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감로(甘露)
【정견망】
미국 코넬대학 출신의 유명한 교육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호적(胡適 1891~1962년)에게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그는 겨우 13세 때 모친의 주도로 고향에 살던 시골 처녀 강동수(江冬秀)와 혼인을 약속했다. 이후 호적은 상해로 나가 신학문을 배웠고 나중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렇게 1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
한번은 호적이 병에 걸리자 글자도 제대로 모르는 강동수가 그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호적은 일찍이 당시 자신의 감회를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와병 중에 그대의 편지 받으니
다 합해도 여덟 줄이 안 되는구려
중요한 말이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몹시도 나를 기쁘게 했다오.
病中得他書
不滿八行紙
全無要緊話
頗使我歡喜
1917년 12월 호적은 불과 27살의 나이로 북경(北京)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당시로서는 만혼(晩婚)인 셈이라 모친의 요구에 따라 고향에 돌아와 정식으로 혼례를 치렀다.
결혼 직후 호적은 아내를 고향에 남겨 모친을 돌보게 하고 혼자 북경으로 향했다. 이듬해인 1918년, 강동수는 고향을 떠나 호적에게 왔다. 이때 이후 두 사람은 세상 어디를 가든 떨어지지 않고 늘 함께 했다.
한번은 유명한 역사학자 당덕강(唐德剛)이 이렇게 호적을 놀린 적이 있다.
“호적의 명성 우주에 떨치지만 전족을 한 부인 역시 그를 따르네”(胡適大名重宇宙,小腳太太亦隨之)
호적은 소위 신문화(新文化)운동의 주요 제창자이자 7년간 미국에서 유학한 박사였지만 그의 아내는 학교라고는 다닌 적이 없는 시골 아낙으로 전통 방식에 따라 전족을 했다고 풍자한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한평생을 해로했다.
어떤 사람은 호적이 공처가라면서 이렇게 놀렸다.
아내가 외출하면 따라가야 하고
아내가 명령하면 복종해야 하며
아내 말이 틀려도 맹종해야 하며
아내가 화장하면 기다려야 하네,
아내의 생일은 기억해야 하고
아내가 때리거나 욕해도 참아야 하며
아내가 쓰는 돈은 아끼지 말아야 하네.
太太出門要跟從
太太命令要服從
太太說錯要盲從
太太化妝要等得
太太生日要記得
太太打罵要忍得
太太花錢要舍得
하지만 호적은 이런 조롱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또 사람들이 흔히 이해하는 그런 ‘공처가’가 아니라 부부가 서로 포용하면서 진실하게 대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다시피 결혼의 행복은 두 사람의 문화수준이나 학식과는 상관이 없고 오직 덕행(德行)에 달려 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결혼할 때 경제적인 조건을 중시하며 서로 간의 취향이나 포부 따위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돈으로 결혼의 실질을 덮어버렸다.
고인(古人)들은 “천 리의 인연도 실 한 오리에 맺어진다.(千里姻緣一線牽)”라고 했다. 즉 남녀 사이에 결혼하는 인연은 사전에 미리 정해져 있어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이뤄진다는 의미다. 이런 혼인의 연분은 두 사람의 전생의 은혜와 원한에서 유래하는데 이런 인연이 있어야만 금생에 함께 할 수 있다. 또 금생에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상대방을 잘 대해야만 비로소 행복하고 달콤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