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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해독 2: 단테의 지옥 여행 해독

글/ 왕호천(王昊天)

【정견망】

2. 단테의 지옥여행 해독

《신곡(神曲)》 1부는 바로 지옥편이다. 단테가 유람한 지옥은 외형상으로 깔때기 모양인데 모두 9층으로 되어 있는데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죄지은 영(靈)이 받는 형벌이 가중된다.

1) ‘세상의 중심’에 담긴 의미

기왕에 하늘에서 단테가 천당(天堂)에 들어가도록 안배했다면 왜 직접 천당으로 가지 않고 먼저 지옥에 내려가 죄지은 영들이 형벌을 당하는 모습 본 후 들어가게 했을까? 지옥편 16곡에서 단테는 지옥에서 만난 고향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악의 쓴맛에서 벗어나 진실한 선생님이
내게 약속하신 달콤한 과일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러나 우선 세상의 중심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여기서 말한 ‘세상의 중심’은 고난의 중심을 의미하는데 이 중심에서는 사람의 신체와 영혼이 모두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수련계에서는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 한 생명이 수련하려면 반드시 우주의 중심인 지구로 내려와서 무명(無明)의 미혹 속에서 고생을 겪으며 수련해서 죄업을 다 갚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2) ‘위대한 영혼’과 ‘3가지 신성한 덕’

단테는 가장 먼저 지옥의 제1층(역주: 림보)으로 들어간다. 이 층에 거주하는 영혼들은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위대한 영혼들이다.

이에 대해 아마 어떤 독자들은 큰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런 성현(聖賢)학자들이나 선지자들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왜 만겁(萬劫)에도 벗어날 수 없는 이런 지옥에 들어왔으며 그럼에도 아무런 형벌을 받지 않는가?

지옥편 제4곡에서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입을 통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위대한 영혼들)은 아무런 잘못도 짓지 않았고 업적도 있으나
아주 중요한 일을 이루지 못했으니 바로 세례란다.
네가 믿는 신앙으로 가는 관문이지.

그리스도 이전에 살면서
그들은 하느님을 올바로 대하지 않았지
나도 그들 중 하나란다.”

단테가 이곳을 벗어나 축복받은 사람들도 있는지 묻자 베르길리우스는 또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머리에 승리의 왕관을 쓰신
권위와 경외로 오신 분을 보았다.

그분은 최초의 아버지 아담, 아벨, 노아의 영혼을 끌어내고
율법을 주고 순종한 모세의 영혼과
아브라함과 다윗 왕, 야곱과 이삭 및 그 자손들 및
그 외 다른 선택된 영혼들을 끌어내 축복해주셨지.”

여기서 ‘위대한 영혼’이란 모든 신성한 덕을 지닌 사상과 지혜를 지닌 이들의 총칭이다. 사실 수련계에서는 한 가지 공통적인 인식이 있는데 보다 거시적인 각도에서 삼계(三界)를 보자면, 만약 누군가 일단 삼계에 들어오기만 하면 곧 만겁에도 벗어나기 힘든 지옥에 들어간 것과 아무런 차이도 없다.

여기서 “머리에 승리의 왕관을 쓰신 분”은 이미 신위(神位)를 획득해서 충분히 지옥을 벗어날 능력이 있고 또 자신의 위덕으로 지옥에 있던 그런 위대한 영혼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 한 층의 사람들은 신성한 왕(王)과 주(主)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지옥 다른 층(즉 2~9층)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우리는 연옥편 제7곡에서 베르길리우스는 림보에 대해 “세 가지 신성한 덕을 입지는 못했지만 악습(惡習)은 모르고 다른 덕은 다 알고 실천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 신성한 덕이란 바로 ‘진선인(真・善・忍)’을 비유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역사적으로 진선인(真善忍) 법리의 훈도를 받지 못했고 이 법리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록 인류도덕을 준수했음에도 잠시나마 만겁에도 벗어나기 힘든 이런 사람의 상태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세 가지 신성한 덕의 위력과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는데 한 생명이 구원받을 수 있는가 여부는 직접적으로 이와 관련이 있다.

3) 단테의 사명

단테는 지옥 여행에서 늘 죄지은 영혼들을 만나는데 그들에게 자신이 생전에 지은 죄과(罪過)를 말하게 하고 그들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속세에 가져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린다. 이를 통해 본다면 단테가 지옥을 두루 여행한 것은 하늘이 그더러 세상 사람들에게 사실의 진상을 알리고 선악(善惡)에는 보응이 따르는 법칙을 알리도록 한 중대한 당부였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일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당시든 지금이든 진상을 듣고 나서 세인들이 진상을 알 수 있기를 갈망했기에 신(神)은 그더러 지옥의 장면을 써내도록 배치한 것이다. 목적은 여전히 신(神)은 사람에게 자비롭고 인류의 도덕을 구원하려 하니 인류가 고통스런 재난에 직면하지 않기를 희망한 것이다. 때문에 단테가 지옥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도록 배치해 인류 생명에게 경고하고 진리를 찾고 선(善)을 향하고 선(善)을 따르게 한 것이다. 이는 신이 인류생명에게 부여한 존재의 주제다.

