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丹阳) 정리
[정견망 2003년 8월 4일]장주(庄周=장자)가 도가 난법의 선구이다.
<<사기 노자한비열전(史记-老子韩非列传)>>에 기재된 내용에 의하면 장주는 송나라(宋国)의 후예이다. 그의 생존연대는 대략 맹자(孟轲)와 비슷하나 나이는 약간 어린 것 같다. <<사기>>에서는 장자를 일러,”그 학문이 보지 못하는 바가 없으나 그러나 근본은 노자의 말에 돌아간다(其学无所不窥, 然其要本归于老子之言)”라고 하였다. 즉, 장자가 한 말은 모두 원래 노자에게서 기원했다는 말이다.
<<사기>>에는 또한”노자는 도덕을 닦아서 그 학문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며 이름을 내지 않는 것을 위주로 했다”라고 하였다.
또한 전에서 노자를 찬양하기를, “노자는 도와 허무를 중시하여 무위로 변화하였기에 책에서는 미묘하여 알기 어렵다고 했다. 장자는 도덕을 흩어버리고 논을 방자하게 했지만 요점은 자연으로 돌아간다.(老子所贵道, 虚无, 因应变化于无, 故著书辞称微妙难识. 庄子散道德, 放论, 要亦归之自然.)”
이로써 보건대 장자의 이론은 노자와 다르며 장주가 <<도덕경(道德经)>>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풀어낸 것으로 요점은 자연이라는 것이다. 노자가 소중히 여긴 “도(道)”와 장자의”자연(自然)”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음을 한눈에도 알 수 있다.
장주의 저서에 대해 <<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책 10여 만 자는 대개 우화(寓言)의 형식을 띠었다.……외루허(畏累虚), 항상자(亢桑子)의 무리는 모두 빈말로 진실한 일이 아니다”
또한 이것은 아마 노자의 <<도덕경>>이 “미묘하여 알기어려운(微妙难识)”것이고,아무도 노자의 <<도덕경>>이 지닌 진정한 내포(内涵)를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장주가 우화의 형식을 빌어 시험삼아 노자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홍대하고 무한한 “도(道)”를 표현해 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노자의 “도(道)”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의 문장은 “빈말로 진실한 일이 아니었다(空语无事实)”. 많이는 허구였고 노자의 “도(道)”를 자신이 이해한 틀속에 국한시켜서 사람들이 <<도덕경>>을 진정으로 깨닫는데 방해를 조성하였다. 그러므로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이 전에서 다음과 같이 찬탄한 것이다. “모두 도덕경의 뜻에 근원하였으나 노자와는 아주 멀어져버렸다(皆原于道德之意, 而老子深远矣).”
노자의 <<도덕경>>은 수련을 지도하는 것으로 가히 수련하여 신선이 되거나 나라를 다스리고 부흥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장주의 <<장자(庄子)>>는 “그 말이 거창하여 스스로 자처하기에 적당할 뿐이며 왕이나 귀족 대인들은 쓸 수 없다(其言咣洋自恣以适已, 故自王公大人不能器之.)”라고 하였다. 만약 <<도덕경>>이 우주관(宇宙观)이라면,<<장자>>는 인생관(人生观)일따름이다.
진나라 사람들(晋人)이 장자의 이론을 노자의 도에 속하는 것으로 여겼고 나중에 한나라와 위나라(魏)이후에 “노장(老庄)”을 같이 부르며 논하기 시작했다. 후세사람들은 <<장자>>를 <<도덕경>>의 주석으로 여기게 되어 사람들이 진정한 노자의 도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장자가 노자의 법을 어지럽혔다는 말은 여기에 근거한 말이다.
참고서적
1. <<사기(史记)>>
2. <<위서(魏书)>>
3. <<진서(晋书)>>
발표시간 : 2003년 8월 4일
문장 분류 : 중국고대문화>도덕예의
원문 위치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3/8/4/226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