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의산야화: 장석순 의안 해독 (1) – 불면증을 근본 치료한 독창적인 발상

백옥희(白玉熙)

【정견망】

1. 들어가는 말

고대 한의학의 병 치료 사상은 현대 의학과 동일한 층차에 있지 않으며, 같은 공간에서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 현대 해부학이 볼 수 있는 인체의 기관과 조직은 한의학의 근본적인 시각이 아니다. 따라서 서양의학의 유형(有形)적인 기관 개념으로 한의학을 이해하는 것은 영원히 잘못된 해석이 될 뿐이다. 한의학이 인체를 바라보는 관점은 하나의 소우주이며, 병을 치료하는 것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끊임없이 연화(演化)하는 우주의 그 오행(五行)으로 구성된 에너지 시스템을 조정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이 인체의 연화 원리는 우주와 완전히 똑같으며,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라는 다섯 가지 에너지인 오행으로 구성된 에너지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오행 메커니즘은 미시적으로 존재하며, 미시적인 공간에 존재하는 일종 유형의 설비다. 에너지가 질서 정연하게 부단히 운행되는데, 마치 전기 설비에 반드시 회로 시스템이 있어 전기를 운송해야 전기를 켜서 일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인체 역시 이 오행 메커니즘의 운행에 의존해야만 생리 활동을 완수할 수 있고, 장부가 일하도록 추진할 수 있으며, 인체 분자의 운동과 세포의 신진대사를 추동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미시적인 오행 설비 한 세트가 인체에 안치되어 오장(五臟)에 대응하며 인체 기능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에너지 운행에 문제가 생기면 병에 걸리게 된다. 따라서 병을 치료하는 것은 이 오행 에너지를 조절하는 것이며, 오행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옛사람들이 말한 음양조화(陰陽調和)이자 음양평형(陰陽平衡)이다. 목과 화는 양(陽)에 속하고 금과 수는 음(陰)에 속하며, 토(土)는 중앙에 거주하여 평성(平性)을 띠기 때문이다. 오행의 운행은 바로 음양이 서로 다른 단계에서 운행하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고대 한의학에서 약을 쓸 때의 사상은 미세한 입자로 구성된 오행 에너지 시스템을 조정해 평형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약을 써서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오행 메커니즘은 바로 침구로 병을 치료할 때 말하는 경락(經絡)이다. 반면 현대 한의학은 약을 쓰는 것이 점차 경락과 분리되어 서양의학의 사고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이는 잘못된 방식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심(心)·간(肝)·비(脾)·폐(肺)·신(腎)은 대개 형체가 있는 장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화·목·토·금·수라는 이 메커니즘을 가리킨다.

따라서 서양의학의 개념으로 한의학을 해석하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이 한의학에 대해 갖는 온갖 오해와 현대 한의학의 용약(用藥) 상의 몇 가지 오류가 빚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은 이 의학을 믿지 못하고, 감히 연구하거나 인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현대 한의학 역시 ‘천인합일(天人合一)’과 인체는 소우주라는 사유를 이해하지 못해 방향을 잃어버렸으며, 이로 인해 이 고층차 의학의 기이한 효과(奇效)를 온전히 장악하고 발휘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인체는 원래 우주가 연화하는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연구하고 장악하면 각종 의학적 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다. 이에 우리는 청대 말기의 명의 장석순(張錫純)의 의안(醫案)을 손에 잡고 전통의학의 지혜를 이해해 보려 하며, 현대 의사와는 완전히 다른 고대 의사가 병을 진료하는 사유와 약을 쓰는 사유를 이해해 보고자 한다. 오직 이럴 때만 우리는 비로소 한의학의 진상을 참되게 인식할 수 있고, 이 지혜를 얻어 질병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참으로 신체 건강을 얻을 수 있는 양생과 병을 치료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먼저 장석순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그런 후에 구체적인 의안 분석과 해독으로 들어가겠다.

