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장제롄(張傑連)
【정견망 1월 15일】(상편에 이어집니다)
2. 권력과 이익으로 유혹
때때로 명확한 증거가 있어 중공의 악행 사실이 확실한 경우에 대해, 당문화의 또 다른 전형적인 반응은 두 손을 흔들며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모처럼 애매모호했어.”라고 말한다.
한 친구의 동료는 해외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해 왔다. 비록 공산당이나 관련 단체에 가입한 적은 없었지만 입만 열면 바로 가장 전형적인 당문화 사유로 늘어놓는 변호의 말이었다. 그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중공은 좋게 변했어, 더 이상 살인을 하지 않잖아.” 이다. 그러나 한번은 공교롭게도 군과 경찰이 산웨이(汕尾)에서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는 한참을 침묵했다. 이 경우 본래 중공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 옳지 못했다는 것을 반성하고 당문화 사유의 통제를 반성하거나 최소한 살인이 부도덕하다는 몇 마디 비난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갑자기 흥분하면서 내게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알려줄까요. 모처럼 애매모호했어요.” 라는 귓속말을 마치더니 크게 웃으며 가버렸다.
당문화는 사람을 이렇게 병적인 상태로 만든다. 공산주의의 허구적인 이상이 파멸됨에 따라, 당문화는 인간의 정신생활과 추구를 전면적으로 봉쇄하고 없애는 것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전력을 다해 물질 욕망의 향유를 숭배하도록 했다. 장쩌민의 말로 하자면 바로 “사람의 이익과 욕망이라는 두 가지 약점을 단단히 붙잡으라.”는 것이다. 십여 년 동안 이렇게 한 결과 물질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도덕과 도의(道義)의 마음을 완전히 대체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모든 일에서 취사선택의 표준으로 삼았다. 지금의 중국인들과 함께 이야기하면 정신적인 번뜩임은 거의 드물고 돈이 최대의 “신”으로 숭배되고 있다. 사회 인심의 급속한 하락은 모든 사람들이 애통해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또 다시 “모처럼 애매모호”해지고 있다.
중공의 폭력통치 악행이 격화되는 것에 대해,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은 더욱 단호하게 도덕적인 태도 표명을 거절한다. 입만 열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귀찮은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 등등으로 자신의 양심적 태도를 회피한다. 이것은 바로 중공 당문화가 과거의 충실한 문화를 지금의 권력 문화로 전환시킨 결과이다.
선악의 구별이 불분명하고 모호하며 명확하지 않으며 도덕을 회피하고 권력과 이익이 클수록 좋다는 이런 요소들은 중국인들의 말과 행동을 더욱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중공은 오히려 그 가운데 완충지대를 찾아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하나의 “모처럼 애매모호” 와 두 개의 “모처럼 애매모호”가 무수한 “모처럼 애매모호”가 되면 결국 중화의 도덕과 양심은 철저히 애매모호하게 될 것이다.
사실 도덕적 양심의 판단 능력은 당문화의 아킬레스건으로, 도덕이 깨어나면 당 문화는 곧 붕괴된다. 《구평》은 도덕의 높이에서 중공을 해석하여 단번에 그 사악한 혼을 단단히 잡았고 중공 측에서는 아직까지 감히 공식적인 반박의 글이 없다.
중공 당문화의 문제는 사회 정당의 이념 범주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정신 도덕적 차원의 문제이다. 중공 당문화는 서양에 침투하여 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대음부(大淫婦)”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모습을 연출하여 인간의 도덕윤리를 모두 어지럽히고 있다. 당문화는 인간에게 “진리와 공의(公義)를 위해 말하는” 것은 가치가 없으며, “돈과 이익을 위해 걱정하고 즐기는” 것이 가장 실속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세계에 눈을 돌리면, 어떤 국가의 행정부문에서도 공명정대하게 가오즈성(高晟智)처럼 감히 중공과 충돌하는 기관이 드물다.
중공 당문화는 세계의 정신과 육체를 이 지경까지 취약하게 만들었다. 일부 자유 전통을 가진 국가들조차 비천한 당문화 독해되어 정부의 행위 표현은 정의로운 개체 생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기본적인 이념이 파괴되었고 인류가 장기적으로 보존해 온 정신과 지조는 중공의 악령과 물질에 의해 와해되었다. 많은 서양인들은 당문화에 의해 “동유럽과 소련이 해체 된 후 공산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중공은 더 이상 공산체제가 아니다”고 오도되었다.