여기까지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하자면, 여러분들이 파룬궁(法輪功)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면 이는 하늘의 자비로운 배치이니 부디 소중히 여기고 이런 기연(機緣)을 잃지 말기를 바란다!

4) 피렌체의 진짜 의미

단테의 시에 여러 차례 피렌체가 언급되는데 지금의 의미에서 보자면 이미 이탈리아의 도시 이름이 아니라 질투와 폭력, 탐욕, 음욕(淫慾)으로 가득 찬 도시의 범칭이다.

단테는 지옥편 16곡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피렌체여! 새로운 부류의 벼락부자들이
네 안에 거만과 부덕(不德)의 씨앗을 뿌렸으니
벌써부터 넌 고통을 당하고 있구나.”

또 연옥편 6곡에서는 피렌체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그대가 그렇게 정성을 기울여
제도를 만들어도 10월에 나온 것이
11월 중순을 넘기지 못하는구나.

최근의 기억에서만 보아도 그대는
법률과 화폐, 공직과 관습을
얼마나 바꾸고 사람들을 휘둘렀는가!”

지옥편 26곡에서는 피렌체의 미래 결과에 대해 명확히 서술했다.

“기뻐하라 피렌체여! 너무나 위대해서
날개를 활짝 펴고 바다와 대륙을 넘어
지옥에까지 이름을 떨쳤으니.”

이 작품을 지금 시대와 비교해보면 폭력과 탐욕, 음욕이 충만한 도시는 분명 도덕과 신앙이 없는 도시를 말한다. 지금 세상에 중공악당(中共惡黨)은 무신론・거짓말과 폭력으로 정권을 잡고 선량한 중국인들을 의도적으로 잔혹하게 해치는 가장 비열한 것이다. 비록 중공이 경제적인 수단을 동원해 세계 각국의 지도부를 매수했지만 불가(佛家)의 상승대법(上乘大法)인 파룬따파 및 진선인(真善忍)을 신앙하는 대법제자들에게 잔혹한 박해를 가했기 때문에 사령(邪靈)의 추악한 면모와 비열한 행동은 이미 지옥에까지 널리 퍼져 천지인신(天地人神)을 진노하게 했다.

5) 단테가 교황을 비난하는 이유

단테가 시를 쓴 목적은 천국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하느님과 뭇신들이 선량하고 세 가지 성스런 덕을 지닌 생명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푼 것을 찬양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테의 시 속에서 성직자들의 행동을 비판하는 언급을 많이 볼 수 있다. 아울러 정의(正義)로운 신은 종교의 외투를 입은 교황, 추기경, 수도사들에 대한 징벌이 대단히 엄중하다. 지옥 제4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거의 모든 층마다 다 징벌 받는 성직자들이 존재한다.

단테의 작품이 세상에 전해진 지 이미 7백여 년이 지났음에도 지금까지도 쇠퇴해지지 않고 오랫동안 줄곧 전해져왔다. 비록 이 작품에 종교형식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여전히 7백여 년이 넘도록 수많은 고험을 지나왔으니 이는 진정한 신앙에 대한 단테의 이해와 서술이 검증받은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가 종교형식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가 편파적이라고 보거나 불만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시를 신성한 왕관을 씌워주었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은 단테의 시를 통해 신앙의 진실한 의미를 분명히 알게 된 것으로 종교를 신봉하는 것은 하느님을 신봉하는 게 아니며 종교형식이 제아무리 중요해도 진정으로 하느님께 귀의하는 것과는 다르다. 신(神)은 오직 사람의 마음만을 본다.

주지하다시피 세인들이 보기에 성직자는 하느님이 선택한 ‘신의 그릇’이다. 창세주(創世主)께서는 우주 중의 만사만물을 육성하셨으니 여기에는 당연히 지옥(地獄)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세간에서 하느님의 부탁을 대표하는 성직자들이 한 행위가 왜 지옥에서 아주 큰 징벌을 받아야 하는가? 독자들이 분명 아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텐데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우리는 먼저 단테의 시를 읽어보자. 지옥편 제19곡에서 단테는 이렇게 썼다.

“교황 니콜라우스 3세는 살아 있을 때 커다란 망토를 입었지만
성직을 매매해 탐욕스럽게 돈을 벌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동시에 또 자손들이 잘 되기를 바랐다.”

