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청대(清代) 시인 원매(袁枚)의 《산행잡영(山行雜詠)》이란 시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데 산행의 괴로움을 표현한 것이 마치 수행의 괴로움을 함축한 것 같다. 우선 전체 시를 감상해보자.
십리 산길 울퉁불퉁 반리만 평탄한데
한 봉우리 지나면 또 한 봉우리 나타나누나
청산이 누에처럼 사람을 에워싸니
앞에 길이 있음을 믿지 못하누나
十裡崎嶇半裡平
一峰才送一峰迎
青山似繭將人裹
不信前頭有路行
“십리 산길 울퉁불퉁 반리만 평탄한데 한 봉우리 지나면 또 한 봉우리 나타나누나”
이 두 구절은 산길을 갈 때 쉽고 평탄한 길은 드물고 힘든 길은 많다는 뜻이다. 십리와 반리를 비율로 따져보면 20대 1이다. 여기서는 물론 일종의 비유다.
“한 봉우리 지나면 또 한 봉우리 나타나누나”는 봉우리가 끝없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산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확실히 그런데, 방금 봉우리 하나를 지나고 나면 앞에 또 하나가 나타난다. 산길을 걷는 특징은 시선이 가로막혀 있어 눈앞에는 겨우 몇 개 봉우리만 보여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두 구절은 확실히 수련과 아주 흡사한데 수련 역시 그렇다. 늘 좋은 날은 많지 않고 고비를 넘는 시간이 아주 길다. 막 한 고비를 넘긴 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 수련이란 바로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이를 통해 사람의 항심(恒心)과 신(神)에 대한 견정한 신념을 고험하려는 것이다.
“청산이 누에처럼 사람을 에워싸니 앞에 길이 있음을 믿지 못하누나”
이 두 구절에 담긴 표면적인 뜻은 사람이 청산 속에 있으면 사방이 다 산이고 또 높은 나무들이 있어서 마치 사람이 그 속에 빠진 것처럼 정말로 앞에 길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수련의 한 가지 상태인데 마난(魔難)에 둘러싸여 벗어날 길이 없는 것 같고 과연 앞에 통로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미래에 대한 이런 막연한 미망(迷茫)이 수행인에게는 한 가지 절실한 감수다.
우리가 평소 올라가는 산에서는 흔히 이런 감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지방에서 산길을 걸어갈 때면 마치 끝이 없을 것 같은 감수가 있을 수 있는데 특히 초행길이라면 더욱 고통스럽다. 대체 아직 얼마나 먼 길이 더 남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수련인(修煉人)이란 그 인내심과 항심을 고험해야 하는데 꾸준히 견지해야만 결과가 있을 수 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은 그런 고통은 수련인이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이다.
원문위치: http://big5.zhengjian.org/node/28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