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해정(莫海定)
【정견망】
천상(天象)이란 천문(天文)현상을 말하는데, 고대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늘에서 발생한 다양한 ‘자연현상’을 가리켰다.
고대 중국인들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 우주와 사람은 하나의 정체(整體)이며, 우주와 인간 세상에 대응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고인(古人)은 그야말로 《역경(易經)》에서 말한 것처럼 “천문을 관찰해서 시대 변화를 본다[觀乎天文,以察時變]”고 했다. 즉 천상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인간 세상에 장차 발생할 큰 사건을 미리 알 수 있음을 발견했다.
고인은 또 반대로 사람의 행동이 천상(天象)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사람이 하늘을 따라 행동하면 ‘하늘(天)’이 상서로운 상[吉象]을 보이고, 세상에서 비와 바람도 고르게 되어 나라가 편안하지만, 반대로 하면 하늘이 흉한 조짐[凶兆]를 내려보내 세상에 가뭄이나 홍수, 기상이변, 병변(兵變)이나 민란(民亂)이 나타난다.
《한서(漢書)·천문지(天文志)》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설명했다.
“대체로 천문(天文)에서 문헌에 명확히 드러나 알 수 있는 것으로 경성(經星)·상수(常宿)는 중외(中外 중앙과 지역)의 관직이 모두 118명이고 도합 783개의 별이 있는데 모두 주국(州國)의 궁관(宮官)과 물류(物類)의 형상이 있다. 그것이 숨거나 드러나고, 느리거나 빠르고, 그릇되거나 바르고, 존속하거나 사라지고, 허(虛)와 실(實), 트이거나 비좁은 것 및 오성(五星)이 운행하는 길이 합하거나 흩어지는 것, 어기거나 지키는 것, 서로 범하거나 지나쳐가는 것, 다투거나 먹는 것, 혜성(彗星) 패성(孛星) 비성(飛星) 유성(遊星), 해와 달이 옅어지거나 식(食)이 있는 것, 훈적(暈適), 배혈(背穴), 포이(抱珥), 사예(鷥蜺), 신뢰(迅雷), 풍요(風祅), 괴운(怪雲) 변기(變氣) 등은 모두 음양의 정화이고 그 근본은 땅에 있으며 위로 하늘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곳에서 정사(政事)가 실패하게 되면 저쪽에서 변이가 나타나는데, 이는 마치 그림자가 비치고 메아리가 울리는 것과 같다. 때문에 밝은 임금이 이를 보고 깨달아 몸을 삼가고 일을 바로잡아 그 허물을 사죄할 것을 생각하면, 재앙이 사라지고 복이 이르게 되니 이것이 자연의 상서로운 호응이다.”
대체적인 의미는 하늘의 별들과 성수(星宿)는 지상에 모두 구체적인 대응이 있는데 그것들이 나타낸 이상(異象 기이한 현상)은 모두 군왕(君王)의 정치적인 과실(過失)과 관련이 있다. 천인(天人) 사이의 이런 대응 관계를 인식한 중국 고인(古人)은 분야(分野)라는 개념을 제출했다. 즉, 하늘을 각기 다른 구역으로 나누고 매 구역마다 지상의 주(州)나 나라[國 역주: 한대(漢代)의 나라는 비교적 규모가 크고 자치권을 지닌 지방 정부에 해당한다]와 대응시켰다. 가령 어느 분야에 비 정상적인 천상(天象)이 나타나면 그럼 이 분야와 대응하는 구역에 장차 큰일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보자. 《삼국연의(三國演義)》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〇 괴량(蒯良)이 유표(劉表)에게 말했다.
“제가 천상을 관측하니 장성(將星 장수의 별) 하나가 떨어지려 하니 분야로 헤아려보건대 마땅히 손견(孫堅)일 겁니다.”
〇 휘(徽)가 말했다.
“옛날에 은규(殷馗)가 천문을 잘 관측했는데 ‘뭇별들이 영분(穎分)에 모여 있으니 그곳에서 분명 많은 현사(賢士)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영분이란 영주(潁州)에 대응하는 분야를 가리킨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고대의 군왕은 모두 천문관측을 대단히 중시했다. 만약 불길한 천상을 발견하면 황제는 흔히 이에 근거해 조정 정책의 득(得)과 실(失)을 검토하게 하거나 잘못을 바로잡거나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리거나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조서[罪己詔]를 발표했다. 중국 역사상 매 조대(朝代)마다 전문적으로 천상을 관측하고 기록하는 관리가 있어서 천상(天象)을 체계적으로 관측했다.