이시진과 흡사한 천명으로 한의학의 위기를 구하다

장석순(張錫純, 1860년~1933년)은 자가 수보(壽甫)이며 하북 염산현(鹽山縣) 사람으로, 청나라 말기에서 민국 초기에 걸쳐 집안 대대로 글을 읽은 서향(書香) 가문 출신의 유의(儒醫)이다. 그는 민국 4대 명의 중 으뜸으로 추앙받으며, 중국 역사상 최초의 한방병원인 1916년에 설립된 봉천(奉天) 입달(立達) 한방병원 원장이었다. 그의 천명(天命), 품성, 그리고 성취는 명조(明朝)의 대의학가 이시진(李時珍)과 아주 흡사하여 국의성수(國醫聖手)로 추앙받았다.

민국 초기에 서양의학이 매우 강경한 자세로 중국에 들어와 한의학이 멸절 직전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마치 봉천 입달 한방병원의 뜻처럼 ‘봉천승운(奉天承運 하늘의 뜻을 받들어 명을 따르다)’하여 자신의 탁월한 의술과 실력으로 한의학을 구제했다. 그가 인연 있는 이들의 지지를 받아 이 병원을 설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양이 발칵 뒤집혔고 천하에 이름을 떨쳤으며, 기적이 끊이지 않았고 당시 오만한 서양의학이 살려내지 못하던 수많은 위중한 환자나 난치병 환자들을 살려내었다.

‘입달(立達)’이라는 두 글자에 부끄럽지 않게 한의학의 신기한 치료 효과를 눈앞에서 즉각적으로 보여주어 사방에 명성을 떨쳤다. 이로 인해 당시 서양의학의 충격으로 오해받고 왜곡되어 정부로부터 버림받을 위기에 처했던 한의학의 명맥이 당당하게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다.

그는 한의학이 위태로웠던 난세에 세계 최초로 한방병원을 창립했을 뿐만 아니라, 말년에는 통신 교육(函授學校) 방식을 통해 대량의 후계자들을 양성하였으며, 위로는 선인(先人)의 것을 잇고 아래로는 후세에 복을 주는 의학 거작 《의학충중참서록(醫學衷中參西錄)》을 남겼다. 일생의 경력과 공헌이 이시진과 너무나 흡사하다. 앞으로 우리가 소개할 의안들은 모두 이 저서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이시진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천성이 총명하고 시서(詩書)를 널리 읽었으며, 시를 짓고 글을 쓰는 것이 손에 잡힐 듯 수월하여 원래는 아버지가 마련해 준 과거시험을 거쳐 벼슬길에 오르는 길을 걸으려 했다. 그러나 거듭되는 과거 시험 낙방 끝에 결국 의학에 마음을 품고 의술(醫術)로 세상을 구제하고 사람을 살리겠다는 뜻을 세웠다. 그는 몰두하여 연구한 끝에 《내경(內經)》의 의리(醫理)를 터득하였고, 처방을 활용하고 새로운 처방을 창조해 내는 용약(用藥)의 고수가 되었다. 한의학의 병리(病理)에 담긴 천기(天機)를 꿰뚫어 보고 선인의 경험을 발양하는 동시에, 약물의 성능을 철저히 장악했으며 심지어 직접 임상 시험을 거쳐 운용이 숙달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각종 간단하면서도 신기한 용약법과 처방을 창조해 내었다.

그는 낮에는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면서 밤에는 책상머리에 엎드려 저술 활동을 하며 용약(用藥)의 오류를 적지 않게 바로잡았다. 비로소 한의학의 ‘용약’ 치료 방면에서 지닌 ‘입달(立達)’의 기적 같은 효능을 재차 드러내고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의안과 처방, 그리고 병을 치료하고 약을 쓰는 근본 원리를 싫증 내지 않고 수십 년을 하루같이 끊임없이 기록하여 그의 저서인 《의학충중참서록》에 수록하였고, 사심 없이 사회에 바쳐 중생에게 복을 주었다. (이 책은 후세 사람들로부터 “한의학계에서 가장 본받을 만한 책[第一可法之書]”으로 칭송받았으며, 전체 100만 자가 넘고 발행 부수가 100만 세트에 달했다.)

생생하게 배우고 활용하는 그의 담력과 능력은 《내경》의 의리를 장악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저술을 향한 끈질긴 의지는 전통 의학을 후세에 전승하고자 하는 염원—즉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상세하고 이해하기 쉬운 교재를 편찬하겠다는 소망—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이시진은 완성된 《본초강목》을 직접 황제에게 바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래도 결국 완성은 해냈던 반면, 장석순은 《의학충중참서록》이라는 책을 편찬하던 도중 과로로 인해 책상 앞에서 세상을 떠났다. 온전한 교재를 편찬해 내겠다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날 때의 나이도 이시진과 비슷한 향년 74세였다.

