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법제자
[정견망 2001년 10월 22일]
매 하나의 명사(名詞)나 매 하나의 이치[理]는 모두 하나의 생명이며 모두 살아있는 것으로 학습이란 바로 배우려고 하는 대상을 받아들이고 소통[溝通]하는 것이다. 이해하는 것도 또한 소통하는 것이며, 우리들이 한가지 이치를 이해하는 정도(程度)는 곧바로 소통의 정도이자 받아들인 정도이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나오는 1+1=2 라는 이 이치는 사실 한 생명의 배열[排布]이며, 1+1은 2가 아니라는 이치도 존재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가지 이치를 배워나감에 따라 또한 이 생명도 우리 몸 속으로 진입(進入)하여 작용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사람이 무신론(無神論)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런 거짓이치가 곧 사람의 체내와 사람의 사상(思想) 속에 진입하여 그것이 곧 사람의 사상 속에서 작용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것과 같지 않은 사상을 만나게되면, 그것이 곧 배척(排斥)하게되는데, 사람은 자기가 배척한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그 생명이 작용한 것이다.
사람이 세간(世間)에 살면서 배우는 것은 모두다 생명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의 신체와 사상을 만들어 내어[組成] 사람의 선천적인 본성을 덮어버리는데[蒙蔽] 사람은 도리어 이런 것들을 자신으로 여긴다. 사람의 허다하게 많은 이치는 모두 거짓이며 저급한 것으로 마치 진흙과도 같아서 사람의 몸에 칠하면 사람은 더러운 진흙을 도리어 옳다고 여기고 자신이 총명하다고 여기는데 그런 이치들을 누가 준 것인지도 모른다.
왜 어떤 사람들은 학습을 잘하고 어떤 사람들은 학습을 잘하지 못하는가? 이것은 곧 서로 다른 사람이 배우는 대상과 소통하고 받아들이는 정도(程度)의 차이에 기인한다. 어떤 사람이 수학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것을 배우는데 힘을 쏟을 수 있겠는가? 당신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며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데 억지로 하려한다면, 당신의 생명이 저항하게 되고 그것도 들어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수학을 한번 보기만 해도 배우고 싶어하는데 마당이 이미 소통되어 단지 남은 것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마치 사람을 상대하는 것과 같아서 당신이 그것을 좋아하면 그것도 당신에게 접근하고자 하며, 당신이 그것과 모순(矛盾)이 있고 배척하면 그것은 곧 당신을 멀리 떠날 것이다.
하나의 명사와 마찬가지로, 그것의 배후에 있는 내포와 생명의 층차는 같지 않기에, 일으키는 작용도 또한 같지 않은 것이다. 즉, 생명의 본질이 다르기때문이며 표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 같은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같지 않다.
대법은 끝없는 내포가 있기에 사람의 명사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대법을 학습하는 것은 곧 그런 가장 바르고 가장 높은 사상으로 사람 속에 받아들인 거짓이치를 대체하거나 혹은 깨끗이 없애는[淸除] 것이며 그런 변이(變異)된 생명을 깨끗이 없애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경지까지 동화(同化)할 수있 으며,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곧 그 층차 중에 있게 된다. 그 경지 중에 있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그 층차의 이치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속인[常人]은 대법서적 중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가? 이것은 속인의 사상 속에 존재하는 각종 업력(業力)과 좋지 못한 것들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그가 그런 고층차의 생명과 소통할 방법이 없으며, 그러므로 그가 무엇을 보려고 생각해도 곧 아주 어렵게 된다. 그러나 대법 배후(背後)에 존재하는 고층생명(불(佛), 도(道), 신(神))은 또한 사람 사상 중의 좋지 않는 것들을 제거할 수 있으므로, 우리가 반복해서 대법서적을 보는 것은 곧 두뇌 속에 존재하는 좋지 않은 사상을 끊임없이 깨끗이 제거하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 중에 나오는 “법 중에 용해되자(溶于法中)”를 인용하면서 글을 맺고자한다.
“수련생으로서 머리에 담은 것이 모두 대법이라면 이 사람은 기필코 진정한 수련자이다. 때문에 법공부를 하는 문제에서 하나의 명석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책을 많이 보고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진정하게 제고하는 관건이다. 더 똑똑히 말한다면, 당신이 대법을 보기만 하면 변하고 당신이 대법을 보기만 하면 제고된다. 대법의 끝없는 내포, 게다가 보조적인 수단인 연공은 당신들로 하여금 원만하게 할 것이다. 집단적으로 읽거나 개인적으로 보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
발표시간 : 2001년 10월 22일
문장분류 : 문명신견
원문위치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1/10/22/121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