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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해독 1: 지옥편 서곡 해독

글/ 왕호천(王昊天)

【정견망】

들어가는 말

《신곡》은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가 쓴 장편 서사시로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는 지금으로부터 약 7백년 전인 1300년 부활절 직전 시인이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3마리 야수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영혼이 하늘의 지시를 받고 나타나 단체를 곤경에서 구해주고 그를 데리고 지옥(地獄)과 연옥(煉獄)을 유람한다. 이후 성녀(聖女 베아트리체)의 인도 하에 천국에 들어가고 마지막에는 직접 삼위일체의 수승한 장면을 견증하면서 대단원의 끝을 맺는다.

이 시는 풍부하고 세밀한 색채로 천국과 지옥을 묘사하는데 마치 자신이 직접 겪어본 것처럼 생생하게 지옥의 참혹한 형벌을 재현하고 죄인들이 받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들을 묘사했다. 또 무한히 빛나는 사랑으로 천국의 영원한 빛을 보여주었다. 지난 7백여 년 간 《신곡(神曲)》은 유럽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기서(奇書)로 손꼽혀왔는데 시 속에는 풍부한 천문, 과학, 철학 지식과 관련되고 또 대량의 종교 이야기와 수많은 역사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지옥편〉에는 종교의 외투를 걸친 교황, 수도사들이 성직을 매매하고 위선적이고 악의적으로 남을 중상하는 등의 죄악이 왜 가장 엄중한 징벌을 받아야 하는지 폭로해 역사적으로 줄곧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 그 의미는 줄곧 현재 사회의 종교계에 영향을 끼쳐왔고 현재 교황이나 추기경, 수도사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선악을 판단해야 하는지 단테 시의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어떻게 변별하는 지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비록 7백여 년 전에 씌어졌지만 천국・지옥에 대한 묘사를 통해 시인은 인류생명에 대해 엄숙하게 탐색하고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인과법칙을 실증하며, 정신신앙에 대한 정교한 논술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에도 여전히 인류의 영원불변한 주제이자 중대한 현실적 의미를 지닌다. 다만 이 시는 은어(隱語)가 많고 상징적인 수법의 표현이 많기 때문에 본문을 해석할 때 그 상징적인 의미만을 취했다.

〈지옥편〉 서곡 해석

단테는 작품 첫머리를 쓰면서 인생여정의 절반을 거치면서 자신이 이미 어두운 숲속에 빠져 정확한 길을 잃었음을 발견한다. 비록 길을 잃었지만 그는 여전히 일체 행복의 내원인 저 별을 동경한다. 하지만 인류의 음욕, 폭력, 탐욕은 마치 표범, 사자, 늑대 등 세 마리 사나운 맹수처럼 그가 올라가는 길을 한사코 가로막고 있다.

천백 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람이 자신의 선천적인 순수하고 선량을 잃고 ‘진선인(真善忍)’에서 멀어졌다. 다시 말해 이는 인류가 심법(心法)의 단속을 상실하고 탐욕과 음욕을 방종하며 폭력을 숭상한 결과이다.

한편 고대 로마의 유명한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공중을 떠다니다 천사와 성녀를 만난 후 단테를 구원해달라라는 부탁을 받는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 앞에 나타나 이렇게 알려준다.

“이 숲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너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원래 이 3마리 짐승이 지옥에서 방출된 것은 바로 질투 때문이다. 언젠가 지혜와 사랑과 미덕(美德)을 먹고 사는 사냥개가 짐승들을 다시 지옥으로 쫓아낼 것이다. 나는 지금 하늘의 뜻에 따라 네가 곤경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려고 왔으니 너는 앞으로 지옥과 연옥 여행을 마친 후 장차 다른 천사가 너를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길이란 바로 정신과 도덕이 되돌아가는 길이다. 오직 사람이 마음을 닦고 선(善)을 향하는 과정 속에서만 점차적으로 우주특성 ‘진선인(真善忍)’에 동화해 내재적인 경계가 더욱 선량하고 인자하게 변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만 질투심에 미혹당하지 않을 수 있으며 자연스레 폭력・음욕・탐욕이란 이런 사나운 맹수들이 심법의 힘에 의해 단속되어 온순하게 몰아낼 수 있고 그것들이 원래 있었던 지옥으로 되돌려보낼 수 있다.

한 평범한 중생에 불과한 단테가 천국 여행을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은 당연히 아무리 기뻐해도 지나치지 않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존경하던 베르길리우스를 눈앞에 두고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두려움과 의혹이 일어났다.

“그런데 왜 내가 가야 하나요? 누가 허락했습니까? 나는 아이네이스나 바울도 아니고 그 누구도 심지어 저조차도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가야한다면 혹시 경솔한 짓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베르길리우스의 대답을 통해 우리는 천국의 세분 여신(역주: 성모 마리아, 성녀 루치아, 베아트리체)이 곤경에 빠진 단테를 구하려 하는데 원인은 그가 도덕적인 사람이고 마음속에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아주 일찍부터 세속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비록 단테가 수도원에서 전업으로 수행하는 수도사가 아니라 세속의 평범한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내심의 경건한 신앙 때문에 생사의 마난에 처해 여러 신들이 조용히 그를 보호하고 또 그에게 가장 좋은 길을 안배하신 것이다. 또 그의 시적인 재능을 이용해 지옥과 연옥의 모습을 진실하게 작품으로 써내게 하고 고난에 빠진 죄 많은 영혼을 돕는 동시에 세상 사람들에게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법칙이 진실로 존재함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완성한 후 시인은 성녀(聖女)의 인도에 따라 천국을 유행하고 보다 높고 보다 수승한 장면을 견증할 것이다.

이를 통해 본다면 진정한 신앙이란 꼭 심산 속에 들어가거나 사찰이나 수도원에 들어가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또 꼭 외재적인 형식을 중시하는 게 아닌데 왜냐하면 신은 오직 사람마음이 선한지 악한지만을 보기 때문이다. 신은 당신이 가사를 입었는지 아니면 도포를 입었는지 아니면 금은으로 신(神)의 성상(聖像)을 만들었는지, 향을 얼마나 피웠는지, 소위 말하는 공덕상자에 돈을 얼마나 넣었는지를 보고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런 식으로 보는 것이 전혀 아니다.

《전법륜》에서는 “真(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은 우주 중에서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이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 바로 그로써 가늠한다.” “사람으로서 우주의 真(쩐)ㆍ善(싼)ㆍ忍(런), 이 특성에 순응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좋은 사람이고, 이 특성에 어긋나게 행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나쁜 사람이다.”라고 했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7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