따라서 그의 이 거작은 근현대 한의사들의 중요한 참고서이자 한의학도들의 임상 교재일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언어가 통속적이고 약물 쓰임이 간단하며 분석이 상세하고 의리가 명쾌하며, 상당수의 약재가 심지어 흔한 식재료라, 침구 기술을 장악할 수 없고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는 일반 서민들에게 간단하고도 실현 가능한 자구(自救)의 살길을 열어주었다. 그리하여 그가 살아있을 당시 이책은 이미 세간에 풍미하며 거듭 판을 찍어내 수많은 사람을 살렸다. 백성을 향한 그의 의덕(醫德), 신기한 전통의학으로 보편적으로 세상을 구제하고 사람을 살리고자 했던 그 갸륵한 마음, 그리고 일생의 노력과 거대한 공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시진이 다시 태어난 것과 같으니 만고에 아름다운 이름을 빛낼 것이다.

타고난 유학(儒學) 재능은 한의학 전승을 위한 것

돌이켜보면, 그는 서향(書香) 가문 출신이자 이시진과 마찬가지로 의학 세가(世家)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 그에게 유학에 대한 놀라운 재능을 지니게 하되 과거에는 낙방하게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분명 그의 유학적 재능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의학 전승과 저술을 남겨 후세에 가르치기 위함이었으니, 천명(天命)이 시킨 바였다. 이시진의 사명이 본초약학(本草藥學)을 바로잡고, 계승하며, 발양하는 것이었다면, 그는 오래된 의리를 꿰뚫어 본 후에 선배들의 약물을 활용한 실천가로서 용약의 많은 오류를 바로잡았고 대중에게 보급하기 위해 통속적이고 간단하며 실용성에 힘썼으니 각자 천명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가지고 한의학을 공부하고 한의학의 진정한 용약법과 병 치료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애초에 그가 한의사와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이롭게 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편찬한 교재였으므로, 자료가 상세하고 의리가 명쾌하며 배우기 쉽도록 힘쓴 것은 당연지사다.

2. 불면증 근치와 명쾌한 사상

현대 사회는 학업과 업무의 스트레스,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점차 불면증에 걸려 수면제에 의존해 나날을 보내며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어쩔 수 없어 하며 일단 병에 걸리면 근치(根治)가 어렵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장석순은 이틀 만에 불면증을 완화하고 닷새 만에 근치한 사례가 있다. 한의학의 시각에서 불면증의 병리와 약을 쓰는 근거를 상세히 설명해 놓았는데, 이치가 명쾌하고 병을 진단하는 데 추호의 의혹도 없다. 정상 기전을 잃어버린 인체 메커니즘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손바닥 보듯 환히 꿰뚫고 있다. 그의 의안을 정독하면 불면증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릴 수 있다.

불면증 의안

장석순의 저서에 따르면, 이 불면증 환자는 천진(天津) 사람으로 성은 서(徐), 나이는 66세이며, 계춘(季春), 즉 음력으로 늦봄인 3월에 불매증(不寐症—불면증)에 걸렸다. ‘불매’란 잠들지 못한다는 뜻이다. 환자의 설명으로부터 그는 평소 시사(詩詞) 읊기를 좋아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러한 독서인들은 대개 완벽한 시구 한 마디를 얻기 위해 밤낮으로 깊이 생각하고 궁리하며 거의 몰입하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그리하여 그가 과도하게 심혈(心血)을 소모하여 불면증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있으니, 오늘날 우리가 과도한 생각으로 인하여 초래한 결과와 극히 유사하다.

이 사람은 겨울철에도 가끔 이 병증이 나타났으나 아직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초봄이 되자 양기(陽氣)가 올라오면서 병세가 점차 가중되었고, 음력 3월에 이르러서는 며칠 동안 연속으로 잠을 잘 수 없는 상태로 발전했다. 이 때문에 여러 차례 서양의학을 찾아가 수면제를 복용했으나 병세는 여전히 호전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심신이 피로해 녹초가 되었으며 가슴속이 수시로 화끈거리고 식욕이 거의 없었다. 억지로 식사를 해도 음식물이 위완부(胃脘部—명치 아래 부위)에 정체되어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느낌을 자주 받았는데, 즉 음식이 쌓여 내려가지 않는 상태였다. 게다가 대변이 건조하고 단단해져 약을 쓰지 않으면 배변을 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장석순을 찾아와 치료를 요청했다. 이것이 환자가 자신의 병증을 서술한 내용이다.

