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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가시(千家詩)》─오언절구 (7): 변방에 시집가는 영락공주를 보고

글/ 정견 문화교재 편집소조

【정견망】

guān yǒng lè gōng zhǔ rù fān
觀永樂公主入蕃(관영락공주입번)

biān dì yīng huā shǎo,nián lái wèi jué xīn。
邊地鶯花少(변지앵화소), 年來未覺新(연래미각신)。

měi rén tiān shàng luò,lóng sài shǐ yīng chūn。
美人天上落(미인천상락), 龍塞始應春(용새시응천)。

【작가】

손적(孫逖 696~761)은 하남(河南)사람으로 당나라 때의 대신이다. 어려서부터 총명을 타고나 글재주가 있었다. 15세 때 옹주장사(雍州長史) 최일용(崔日用)이 부(賦)를 지어보라고 하자 그 자리에서 붓을 들어 문장을 완성했다. 글에 담긴 이치가 범상치 않은 것을 본 최일용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손적은 이렇게 추천을 받아 당 현종이 낙양에 왔을 때 직접 불러 만나보고는 손적을 중용했다. 중서사인(中書舍人), 전조고(典詔誥), 형부시랑 등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전당시》에 그의 작품 63수가 수록되어 있고 《구당서》와 《신당서》에 전(傳)이 있다.

【주석】

(1)永樂公主(영락공주 yǒnglègōngzhǔ): 당 현종 개원 4년 거란 칸인 이실활(李失活)이 당나라에 귀부하자 가를 송막군왕(松漠郡王)으로 삼았다. 또 동평왕(東平王 당태종의 손자 이속李續)의 외손자 양원사(楊元嗣)의 딸을 영락공주에 봉해 이실활에게 시집보냈다. 중국 고대에는 이런 식으로 종실의 딸을 공주로 삼아 번국 수령에게 시집보내는 일이 종종 있었다.

(2)蕃(번 fān):‘번(番)’과 같다. 고대에 중국과 국경을 접한 이민족이나 외국을 가리킨다.

(3)邊地(변지 biāndì ): 변방의 땅이나 국경 부근 지역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거란을 말한다.

(4)鶯花(앵화 yīnghuā):꾀꼬리와 봄꽃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비유한 것.

(5)年(년 nián):새해..

(6)美人(미인 měirén): 아름다운 여인. 여기서는 거란으로 시집가는 영락공주를 말한다.

(7)龍塞(용새 lóngsài):용성(龍城)의 변새. 한나라 때 흉노의 땅으로 흉노족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을 말한다. ‘용정(龍井)’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고비사막 북쪽에 있다.

【해석】

변방에는 꾀꼬리도 봄꽃도 적어
새해가 되어도 새로움을 모르다가
천상에서 미인(영락공주)이 내려오면
용성 변새도 비로소 봄을 알리라

【관련일화】

중국 고대에 공주를 변방에 시집보내는 일은 한 고조 때 종실의 여인을 흉노 선우(單于)에게 보낸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이웃 민족과 선린우호정책의 일종이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당태종 때 문성공주(文成公主)가 지금의 청장고원 일대에 거주하던 토번(吐蕃) 왕 송첸감포에게 시집가면서 동서문화교류를 촉진시킨 일이다. 당시 티베트 인들에게는 불교가 없었는데 문성공주가 처음으로 한지(漢地) 불교를 전파했다. 불교신앙은 선량하고 인내심 강한 티베트인들이 더욱 평화를 사랑하게 했고 더 나아가 양국 사이에 평화와 우호를 가져다주었다. 이후 불교신앙은 티베트인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뿌리 내렸다.

거란(契丹)은 원래 동호(東胡)의 일족으로 요하(遼河) 상류 일대에 거주했다. 당나라 때 이곳에 송막부를 설치하고 거란왕을 도독으로 삼고 송막군왕에 봉했다. 또 황실의 이(李)씨 성을 하사하고 종실 여인을 공주로 삼아 시집보내곤 했다.

머나먼 변방의 황무지로 시집간 영락공주 입장에서 보자면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분명 갖은 고생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주의 결혼이 새외 변방에 가져다준 평화는 거란인들에게 마치 아름다운 봄날을 가져다주는 것과 같다! 이렇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고려해보고 양국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공주는 자신의 소아(小我)를 희생해 대아(大我)를 완성한 셈이다. 그 자체에 특수한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48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