세계는 구체적인 정체(政體) 외형에 휘말리고 당문화의 마취약에 중독 되어, 중공 사교(邪教)의 본질을 사회정당의 문제로 착오적으로 연구하게 만들고 공산 악령의 본래 모습을 이데올로기나 정신으로 여겨 착오적으로 탐구하게 만든다.
공산 전제 정치는 인류의 사유를 복제하고 변이시켜, 전반적으로 인류의 도덕을 때려 부쉈고 계속해서 인류를 훼멸시켰다. 중공이 얼마나 많은 단계적인 정의와 이론을 다시 제기하든 관계없이, WTO가입을 하든, 올림픽을 개최하든지 막론하고 다만 도덕에 대한 지속적인 비방과 정신 신앙에 대한 변함없는 박해를 검증하기만 하면 중공 악령의 본래 모습은 변하지 않았고 인류를 훼멸시키려는 그것의 사명이 좀처럼 중단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악한 악령 문화의 잠식 하에 인간의 도덕은 끊임없이 후퇴하고 있다. 현재 중공 사령(邪靈)은 최후의 사명을 완성하고 있으며 인류 최후의 도덕적 마지노선인 진선인(眞善忍) 을 파괴하고 있다. 만약 이 부분마저 중공에 의해 파괴된다면 단순히 인류가 후퇴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성의 전반적인 악화로 인해 인류가 악령에 의해 완전히 짐승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인류가 직면한 중공의 사악에 대해 도덕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특히 상황이 가장 위험한 중국인들에 대해 말하자면 이것은 자기 스스로를 구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일에 어찌 감히 모처럼 애매모호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3. 흑백 전도와 제멋대로 미화
중공을 언급하면 부패나 횡령이든 아니면 사회가 어지럽다거나 경제가 뒤죽박죽이든지, 당 문화의 반응은 “미국에는 부패와 횡령이 없습니까, 미국의 지도자는 스캔들이 없습니까, 미국에는 총격사건이 없습니까, 미국 경제는 불황이 아닙니까.” 등이다.
당문화는 한결 같이 미국을 말하는데 미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높은 관심은 당 문화가 국민을 통제하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한 국가의 국민들은 자국의 좋지 않은 현상을 언급할 때 자동적으로 다른 국가와 연결짓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복제된 뇌는 빈번히 모든 것을 미국과 비교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당문화의 세뇌에 대해 오히려 전혀 모르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지금의 중미 무역흑자가 일방적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당문화가 억지로 자신을 끌어들여 공격하는 것에 대해 가소롭다고 느낄 때,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연정(戀情)”은 이미 철저히 전국적으로 범람되었다.
중공은 투쟁을 통해 충전한다. 사람의 뇌 속에 투쟁의 요소가 충만해야만 그것이 통제하기에 가장 유리하다. 당문화 중에서 투쟁 요소의 시효가 가장 긴 것은 바로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로, 미국에 대한 적대적인 선전은 암암리에 장기적으로 보존되어 내려왔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미국 콤플렉스도 변화가 생겼다. 특히 현재 중공 당문화는 전반적으로 중국민족의 반미정서를 이용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중공이 악의적으로 국민들에게 배양시킨 강렬하고 변태적인 질투심리이다.
사실 진정으로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고 있는 중국인들은 극소수이다. 중공의 제1세대 두목인 마오쩌둥은 죽기 직전에도 흐리멍덩하여 헌정과 민주의 개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정권에서 물러난 것을, 마오쩌둥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납득할 수 없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닉슨이 1974년 정권에서 물러난 후, 1976년 가을 마오쩌둥도 사망했다. 그 해 1월 1일, 닉슨의 딸과 사위 부부가 마오쩌둥을 방문했다. 단사오제(單少傑) 교수는 《워터게이트 스캔들 담화, 서구 정치 조소》라는 글에서 당사자들의 기록에 근거해 매우 훌륭한 논평을 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당문화 요소가 줄곧 중공 최고위층의 대뇌에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닉슨의 사위가 마오가 이미 물러난 닉슨에게 여전히 대통령이라고 호칭하는 것을 바로잡자 마오의 대답은 “내가 이렇게 부르고 싶은데 당신이 왜 상관하는가?”, 이어서 마오는 더욱 힘을 내서 “겨우 두 개의 도청 테이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뭐가 그리 대단한가? 당신의 수중에 마침 녹음기가 있어서 대화를 한번 녹음했다고 해서 무슨 잘못이 있는가? 누가 당신들 미국에 그렇게 많은 녹음기가 있게 했는가!” 라고 말했다.
