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우(明宇)
【정견망】
사람들은 자주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字如其人)”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이 유려하고도 아름다운 글씨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떤 글씨가 가장 좋은 글씨인가? 사실 딱히 정해진 결론은 없다. 그러나 문자 자체의 특성은 매우 중요한데, 그 특성은 음양의 이치에 부합한다.
우리는 음양을 언급하기만 하면 매우 신비롭고 심지어 다소 현오(玄奧)하다고 느낀다. 사실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인간세상의 모든 것은 일정한 표준에 부합하는데, 이 표준이 바로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이자 곧 음양의 이치이다. 좋은 것은 모두 음양이 평형을 이루며, 평형을 이루면 조화로워진다. 서예 역시 마찬가지 이치이다.
우리가 자주 말하는 양강(陽剛)과 음유(陰柔)는 바로 음양의 이치가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표현 형식이다. 서예에 체현될 때, 흔히 가로획(橫)은 음유에 속하고 세로획(豎)은 양강에 속하며, 갈고리(鉤)는 음양상제(陰陽相濟, 음과 양이 서로 도움)에 속한다. 어쩌면 우리는 수많은 형태의 가로획과 수많은 형태의 세로획, 그리고 점(點), 삐침(撇), 파임(捺) 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실 모두 후대 사람이 총결한 것이다.
어떠한 가로획이든 흔히 모두 음유에 속하고, 어떠한 세로획이든 흔히 모두 양강에 속한다. 기타 점, 삐침, 파임 및 서로 다른 갈고리 등은 흔히 모두 강유상제(剛柔相濟)에 속한다. 물론 예외도 있으므로 너무 단정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서예 대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가 가장 대표성이 있다. 우리는 왕희지의 글씨에 근본적으로 그리 고정된 것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똑같은 글자라도 한 문장 안에서 여러 가지 쓰임새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임모(臨摹)할 때 하나의 글자에 단 한 가지 쓰임새만 있고, 매 획의 길이, 방향, 수방(收放)이 모두 같다. 그러나 왕희지에게 그것은 달랐다.
마치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문법이 있지만, 영국인이나 미국인에게는 없는 것과 같다. 이치는 거의 비슷하다. 왕희지의 눈에는 더 높은 원칙이 존재하고 있었다. 획의 길이나 방향 등의 구속에 연연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장법(章法)이 없다는 것이 마구 써야 한다는 뜻인가? 물론 그런 의미는 아니다. 좋은 글씨는 문장을 조화롭게 만들고, 강함과 부드러움이 있어 잘 평형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글씨이다. 가로획이 너무 부드러우면 강함을 다시 조금 더 강하게 하여 평형을 맞춘다. 부드러움이 약하면 강함 역시 조금 약하게 한다.
왕희지가 서예를 볼 때 단순한 획의 구속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강함과 부드러움을 조화롭고 평형을 이루게 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서예의 정화(精華)이다.
물론 문자에는 또한 좌소우대(左小右大, 왼쪽은 작고 오른쪽은 큼), 상대하소(上大下小, 위는 크고 아래는 작음) 등 서로 다른 문제가 있지만, 모두 완전히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음 역시 음양의 표현이다.
어찌 되었든 음양의 이치를 이해하면 진정으로 서예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음 가는 대로 쓸 수 있게 된다. 비단 서예뿐만 아니라 우리 삶 속의 모든 것이 음양의 이치에 부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