역사상 체계적으로 천문 예측을 논술한 저서들이 많이 있었는데 가령 전국 시기의 《감석성경(甘石星經)》,한대(漢代) 사마천의 《천관서(天官書)》, 당대(唐代)의 《을사점(乙巳占)》과 《개원점경(開元占經)》 등이다.
사마천의 《사기》 이후 역대 사서에는 모두 《천문지(天文志)》가 있어서 전문적으로 천상을 기록했고 또한 그에 관한 예측도 기록했다. 이런 예측들은 상당히 정확했다. 이런 사례들은 사서마다 모두 있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본다.
《오대사(五代史)》: “원제(元帝) 원년 4월, 참외만한 객성(客星)이 나타났는데 청백색이었고, 남두(南斗)의 두 번째 별에서 동쪽으로 약 4자 정도였다. 점에서는 ‘물 때문에 굶주린다.’고 했다. 5월에 발해의 물이 크게 범람했다. 6월에 관동(關東) 큰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고 낭야군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위서(魏書)》: “6년 6월 금성과 화성이 다시 태미(太微)에 들어왔다. 태사(太史)가 상서를 올려 골육 사이에 재앙이 있고 임금이 바뀐다고 했다. 겨울 10월에 태조가 붕어했다.”
《송서(宋書)》: “촉(蜀) 후주(後主) 건흥(建興) 12년, 제갈량이 군사를 이끌고 위(魏)를 공격하고 위수 남쪽(渭南)에 둔병(屯兵)하니 붉은 별이 뿔처럼 빛을 냈는데 동북에서 서남쪽 제갈량의 진영으로 날아들었다. 세 번 날아들고, 두 번 돌아갔다. 올 때는 많이 오고, 갈 때는 조금 갔다. 점에서 이르길 ‘양군이 비슷하니 큰 유성이 군대 위로 와서 군중(軍中)에 떨어지면 모두 패배할 징조다.’라고 말했다. 9월, 제갈량이 진영에서 사망했다.”
《진서(晉書)》 “원제(元帝) 경원(景元) 4년 6월, 두 개의 큰 유성이 마치 싸우는 것처럼 서쪽에 나타나 남북으로 갈라졌는데 빛을 땅에 비추고 우르릉 소리가 났다. 점에서 이르길 ‘유성은 귀한 사절[貴使]인데 별이 클수록 큰 사절이다.’라고 했다. 이 해에 종회와 등애가 촉을 정복했으니 두 별은 두 장수의 상이다. 두 장수가 서로 대립해 각자 남북으로 갈라졌다.”
형혹수심[熒惑守心 형혹성 즉 화성이 28수 중에서 유독 심수(心宿) 옆에 머물며 움직이지 않는 현상]은 황제와 관련된 천상이다. 즉 형혹성 즉 화성이 심수(心宿)와 중첩되어 움직이는 현상을 말한다. 다음은 역사적으로 사서에 기록된 8차례 형혹수심 천상을 나열한 것이다.
첫 번째를 제외하면 대부분 짧은 시간 안에 군왕과 관련된 재앙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1) 송경공(宋景公) 37년, 경공이 하늘을 감동시키자 형혹성이 3도를 이동해 재난을 피했다.
2) 진시황 36년, 이듬해 진시황이 붕어했다.
3) 한고조(漢高祖) 12년 봄 나타나자 4월에 고조가 붕어했다.
4) 한(漢) 수화(綏和) 2년 봄에 나타나자 3월 한 성제(成帝)가 붕어했다.
5) 영초(永初) 원년 5월에 나타나자 11월 주장(周章)이 한 안제(安帝)를 폐위시키려다 실패해 살해당했다.
6) 중평(中平) 3년 4월 나타나자 3년 후 한 영제(靈帝)가 3년 만에 붕어했다.
7) 황초(黃初) 연간에 위문제(魏文帝)가 붕어했다.
8) 태강(太康) 8년 3월 나타나자 진무제(晉武帝)가 3년 후 붕어했다.
여기서 처음에 나오는 형혹수심이 영험하지 못한 데는 원인이 있다. 《사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형혹성(火星)이 심수(心宿) 자리를 침범했다. 28수에서 심수는 송(宋)나라의 분야(分野)에 해당하니 송나라 임금에게 흉한 징조였다.
경공이 이를 걱정하자 사성(司星 천상을 담당하는 관직) 자위(子韋)가 말했다.
“재앙을 재상에게 돌릴 수 있습니다.”
경공이 대답했다.
“재상은 나의 팔다리요.”
자위가 말했다.
“그렇다면 인민들에게 돌릴 수 있습니다.”