데이빗(닉슨의 사위)은 마오의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가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한 것으로 서구 정치에 관계되는 것이며……” 라고 말하자, 마오는 그에게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또 다시 그의 말을 가로채며 “서구 정치라고? 그것은 거짓이오. 왜 안 되는가? 정말로 거짓죽음이며 취약한 죽음이오. 두 개의 도청 테이프가 한 제국을 천지개벽하게 했는데 종이가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심지어 화장지가 붙어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단사오제는 그의 글에서 “마오쩌둥이 “워터게이트 사건” 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공교롭게도 현대 민주제도의 정화 즉, 국가권력의 상호 견제 메커니즘이었다.”라고 평했다.
이미 퇴직한 신화사의 한 유명한 사회부 기자는 이글을 보고 느낀 소감을 발표했다.
“미국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들끓을 때, 나는 그것이 자산계급의 정치 수작이며 닉슨의 반대당인 민주당이 선동하여 국민을 우롱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공화당 내부에서도 그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저는 이것을 통해 자산계급 정치의 허위성을 볼 수 있었으며, 그런 정당의 당원들은 일부 정객에 불과하지만 다만 개인의 명리를 위해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들어 조금씩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역사를 접하면서 그것은 내 자신이 너무나 상식이 결여되어 있으며 서구의 근대와 현대 정치 분야의 사상과 실천에 대해 전혀 무지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혁개방 이전에, 저는 마르크스주의 이외에 세계에는 그 어떤 사회과학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미신은 스스로를 폐쇄시켜 우매함으로 인해 더욱 더 깊은 우매함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저는 올해 83세입니다. 저는 현재 70~80세의 우리 세대들 가운데, 저와 같은 사람이 다만 저 한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글 가운데 작가가 생각하는 “자신이 너무나 상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은 전체 글 가운데 여러 곳에서 나타나며 이와 같이 하기 힘든 귀중하고도 대담한 반성을 보여준다. 사실 당문화가 대뇌를 봉쇄함으로써 초래된 중국인들에 대한 당문화의 뿌리 깊은 낙인이 얼마나 깊은지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아직도 볼 수 있다. 글의 힘은 이 당문화에 의해 다시 제기되면서 크게 제거된다. 이것이야말로 중공이 우리의 뇌 복제에서 설명하는 “두 번째 충성”이다. 그렇다. “아직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 중공은 이러한 사유를 기반으로 하여 장생불사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다시 앞의 화제로 돌아가자. 당문화의 봉쇄 하에, 중국인들이 미국 사회에 대해 보편적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 도리어 당문화에 의해 공격무기로 사용되어 당문화는 일부러 왜곡된 역사와 사실을 이용하여 미국에 대한 적대적인 민족 정서를 선동하였다. 이것은 실질상 중국인들에 대한 중공의 “정신적 살해”이다. 이러한 학살은 이른바 개체의 “자질저하”에 떠맡겨 속죄할 수 없는 것으로, 이런 논리는 사악한 당의 책임을 벗겨주는 것이다. 이것은 당문화가 오랫동안 은밀하게 꾸며온 계획이다. 예를 들면 신문 제목에 일부러 장기적으로 미국을 과장하고 추악하게 묘사하는 당문화는 전 세계에 사스(SARS)를 은폐할 수 있는 것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작은 지역 살인 사건도 절대로 놓치지 않고 보도하면서 세월이 흐를수록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심리는 극도로 복잡해질 것이다.
