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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업관에 대한 자그마한 재인식

강소 대법제자

【정견망】

몇 년 전, 나는 갑자기 왼쪽 가슴에 멍울이 생긴 것을 발견했는데, 보았을 때는 이미 작은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만 해져 있었고, 그것이 혈맥을 따라 빠르게 확산될 수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좋지 않음을 알았고, 이는 명백한 유방암 증상이었다. 나는 죽음이 나와 단 한 걸음 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비록 이것이 병업 가상(假象)임을 알고 있었지만, 일이 심령을 건드리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듯이, 마음속으로 다소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대량의 법 공부를 거쳐 나는 병원에 가서 치료받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았고, 모든 것을 각오하고, 남든 떠나든 사부님께서 결정하시게 했다. 생사를 내려놓는 정념(正念)이 나오자 기적이 나타났는데, 멍울이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몇 달 동안 계속되던 병업 생사관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번 생사의 큰 관을 지난 후, 나는 세 가지 일 더욱 정진해야 함을 깨달았다. 법 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나는 정법수련(正法修煉) 중의 병업관과 개인수련 중의 병업관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는데, 그들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사부님께서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에서 말씀하셨다.

“정법제자가 정법시기를 걸어 넘어가지 못한다면 다음 한 차례의 수련기회는 없다. 왜냐하면 역사상 이미 당신들에게 가장 좋은 모든 것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개인수련 중에서 거의 아무런 고생도 겪지 않았고, 당신들이 생생세세에 지은 하늘처럼 큰 죄업(罪業) 또한 당신들 자신이 감당하라고 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가장 빠른 방식으로 당신들의 층차를 제고시켜 주고, 당신들 과거의 일체 좋은 것을 보존하고 있다. 게다가 매 층차 중에서 또 당신들에게 더욱 좋은 것을 보충해 주고 수련 중에서 줄곧 당신들에게 매 경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체를 줌으로써 원만한 후에 당신들로 하여금 당신들의 최고 경지의 위치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른바 병업은 이미 자신이 생생세세 쌓은 업력이 아니며, 사부님께서 진작 우리를 깨끗이 씻어주셨고, 근본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무슨 고통도 겪지 않게 하셨으며,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감당해 주신 것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병이 없었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이러한 병업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사부님께서는 《2018년 워싱턴 DC 설법》에서 또 말씀하셨다.

“중생구도(救度衆生)이다. 당신들 자신은 무슨 업력이 없다. 그렇게 큰 업력이 없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다시피, 인류사회에서 수많은 중생이 모두 간단하지 않으며, 심지어 동물도 간단하지 않다. 매우 많은 생명이 모두 고층에서 왔다. 우리는 그들을 구도해야 한다. 그들이 대표한 생명은 모두 구우주(舊宇宙) 중에서 장차 도태될 생명인데, 그들을 구도하려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을 구도하면, 그들이 대표하는 그러한 생명들도 장차 구원될 것이다. 보건대,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그 업력을 어찌해야 하는가? 거대한 업력이다. 게다가 속인사회(常人社會) 중에서, 거센 홍류(洪流) 중에서,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 업력 역시 매우 크다. 이것이 곧 그들을 구도하는 곤란함, 그들을 구도하는 번거로움, 그들을 구도하는 어려움과 이 한차례 박해를 조성했다.”

나는 이 병업이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먼지일 뿐, 대법제자 자체의 업력이 아니라 구도받는 생명들 그들의 업력임을 명확히 의식했다. 그러나 왜 이 업력이 내 몸에서 작용을 일으켜, 현실 세계에서는 보기에 병이 난 것처럼 되고 모든 것이 당신 몸에서 진실하게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려는 것일까.

법 공부를 통해 나는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20년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어떻게 어렵든지 간에, 구도 받는 생명이 구도 전에 어떻게 교란하고 난을 설치하든 간에, 대법제자는 자신의 길이 있다. 한 대법제자로 말하자면, 이전에 내가 줄곧 말했듯이, 내가 말하건대 대법제자는 이처럼 큰 역사적 사명이 있으며 중생을 구도할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데, 틀림없이 당신들 자신이 걸어 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나의 이해로는 정법수련 중 병업 표현의 배후에는 무궁무진한 생명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구도받아야 할 생명이 자신의 업력으로 대법제자에게 만들어 놓은 관(關)과 난(難)이다. 병업의 표현은 당신이 정말 병이 난 것이 아니라, 당신이 구해주기로 약속한 중생이 당신의 몸 위에서 일으키는 반응이며, 그들이 병이 난 것이고, 이러한 방식을 통해 당신에게 그들을 구해달라고 경고(일깨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생명들은 왜 관과 난을 만들어 놓는 것일까?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 모두가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고 하는데, 표현형식은 세간의 논리로 인식하는 그것과 같지 않다. 사람에게 부탁을 할 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며 아주 겸손해야 한다. 당신이 나를 구해 주니, 내가 먼저 당신에게 감사드리고, 내가 당신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이런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보건대, 당신이 나를 구할 수 있으려면, 당신은 나의 층차에 도달해야 하고, 이 위덕이 있어야만, 당신은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 위덕이 없고 당신이 나만큼 높게 도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를 구할 것인가? 그래서 그것은 당신에게 곤두박질치게 하고 고생을 겪게 하여, 당신의 집착을 제거하게 한다. 그런 다음 당신의 위덕이 세워지고, 당신이 어느 층차로 수련되면, 당신이 비로소 그것을 구할 수 있으므로 모두 이렇게 한다.”

나는 병업의 출현이 당신으로 하여금 마음을 수련하고, 안으로 찾으며, 집착을 버리게 하고, 시험에 합격하여 그들의 층차에 도달해야 하며, 중생을 복종하게 해야만 그들이 구도받을 수 있고 또 구도받기를 원한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로서 정법수련 중에서 감당하는 병업은 구도받는 생명에게서 오는 것이며, 그들이 만들어 놓은 관과 난을 넘어서고 또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으로 복종하게 해야만 비로소 그들을 진정으로 구할 수 있다. 정법수련은 중생이 구도받게 하기 위해 감당하는 것이고, 위타(為他)한 것이며, 그들을 데리고 신우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반면 개인수련의 병업관 돌파는 단지 개인의 제고를 위한 것이고, 개인의 원만을 위한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는 위사(為私)한 것이며, 중생을 구도하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법수련 중의 모든 관과 난은 나의 병업관과 마찬가지로 모두 대법제자의 것이 아니며, 구도를 위해 온 것이다. 게다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기만 하면 구세력(舊勢力)의 안배를 부정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구도받는 생명은 도태되는 운명을 면할 수 있다. 반면 개인수련의 병업 등 일련의 관은 단지 우리의 거대한 관과 거대한 난으로 변할 뿐이며, 구세력은 우리가 수련 성취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이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길이다.

이상은 나의 개인적인 약간의 인식이며,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