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괄이지(括異志)》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북송의 관리 반계종(潘繼宗)은 청하(清河)현 사람으로, 유가 경전에 통달하여 과거에 합격하고 벼슬길에 올랐으며, 처음 관직은 ‘낭중(郎中)’이었는데 일 처리를 잘해서 차례로 관직이 올랐다.
북송 인종(仁宗) 천성(天聖) 연간(1023~1032년), 그는 국자감 박사 관직에서 건녕군 통판(乾寧軍通判)으로 승진했다. 당시 그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십여 년이 지나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망혼(亡魂)이 갑자기 집안 중당(中堂) 앞에 형체를 나타내어, 사람을 시켜 아들 반계종을 불러오게 했는데, 그 용모와 옷차림이 살아생전과 다름없었다. 반계종이 듣고 급히 달려와 거듭 울부짖으며 어머니의 망혼에게 절을 하니, 어머니가 급히 그의 울부짖음을 그치게 하고, 사람을 시켜 중당 서쪽 편에 유막(帷幕)을 쳐서 방을 둘로 나누게 하고, 그녀가 있는 쪽 편에 다시 발(簾)을 하나 내려놓게 한 뒤, 발 뒤에 다시 두 개의 탑(榻, 침상)을 놓게 하면서, 이렇게 하면 그녀와 동반한 두 부인이 여기서 휴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모두 마친 후, 판계종의 돌아가신 어머니는 유막과 발 뒤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죽은 후 음간(陰間)의 관리가 나의 선악(善惡)을 심사했는데, 일생 동안 큰 허물이 없었기에 나를 한 방 안에 머물게만 하고 다른 일은 하지 않게 했으나 단지 자유롭게 다니지 못했을 뿐이다. 후에 네가 조정에 들어가 관리가 되고 성적이 있자, 나 역시 조정으로부터 ‘현태군(縣太君)’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추서받았고, 음간의 관리도 이로 인해 나에게 자유로운 출입을 허락했다. 네가 재작년 심강현(尋江縣) 지현으로 부임했을 때 내가 일찍이 그곳에 가서 너를 보았고, 또 수정 주부(柱斧) 하나를 문 뒤에 거꾸로 꽂아두었다. 내가 당시에 아직 투태(投胎)하여 태어날 기약이 없어 오래 머물면 귀신 부류의 음기(陰氣)가 너를 더럽혀 너에게 좋지 않을까 두려워 단지 표식으로 삼았을 뿐이다.”
여기서 ‘주부(柱斧)’란 조정 관리가 사용하는 일종의 장식물로서,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승조관(升朝官)이 출입할 때 주부가 있다. 수정으로 만든 작은 도끼 모양인데 가마 앞에 둔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녀는 또 이어서 말했다.
“이제 음간에서 이미 나를 기주(冀州) 북문 안 거리 서쪽 방앗간 아무개 집 며느리의 거처로 윤회전생(輪迴轉生)하여 그녀의 딸이 되도록 배정했기에 내가 와서 이별을 고한다.”
반계종의 집안사람들이 음식과 음료를 준비하여 보냈는데, 단지 유막 뒤에서 수저와 젓가락을 사용하는 소리만 들릴 뿐 요리와 밥은 모두 변화가 없어, 들여온 그대로 다시 들고 나왔으니 아마도 이 공간의 표면 물질을 먹은 것은 아닌 듯했다. 이와 같이 한 달여를 지속한 후 그의 어머니의 망혼이 비로소 떠났다. 떠날 때 온 집안이 교외까지 배웅하였는데, 공중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다가 한참 뒤에야 사라졌다.
반계종은 임기를 마친 후 공무를 다음 사람에게 명확히 교대하고 신도(信都)에서 길을 돌아가 사람들에게 물어 마침내 기주 북문 안 거리 서쪽 방앗간의 그 집을 찾았는데 그 집 며느리가 과연 딸을 하나 낳았다. 나중에 그는 자주 재물과 비단을 그 집에 보태주었다.
반계종의 아들 반사룡(潘士龍)은 관직이 정랑(正郎)에 이르렀다. 북송 연간의 또 다른 관리인 호눌(胡訥)이 쓴 《효행록(孝行錄)》에도 이 일이 수록되어 있다.
망자(亡者)가 모습을 드러낸 이 특이한 사건은 그 직접 겪은 사람이 송 인종 때의 관리일 뿐만 아니라, 그 기록자인 장사정(張師正) 역시 인종, 영종, 신종 때 관리를 지낸 사람이다. 또 다른 기록자인 호눌(957—1027년)은 북송 태종 옹희 을유년(985년)에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郎)을 지냈으며, 송대의 대유(大儒) 호원(胡瑗)의 아버지다. 세 사람은 비록 나이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모두 같은 시대 인물이고 또한 모두 관리로서 우월한 사회적 지위가 있었기에 기이한 이야기를 위조할 아무런 동기가 없어 그 진실성이 상당히 높다.
이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사람에게는 원신(元神)이 있고, 사람이 죽은 후 원신은 죽지 않으며, 원신은 다른 공간 생명의 재판을 받아 선악에 따라 그 갈 곳이 결정됨을 알 수 있다. 무신론은 철저히 잘못된 사설(邪說)이다! 유신론이야말로 올바른 것이며, 선악에 보응이 따름과 윤회전생은 모두 진짜이다. 기록에서 반계종의 돌아가신 어머니는 생전에 허물이 없었기에 단지 한 곳에 안치되었을 뿐 고통을 받지 않았다. 송 인종은 역사상 유명한 좋은 황제였고, 반계종은 당시에 관리로서 정적이 있었으니 생각건대 공덕(功德)이 있었을 것이므로 어머니 망혼의 처지가 개선되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선악 행위가 친족, 심지어 이미 세상을 떠난 친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선한 일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선하지 못한 일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다(積善之家必有餘慶,積不善之家必有餘殃)”라는 이 옛말은 참으로 허황되지 않고 진실하다.
자료 출처: 북송 장사정(張師正) 찬 《괄이지(括異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