개인의 장래 발전에 만약 가장 우선적으로 미국을 뽑는다면 어떤 사람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중공의 부정적 사건을 언급하면, 사람들은 쉽게 매우 흥분하는데 당문화 사유 모델의 첫 희생자는 바로 미국을 가지고 맞서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자유는 하나의 제도이자 게임의 법칙이며 아울러 결코 도덕적 수양을 통한 단속이 아니다. 그러나 좀처럼 도덕으로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 중공 당문화는 미국을 언급할 때만 되면 절대적인 도덕적 경계(警戒)를 펼친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항의 군중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것은 원래 민주사회에서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이지만 당문화 안에서는 미국이 거짓민주라는 증거로 된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 당 문화는 국민들에게 오랜 세월 동안 마침내 계급의 적들이 총을 쏴서 “살인”하는 증거를 잡은 것처럼 사주했다. 이렇게 하여 중공의 모든 살인에 대한 혐의까지도 마치 한꺼번에 청산한 것 같다.
그러면 왜 중공은 늘 미국을 주시하고 놓아주지 않을까. 더욱 이상한 것은 미국은 국제 경찰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기에 중공 사령을 억누르려고만 한다면 중공 악령이 심하게 날뛰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자연스레 최대 강국이 되었기 때문에 이 사악한 영은 미국과 맞서게 되었고 그래서 미국을 어떻게든 추악하게 묘사하려는 것이다. 사령이 당신을 조종하여 어떤 변태적인 심리로 만드는 것은, 미국을 공격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복제 세포 안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장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삼권 분립과 환경 보호 등 세계 공인하는 성과에 대해 이야기 하면, 당문화는 화제를 돌려 “중국에는 중국의 특색이 있다. 미국은 중국에 적합하지 않다. 중국은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당문화가 재빨리 관계를 끊으면서 미국에서 멀리 피하길 기다리는 것으로 이 모두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최근 발생한 뉴욕의 3일간의 파업 사건에서, 동료는 또 “봐. 미국이 얼마나 어지러운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얼마나 큰 손실이야. 이런 어리석은 일이 중국에서 일어났어 봐. 어쨌든 중국이 더 나아.”라고 말했다.
그가 중국을 좋아는 것은 나도 찬성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분명 당문화를 사용하여 중공의 통치를 좋다고 여기는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껍질을 뚫고 “미국의 민주는 그것의 게임 규칙이 있어요. 아래에서는 모두 실행을 하고 만약 누가 법을 위반하면 고소할 수 있습니다. 규칙 하에서 불편을 초래하면 원망할 수 있어요. 그러나 보복을 할 수는 없답니다. 왜냐하면 이 규칙은 모두가 정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확실히 중공은 이런 “반당(反黨)”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대중규칙이 없으며 정말로 당의 이익이 당신과 충돌한다면 당신 혼자서 맞서는 겁니다.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으면 잡혀서 맞거나 죽는 등 폭력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규칙이 없는 상태에서 매우 불안정한 중공의 정체(政體) 형식이지요.”라고 말했다.
뉴욕에서 파업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든 상관없이, 전 세계 사람들은 파업 시작부터 분명히 평화적으로 끝나며 사람도 죽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중공이 같은 문제에 대처하는 데 있어 시간이 오래 지연될수록 더욱 학살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파업 시작부터 마음이 조마조마할 것이다.
당문화는 미국의 민주를 뒤집어 중국 국민들의 머릿속에 복제하고 당신이 보면 볼수록 민주가 어떤 것인지 모르게 하며 여전히 중국 특색(당문화 특색)의 것에 더욱 친밀하게 할 것이다. 바로 이렇게 국민들을 한 번 두 번 그리고 영원히 속이는 것이다.
당문화는 미국 콤플렉스를 가지고 장난하면서 정말이지 중국인들을 정신병 환자로 만들어 발작하게 한다.
4. 사이비 민족주의
중공은 결국 현재 인류에서 가장 신뢰가 부족한 당이다. 그래서 정말로 진지하게 토론해보면, 보호하기가 비교적 곤란하다. 특히 현재는 그것의 소행이 드러나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때, 당문화는 엄숙하게 함구할 것을 경고하며 “집안의 허물을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이는 중국인들에게 망신스러운 일이다.” 라고 말한다.
