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源馨)
【정견망】
‘알묘조장(揠苗助長 싹을 잡아 뽑아 성장을 돕다)’이란 말은 원래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당시 송(宋)나라의 어떤 한 사람이 자기의 곡식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곡식 싹을 뽑아 올렸는데, 그의 아들이 가서 보니 싹이 말라버렸다는 것을 예로 든 데서 나온 말이다.
어릴 때 이 일화를 보면서 나는 옛날 사람들은 어리석고 과학에 재능이 없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인생 경험을 거친 후, 삶의 어려움 속에서 문득 이 일화는 사실 고인(古人)이 일부 문제들의 핵심을 보고 일화의 형식을 통해 후인들에게 경고한 것임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교육에서 아이의 흥미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인터넷에서 어느 연구원이 이 문제에 관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갑(甲), 을(乙), 병(丙) 세 아이는 나이도 비슷하고 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자유 시간이면 늘 그림을 그렸다. 세 아이는 또 모두 특정 장난감을 좋아했다.
연구원은 갑에게 “일주일 동안 만약 3개 이상의 그림을 그리면 장난감을 주겠다.”고 알려주었다. 일주일 후, 그는 원하는 대로 장난감을 받을 수 있었다. 을도 최소 세 점의 작품을 완성했는데 사전에 장난감을 준다고 언급하지 않았고 뜻밖의 선물처럼 주었다. 병도 비슷한 수량의 작품을 완성했지만 장난감을 준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2주 후, 세 아이 중 하나가 그림 그리는 행위가 현저히 줄어든 것을 발견했다. 대체 누구였을까?
대답은 뜻밖에도 갑이었다. 세 아이들은 지난주에 자신이 왜 많은 작품을 그렸는지 생각해보았다. 갑은 장난감을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했고, 을은 장난감 때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원래 장난감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병은 아무런 외부적인 보상도 받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많은 작품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그림 그리기가 을, 병에게는 재미난 놀이였지만 갑에게는 보상을 얻기 위한 임무로 변했고 보상이 끝나자 갑은 그림에 대한 흥미가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이미 30여 년 전부터 많은 교육 심리학 실험에서 이런 효과를 발견했다. 그들은 더 많고 다양한 대상에 대해 그림, 수학, 독서 등이 포함된 학습활동을 관찰하고 실험했다. 그들은 모두 유사한 실험 결과를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외부 포상이 내적인 흥미를 침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부가 외력으로 잡아당긴 싹은 뿌리가 얕아서 자연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고 말라 죽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식물은 토양과 떨어질 수 없는데 대지가 그것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천성과 타고난 지혜(宿慧)의 뿌리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나는 문득 자강불식(自强不息),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는 청화(淸華)대학 교훈이 떠올랐다. 인재를 배양할 때 두터운 덕(厚德)의 중요성은 마치 농사에 좋은 토지처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천진하고 순수하고 선량하기 때문에 그들의 초기 재능과 흥미는 대부분 내부 잠재력으로 존재한다. 외부에서 가해진 강렬한 욕구가 그들의 통제력 없는 내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아니면 승부욕 때문에 순수한 본성을 차단해 두터운 덕을 잃고 재능 발전에 손실을 끼칠 수 있을까? 전통문화 속에서 후세에 대한 권고와 계시는 모두 핵심을 직접 짚었으며, 또한 늘 생생하고 흥미롭게 우리에게 제시되는데, 그 속에는 오히려 큰 지혜가 담겨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1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