경공이 말했다.
“군주는 인민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 아니오?”
자위가 말했다.
“그렇다면 한 해의 수확 쪽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경공이 말했다.
“수확이 나빠 인민이 굶주리면 누구에 의지하여 군주 노릇을 하겠소?”
그러자 자위가 대답했다.
“하늘이 높긴 하지만 인간 세상의 일을 두루 살피십니다. 주군께서 군주로서 해야 할 세 마디를 하셨으니 화성이 틀림없이 자리를 옮길 것입니다.”
이에 다시 천상을 살펴보니 화성이 과연 3도를 옮겼다.
현대 천문학은 많은 별들이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믿고 있으며, 우주 공간에서 빛의 속도로도 지구에 도달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본다. 그러나 중국 고대 천상학(天象學)에서는 천상이 인간 세상의 일에 대응하는 것이 아주 빠르다고 보았다. 빠르면 며칠 또는 몇 달이고, 길어야 3~5년, 가장 길어도 10년을 넘지 않는다. 이에 관해서는 사서에 많은 실제 사례들이 있다.
《후한서 엄광전(嚴光傳)》: “(광무제가) 다시 엄광을 불러 옛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자리에 누웠다. 엄광이 황제의 배 위에 다리를 올렸다. 이튿날 태사가 객성(客星)이 어좌(御座)를 침범했으니 아주 위태롭다고 아뢰었다. 황제가 웃으며 ‘내 친구 엄자릉과 같이 자고 있었네’라고 말했다.”
즉 엄광이 자면서 광무제의 배 위에 발을 올리자마자 태사가 즉시 객성이 제성(帝星)을 침범한 것을 관측했다.
《명사(明史)》에는 또 이런 기록이 나온다.
“명초 영락제 때 어느 날 아침, 태사가 아뢰었다. ‘신이 어젯밤 하늘을 관찰하다가 붉은 혜성이 마침 제성(帝星)을 침범하는 것을 발견했으니 이는 크게 흉한 조짐으로 폐하 주위에 자객이 숨어 있을 겁니다.’
조정에 나갈 때, 영락제가 대신들의 옷, 모자, 리본을 살펴보며 혹시 ‘빨간색’이 있는지 확인했다. 이때 경청(景清)이 앞으로 걸어 나왔는데 걸음걸이가 좀 부자연스러워 황제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황제가 말했다.
“그대는 장포(長袍)를 입고 있으니 걷기가 불편할 텐데 왜 넘어지지 않도록 옷자락을 좀 들지 않는가?” 경청이 장포를 들어올리자 안에서 새빨간 속바지가 드러났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좌우 호위무사들이 나서서 경청을 쓰러뜨렸다. 호위병들이 경청의 조복을 벗기자 진홍색 옷 한 벌이 드러났고 허리에 단검을 차고 있었다. 심문 결과 경청이 정말 황제를 암살해서 영락제에 의해 폐위된 건문제(建文帝)의 복수를 갚고자 했음이 밝혀졌다.
《주서이기(《周書異記)》란 사서에서 주 소왕(昭王) 24년 4월 8일, 황성인 낙양읍 부근의 강과 하천이 범람하고, 산천과 궁전이 흔들리며 다섯 색깔의 빛이 태미성(太微星)을 뚫고 들어왔다. 이어서 하늘이 파랗고 붉게 변했으며 성안에 온통 향기로 가득 찼다.
소왕이 물었다.
“무슨 징조인가?”
태사(太史) 소유(蘇由)가 해석했다.
“이는 하늘에서 상서를 내리신 것이나 본조(本朝)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서방에 대 성인이 태어나시고 천년 후 성인의 가르침이 우리나라에 전파될 것입니다.”
소왕이 즉시 사람을 파견해 돌에 기록을 새기고 남쪽 교외의 천사(天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곳) 앞에 묻었다.
이것은 주 소왕 24년, 기원전 1027년의 일이다.
이 기록은 놀랍게도 석가모니 탄생에 대한 불경의 설명과 일치한다.