여기에 당문화에 의해 오랫동안 뒤섞인 개념은 중공과 중국을 하나의 개념으로 동일시한다. 중공이라는 집권당과 국가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은 서구에선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중국은 이 둘을 완전히 뒤섞어 놓았다. 이것 역시 당문화가 치밀하게 만들어낸 필살기로 이러한 인식은 당문화로 하여금 기회를 틈타 민족 정서를 이용해 공산당을 수호하려는 것이다. 중공이 위협하는 “망당망국(亡黨亡國)”론은 당과 나라를 절대 분리하지 않는다.
이 당의 갖가지 사악함을 토론하자면, 당문화라는 딱지로 국가와 민족을 중상한다. 그래서 “집안 허물은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중국인들에게 망신스러운 일이다” 등등으로 분리시킨다. 사실 당과 국가를 나누면 이러한 집안을 단속하는 조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떤 가정에서도 청소와 위생을 회피하는 사람은 없으며 이것은 위생을 따지는 좋은 습관이다. 서양의 관점에서 볼 때 일어나서 정의와 양심을 수호하는 것은 더욱 더 용기 있는 행동이다.
중국의 5천 년 역사 가운데 공산당은 겨우 백 분의 일을 차지할 뿐이다. 복제 뇌들 가운데 99%는 역사 기억 장치가 부족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다수의 중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역사는 모호한 개념이 되었으며 정말이지 마치 중공이 여와가 되어 중국인들을 만들어 낸 것처럼 되었다. “공산당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두려움은 사실상 복제 뇌의 진실한 반응이다. 그는 뇌가 복제되고 공산당에 의해 개조되었기 때문이며 이런 의미에서 중공은 복제 인간의 지배자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당문화에는 “혼란을 걱정한다”거나 “안정을 요구한다”, “공산당 외에는 다른 대체 역량이 없다.”는 등과 유사한 표현으로 인간의 사유를 더욱더 제한하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고 감히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며 아름다운 미래를 만든다는 신념을 없앴다.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모든 것들이 집안 망신으로 영원히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상한 것은, 이 사람들도 이런 정당을 따라가면 출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오히려 추악함과 두려움을 모르고 의기양양하다는 것이다. 한번은 그 동료가 내게 “어쨌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니까 죽어도 함께 죽어야지.”라며 현묘한 이치를 드러냈다.
세상에, 복제 뇌 안에 여전히 숨겨져 있는 당문화가 중국인들에게 만들어준 자멸의 논리는 사실 테러리스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준적인 논리이다.
5. 본말이 전도된 당에 대한 잘못된 사랑
당문화에는 한 가지 나쁜 수법이 있는데 바로 도처에서 “공산당이 국민을 길렀다. 공산당이 없으면 국민이 어떻게 살며, 누구에게 임금을 받겠는가” 등등의 호언장담을 한다.
중국인들은 어린 시절 옹알이 하며 말을 배울 때부터 당은 은인이며 인민이 당을 공양하는 것이 아니라 당이 모든 중국인들을 양육하여 먹을 밥과 입을 옷 배우는 것과 성장할 수 있는 것 진보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당의 은혜라고 반복적인 세뇌교육을 받는다. 대뇌에는 “자연히” 공산당에 대한 최고 위엄과 애정이 스며들게 된다.
그러나 당이 얼마의 돈을 들여 당신을 양육했는지 그 돈은 어디에서 났는지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다. 오랫동안 중공이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 마치 하나의 은혜처럼 마치 당신의 노동은 필요로 하지 않고 “지급한” 은혜처럼 묘사되었다. 그러나 정말로 불로소득을 얻는 것은 바로 중공이다.
중공의 지출은 좀처럼 발표되지 않으며 예산 항목에도 없다. 어떤 사람은 중공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정당이라고 계산했다. 무정신(穆正新)은 “중공은 가장 값비싼 정당이다”는 글에서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10억 1백6십5만 달러를 총비용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인민폐로 환산하면 80여 억 위안으로, 중공의 2주일 당 유지 비용에도 못 미치는 액수이다. 국민당의 재산은 거의 백 년간 축적한 것이고 미국 대통령 경선 비용은 4년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중공이 이렇게 많은 돈을 다 쓰는 데는 1개월이면 충분하다.