단테는 벌겋게 타오르는 석관 속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교황에게 말했다.

“당신의 인색함은 세상을 슬프게 하고
선을 짓밟으며 악인을 추어올렸소.”

“당신은 금은으로 하느님을 섬겼으니
우상숭배자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성직자들의 위선적인 악행에 대해 단테는 “그 망토는 금을 칠해 금빛으로 반짝이지만 사람들은 머리가 어지럽게 했노라. 하지만 안에서는 전부 납으로 가득하다.”

한편 지옥편 27곡에서 단테는 지옥 제8층 불 속에서 고통 받으며 비참하게 울부짖는 수도사 귀도를 본다.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군인이었다가 수도사가 되었소.
허리를 묶은 몸이면(수도사가 된다는 의미) 속죄하리라 믿었기 때문이오.
그런데 그 벼락 맞을 사제가 없었더라면
나의 믿음은 정녕 실현되었을 텐데!
그자는 나를 옛날의 죄악으로 다시 밀어 넣었소.”

“갖은 모략과 술수를 꿰뚫었기 때문에 내 소문은 땅 끝까지 퍼져 나갔소.”

“내가 죽었을 때 프란체스코(역주: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수도사였음)께서
나를 보러 오셨지만 검은 천사가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갔소.”

단테의 스승 베르길리우스는 성직자들이 신의 당부를 준수하지 않고 저지른 죄는 일반인들보다 훨씬 엄중한 징벌을 받는다고 했다.

지옥편 11곡을 보자.

“하느님을 마음으로 부정하고 저주하면서
하느님의 선함과 본성을 비웃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있는 세 번째 구렁은 가장 좁다.

그곳에서 소돔과 카오르(중세 프랑스의 금융 중심지), 또 하느님을
속으로 깔보고 악담을 퍼붓던 자들에게
낙인을 찍어 표시한다.”

“위선자, 아첨꾼, 마법사
허풍쟁이, 도둑, 성직 매매자
포주, 사기꾼과 같은 추악한 자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처럼 신의 정의를 공격한 위선적이고 성직을 매매한 자들은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지옥의 제9층에서는 종교를 이용해 분열하고 이간질하여 영혼이 일찌감치 하느님을 배반한 성직자들에게 가장 엄중한 형벌을 가한다. 죄지은 영혼은 지옥 속에서 자신의 몸을 찢는데 어떤 영혼은 온몸의 장기가 찢겨지며, 어떤 영혼은 영원히 얼음 속에서 어는 형벌을 감당해야 한다.

단테는 이런 참혹한 장면들을 보고 놀라 지옥편 28곡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더 많은 증거가 없었다면 그자를 말하기가 두려웠으리라.
순수의 갑옷 아래 한 사람의 용기를 북돋아 주는 좋은 동료인 양심에
내가 확신을 갖지 않았다면 말할 수 없었으리.”

사람의 양심(良心)은 이처럼 매우 좋은 동반자로 사람을 보호해주며 죄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왜냐하면 양심이 있어야 스스로 결백하고 잘못이 없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곳에서 형벌을 받는 죄지은 영혼은 이렇게 한탄한다.

“내가 받는 흉악한 벌을 보시오,
서로 굳게 믿는 이들을 내가 갈라놓았으니
죗값은 내 안에서 이렇게 나타났도다.”

이렇게 단테의 시를 보면서 사람들은 신앙(信仰)이란 정말 엄숙한 일임을 똑똑히 알게 된다. 왜냐하면 신앙이 표현하는 것은 신에 대한 약속으로, 바로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하겠다는 약속, 중생을 구도하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만약 신에 대한 정결(貞潔)한 서약에 대해 하루아침에 금전이익을 취득하거나 명예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또는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수단이나 권력으로 삼거나 또는 다른 바른 신앙을 박해하는데 가담하고 그 신도들을 모함한다면 그럼 이것은 이미 신(神)에 대한 배신이자 기만이다. 신의 이름으로 세상 대중을 기만한 것은 죄 중에서도 가중 처벌되는 엄중한 죄가 된다.

이 글에서 필자는 지금 사회의 성직자들을 비난할 의도는 없다. 다만 단테의 시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성직자들이 어쩌다 지옥에 떨어졌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한번 생각해보고 증거를 찾아본 것이다. 이를 통해 참과 거짓을 판별하고 선과 악을 구분하며 독자들이 잘못된 길로 빠져들지 않게 하려는 뜻이다.

동시에 이곳에서 진실로 진선인(真善忍)을 박해하는데 참여한 성직자들에게 당부하니 지금 당장 벼랑 끝으로 향하는 위험한 행동을 멈추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70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