의술이 고명한 한의사라면 환자의 서술로부터 이미 대략적인 판단을 내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신체 메커니즘에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가,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 장석순은 듣자마자 깨달았다. 비위의 중추(中樞) 기기(氣機)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위기(胃氣)가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도리어 거꾸로 치솟고 있었다.

따라서 장석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氣)가 위로 거슬러 호흡이 아래로 내려가 음식물을 전송(傳送)하지 못하므로, 식후에 늘 위완부에 머물러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또한 대변이 조결(燥結)한 것 역시 위부(胃腑)의 기화(氣化)가 아래로 도달하지 못함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다.”

여러분은 이를 읽고 나서도 여전히 ‘위부의 기화가 무슨 뜻인가?’, ‘위기가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는 것이 불면증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고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여기에는 바로 한의학이 병을 치료하는 사유 층차의 문제가 있다. 한의학이 인체 장부를 바라보는 관점은 육안으로 보이는 형체가 있는 장부 기관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이라는 오장(五臟)에 대응하는 그 경락 시스템에 주목한다. 오장은 목·화·토·금·수라는 오행에 대응하므로, 사실상 전반 장부 배후에는 오행 속성을 지닌 에너지 한 세트의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그 입자는 육체의 분자보다 미세하여 눈에 보이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인체의 회로처럼 인체 안에서 끊임없이 운행하며 장부 세포 내지는 모든 분자가 일할 수 있는 동력, 즉 에너지를 제공한다. 이는 마치 전기 설비에서 전기 에너지가 하는 역할과 매우 비슷하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에너지를 ‘기(氣)’라 부르므로 오장육부에는 모두 그것을 통제하는 기가 있다. 간에는 간기(肝氣)가 있고, 비에는 비기(脾氣)가 있으며, 위에는 당연히 위기(胃氣)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장부의 기능은 운행을 멈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장석순이 말한 위기는 바로 위의 기능을 통제하는 경맥지기(經脈之氣)이다. 원래 위기는 아래로 운행하는데, 지금은 장애를 받아 도리어 거꾸로 올라간 것이다. 그러므로 위부의 기화(氣化)가 아래로 도달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 뜻은 위기가 기기를 추동하여 아래로 내려가 장도(腸道)에 도달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위기의 운행이 순조롭지 못해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이로 인해 위에 음식물이 쌓여 소화되지 못하며, 대장의 기기가 막혀 대변을 아래로 밀어낼 동력을 얻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정체되어 내려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때문에 식욕 부진과 변비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위기가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면 왜 불면증을 초래하는가?

그 근원은 평소에 시사를 읊으며 골똘히 생각하고 깊이 궁리하느라 사려가 과도(思慮過度)했던 데 있다. 《내경》에서 “생각이 많으면 비(脾)를 상한다(思傷脾)”고 했다. 그리고 비(脾)와 위(胃)는 일체인 장부 관계로 하나가 손상되면 모두 손상되므로, 과도한 사려는 직접적으로 비위의 기기에 문제가 생기게 만든다. 비위는 전체 장부 기기 중에서 중앙에 거주하며 오행상 토(土)에 속하므로, 인체 기기 운행의 중추, 중축(中軸), 혹은 중초(中焦)가 된다.