이런 돈들이 어디에서 났는지 그 모두가 중국인들이 고생해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정부 관료를 먹여 살려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중공 간부 이 두 개의 시스템을 먹여 살려야 한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부양하는가. 아마도 중국 민들은 당문화에 의해 통제되어 아예 이 문제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산당이 없다면 이 방대하고 쓸데없이 돈을 쓰는 부패한 당무 시스템을 벗어버릴 수 있다. 정부에서 성(省) 아래의 당비와 횡령비를 발표한다면, 국민 소득은 두 배가 될 것이다. 민주 선거와 교대 집권은 누가 정부에서 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간단한 일이지만 중국인들로 하여금 숨 막히게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감히 공산당이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사악한 영의 당문화 뇌가 작용하여 나쁜 것들이 당신 머릿속에서 공격하고 당신 몸에 두려움을 풀어놓아 당신이 두려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한 가지 시험을 해보자. 평상시 중공을 나무라는 중국인들도 설사 창문을 닫고 그로 하여금 진실되게 “하늘이 중공을 멸할 것이다. 중공, 내가 너를 멸망시킬 것이다.” 라는 말을 하게 한다면 정말로 어려워 할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당문화에 의해 조성된 공산당에 대한 편벽된 사랑은, 당이 없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데 이것이 정상인가?
물론 국민들의 감정이 반드시 사랑인 것은 아니며 증오라고 할 정도도 아니지만, 바로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것이다. 외투에 곰팡이가 끼었는데도 바꿀 수 없고 씻을 수 없으며 버릴 수 없는 것은, 당 문화의 위협이 항상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은 아주아주 추울 것”란 위협에 놀란 사람들은 중공이라는 곰팡이 낀 옷마저도 꽉 쥔 채 감히 내려놓을 수 없게 한다.
“가장 값 비싼”이라는 글의 맨 마지막 절에, 마침 중공이 어떻게 당에 대한 편벽된 사랑이란 관념을 복제하여 인간의 머리 속에 이식했는지 반영하였다.
“다짜고짜 개인 당 100위안의 당비를 강제로 징수하면 이 당은 분명 인민들의 호된 비난을 당할 것이다. 다시 개인당 2백 위안을 강제 징수하여 1백 위안은 당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 진압에 사용하고 다른 100위안은 인민들에게 “긍정적 사상 교육”을 진행한다면 이 당은 인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산당 “변증법”의 가장 절묘한 방법이다. 돈을 쓰는 강도와 액수가 최고봉에 이르렀을 때, “무산”계급 정당의 찬란한 형상은 수립되기 시작한다. 두꺼우면 마침내 무형이 되고, 검게 되면 마침내 무색이 드러나며, 사치가 극에 이르면 마침내 “무산”이 된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몇 백 년, 중국에서 몇 천 년 만에 비로소 등장한 한 차례의 “악행” 이다.”
6. 하나를 둘로 나누는 변증법으로 희롱
당문화는 조급해지면 “당신들은 극단적이야. 중공이 설마 좋은 일을 하지 않았겠어.”라고 한다. 이것은 당문화가 당신을 가지고 노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를 함께 놓고 사악함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고의로 살인을 하여 사형을 언도하면, 당문화는 오히려 그가 매우 가정을 잘 보살폈고 가정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왜 살인한 것만 말하고 모범 부부였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모든 집권당은 국가 자원을 이용해 가장 좋은 집권을 하는 것이 그 본연의 임무중 하나이다. 반대로, 결혼을 했음에도 도처에 다니면서 자신이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것은 그다지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중공의 집권 역사를 보면 중공이 관여를 많이 했을 때 발전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볼 수 있다. 농업에서 공업에 이르기까지, 중국 경제의 급속한 발전은 당이 관여하지 않고 “규제를 풀어 주었기” 때문에 개인 스스로 주인이 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문화에서 말하는 소위 중공이 “좋은 일을 한” 것의 진상이다.
이와 동시에, 한 집권당이 국가 자원을 이용해 빈번히 하늘이 용납하지 않는 죄악을 행한 것은 바로 빈번하게 고의로 살인죄를 저지른 것과 마찬가지로 마땅히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사람이 다스릴 수 없으면, 하늘이 다스린다. 근본은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성질의 문제이다.
