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정견 문장 《조상이 지은 업보를 대법이 풀다(大法解了祖上拆廟殃及子孫之大罪)》를 읽고 나는 큰 감명을 받아 우리 가족의 옛일을 회상해보았다.
1. 친가 이야기
할머니는 중화민국 원년(역주: 1912년)에 태어나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가족은 비교적 부유해서 부농(富農)부류에 속했다. 할머니는 문학적 소양이 매우 좋아서 당시(唐詩)와 송사(宋詞)를 모두 줄줄 외웠고, 당신도 시를 쓸 줄 아셨으며 일찍이 일본 유학을 다녀오셨다. 할머니의 언니는 일찍이 독일 유학을 간 적이 있다.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결혼해서 큰고모와 아버지를 낳으셨다. 그녀는 매우 부지런하여 임신 기간 내내 온갖 집안일을 계속하고 집 안팎에서 바쁘게 일하며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 일을 했다.
그런데 할머니 몸에 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태어난 지 몇 달 됐을 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던 중 어느 날 할머니가 정신이 모호한 상태에서 “가면 죽을 것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는 그 시절에는 아이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누가 죽는다고 하는지 몰라 부친을 걱정하셨다. 결국 그들이 이사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할아버지가 폐병으로 돌아가셨고, 그때 할머니는 26살 정도였다.
할머니는 평생 과부로 수절했고, 남의 집 보모 등으로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웠다. 고모와 아버지는 모두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직장도 좋았다. 할머니는 근면하고 유능하며 요리를 잘했는데 아이를 키우는 데도 요령이 좋아서 이웃들은 모두가 할머니에게 자문을 구하길 좋아했다.
그럼 할머니의 시누이(즉 할아버지 여동생)에 대해 말해보자. 나는 그녀를 다섯째 왕고모라 부른다. 할머니와 왕고모는 평생 친 자매처럼 살았다. 왕고모도 독실한 신앙인으로 본래 미혼으로 출가할 예정이었으나, 중공 악당이 사찰을 부수고 승려를 강제로 환속시키던 상황이라 출가하지 못했다. 마흔 살 무렵에야 결혼해서 딸을 하나 낳았다.
왕고모는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선량한 분이셨다. 그녀는 키가 작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며 늘 염주를 들고 염불을 했다. 사람을 볼 때 자연스레 따뜻하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배려와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지금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할머니는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절을 올리며, 불경을 읽으며, 과일을 사면 먼저 부처님께 공양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면 사람들에게 불교 이야기와 인과 이야기를 들려주며 불교를 믿도록 권했다. 나도 선행을 베풀고 수명을 연장한 일, 악행을 저지른 후 현세현보(現世現報)한 것 등 할머니가 들려주신 많은 것들을 기억한다.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해 채식을 하셨으며 집에서 수행하는 거사(居士 역주: 중국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재가에서 수행하는 사람을 거사라 한다)가 되셨다. 그 몇 년 동안, 그녀는 종종 우리에게 사람의 생로병사의 고통, 미혹 속의 고통, 인생무상, 무아(無我), 원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잘 대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그녀는 내가 중학교 때 아버지와 우리 이웃 온 가족을 데리고 귀의한 적이 있다.
대략 내가 열두세 살 무렵 할머니는 갑자기 내게 음란하지 말라고 권고하셨다. 그때 나는 이 얘기를 듣고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까, 나는 아직 아이라 그런 것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돌이켜보면 색욕을 끊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고, 할머니는 말하자면 내게 예방주사를 놓으신 것이다.
할머니 몸에 발생한 또 다른 신기한 일을 들어보자. 만년에 할머니는 고모 댁에 사셨다. 어느 날 심한 복통을 앓았는데, 병원으로 옮긴 후 심각한 급성 담낭염임을 알았다. 의사는 제때에 와서 다행이며 아니면 끝이라고 말했다. 이것도 많은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그녀는 보통 낮에 집에 혼자 있고, 우리 고모와 고모부는 모두 출근했지만, 그녀가 병이 난 날 마침 집에 사람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집에 전화가 없었는데, 만약 집에 혼자 계셨으면 큰일이 났을 것이다. 병원으로 옮긴 뒤 마침 외과 수술에 가장 능통한 원장님이 당직을 서는 바람에 수술은 아주 순조롭게 잘되었다.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부친은 선량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하셨다. 나는 기본적으로 부친이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아버지는 효성이 지극해서 집에 들어오면 먼저 “어머니”라고 외치고 할머니 방으로 인사하러 가셨다.