비위의 기기에 문제가 생기면 마치 수레바퀴의 축에 고장이 난 것과 같아서, 외곽에 있는 간·심·폐·신의 기기가 이로 인해 모두 영향을 받아 운행에 막힘이 발생한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라. 비위는 토성(土性)으로 인체 기혈(氣血)의 근원이며, 간(肝 오행에서 목에 속함)과는 서로를 제어하는 관계이다. 기혈의 근원이 막히면 간혈(肝血)이 반드시 부족해지는데 이를 ‘혈허(血虛)’라고 한다. 피가 부족하면 간기가 지나치게 뜨거워져 화기(火氣)로 화(化)하고, 심과 폐에 직접 영향을 미치므로 가슴속이 후끈거린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심폐(心肺)에 열이 나고 기기가 막혀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면, 심기(心氣)는 양기(陽氣)이므로 양기가 기기(氣機)에 막혀 아래로 내려가 신부(腎部—음기가 있는 곳)로 들어가 쉬지 못하고 줄곧 위와 겉으로 떠돌게 된다. 이것을 바로 ‘양이 음으로 들어가지 못함(陽不入陰)’, 혹은 ‘심신불교(心神不交)’라고 한다.

비유하자면, 마치 태양이 줄곧 내려오지 않고 계속 낮인 상태에 머물러 밤이 영원히 오지 않는 것과 같다. 인체의 양기 역시 줄곧 내려오지 못하고 신부(腎部)로 잠입하지 못하면, 줄곧 깨어나 일해야 하는 흥분 상태에 머물게 되어 수면의 메커니즘을 가동할 수 없고 잠들 수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불면증이든, 식욕 부진이든, 변비든 모두 위기가 내려가지 않아서 생기는 표면 현상일 뿐이다.

게다가 봄철에는 양기가 생발(生發)하여 간화(肝火)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이끌기 때문에, 심양(心陽)의 기가 아래로 내려가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한층 더 가중된다.

따라서 장석순이 약을 처방할 때는 구체적인 방안이 생겼다.

“마땅히 간화를 맑히고[淸肝火], 간혈을 생겨나게 하며[生肝血], 위기를 내려주어야 한다[降胃氣]…. 이처럼 간과 위를 조양(調養)하면 밤에 저절로 편안히 잠들 수 있고, 식후에도 저절로 정체되지 않을 것이다.”

좀 쉽게 말하자면, 간화는 아래로 내려오게 하고 간혈은 보충해 주어, 이로써 심폐가 지나치게 뜨거워지지 않게 하는 동시에 위기를 아래로 내려가게 하여 기기가 운행되도록 회복시키고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심폐에 뜨겁게 떠돌던 양기가 아래로 내려가 신부로 들어가면, 인체 기능이 회복되어 자연히 잠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먹은 음식물 역시 위에 정체되어 소화되지 못하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일이 없게 된다. 이 사유에 따라 자연스럽게 아래의 처방을 내놓았다.

초진 처방: 이틀 만에 효험을 보다

* 생회산약(生懷山藥 – 1량)

* 대감구기자(大甘枸杞 – 8돈)

* 생대자석(生赭石 – 6돈, 잘게 부숨)

* 현삼(玄參 – 5돈)

* 북사삼(北沙參 – 5돈)

* 생항작(生杭芍 – 5돈)

* 산조인(酸枣仁 – 4돈, 볶은 뒤 찧음)

* 생맥아(生麥芽 – 3돈)

* 생계내금(生鷄內金 – 1돈 반, 노란색인 것, 찧음)

* 인진(茵陳 – 1돈 반)

* 감초(甘草 – 2돈)

물을 부어 함께 큰 대접 하나가 되도록 달인 뒤, 따뜻할 때 복용한다.

장석순은 환자가 탕약을 2제(劑), 즉 동일한 처방을 이틀 동안 복용하자 병세가 완화되어 야간에 잠들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비록 시간은 아직 길지 않아 겨우 두세 시간 정도였지만, 가슴속이 더 이상 화끈거리지 않았고 식사량도 늘어나기 시작해 입맛이 다소 회복되었다. 다만 대변이 아직 순조롭지 못했기에, 조금 조절하여 환자가 3일 동안 더 복용하도록 결정하고 다시 3제의 약을 처방했다.

재진(再診) 처방: 3일 만에 완치되다

* 생회산약(生懷山藥 – 1량)

* 대감구기자(大甘枸杞 – 8돈)

* 생대자석(生赭石 – 6돈, 잘게 부갬)

* 현삼(玄參 – 5돈)

* 북사삼(北沙參 – 5돈)

* 산조인(酸枣仁 – 4돈, 볶은 뒤 찧음)

* 용안육(龍眼肉 – 3돈)

* 생항작(生杭芍 – 3돈)

* 생계내금(生鷄內金 – 1돈 반, 노란색인 것, 찧음)

* 생원지(生遠志 – 1돈 반)

* 인진(茵陳 – 1돈)

* 감초(甘草 – 1돈 반)

복용법은 위와 같다.