당연히 당문화는 하나를 둘로 나누는 면에서 매우 솜씨가 좋고 기만성도 극도로 강하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유엔 고문 조사 전문 요원이 비준을 받아 중국에 와서 조사할 때 비록 중국의 안배 하에 조사가 허락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적지 않은 중공의 고문단서와 증거들을 발견했다.
나중에 이 요원들은 중공의 고문과 관련된 장문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양 인사들의 표현 습관에 따르면 먼저 발전이 있다고 긍정을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예의를 차리는 용어에 불과하며 핵심은 이어서 서술된 중공의 갖은 고문내용이다.
그러나 당문화에서는 이미 하나를 둘로 나누었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많은 고문에 대해 썼든지 복제 뇌에게는 이미 상관없는 것이다.
그날 동료는 멀리서 극도로 흥분하며 “유엔에서도 모두 말했어. 중국의 고문과 인권에 진보가 있다고 말이야.”라고 소리쳤다.
당문화는 이렇게 사소한 것을 찾아내어 둘로 나누는 것이다. 당문화는 공산당의 생명 연장에 관계된 것이라면 어디건 바로 틈을 찾아 파고드는 것이다.
서양 국가들도 점점 중공의 당문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중공에게 틈을 내주는 것임을 발견했다. 미국 관료들은 직접적으로 많은 교훈을 겪었다. 그들은 중공에게는 약간의 틈만 내줘도, 바로 온 몸을 비집고 들어와 문을 연다고 말한다. 이것은 외관(外觀) 문명을 중시하는 서양 문명에서는 그야말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의 당문화는 이런 것들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틈이 있는데도 파고들지 않으면 기한을 넘겨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고문에 관해, 가오즈성 변호사는 얼마 전 중공의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고문과 박해에 관한 현지 조사를 펼쳐 세 차례의 공개 서신을 상소했다. 혈기 있는 본토 중국인이 중공의 본성을 이해한 것에 근거하면, 중공이 뚫을 수 없는 빈틈은 없다. 한 사건 한 사건이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전대미문의 참상이며 고문과 박해 사례는 유엔 관료들로 하여금 중공이 당문화를 사용해 인권 방면에서 서양의 수법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이번에 당문화는 더 이상 단장취의 식의 속임수를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가오즈성 변호사가 중국 10대 변호사의 한 명이 된 것은 거짓이라고 유언비어를 날조하며 인신공격을 하는데 이는 모두 히스테리적인 몸짓으로 혐의가 완전히 드러나고 진상이 밝혀지자 움츠린다. 이어서 가오즈성 변호사에게 업무 정지 처벌을 내렸으며 몇 개월 동안 하루 종일 감시와 미행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중공은 좀처럼 탄압 대상이 말하도록 하지 않는데,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
가장 중요한 점은, 현재 세계적으로 공공의 적으로 여겨지는 나치 중에서도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을 언급한 사람은 아예 없다. 인류의 공공의 적은 인류에 의해 배척되는 것으로, 그 구성원들은 바로 범죄자이다. 중공도 인민의 공공의 적이 되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향후 중공의 일원에 대한 인류의 태도는 바로 사악함을 벗어났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어떤 사람이 어떤 좋은 일을 하든지 모두 사악한 당에 의해 문 앞을 장황하게 꾸며 더 많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으로 될 수 있는바 이 역시 죄악의 한 부분이다. “중공 중의 좋은 사람들이 중공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는 당도들이 탈당하여 스스로를 구제하지 않는 것은 이 부문에서의 인식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들에게 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커다란 죄를 지은 것이다.
7. 약자는 강자를 이길 수 없다
중국에는 십 몇 만의 변호사가 있다. 공개적으로 소리를 높여 가오즈성을 지지하는 용사들도 여전히 적지 않다. 현재 중공은 한걸음씩 공공연하고 대담하게 가오즈성을 둘러싸고 토벌하려 한다. 먼저 영업 중지 명령을 내렸고 다시 동료를 물러나게 하여 변호사 사무소를 해산시키고 감시 미행하며 가오 변호사의 목을 조르고 있다.