그러다, 멀쩡하던 아버지가 50대 중반의 나이에 갑자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나는 대학을 다니다 집에 돌아와 초상을 치렀는데, 할머니는 안색이 평온하셨고 평소처럼 염주를 들고 염불을 하셨다. 그녀는 내가 너무 슬퍼하는 것을 보시고는, 인생에 헤어지지 않는 잔치는 없으며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진다고 가르치셨다.
할머니께서 이렇게 평정하신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83세의 고령에 아들을 잃으셨다. 더구나 할머니는 자식이라곤 아버지와 고모 둘 뿐이었다. 큰고모는 무신론의 영향으로 항상 할머니를 무시하고 봉건 미신을 한다고 했기 때문에 할머니는 줄곧 우리 집으로 오셨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정신적 충격이 컸을 뿐 아니라 말년의 삶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고, 효자 아들을 따르다 신앙에 반대하는 딸을 따라야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내가 법을 얻은 후 고모 집에 가서 할머니를 만나 대법 얘기를 꺼냈다. 또 대법이 박해를 받은 후에는 또 왕고모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딸에게 읽어달라고 당부했다.(편지는 대법 진상에 관한 글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이가 너무 많았고, 여러 해 TV나 신문을 보지 않아 박해 얘기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녀의 생명과 대법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할머니는 아흔이 넘도록 장수하셨고 선종(善終)하셨다. 그 후, 내 아들이 태어났는데 어릴 때부터 대법 속에서 수련했다. 나는 가끔 우리 아들이 할머니가 전생(轉生 환생)했다고 느끼는데 자세한 것은 밝힐 수 없다. 다만 개인적인 느낌이라서 꼭 진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평생 부처님을 믿고 선행한 할머니에게는 반드시 좋은 귀착처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2. 외가 이야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모두 아주 젊은 나이에 중국 공산당을 따라 혁명에 참가하셨고, 여덟 자녀도 모두 어머니를 포함해서 무신론자였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나중에 바람을 피워 사생아도 있었다. 외할머니는 화가 나서 외할아버지와 이혼했다. (그때 그들은 모두 유명 인사였다, ‘노혁명가’란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성격이 급하고 불평불만이 많으며 화를 잘 내셨다. 특히 젊을 때는 가족들에게 악담을 퍼부어 듣는 사람의 속을 상하게 했다. 할머니도 일찍이 그녀와 말다툼을 하셨는데, 아버지는 그녀에게 거의 양보했다. 어머니는 집안일을 싫어하셨고, 나를 돌볼 인내심도 없었으며, 동창들과 모임을 좋아하였다. 또 허영심이 강해서 늘 남과 비교하면서 가족을 싫어했다.
나는 자라면서 어머니와 자주 싸웠고 그녀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원망이 많았다. 내가 수련한 후에야 모녀 관계가 개선되었다. 나중에 사당이 대법을 박해하자 나는 출국했다. 그 시절 어머니에게 진상을 말해도 거의 듣지 않았고, 태도가 오만했는데 때로는 심지어 사부님을 욕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쟁투심이 아주 강해서 너무 화가 나서 전화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머니가 갑자기 말기 암 진단을 받고 3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다. 국내에 있던 한 동수의 도움을 받아 그녀가 어머니를 찾아뵙고 진상을 알렸다. 대법에 부정적이었던 어머니는 진상을 알고 9자진언을 외는 것에 동의했으며, 이후 재검사에서 상황이 변했다. 하지만 극단적인 악성 종양은 아니지만 여전히 불치병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는 제때 친척 방문 비자를 얻는데 성공했고 무작위 신체검사도 받지 않고 순조롭게 해외로 나오셨다. 여기서 사부님의 가지에 감사드린다!
어머니가 외국에 오신 후, 많은 동수들이 그녀를 찾아 대법으로 직접 덕을 본 경험을 나누기도 하였다. 어머니도 이로 인해 대법을 배우게 되었고, 우리를 따라 법 공부 연공을 하고, 크고 작은 단체 공부에 참가하여 법을 배우고, 여러 차례 퍼레이드 등의 활동에 참가하고, 션윈(神韻) 공연도 보셨다. 하지만 수련자들이 금기시했던 주식투자를 내려놓지 못해 진수(真修)에 들어가지 못하고 1년여 만에 병원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많은 암 환자의 말기 극심한 고통과 달리 어머니는 기본적으로 고통 없이 편안히 돌아가셨다.
한 서양인 동수는 어머니가 아름다운 곳으로 가시는 꿈을 꾸었다. 어머니도 재앙이 복으로 얻은 셈이다. 진상을 알고 대법도 수련할 기회도 있었고, 편안히 세상을 떠나셨으니, 스승님의 보살핌과 동수들의 도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과정을 회상하면 정말 고맙고 또 감사하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297
