 평소에 내가 그녀를 아주 보살피고 비위를 맞춰주었는데도, 그녀는 마치 덥혀지지 않는 돌멩이 같아서 자매 정분이 없고, 한 번도 나를 언니라 부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친척들 앞에서 내가 그녀를 언니라 안 부르고 언니답지 않다느니 하고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들기에 정말 불합리했고, 이 사람은 너무 구도하기 힘들었으며, 그녀에 대해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으나 또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그녀가 진상을 깨닫게 할 방법을 생각하여, 먼저 그녀에게 작은 오디오를 주어 전통문화를 듣게 하고, 그녀가 안 듣는 것 같자 다시 대법 음악을 듣게 하여 그녀 공간장 속의 나쁜 물질을 청리하게 했다. 그녀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르겠고, 그녀의 행동을 보니 여전히 예전과 똑같이 바뀐 것이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하늘에 맡겼다.
최근 며칠간, 친척 아이가 결혼하는데 여동생이 또 시비를 걸기 시작했고, 내 마음이 또 따라서 동요하여 그녀가 어떻게 나쁜 꼼수를 부릴지, 어떻게 나쁜 짓을 할지 상상했다. 게다가 나는 그녀가 내 전화를 도청하고 있다고 의심하기도 했다.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하든 그녀 쪽에서 반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몹시 속수무책이었고, 내 망상인지 그녀가 정말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법공부 할 때 사부님의 법이 나를 일깨워주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해 주겠다. 내가 법을 전하기 전, 그런 고층의 요소들이 오기 전에는 구세력도 없었는데, 그때 나는 추위에 대처하는 별도의 방법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네가 추위인가, 네가 나를 춥게 하고, 나를 얼게 하려하는가? 내가 너보다 더 차가워져 너를 얼려 버리겠다.'(뭇사람 웃음, 박수) ‘네가 나를 덥게 한다면 거꾸로 내가 너를 덥게 해서 네가 더워서 견디지 못하도록 하겠다.”[2]
사부님의 설법이 나를 일깨워주었다. 나는 능동적으로 정법해야 하며, 소극적으로 감수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사람의 마음이다. 대법 제자는 신통(神通)이 있으므로, 신통으로 악을 제거하면 된다. 어떤 생명이든 대법에 나쁜 짓을 하고 중생이 구도되는 것을 교란하기만 하면, 곧 현세현보(現世現報)를 받게 하라. 이것이 바로 대법의 위엄이 있는 곳이다. 동시에 자신에게 법에 부합하지 않는 곳, 원한심, 두려움심이 있는지 주의해 청리하라.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이므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부는 꼭 당신을 책임질 것이다. 설령 그것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사부는 곧 그것을 당신에게 좋은 것으로 변화시켜 줄 것이다. (박수)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부가 당신을 책임질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집착하는 마음이 또 일어나, “이번에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사부님께서 책임지고 계시니, 오너라.”(뭇사람 웃음)라고 한다면, 당신의 이런 완전히 의뢰하는 마음 역시 집착하는 것이기에, 이런 마음이 있는 것을 사부가 보게 되면 또 당신을 관여하지 않고, 당신이 이 마음을 내려놓기를 기다려서 다시 관여한다. 즉 이런 뜻을 말할 뿐이다. 수련, 수련이란 바로 사람의 한 마음인데 그렇지 않은가? 자신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정념으로 일체를 대하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정법을 수련하는 사람인데 무엇이 두려운가!”[2]
현재의 층차에서 깨달은바, 어떤 집착이든 모두 인심(人心)이고, 원한심, 두려움심 역시 집착심이다. 집착이 있으면 가상(假相)이 나타난다. 만약 정념이 매우 충족하면 누락이 없는 것이고, 사악을 압도하고 해체할 수 있다. 만약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면 안 된다. 마치 그 병소 부위처럼, 사부님이 청리해주셨으나, 대법을 굳게 믿는지 시험하기 위해 아마 그 병소 부위에 다시 이전의 증상이 나타났을 수 있다. 이때 네가 사부님이 이미 병을 있게 만든 물질을 가져가셨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지 보아야 한다. 만약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부님을 믿지 않는 것이고, 법을 믿지 않는 것이다.
내 현재 상태가 바로 이와 같지 않은가? 마음속에 내려놓지 못하고, 자신이 신통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상대방을 법보다 크게 보았으니, 그것은 사악의 기세등등한 기염에 겁먹은 것이 아니겠는가? 내려놓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이렇다. 만약 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이 일체를 평정할 수 있음을 믿는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 마음이 없을 것이고,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사부님이 관리하는 것은 수련하는 사람이고, 인심을 내려놓아야 신념(神念)이 솟어오를 수 있다. 왜냐하면 너의 공간장은 바로 이만한 용량이고 빈틈이 없어야 하며, 불성과 마성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념(人念)을 내려놓으면 신념이 입주(入住)한다. 수련은 마성을 포기하고 불성을 충실히 채우는 것이다. 상태가 법에 부합할 때 우주의 운전 메커니즘이 작용을 일으킨다.
전제는 인심을 내려놓는 것이며, 법에 대조해 자신을 살펴보면 바로 인심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고, 사상 속에서 끊임없이 위로 부정적 사유가 되돌아 나오므로 원인의 근원을 찾아보아야 한다. 첫째는 두려움인데, 그녀가 사술로 나를 교란할까 두려워하고, 그녀가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나쁜 말을 할까 두려워하며, 이 사람들(이 사람들이 그녀의 나쁜 말을 듣고 대법에 저항할까 두려워한다). 더 두려워할수록 더 가상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근본에서 찾으려면 인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녀가 사문(邪門)의 삐뚤어진 것을 부리는 것은 그녀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고, 대법 제자는 그녀에게 이끌려서는 안 된다. 우리 순정(純正)한 공간장에 그녀는 들어오지도 못한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본래 내가 아니며, 관념과 업력이 두려워하는 것이니 배제해야 하고, 그것을 원치 않아야 하며, 사상 속에서 나오면 청리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점점 약해져 마침내 해체에 이르며, 사상 속에서 근본적으로 두려워하는 염원이 없을 때가 바로 근본적으로 구세력을 부정하는 것이고, 구세력의 존재 자체조차 승인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24K 금처럼, 충량(足量)이고 빈틈이 없는데, 또 무슨 틈새를 뚫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금강불괴(金剛不破)요 견고하여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악도 저절로 소멸한다.
현 단계의 약간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은 동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서 《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제2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