“약을 이어서 3제 복용하자, 야간에 잠드는 것이 평소와 같아졌고 식욕도 이미 왕성해졌으며 대변도 자연스럽게 배출되었다.”

즉, 전후로 총 5일 만에 질병을 뿌리 뽑았고 불면증을 고친 것이다. 맥을 짚어보니 간부(肝部)의 기혈이 약간 조화롭지 못한 느낌이 있었으므로, 마침내 처방 속의 용안육을 8돈으로 늘려 피를 보충하고 기혈을 철저히 조화시켜 전체 기기가 온전히 복원되도록 하였으며, 마무리로 며칠 더 복용하게 했다.

용약 원리: 《내경》 고방(古方)에서 유래

장석순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천지의 기를 받아 태어났으므로 심폐(心肺)의 기는 양이 되고, 간신(肝腎)의 기는 음이 된다. 사람이 잠들 수 있는 것은 양기(陽氣)의 가라앉는 덕분이며, 잠들지 못하는 것은 양기가 심폐에 들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왜 들뜨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파헤쳐 보면, 실로 장부의 기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방에서 대자석(赭石)을 많이 사용해 위기(胃氣)를 아래로 내리고 간화(肝火)의 기를 진정시켰다. 이로써 대변의 조결을 치료하는데, 그 빛깔이 붉고 성질이 무거우며(빛깔이 붉으면 오행상 화에 속하여 심장에 대응함) 심장으로 들어갈 수 있으므로, 심장의 양기가 아래로 내려와 신장으로 들어가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치료 사상이 불면증을 치료하는 《내경》의 ‘반하출미탕(半夏秫米湯)’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이 처방은 본래 아주 영험해서 직접 가져다 써도 좋다. 왜냐하면 위(胃)는 기기의 중앙에 거주하므로, 위기가 만약 정상적으로 아래로 내려간다면 상부에 있는 심폐의 기가 장애를 받지 않고 모두 그에 따라 아래로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반하는 위기를 내리는 데 뛰어나고, 좁쌀(秫米)는 위를 조화시키고 기를 보충하는 데 뛰어난데, 반하와 출미를 나란히 쓰면 위기가 조화되어 아래로 내려가게 만들 수 있으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히 잠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자석과 산약으로 바꿔 쓰게 된 까닭은 그것이 위를 조화시키고 위기를 내리는 힘이 반하와 좁쌀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니, 고방의 용약 원리를 취하되 변통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직접 고방을 쓰지는 않았으나 고방을 쓴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내경》이 약을 쓴 것은 수천 년 전의 옛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라 약력이 그리 맹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민국(民國) 시대에 이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안일하고 허약하여, 대자석을 대량으로 쓰지 않으면 위기를 내리는 힘이 충분하지 않아 뚜렷한 효험을 거둘 수 없다. 산약이 기를 보충하고 위를 튼튼하게 하는 힘 역시 좁쌀보다 더 크다. 그러므로 그는 용약의 원리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통하고 교체하여 옛 한의학의 치료 효과를 새롭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장석순이 《내경》이 병을 치료하는 핵심은 평형을 잃은 에너지 기기를 바로잡는 데 있음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병을 치료할 때 마음속에 뚜렷한 셈법이 있어 매우 확고할 수 있었으며, 장부 기능을 복원하여 약이 닿자마자 병이 낫게(藥到病除)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처방 속의 다른 약들이 하는 역할은 혹은 간화와 심화를 맑히거나, 피를 보충하고 기를 보충하며 기혈을 조화시키는 것인데, 지면 관계상 따로 해설하지 않으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직접 찾아서 공부하기 바란다.

[주] : 여기 소개한 의안은 《의학충중참서록》에서 가져온 것이며, 본문의 처방은 오직 한의학의 용약 사유를 이해하기 위한 용도로만 제공한다. 병을 치료하고 약을 쓰는 것은 반드시 한약 전문 의사의 진맥을 거쳐 진단받아야 하며, 절대 혼자서 임의로 처방을 내려 복용해서는 안 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