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에 대한 얕은 깨달음
작자:산와(山娃)
[정견망]
“도(道)”는 중국인들에게 있어 친숙하면서도 신비(神秘)한 글자다. 친숙하다는 것은 남녀노소 모두 알기 때문이고 신비하다는 것은 진정으로 “도(道)”에 담긴 박대정심(博大精深 넓고 크며 정밀하고 깊다는 의미)한 내포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전법륜”을 끊임없이 보고 다년간의 착실한 수련을 통해 나는 “도”에 대해 약간의 인식이 생겨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도(道)”에 대한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인식은 바로 “도로(道路)”다. 이 도로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걷거나 차를 몰거나 혹은 항해하거나 비행하거나 반드시 일정한 노선을 따라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길을 잃거나 심지어 불행한 일을 겪을 수 있다.
그렇다면 “도로”가 한 층 승화된 것이 바로 “도리(道理)”다. 사람이 세상에 살다보면 인종과 국가를 초월해 모두 반드시 상응하는 규칙이나 제도, 법률을 지켜야 한다. 만일 이 이치를 위배하면 곧 다양한 단속과 징벌을 받게 된다. 우리는 이런 규칙, 제도, 법률을 통칭해서 “도리”라 한다. 이 “도리”는 사람이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관념의 형식으로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거나 혹은 서면 위의 문자로 표현될 뿐이다. 이 “도리”가 단속하는 것은 사람의 행위이며 바꿔 말해 인류 이 층차의 규칙이다.
그렇다면 인류 이 층차의 “도리”가 더 승화되면 무엇이 되는가? 그것이 바로 천체우주의 운행규칙이며 이를 “도(道)” 내지는 “법(法)”이라 한다. “다시 말해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도(道)”이자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법(法)”이다.”(전법륜) 우주는 “도”로 인해 생겨났기 때문에 도생만물(道生萬物 도가 만물을 낳는다)이라고도 한다. “도법(道法)”은 천체우주의 운행법칙이자 규율로 이는 천체우주의 특성이며 우주 중의 만사만물은 모두 이 법칙(특성)의 제약을 받는다. 여기에는 물론 사람의 행위가 포함된다. 만사만물에 대한 도법의 제약은 만고(萬古)이래로 늘 이와 같았고 아주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고 했다.
작게는 사람이 반드시 걸어야할 도로, 사람이 준수해야 할 각종 규칙에서 크게는 천체의 운행규율에 이르기까지 소위 자연재해를 포함해 우주법칙의 자연스런 표현이 아닌 것이 없다. 만약 우주의 법이 영통하지 않다면 그럼 천체는 곧 해체될 것이다. 마치 규칙이 없으면 세상이 크게 혼란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도법”의 표현이 아주 “자연”스럽고 또 사람이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치보다 높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미혹시킬 뿐이다. 오직 수련하는 사람이 도에 입문해 법을 얻어야만 진상을 은폐하는 자연을 타파할 수 있으며 생명과 우주의 규율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이에 근거해 자신의 수련을 실천할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생명의 제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련인(修煉人)은 왜 수련을 하는가? 바로 수도인(修道人)은 우주 중의 진상(眞相)과 우주 중에 법이 있음을 알고 천체우주의 운행규율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생명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규율을 포함한다. 사람이 알건 모르건, 승인하건 하지 않건, 이해하건 못하건, 생명은 윤회하며 만사에는 인과(因果)가 있고 선악(善惡)에는 보응이 따르기 마련이다. 수련은 제고할 수 있으며 이는 우주 특성인 천리(天理)가 시시각각 일체를 균형 잡고 제약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연계의 물에 존재하는 부력의 특성과 마찬가지로 몸이 그 속에 있다면 누구도 예외가 없다. 한 사람이 난(難)이 있고 불행이 있으면 그는 종종 우연한 것으로 여긴다. 심지어 필연적인 것도 그는 자신이 전에 좋지 않은 일을 저지르고 우주 중의 법을 위배해 징벌을 받는다는 것을 모르는데 마치 사람이 자연을 파괴하면 자연계의 징벌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세인을 가장 쉽게 미혹시키는 것은 종종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고 아주 좋다고 느끼는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일이 비록 사람의 이치에는 부합하지만 우주 법의 요구에 꼭 부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의 사람들은 좋고 나쁨조차 분간하지 못하며 사람이 되는 표준마저 모른다. 말법(末法)시기에 사람은 아무것도 믿지 않으며 좋고 나쁨도 분간하지 못하면서 많은 나쁜 일을 저지른다. 때문에 인간 세상에 재난이 많아진 것이다. 사람이 우주의 법칙을 위배했기 때문인데 이 법칙의 특성은 자연스레 사람에게 상응하는 단속을 한다. 겉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은 바로 사람의 이런 난이요 저런 불행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모든 재난과 불행의 근원이다. 석가모니, 노자, 공자, 예수는 왜 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도리를 말했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수련하여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각자(覺者)들은 이 이치를 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자고로 “도(道)”는 “덕(德)”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도덕(道德)”으로 한 사람의 좋고 나쁨을 가늠했다. 노자는 일생에 5천자의 “도덕경(道德經)”을 남겨주었다. 그렇다면 이 덕(德)은 무엇인가? “德(더)는 일종의 백색물질로서, 그것은 우리가 과거에 생각해 온 것처럼 사람의 정신적인 것이거나 사람의 의식 형태 중의 것이 아니며, 그것은 완전히 일종의 물질적인 존재다. 그래서 과거에 노인들이, 德(더)를 쌓으라느니 德(더)를 잃는다느니 한 그 말은 너무나도 맞는다. 이 德(더)는 인체 주위에 있으며, 그것은 장을 형성한다.”(전법륜)
노자는 “도는 낳고 덕은 길러준다(道生之,德蓄之).”고 했는데 다시 말해 도(道)가 만물을 낳고 덕(德)이 만물을 포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왕 도가 만물을 낳았다면 사람도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며 도(道) 속에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도리를 당연히 포함한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어떻게 사람노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이치를 정하거나 혹은 사람을 형성하는 기제를 주는데 바로 인체 주위의 이런 덕에 담겨 있다. 마치 물이 얼음의 상태를 유지하자면 반드시 영하의 온도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과거 종교 중에서 사람이 만약 덕이 없으면 형신전멸(形神全滅) 된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이런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 덕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발표시간:2012년 1월 17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2/1/17/799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