“저 수미보산왕(須彌寶山王)이
이 대지를 굳게 지키고 있다가
보살이 이 세상에 나타나시자
그 공덕(功德)의 바람에 날리게 되어
온 대지가 울리고 흔들림이
마치 풍랑이 뱃전을 두드리듯 하였네.”(《불소행찬(佛所行讚)》)
이것이 바로 중국불교에서 말하는 석가모니가 탄생한 내력이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었을 때, 주 목왕(穆王)의 태사(太史) 호다(扈多) 역시 당시의 이상 현상을 바탕으로 이렇게 추론한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중국 고대의 천상 예측은 현대 천문학의 이념과 크게 다르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중국 고대의 천상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선, 중국 고대 중의(中醫)나 음양술수(陰陽術數)와 마찬가지로 고대 천상학(天象學)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에 뿌리를 두는데, 이는 실증과학에 기초한 현대 천문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고대 중국의 과학은 연구 대상을 정체(整體)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는데, 이는 연구 대상을 기계적으로 부분으로 나누는 현대 실증과학과는 매우 다르다. 따라서 고대 중국 과학에서 우주와 인류의 관계에 대한 이해의 깊이는 흔히 현대 과학이 따라갈 수 없다.
둘째, 사서의 기록에서 볼 수 있다시피 천상(天象)의 해석은 매우 심오한 학문이며, 오직 극소수의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이 이 도(道)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천상학은 흔히 비밀리에 전해지는 학문이었다. 고대의 유명한 군사(軍師 군사 고문)들은 모두 천상에 정통했는데 예를 들면 범려(范蠡), 장량(張良), 제갈량, 유기(劉基 유백온) 등이다.
고대 중국 과학의 독보적인 점은 중의 경락과 혈위(穴位)에서 일부를 엿볼 수 있다. 경락과 혈위는 중의(中醫)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지만, 해부학적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때문에 줄곧 실증과학을 기초로 삼아온 서양의학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데, 나중에 물리학자들이 기구의 도움을 받아 간접적으로 경락과 혈위의 존재를 관측했다. 아울러 중국 고대의 경락혈위도(經絡穴位圖)와 조금의 차이도 없음이 인정되었다.
고대 중국인은 이런 기구가 없었음에도 오히려 경락과 혈위를 매우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데 이는 고대 중국 과학의 인체에 대한 이해가 실제로 현대과학을 훨씬 능가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주와 천상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현대과학이 보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당연히 가능하다. 왜냐하면 몇천 년 역사를 지닌 중국 고대 과학에 비하면 서방의 실증과학은 단지 몇백 년 역사에 불과하고 애초 하나의 체계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자는 각각 장점이 있으니 무슨 이상할 것도 없다.
현대과학은 또한 부동한 척도(尺度 스케일)에 따라 물리학 원리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거시적인 세계에서 뉴턴의 고전역학은 각종 물리 현상을 아주 잘 설명할 수 있지만, 원자나 분자 이하의 척도로 가면 뉴턴 역학은 무력하다. 이때 물질이 운동하는 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양자역학이다.
사진1 원자 10 –10승 양자역학, 사진2 1미터 뉴턴 역학, 사진3 은하(10만 광년)???
고전역학에서 척도의 크기가 미터라면, 양자역학 척도의 크기는 0.1나노미터다. 둘 사이의 스케일은 10의 10승 차이가 난다. 10만 광년 정도 되는 우리 은하의 크기는 약 10의 21승 미터로, 이는 고전역학의 척도와 10의 21승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은하와 우주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고전물리학을 사용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확실히 지금의 천문학의 발견은 현대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많다.
예를 들어, 뉴턴 역학은 은하 속 항성의 운동을 설명할 수 없다.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은하 중심을 도는 항성의 운동 속도는 대단히 빨라서 뉴턴 역학에 따르면 안정적일 수 없음을 발견했다. 따라서 항성의 운동이 뉴턴 역학을 따르게 하도록 천문학자들은 암흑물질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했다.
또 현대 천문학에서는 우리 우주의 규모가 137억 광년이라고 여기는데, 고전역학으로 연구하면 우주의 가속팽창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또 어쩔 수 없이 암흑에너지 개념을 도입해서 암흑에너지가 우주의 팽창을 가속시킨다고 본다.
중국 고대 천문학은 신(神)을 공경하고 명(命)을 아는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청조(淸朝)가 멸망하고 서양 학문이 들어오면서 이러한 전통은 점차 서양 과학으로 대체되었다. 다른 한편, 중국 고대 천상학(天象學)은 비밀리에 전수된 학문이라, 본래 전승(傳承) 범위가 매우 좁아서 전수가 끊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중국 민간에는 아직도 천상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방여지(方勵之 팡리즈) 선생은 한 문장에서 1987A 초신성 폭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천문학계에는 아마추어 점성술 애호가들이 많다. 이 도(道)에 정통한 한 애호가가 1987A 폭발은 또한 주(主 임금)가 흉하니 ‘위(上)에 재앙이 있다’고 했는데 과연, 1년도 채 되지 않아 중화민국의 장경국(蔣經國) 총통이 붕어했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25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