중공의 광분과 당문화의 인성 압제는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약자는 강자를 이길 수 없다.” 와 “공산당에 대항해도 소용없다.”는 이러한 관념이 인간을 제약하여 인간의 담력과 기백을 제한한다.
당문화 안에서는 바로 이런 장기적인 “두려움”을 중국인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인간 심령의 깊은 곳에서 중공에 대한 두려움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나타나는데 거의 이런 식이다. 즉, 용기 있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 예를 들면 가오즈성과 같은 양심적인 인물에 대해 사람들은 비록 감탄하긴 하지만 약속이나 한 듯이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중공이 어떻게 가오 변호사를 탄압하는지를 기다린다.
인간은 이러한 인성을 압박하는 몇 십 년간의 관념을 타파하기를 원치 않는다. 두려울 뿐만 아니라 잠재의식 속에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두려움이 실제로 발생하기를 바란다. 비록 중공이 이번에 에이즈에 걸린 것처럼 내장 기능이 전부 망가져버렸지만, 외형적으로는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중공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설마 중공이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까? 마치 이번에 그들이 멸망에서 도망치기 어려울 때 사람들이 헛된 생각과 당문화의 속박에 굴복하는 것을 타파하면, 당 문화의 새장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두려워하는가. 미래가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지 아니면 미래가 없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인지 당 문화가 압박하는 인간의 마음속에 이 도리가 명백한 사람은 그래도 적지 않다.
8. 무신론: 사람을 해치는 핵심
미래를 이야기하면 당문화에는 미래가 없다. 그것은 진정한 무신론이다. “사람이 죽으면 한 줌의 흙에 불과하므로, 매 순간을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 당문화의 가장 핵심적인 외침은 바로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 나는 다만 나 자신만을 믿을 뿐이야. 나에게 말하지 마라. 안들을 테니까.”이다.
자신을 믿는 사람도, 어떻게 진실한 자신을 만날 수 있는지 모른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실제로 최후에 당문화가 사용하는 방법으로 사물을 대하며 복제된 두뇌는 결국 당문화만 믿을 뿐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기만하고 남도 속이는 것이 아닌가?
중공은 정권을 잡은 후 사람들의 신앙을 말살하였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신령(神靈)이 있어 보살핀다고 믿는 사람들로 악령이 복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당문화의 핵심은 바로 무신론으로, 일단 무신론에 들어서면 인간의 정신적인 위축은 인간의 육체를 자연스럽게 비우게 하고 당문화에 의해 복제된 인간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사람이 만약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영혼을 되찾을 수 없다면 하늘은 단지 한 사람의 껍질만을 구하진 않을 것이다.
무신론자인 한 중국 친구가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향락을 누린다면 죽은 후에 무엇이 되도 상관없다.”라고 호언장담했다.
“죽은 후에 너는 무엇이 되지?”라고 내가 묻자, 그는 “한 줌의 재가 될 거야.”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바로 당 문화의 가장 흉악한 점으로 근본적으로 인간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무신론적인 복제를 통해 인간 스스로 생명을 한 줌의 재와 동일시하여 재가 되는 것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이미 당신은 이 우주에서 진정한 생명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존재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번 당문화가 당신을 복제한 것은 다시 말해 “명분이 정당하면 말도 이치에 맞는다”는 것으로 당문화가 찾아낸 당신을 철저히 파멸시키는 이유이다. 당신 스스로 흙과 재가 되려 한다면 하늘이 악령을 견책할 때 정말로 그것과 함께 사라져 재가 되는 것이다.
맺음말
당 문화의 표현은 너무나 많은데 중국인들은 바로 그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다. 이 당을 위해 그의 일생을 살고 인간 세상에 한 번 와서 헛살고 백 년이 지난 꿈에서 깨어났을 때는 어떤 느낌이겠는가?
중국인의 최대의 고통은 무엇일까? 바로 당문화의 통제에서 헛되이 일생을 보내는 것이다. 다시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복제 뇌가 아니라 본성과 이성을 이용해 세심하게 따져보기 바란다.
인류 역사상 중공이 당 문화로 완성한 최대의 뇌 복제 사업을 철저히 타파하고, 당 문화에서 벗어나 복제 뇌를 때려 부수고 사람 몸을 다시 얻어 미래로 나아갑시다.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6/1/15/353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